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때렸다. 그리고 시원했다.

나는20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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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은 아주 어릴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빠가 엄마를 밟고 때리고 엄마는 구석에 움크려서 맞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 뛰어들고, 결국 나도 맞는다. 너무 생생하다. 그 방과 그떄의 그 구석이. 그리고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문을 잠그라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 나는 그럴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소리를 내어 싸움을 막는 것이었다. 너무 두려웠다. 혹시 엄마가 죽게 되진 않을까? 

나의 불안은 4살쯤 시작됐다. 분리불안.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극도로 불안했고, 혹시나 엄마가 죽진 않을까 매일매일 힘들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이사장님이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 나는 그때 혹시나 엄마가 사고가 난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패닉이 왔었다. 그때의 두려움이 선명하다. 어린이집 하굣길엔 혹시 집에 엄마가 없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에 어린이집 차를 타고 가는길에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들 뿐이다. 아주 어릴적부터 항상 엄마와 나 이렇게 둘뿐이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다. 

남양주에 살때였으니 4살이전의 기억이다. 정말 가슴이 무너질거 같은 날이 있었다. 그날 울면서 얼굴을 파묻었던 베게가 선명히 기억난다. 무슨말을 들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 아빠, 나 이렇게 티비를 보고 있던 중에 폭언을 들었고 정말 심장이 찢겨지는 아픔을 그날 느꼈다. 소리내어 울지 못했고, 초록색 개구리가 그려진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너무 아팠다. 

엄마는 항상 내가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촌오빠도 내가 아이 열 키우는 것보다 키우기 힘든 존재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사촌오빠를 반증오하게 됐다. 내 앞에선 그렇게 친절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오빠와 커서 결혼할거라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아.. 내가 그렇게 이상한 존재구나.

초등학교 3학년쯤이였던거 같다. 다이어리에 집착하던 나는 엄마한테 다이어리를 사달라고 떼썼다. 집앞 주차장, 앵두나무 옆에 세워둔 차에서 엄마는 나에게 죽어버리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 후로 그말은 수백번도 더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 느낌도 없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초록색 개구리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던 그때의 나로 돌아갔다.

엄마는 힘들게 사셨다. 알콜중독인 아빠는 가정을 돌보지 않으셨고 엄마는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강하게 사셨다. 하지만 나의 분리불안증은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이 돼서도 지속됐고, 나는 엄마를 구속했다. 그래서 엄마는 더 힘드셨다. 그래서인지 항상 작은일에도 불같이 화내셨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 언행을 하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폭언을 하셨다. 13살이였던 나는 그런 폭언을 참지 못해, 조용히 방안에서 책을 찢었다. 그리고 연필로 꾹 눌러썼다. "우리 엄마는 정신병자다.".. 그때는 반항을 할 수 없었고, 너무 화가나서 어느날 싸움 다음날 엄마의 옷을  밖으로 찢어서 던진 기억이 난다.  하지만 화가 풀리면 엄마는 나를 안아주고 더 잘해줬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원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기댈곳은 없었다. 엄마는 항상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다. 나를 위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으며, 내가 아플땐 나를 업어주신 적도 있다. 그리고 자기전에 동화를 들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마 어쩌면 이 모든건 다 내 잘못일 수도 있다고. 내가 성격이 이상한 아이여서 그런걸 수도 있다고.. 죄책감은 몰려오고 나에대한 부정이 시작된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나는 나쁘다.

부모님은 화가 나면  나를 때리셨다. 고등학교때 심하게 맞았던 기억들이 있다. 그냥 맞은게 아니고 발로 밟히고 머리카락이 뽑히고.. 나만 맞은게 아니고 아빠가 엄마를 떄리기도 했다. 너무 두렵고 불안한 날엔 배게 밑에 칼을 두고 잤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다. 2,3번 출동했지만 부모님이 별거아니라는 식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항상 소리를 질렀다. 그때 당시 내 유일한 분노의 표출이자 방어의 방법이였다. 둘중 한명이 나를 때리면 한명은 그 옆에서 지켜보며 더 때리라고 했다. 항상 그랬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맞고 자라는줄 알았다. 이번해 봄까지..

