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놓아버리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익명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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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사랑해도 여느 커플이 그렇듯이 사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서 자주 싸우지는 않아도 싸우게 되면 꼭 계속 풀리지 않은 문제 한 두 가지로 싸웠지. 그리고 사실 우리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도 크겠지?
나는 보통 정도의 안정되거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환경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고, 너는 나보다는 낫지만 언제나 현실적으로 허덕이며 살고 있으니 둘 다 미래를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맞아. 그래. 내가 허황된 꿈이나 꾸는 지도 몰라.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들지 않았던 감정을 너로 인해 느껴서 너무 행복했고, 행복한 만큼 괴로웠고, 그래도 괴로운 만큼 사랑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미래를 꿈꾸게 되더라고. 현실이 안 되는데. 너는 생각도 안 해봤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슬펐어. 네가 나만큼 감정이 못 미치나보다. 내가 더 좋아하나 봐.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건 알겠지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에게는 현실의 벽과 너만의 공간에 비하면 알량한 것이구나.
점점 갈 수록 화가 났어. 이 상황에서 나만 병신 같아서. 한편으론 내가 너무 못나서 상황을 타개할 힘이 되어 줄 수 없어서. 이딴 고민이나 하면서 새벽마다 울고 스트레스 받다가 억지로 마음조절하려고 노력하다가 네 서운하고 무심한 한 마디에 또 무너지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그리고 요즘은 솔직히 포기한 것 같아. 사실 너와 풀어야 할 얘기는 많아. 그런데 무서워서 모두 말할 수가 없어. 조금만 말을 풀어놔도 너는 벽을 치고 달아나잖아. 나는 그걸 보면서도 놓지 못해서 또 감내해야 하잖아. 멍청하게.
그래서 못해먹겠더라고, 이 감정 노동. 그래서 많이 맘을 놨어. 그러니까 조금 편해지더라고.
물론 포기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고 초반에는 심지어 미래에 없을 사람을 왜 만나서 온갖 낭비를 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어. 그러면 뭐해. 그렇게 마음을 죽이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감정까지는 죽이지 못했어.
그래서 지금은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자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원하는 만큼 캐주얼하게 다가가자고. 네가 정말 내가 부담스럽다면 난 놔줄 거야.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 내가 떠날 거야.
다만 그게 좀 이르면 좋겠다. 일부러 포기한 마음, 오래 만나면 또 살아날 거 같아서. 너와 행복하게 있던 와중에도 너의 미래에 내가 없는 말을 다시 듣고 상처받기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