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해서 죄송합니다.

예비워킹맘2017.12.15
조회3,184

저는 11년차 직장인, 9주차 임산부 입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임산부의 처지라던지, 워킹맘의 고충에 대해 제대로 공감해본적이 없어요. 피상적으로 아 힘들겠다... 허무하겠다...우울하겠다... 정도의 동정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으로 생각해왔고 비로소 제 현실이 되고서야 이거 정말 잘못되었구나... 진짜 슬프다..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기 고통이 제일큰거죠. 저의 이기적이었던 태도를 반성해봅니다.

 

입덧때문에 너무 고생을 한 나머지 회사에는 매우 초기 단계에 알려서 배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물마시는것도 힘들고 체중은 10%이상 빠지고, 심한 두통과 현기증으로 링거를 맞으며 버텨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회사엔 최대한 문제가 없게 하기 위해 열흘이 넘는 장기 출장도 갔고, 무급휴가9일동안엔 랩탑을 집으로 가지고가서 집에서 구토가 멈췄을때마다 짬짬히 업무를 했습니다.

 

저는 저희 팀의 리더였기 때문에 저의 공백에 대한 회사의 우려가 매우 컸고, 그런 입장에 대해서는 십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너무 컸기 때문인건지 저의 산휴와 육아휴직에 대한 회사의 태도는 매우 험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양쪽 집안으로 부터 어떠한 도움이나 지원도 받을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오롯이 저와 신랑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며, 한달 월급의 50%를 대출금 상환으로 (10년) 갚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기가 목은 가누고, 어린이 집에 보낼수 있는 개월수인 6개월 까지는 제가 최대한 돌보고 싶다며 3개월 산휴 이후 3개월 가량의 육아 휴직을 쓰겠다고 했을 때 회사의 답변은

 

"법적으로 절대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건 3개월뿐"

"일하는 엄마들은 다 험난하게 사는거다. 그거 감수 안하려 했냐"

"3개월 이후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도 방법 없다."

 

그럼 돌이 막 지난 그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냐는 저의 눈물섞인 호소에 대한 답변은.

 

"지금 임신 9주차지만 지금부터 아기돌볼 사람 구하면  문제 없는거 아니냐? 아기 낳고 딱 닥쳐서 구하려고 하니깐 못구하는거다."

"그리고 너가 시터를 구하고 못구하고 까지 회사에서 고려해줘야 되냐"

였습니다.

 

그리고 선심쓰면서 하는 얘기가

 

"산휴 3개월 육아휴직 1개월. 그 이상은 절대 용납할수없다. 만약 이를 받아들일수 없다면 회사도 다른 대책을 강구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대책은 명확히 언급되진 않았어도 저에게는 그 뜻이 매우 정확히 전달되었습니다.

 

면담을 진행하는 인사과와 상사의 암묵적인 경고에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불면증까지 걸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입니다.

저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임산부를 배려한다는 핑계로 제 밑에 있는 직원에게 매우 큰 권한을 이양하거나, 제가 할수 있는 저의 업무를  그친구에게 넘기는 식이거나, 혹은 팀 리더끼리의 미팅이나 이메일에 반드시 그 친구를 포함시키는 형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상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저는 마치 사막에서 제풀에 쓰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떼에 둘러쌓인 한마리 얼룩말이 된것만 같은 느낌있습니다.

 

물론 법적인 조치를 알아보지 않은건 아닙니다.

직장맘 고충센터의 노무사와의 상담을 통해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벌금은 고작 500만원. 이 마저도 회사와의 모든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신고"의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버틸수 없는 분위기일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회사와 적정히 타협을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라는게 상담내용의 결과였습니다. (일년에 육아휴직 거부가 신고되는 건수는 놀랍게도 10건 미만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제가 느낀것은 임산부는 죄인이며, 이 죄에 대한 형벌을 최대한 감형받기 위해서는 있는 수단 없는 수단, 내가 그동안 알고 있는 모든 협상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손이 발이되도록 빌어 쟁취해 냈을때야 비로소 3개월의 육아휴직을 얻어 낼수 있다는.. 그 싸움은 매우 외롭고 고독할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티비에서는 아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학대하는 어린이집이 매일 보도됩니다.

 

정부에서는 인구감소가 큰 사회적 문제라며 모두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너의 육아는 내알바 아니고  회사와 동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잘못된 걸까요?

 

저는 대기업이나 공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지금 만약 저에게 취업을 준비하는 동생이 있다면 무조건 대기업과 공사를 지원하라고 조언할겁니다.

 

저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가정 내에서는 적어도 우리부부를 부양할 2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죽어다 깨어나도 둘째는 갖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청장년층 취업난은 이렇게 빡센데, 중소기업은 구인이 힘든이유.

출산율이 날이갈수록 낮아지는 이유.

저는 이제 알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