오랜시간 지나 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上

흔한사람201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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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시간 지나 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上 ]


안녕하세요.태어나서 처음 익명으로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써봅니다.
본래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글들을 눈으로 보고 마는 사람이라 이렇게 글을 쓰는게참 어색하네요.  부족한 필력이겠지만 전문가의 글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비평을 받아야 하는 글도 아니기에 이렇게 온라인상에 볼 수 없는 다른분들에게 한번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건 그저 여러분처럼 같이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흔한 한 남자 이야기예요. 긴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소중한 시간내서 봐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복...받으실겁니다!!


전 이제 20대의 끝자락을 지나가려는 남자입니다.
신체 건강하고, 나름대로의 옳다고 믿는 가치관과 남들처럼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런 남자요. 
70억명이 있는 지구에서 70억개 이상의 시각과 가치관이 있다고 믿기에 어떻게 생각 될 진 모르겠지만 전 운도 좋고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부모님일겁니다.30년 가까이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신 분들이예요.

한쪽은 책임감 있고, 바르고 정직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사회에서도 성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남자. 
그리고 집안에서는 항상 자신의 아내가 최고이고 하루에도 수십번 사랑한다는 말과 무시하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으시며 30년 가까이 사랑해주는 남편. 
자식에게는 강압적이기 보다는 의견을 존중해주시고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내가 있으니 믿고 하고 싶은걸 최선을 다해보라며 어떤 모습이어도 항상 걱정하고 응원해주시는 아버지.  다른 한쪽인 어머니는 흔히 얘기하는 야무지시고 살림도 잘하시면서 아버지의 내조를 충실히 다하시면서 저희 형제를 각자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겉으로는 강해보이시지만 마음도 여리고 따뜻한 분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도 잘 못하시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하며 도움을 주시려는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이기에 강하셨던 것 같지만 한 여자로서는 그렇게 포근한 분이신 것 같아요. 


어렸을적부터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많이들 배우잖아요. 학교에서 도덕책으로 배우든 어른들에게 듣고 자라든지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인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정도로 바르게 살았는지는 제 스스로가 '그렇다'라고 할 순 없지만, 제가 보고 자라온 저희 부모님의 모습은 저에겐 자연스럽게 그렇게 성장 할 수 있게 해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유소년기가 넉넉하진 않았지만 작은 행복에 기뻐하고 좋아 할 수 있게 되었고,
남들보다 어떤 재능이 특출 나거나 인정받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기쁨도 알 수 있게 되었고,
옳바른 가치관과 행동으로 살지 않으면 그 삶이 행복하긴 어렵다는 것도 배우면서 클 수 있게해주셨습니다. 
조금은 무뚝뚝하고 자기 주관이 뚜렸해서 이렇게 감사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서감사하다거나 사랑한단 말을 자주 드리진 못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많이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른 분들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참 대단하신 것 같고 그런 부모님에게 자식들은 그 감사함을 일일이 말이든 행동이든 표현을 해야되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듯이 쉽게 되지는 않는 것 같네요. 
노력할겁니다. 저와 비슷한 분들은 같이 노력해봐요!!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카테고리에 글을 쓰는데 뜬금없이 부모님 이야기부터 꺼내서 의아하셨을 거예요. 
부모님 이야기를 먼저 쓰게 된건 저희 부모님도 서로 사랑을 하셨고, 둘의 행복과 같이 걸어 나가는 길을 자식들과 같이 가게 되면서 연인이든 부부든 어떻게 서로 사랑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쉬운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 꽤 오래전에 저를 정말 아낌없이 사랑해줬고 지금도 아름다웠던 사람을 만났었습니다. 저 혼자 먼저 좋아했고 물론 사랑했지만 그 사람을 떠나가게 만든 나쁜 남자였습니다.
벌써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시간에 가깝게 지나간 이야기네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희 부모님을 보고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는 짧고 많은 연애보다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나서 평생을 우리 부모님처럼 서로 아껴주고 존중해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또래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보수적인? 그런 연애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중학교때 까지는 여자랑 남자가 사귀는게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고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어요.
그래도 고등학교 초반에 한 두번 어린 마음의 좋아하는 감정으로 만났던 사람들도 있었지만,한 두달 만나면서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학생인데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그런 마음이 더 커서 몇 번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던 그런 경험도 있었네요.
그렇게 연애라는게 내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내가 나중에 결혼할 사람을 만려면 더욱 더 신중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어린 나이에 애늙은이처럼 생각했던 그런 애였어요.



