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그놈의 식탐

ㅇㅇ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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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 그놈의 식탐




나의 대학동기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 너는 술 안마셔?” 라는 


별 것 아닌 말에도 왜 억지로 먹이려 하냐며 득달 같이 달려드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정확히는 술을 싫어하는 게 맞겠다. 


물론, 인간관계 형성 위해 함께한 자리를 우리가 오로지 술만 퍼붓는 상황으로 


몰아 부치는 것이었다면 사람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또 어떤날은 술을 마시지 않는 동기를 제외한 나머지의 술잔을 채우자 


“그래도 먹는지 안먹는지 물어봐야지.” 라고 말하며  


얼굴을 구기는 모습에서 그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었다.


 동기는 술을 먹지 않았지만 매 술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 했다.


뭐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였을 것이다. 


제목에도 적어놓았듯이 술이 있는 곳엔 항상 맛있는 안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에도 그의 젓가락은 쉴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손가락에 젓가락이 붙어있는 것처럼 함부로 내려 놓지 않았다. 


웬일로 젓가락이 버젓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고 하고 시선을 옮기면


 더이상은 못먹겠다는 표정을 하고는  뒤로 퍼질러진 자세를 


하고 있는 동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안주가 모자르게 되고 안주를 더 시키다 보면 


예상 지출 금액을 훌쩍 뛰어넘기 일쑤였다. 


참다 못한 다른 동기가 “너도 돈을 내라.” 라고 다그쳤던 날도


많은 인고를 견딘 후 였다. 


 식충이는 술을 먹지도 않는 내가 왜 술값을 내야 하냐며 


일종의 갑질이라고 되받아쳤다. 


저렇게 뻔뻔한 얼굴을 하려면 얼마나 단련을 해야 가능할까. 


얼굴에 철갑을 두른 것 같았다.


그말인 즉, 여지껏 자신이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빌미로 수많은 안주를 거덜내고도 십원 한장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날은 기어이 돈을 받아 낸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돈을 냈으니 본전을 찾아야겠다며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많은 양의 안주를  갈취했다.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비이성적인 행위에도 어느하나, 식충이와 싸움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식충이와의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써 


그 싸움을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 



 에피소드라면 밤을 새도 모자를 만큼 워낙에 차고 넘쳐나는지라 이쯤하겠다. 


그리고 식탐에 눈이 먼 자들을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히, 관계를 끊어내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도 가지지 말라고 전하며,


나의 경험에만 의존한 편협한 조언을 건네겠다.



1.짠돌이와 쩝쩝이


그들은 상당히 계산적이다.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같은 값을 지불하면 


균등하게 양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들만의 공식을 대입하면 같은 값을 


내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쳐먹어야 공평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그래서 게걸스럽게 쳐먹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얌전히 그리고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는 사람들 치고 쩝쩝 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2.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들의 입에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왔다면, 


나의 경험으로는 누군가 그의 식탐을 지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다. 


게다가 그런 얘기는 참다참다 터지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그 얘기를 전달하면서


 적정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식충이들과의 끝은 언제가 됐든 난잡해지곤 한다. 


 우리가 아무리 조언이랍시고 식충이들 귀에 떠들어봐야 


우리가 건네는 조언보다 입안에 들어간 음식을 


우그적 우그적 씹어 넘기는 소리만 훨씬 더 크게 메아리 칠 뿐이었다. 


아예 말자체가 통하지 않는 부류들과의 언쟁을 돌이켜 보면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같은 말만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말 싸움이라는것도 기본적으로 말이 통해야 


가능하다는 걸 알려준것도 역시나, 식충이였다. 


제아무리 뛰어난 달변가라고 할지어도 식충이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마련이다.


 


 섣부른 일반화로 다수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된 성향을 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들은 의심 또한 많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식탐이 이성 마저 게걸스럽게 먹어치운게 틀림없었다. 

 

배려는 때로 공감이고, 또 인정 그자체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공감하고 인정하면서 배려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존중받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배려가 완전하게 배제된 그 상황안에 놓여 있다면, 인생과 인생이 부딪히는 집합점에 서있던 관계라는 것을 무너뜨릴 만큼 행동이기에  단순히 ' 식탐'이라고만  치부하기는 힘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