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경리년과의 점심약속

삼부자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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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도착한 건 13시 40분경. 불 놓은 축사에서 튀어 나오는 돼지 떼거리 마냥, 사은 매장으로 러시 중인 아줌마 패거리들이 온 층을 점령하고 있었지.


약속시각보다 십 분 정도 늦을 거 같다며, 팔 층 티지아이에 자리 좀 내고 있으라고 경리한테 문자가 왔다.
패밀리 레스토랑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난감했어. 결국 종업원에게 이러구러 물어,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다.

차림표를 핼끗대고 일행이 도착하면 주문을 내겠다고 했어. 된통 알아먹을 수 없는 메뉴에, 말씨까지 흐리터분해지더라.

촌닭이 서울에 가면 어느 구들에도 앉을 데가 없다더니, 척 봐도 어리보기인 호빗 한 마리가 주문까지 더듬자, 종업원들은 겉웃음을 놓았어.


삼십 분 정도 죽치고 있으니, 먼발치에서 경리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화장은 평소대로 옅었지만, 가두리에 큐빅으로 수가 놓인 귀고리가 눈에 띄었어. 검남색 야구잠바에 청색 스커트를 걸치고 얄팍한 레깅스를 신었는데, 그 밑을 받친 스니커즈의 주둥이가 도톰하더라.
매무새가 참한 것이, 날 불러준 게 다 고맙더라고.


내가 뭘 먹겠냐고 물었어. 휴대폰을 열더니, 잠깐 기다리라더라.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작게 새된 소리를 내더니만 “아냐, 나도 지금 왔어. 빨리 와.”라며 금방 전화를 끊었다.


대놓고 뒤통수치는 게 아닌가 싶을 만치 의뭉스러운 꼴에 물었지. 일행이 또 있냐고.
경리는 손거울을 열고, 윗입술에 연지를 먹이며 그러더라.
교회 친구들인데 쇼핑하다 끼니를 걸러, 배곯고 있대서 불렀다고.

대꾸 후 제꺼덕 주문을 하더라고. 씨즐링 치즈 뭐시기하고 케이준 엔젤, 코코넛 쉬림프인가 뭔 가하고 샐러드를 숨 한 번 안 들이고 주저리더라.


주문 도중에 낯모를 아가씨 셋이 우리 쪽 테이블로 왔다. 왜 이리 늦었냐며 저들끼리 허리가 까부라지게 깔깔대는 게, 작당은 진작부터 꾸민 듯 했다. 식비가 급했던 나는 조심스레 물었지.


난 점심을 때운 지 얼마 안 됐다. 식대는 얼마씩 추렴하면 좋겠냐.


경리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쥐색 재킷에 뿔테 안경을 걸친 여자가 대뜸 한숨을 뱉더라.


“우린 그 쪽이 점심 사준대서 연락 받고 온 건데요.”


싯누렇게 뜬 얼굴이 영락없이 개살구인 그 여자는 제 친구를 흘기며 대꾸했고, 이어지는 경리의 꼬락서니는 더욱 기가 찼지.


이런 레스토랑에서 밥값 내는 여자 봤냐. 계산대를 집는 건 다 남자다. 먼저 자리 놨으면서 기본 코스도 안 돌려놓고, 팸레 한 번 안 와 봤나보네. 여자가 먼저 청을 할 때는 남자 지갑이 따라주는 게 상식 아니냐.


천연덕스레 쏴 대는 경리의 윽박질에 대거리할 기운이 나질 않더라.


칼질하는 고깃집에 익숙지 않아서 내가 몰랐다. 패를 나눠 추렴하면 모를까, 친구 분들 몫까지 얹어 낼 돈이 내겐 없다. 실례 많았고 저 먼저 일어나겠다.


집에 와서 대궁밥에 물을 말아 쉰 짠지를 곁들여서 이른 저녁을 다 먹었어.

내 꼴에 여자사람과 마주 식사라니, 밑글도 안 뗀 팔푼이가 경 읊겠다고 덤비는 꼴이었지.
개독이고 뭐고 뱃속에 오줌보 든 게 감투구나.


나 지금 혼자 마른 오징어를 생짜로 씹으며, 참이슬로 나발을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