 그러다 지금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그 사람을 알게 되었어요.
우연한 자리에서 한번 마주치고 키도 크고 참 하얗고 예뻤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 우연히 친구의 친구라는 사실로 고등학교 2년 정도를 간간히 문자로 연락하는 정도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보이지 않게 들어와 있었고, 저도 혼자 모르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앞뒤 꽉 막히고 나이에 맞지 않는 보수적인 이 남자 아이는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했었나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인연을 맺는 과정조차도 다양한 감정과 생각으로 뒤섞여 만들어 지는데,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순간 순간 피어나는 감정들은 통제할 수 없는 폭탄들을 끌어안고 가는 건데 말이죠.
내가 해야할 것들이 있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품는 마음과 감정은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활활 타면서 머릿속에 가장 위로 올라와 내려갈 생각을 안했던 것 같아요.

 사실 흔히 여자가 남자를 볼 때 생각 할 수 있는 키가 큰지, 얼굴이 잘 생겼는지, 몸이 좋은지, 성격이 좋은지 등등 여러 가지 상대가 가지고 있는 요소처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외관적 기준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만 친구들에게 이론으로 들어서 그랬는지 저한테는 저렇게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좋게 봐도 키도 작지 않고 얼굴이 못생긴 편도 아니고 운동도 좋아하고 성격도 나쁜지 않은 그냥 그저 그런 흔한 남자들 중 한명 정도라고나 할까. 
잘봐야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가 그 사람을 생각하면 자신감이라고는 아기 손톱 만큼도 생기질 않았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아주 가끔 그 사람이랑 문자를 주고 받는 날이 오면 하루종일 어찌 할 수 없는 떨림 때문에 밤잠 설치고 그랬었네요. 
제대로 말 한번 해본적도 없었고, 따로 본 적도 없었는데 저 혼자 그랬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어느덧 고 3이 되었을때, 한창 입시 공부를 하며 미래를 걱정하던 중에 그 사람과 잦은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락에 하루 하루가 행복했고 정말 정말 큰 용기를 내서 그 사람과 처음으로 전화 통화도 했었습니다. 
독서실 밖에 나가서 그 사람의 번호를 누르고 초조한 걸음과 떨리는 손으로 처음 전화를 걸고 목소리를 들었을때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그저 멍했었죠. 꿈인가 싶었던 그런 기억뿐입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고 3 여름에 그사람을 단 둘이 약속을 잡고 처음 봤어요.2주 동안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 이 사실 자체가 기쁨과 행복, 두려움 모든 감정들이 몰아쳐왔고 무슨 말을 할지, 그 사람과 무엇을 해야 할지 참 많이 고민했었 던 것 같아요.


다 부질없는 혼자만의 아둥바둥한 시간이었죠.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사람을 처음 본 순간 백지가 되버렸으니까요.
미리 가서 기다리면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도 혼자 오늘 무엇을 얘기하고 해야할지 생각하던 중에 뒤에서 저를 부르며 웃던 그사람의 모습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해요.
그 이후로는 느껴본 적이 없지만, 시간이 정말 멈춘듯 했고... 그 순간에 그 사람은 아마 제 눈으로 찍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간직할 사진으로 기억에 붙여놨어요.
그날 하루는 그저 혼자 횡설수설하고 남들 다 하는 연애처럼 영화보고 밥먹고 하는 그런 하루 였지만 저한텐 처음 느낀 사랑의 출발점이었어요.



그렇게 만나고 다시 둘다 본연의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수능을 봤어요.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나름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성적표에는 처음 받아보는 숫자가 찍혀있었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제 스스로의 실망감이 컸던 결과였어요.
그래서 상의 끝에 재수를 하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문득 다시 또 그사람이 생각났습니다.수능이 끝난 뒤라 안부차 연락을 하게됐고 다시금 조금씩 인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 사람은 서울로 학교를 가게 되었고, 저는 서울로 올라가 1평정도 되는 작은 방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루 5시간만 자면서 했었어요. 독하게 했습니다.
그러던중 하루 공부가 다 끝나고 자기 전쯤에만 그 사람과 잠깐 잠깐 연락을 하면서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 사람과 많이 가까워졌었어요. 
공부하느라 마음을 많이 쓰진 못했는데 몇개월새 그 사람도 저 같은 사람을 한 남자로 봐주더라구요. 
지금도 참 감사한 일이네요.



