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30살 아직은 미혼인 남자입니다. 미혼인데 자식은 어떻게 있고 나이는 15살이냐고요? 사실 저는 제 막둥이 동생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가 없냐? 멀쩡히 살아 계십니다. 형편상 제가 맡게 됐냐? 두분이 먹고 죽지 않을 만큼 부족함없이 삽니다. 이렇게 넷상에 글을 올리는 것도 처음이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는 것도 처음이네요.
제 동생은 성이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이복동생입니다. 재혼 가정으로 제 나이 14살 쯤 어머니와 재혼하셨고, 어머니가 당시 40이 다 되가던 늦은 나이에 막둥이를 갖고 낳게 되신 건 새아버지는 물론 본가에서 강력하게 원하기도 했고(그쪽은 딸 둘, 저희는 큰형이랑 저희랑 남자 둘) 당시 어머니도 친아버지와 헤어지고 7년? 10년 만에 새로운 분을 만나셔서 한평생 살 건데 고민 끝에 저희 형제에게 의사를 묻고 곧바로 운이 좋게 인심을 하셔서 낳으셨죠.
아이를 낳고 처음 몇 달은 새아버지가 번 수익으로 살아갔습니다. 인테리어 기술자인데(목수) 일당은 적지 않았지만 일이 많지 않고 게으르셔서 일을 많이 안하셨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았습니다. 산달이 다가오자 일이 없는지 잘 안 찾아보는 건지 생활비가 없어서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당에서 일하시곤 했습니다. 또 그 무렵 새아버지는 다단계에 빠졌고, 해산한 어머니와 큰형, 당시 형 여자친구, 본인 동생인 삼촌까지 끌어들여 일을 벌렸고 뭐 다단계가 잘 됐겠습니까? 남들 다가는 수순을 밟았죠. 돈 퍼붓고 집에 정수기, 안마기 사고...뭐 그런.. 암튼 그렇게 가세가 기울고, 갓난 아이였던 동생을 시골에 맡겼죠.
중3학년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학비도 필요없으니 동생을 맡기지 말라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죠. 당시 학교 갔다오면 기저귀 갈고 분유 타고 하다보니 어린 나이에 동생이라기 보다 자식이라는 생각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저는 친아버지 댁에 가서 살았고 큰형은 친가댁(새아버지댁 시골 말고, 친조부댁)에 가서 살게 됐고(여동생들은 애초에 같이 안 살고 어릴때부터 새아버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셨다고 함.) 그렇게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입대를 하고 전역한 후 약 5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제 동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10년 정도 되겠네요? 원룸에서 새아버지, 어머니, 큰형, 저, 동생 이 다섯 식구가 살게 됐고 다단계를 하던 새아버지는 갑자기 PC방을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사장님이 운영하시는데 그걸 본인에게 줬다나 그랬다고 합니다. 대학교 재학시절 4년 내내 장학금은 받았지만 전액은 아니었으므로 학자금 일부와생활비 대출을 꼬박꼬박 받았습니다. 학기마다 교내 근로 알바와 방학 때도 한번도 안 빠지고 일을 했죠. 학자금 대출이 생길 수 없음에도 빚이 생긴 건 혼자 거의 생활비를 식당일 해서 충당하시는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죠.
#죄송하지만 길이 너무 길어져 이어서 더 쓰겠습니다.#
30살에 15살 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동생은 성이 다르고, 어머니가 같은 이복동생입니다. 재혼 가정으로 제 나이 14살 쯤 어머니와 재혼하셨고, 어머니가 당시 40이 다 되가던 늦은 나이에 막둥이를 갖고 낳게 되신 건 새아버지는 물론 본가에서 강력하게 원하기도 했고(그쪽은 딸 둘, 저희는 큰형이랑 저희랑 남자 둘) 당시 어머니도 친아버지와 헤어지고 7년? 10년 만에 새로운 분을 만나셔서 한평생 살 건데 고민 끝에 저희 형제에게 의사를 묻고 곧바로 운이 좋게 인심을 하셔서 낳으셨죠.
아이를 낳고 처음 몇 달은 새아버지가 번 수익으로 살아갔습니다. 인테리어 기술자인데(목수) 일당은 적지 않았지만 일이 많지 않고 게으르셔서 일을 많이 안하셨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았습니다. 산달이 다가오자 일이 없는지 잘 안 찾아보는 건지 생활비가 없어서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당에서 일하시곤 했습니다. 또 그 무렵 새아버지는 다단계에 빠졌고, 해산한 어머니와 큰형, 당시 형 여자친구, 본인 동생인 삼촌까지 끌어들여 일을 벌렸고 뭐 다단계가 잘 됐겠습니까? 남들 다가는 수순을 밟았죠. 돈 퍼붓고 집에 정수기, 안마기 사고...뭐 그런.. 암튼 그렇게 가세가 기울고, 갓난 아이였던 동생을 시골에 맡겼죠.
중3학년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학비도 필요없으니 동생을 맡기지 말라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죠. 당시 학교 갔다오면 기저귀 갈고 분유 타고 하다보니 어린 나이에 동생이라기 보다 자식이라는 생각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저는 친아버지 댁에 가서 살았고 큰형은 친가댁(새아버지댁 시골 말고, 친조부댁)에 가서 살게 됐고(여동생들은 애초에 같이 안 살고 어릴때부터 새아버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셨다고 함.) 그렇게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입대를 하고 전역한 후 약 5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제 동생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10년 정도 되겠네요? 원룸에서 새아버지, 어머니, 큰형, 저, 동생 이 다섯 식구가 살게 됐고 다단계를 하던 새아버지는 갑자기 PC방을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사장님이 운영하시는데 그걸 본인에게 줬다나 그랬다고 합니다. 대학교 재학시절 4년 내내 장학금은 받았지만 전액은 아니었으므로 학자금 일부와생활비 대출을 꼬박꼬박 받았습니다. 학기마다 교내 근로 알바와 방학 때도 한번도 안 빠지고 일을 했죠. 학자금 대출이 생길 수 없음에도 빚이 생긴 건 혼자 거의 생활비를 식당일 해서 충당하시는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죠.
#죄송하지만 길이 너무 길어져 이어서 더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