 가장 충격적인 폭력사건은 24살 가을에 일어났다. 가족끼리 집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로 외출을 했고, 당시 몸이 안 좋아서 루푸스,류마티스를 의심했던 나는 울상이였다. 그 얼굴을 보고 아빠는 집에 가라고 했다. 거기서 버스를 3번 타야 집을 갈 수 있었고, 나는 데려다 달라고했다. 아빠는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줄테니 알아서 가라고 했다. 나는 반항했다. 아빠는 차를 세우고 나를 차안에서 끌어내렸다. 비탈길에서 나를 끌어내려 미친듯이 팼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여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10일 뒤쯤 나는 온몸에 멍을 발견한다. 자잘한 멍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때 맞아서 생긴 멍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백혈병에 걸렸나 생각을 했다. 그날 두분은 집에 돌아와 내가 얼마나 못됐는지에 대해서 몇시간을 얘기하셨다. 방안에서 나는 그 모든걸 들어야 했다. 나는 나쁜년이였다.

  하지만 폭력보다 아픈건 폭언이였다. 엄마의 폭언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너같은건 살 가치가 없어. 왜 주변 사람 힘들게해?" "그때 그 사건 있었던건 다 너탓인거 알지?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너가 예민하게 반응했던데"(나에겐 왕따사건이 있었다.) "어릴때부터 유별나더니.." "애 한명만 더 있어도 너 같은건 신경도 안 썼어." "OO가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니?" "너가 정신병있어서 그래. 며칠 잠잠하더니.. 어서가서 약먹어."  "그렇게 좋은 사람한테 너 실체 안 들키게 조심해."(남자친구 사귄다고 말했을때)  너무나 많다.폭언을 견디지 못해 달리다 멈추는 차에서 내린적이 있다. 가방에 있는 유리잔이 산산조각 났다. 무릎이 다 까지고 너무 아팠지만, 그 차에서 내린 순간 살았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가족을 떠나지 못한건 죄책감때문이다. 분리불안으로 엄마를 괴롭혔다는 생각들. 엄마,아빠도 힘들게 사셨다는 생각.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가 아프실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12살때 엄마가 쓰러지셨다. 그때 아빠는 알콜중독으로 우리곁에 없었고, 새벽에 내가 신고해서 응급실로 갔다. 스트레스 많이 받았냐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나를 지목했다.  고3때도 한번 쓰러지셨는데 그때도 나는 죄인이였다. "나 죽으면 너 탓이야"라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하셨다.

20살이 되자마자 모든 정신병이 발병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특히 강박증이 너무 심했다. 집 밖에 몇달을 잘 못나갈 정도로. 자살시도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상담도 여기저기 보내주셨다. 하지만 화가나면 다시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갔다. 상담은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 어려운 형편에 금전적으로 도와주시는 엄마가 고마웠다.

아직도 많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굉장히 폭력적인 아이가 되었다. 화가 나면 욕을 하고 싶고 다 때려부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맞는 상황이 오면 나도 똑같이 때리고 싶다. 실제로 몇번 심하게 맞았을땐 나도 때렸다. 그리고 양심적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냥 시원했다. 내가 맞은게 억울했고 나도 똑같이 대응해서 시원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다. 내 안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다. 나도 내가 무서울때가 있다. 그 착하던 아이는 이제 없다. 나는 교활하고 사랑을 줄주 모르며 이기적이다. 나쁜 사람이다. 나는 내가 너무 싫고 밉다. 엄마는 TV에 힘든 환경에서 밝게 자란 아이들이 나올때면 나를 불렀다. 저런 아이들도 저렇게 예쁘게 웃는데, 너는 왜 그러니?. / 그리고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도,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나보단 밝게 산다고 하셨다. / 내가 이상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2달전 엄마에게 심하게 맞아 아직도 팔목 관절이 아프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아픈 내가 좋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아픈 나를 보면서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조금이라고 믿을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