욕심을 부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긴 해야 했지만, 더 이렇게 질질 끌다가는 그사람을 정말 놓칠 것 같았거든요. 
둘 다 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을때, 이미 그 사람이 먼저 저에게 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먼저 하게끔 했던 바보같은 놈이었지만, 고백을 했습니다. 
고백을 하면서도 그 사람과의 사랑이 저희에겐 남들과는 다른 처음부터 기다림을 옆에 두고 연인이 되어야했던 상황을 얘기하고 그렇게 저흰 연인이 되었어요. 



참 아름답고 예뻤던 사람이예요 그 사람. 
누가 봐도 이쁘다고 할만큼 키도 크고 예뻤지만, 오래 알고 지내면서 알게 된 모습은 이쁜게 아니라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어른들도 공경할줄 알고, 항상 말도 욕한마디 할줄 모르게 예쁜 말만하는 사람. 아이와 동물들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주관도 뚜렸해서 자기 힘으로 열심히 알바해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꿈도 확고했던 사람.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바르고 본받을 점이 많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과분하네요.  



아마 이런 사람과 저의 만남은 쉽지 않은 만남이었던게 당연했을거예요. 

제 목표를 위해서 한달에 한번 정도 보고 공부가 다 끝나고 전화 통화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요. 
다른 연인들은 매일 같이 보면서 알콩달콩 추억도 만들어가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보면서 사랑을 나누기 바쁜데, 그 사람은 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시작부터 기다림뿐이었을테니까요. 
그래도 전 제가 할 수 있는건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울면서 힘들어하고 멋있지도 않는 남자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던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건 저한텐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재수를 끝냈어요. 
열심히했고 죽어라 했지만 목표했던 대학은 여전히 높은 벽이었어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으니까요.
조금 착잡했지만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원하던 과가 해당 계열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과 성적었는데, 수시나 정시 모두 그 과를 쓰다보니 가게 된 학교는 괜찮은 학교였지만 목표했던 학교보다 좀 낮은 곳이었어요. 물론 학교나 공부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어렸던 마음에 다시 또 실망을 했었네요.
그렇게 학교를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았어요. 그래서 1년을 겉돌았어요.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라고나 할까요? 그 것 때문인지 모든게 다 재미도 없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참 어렸네요. 어린 생각이었고 잘못된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했던 바보였습니다.


 이 멍청이는 그래서 그 힘든 시간을 견뎌준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했어요. 
이젠 그 기다림이 끝나고 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바랬던 그 사람이었는데. 
저런 나약한 정신 상태였던 놈이어서 그 사람이 바랬던 작은 행복과 소소한 사랑들을 더 채워주지 못했어요.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더 지치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때 저의 그런 속내를 이야기하고 서로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이해하려했다면, 그 사람이 좀 더 행복했을텐데 저의 약한 모습과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보여주는게 무서웠습니다. 
그저 혼자 속으로 삭히고 혼자 고민했어요. 

원체 제 속내를 꺼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어려웠던 놈이라 답답했을거예요. 
지금도 후회해요. 



그 사람이 힘들다거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할때 들어주는 것은 쉬웠는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제대로 전하는 방법을 몰랐던 멍청이였어요.
그리고 재수가 끝나고나서 1년 뒤에 전 또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더욱 그 사람을 힘들게 해야 하는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서웠었어요.  이미 나를 그렇게 믿고 사랑해줬던 사람을 힘들게 했는데... 다시 또 더 긴 시간을 저 때문에 견디게 해야 한다는게 1년이나 남았었지만 혼자 그렇게 두려워서 그 1년을 더 행복하게 해줄 생각을 못하고 지치게 만들었어요.
기다려 줄지 안 기다려줄지는 그 사람 마음인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었던 일로 그렇게 미리 혼자 궁상을 떨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지쳐가면서도 사랑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군대 갈때 즈음에 그 사람이 헤어지잔 말을 먼저 꺼냈어요.
그 말을 세상이 내려 앉는 기분이었지만 그땐 저도 이젠 이 사람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아서 헤어지게 되었어요.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너무나 좋고 행복할 순 있지만 이 사람이 날 만나서 그러지 못한다면 헤어져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다 못된 제가 그 좋은 사람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탓이겠지만 마지막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몇달 뒤 전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고 훈련을 받는 와중에 매일 매일 그 사람이 생각났어요. 
제가 그사람이 싫어서 헤어짐을 받아들인건 아니었기에...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가던 중에 편지 한 통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었습니다. 눈물이 고였어요.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기도 전에 그 사람이 쓴 글씨와 그사람의 이름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구요.
자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저는 잘 지내는지 이런 저런 얘기를 적고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혼자 훈련소 화장실에서 몰래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훌쩍댔었네요.
훈련소가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지내는 동안 몇번의 그런 서로간의 이야기들로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헤어지고 군대에 입대해 처음 휴가를 나가게 될때까지 몇개월 동안 참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그 친구는 이른 나이에 사회 생활을 하게 되었더라구요. 아직 사회 생활을 하기에는 어린 나이에 혼자 타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그렇게 휴가를 나가서 다시 재회를 하고 저흰 다시 연인으로 돌아갔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남자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는 상명하복에 남자들만 있는 집단이고 아직도 뉴스에 몇번씩 부조리와 악폐습으로 생겨나는 문제들이 보도 되는 것처럼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정전 국가가 아닌 휴전 국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2년이라는 시간을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으로 당연히 군대를 갔지만 사회 생활 초년생들처럼 군대의 이병, 일병들은 생활이 녹록치 않았었네요. 
힘든 훈련들은 견디기 어렵지 않았지만 폭언이나 부조리 그리고 사회와 단절되어 딱딱한 군대의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는게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과 매일 연락 할 수 없고, 볼 수 없어도 같은 하늘 아래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로 견뎌 낼 수 있었네요.
그런데 참 많이 힘들었었나봐요 그 사람도. 아니요 저 보다 더 힘들었을거예요. 
혼자서 타지에서 일을 하면서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에 밤에 들어오고 다시 사회의 막내로 일을 하면서... 아팠나 봅니다. 

그땐 잘 몰랐어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사회 생활도 하고 이런 일 겪다 보니 그 당시에 내가 만약 그랬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아요.
남자 친구가 있어도 군대에서 복무 중이니 마음대로 연락해서 위로를 받을 수도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실 있으나 마나한 껍데기 같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제가.
휴가를 나가서 보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못해줬었고, 하루 이틀 보면 전 다시 떠나가야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뭔가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던 실수들도요. 독이 되었던 재회였겠죠.
 

그러다 휴가때 보고나서 복귀를 한뒤 연락이 안되더라구요. 
하루 하루 지나갈수록 헤어짐의 느낌이 왔어요. 
처음 헤어졌을 때의 그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몇 주 뒤 마지막 연락이 닿았을 때 그 사람은 이제 행복하다며 떠났어요. 제가 아닌 다른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새벽은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날이었는데그 마지막 통화후 정신을 못차리는 전 선임한테 끌려가 욕을 그렇게 먹는데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안들리더군요. 
유난히 달이 하얗게 떠 있는 날 밤에 초소 밖 구석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눈물을 닦고 닦은 손을 보면 그 사람과 손잡았던 모습들이 계속 생각이 나서...우는 소리에 선임한테 또 혼이 날까봐 꾹꾹 참으면서 울었었네요. 




그렇게 전 제가 정말 사랑했던 그리고 저를 한결같이 사랑해주고 표현해줬던 사람과 이별을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알게 된지 6년정도, 기적적이게도 연인이 되서 만났던 2년정도의 시간이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원망도 했어요. 미워하려고도 했구요. 
그냥 남들처럼 군대에 가니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된 그런 이야기의 한명이겠거니 받아들이려고도 했구요. 그런데 그건 아니었어요.
저 자체의 문제가 컸다는 걸 서서히 알았어요.

.....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편에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