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한참 꽃다울 나이의 가을
이상하게 몸이 나른하고 가슴에 통증이 심해 찾은 병원에서 듣게된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진단과 불행중 다행으로 찾아왔던 남자친구의 한마디..
"살자, 살아서 하고싶은것도 하고 먹고 싶은것도 다먹자"
저는 서른 두살의 여성이고 말기 유방암 환자입니다.
스물일곱에 암진단을 받고 완치를 앞두고 있던 7월에 뼈와 가슴에 재발 판정을 받았어요.
원인이야 많았겠지만 유추된 원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현대인의 일상, 호르몬의 불균형등이 있었습니다.
판정을 받았을 당시에 저는 거의 포기자였습니다.
종양은 생각보다 컸고 임파선 전이도 있어 포기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유방암환자에겐 드물게 찾아온다는 암성통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있거나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절망을 하고 있던 그때,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하고싶은것 먹고싶은것 다 해. 꿈도 찾고. 아픈걸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자."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암 수술을 받고 보니,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7년동안 일했고 어렵사리 대학생활도 했지만 막상 투병이 시작되니 써주는 직장도 받아주는 직장도 없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절개한 임파선 부위가 자주 마비되어 그나마 할 수 있던 생산일용직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은건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없어져버린 민머리와 가슴과 팔에 남은 수술자국, 점점 마비되가던 왼쪽팔과 지독히도 몰아치던 생활고였습니다.
다시 포기하려던 그 순간,
적당한 바느질과 뜨개질이 팔과 손의 소근육에 좋다며 남자친구가 내밀던 책 몇권과 약간의 원단, 그리고 실..
팔을 못쓰는것보다야 낫지 않겠냐는 말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것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투병생활과 함께 뜨개질과 바느질로 인형과 작은 소품, 옷가지를하나하나 만들기를 몇년 ..
그 사이 저는 오심구토와 어지럼증이 동반된 고통스런 항암치료도, 살이 시커멓게 죽어가는 수십번의 방사선 치료도 이겨내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주변 지인, 엄마의 도움으로 판촉물과 기념품, 아기 선물등과 옷가지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판매하고 플리마켓을 진행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의 재발이 찾아와 다시 고통과 힘든 약물치료가 병행되어 잘 수 있는 날보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날이 늘었지만 그래도 행복했고 이겨낼 수 있다고 꿈이 있다고 실과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과 동시에 전안법의 발효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안법이란 전기안전법으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고 위한다' 라는 명목으로 발효된 법안입니다.
보기좋은 명목과 허울에 쌓여있지만 그 속은 생활용품에 대한 기준도,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안전한지에 대한 기준도 없는 박근혜정부 당시 산업통산자원부가 그 위원회를 거쳐 19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입니다.
이 법안에는 문제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앞서 말한것과 같이 여기엔 기준이 없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마저도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식으로 kc인증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제품이라도 밑도 끝도 없이 그 법안에 걸리게 됩니다.
비단 의상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피부에 닿는 악세사리류는 물론 그 범위가 실과 원단, 부착되는 부자재류 그 이상으로 광범위합니다.
문제는 다시 제기됩니다. 아무리 인증을 받은 기초 부자재를 사용한다 해도 중간 제품에 또 인증을 받아야하며 중간제품을 받았다 해도 다시 완제품을, 그 완제품도 색상별로 디자인별로 심지어는 단추 하나만 달라져도 다시 인증을 받아야합니다.
이 인증을 받을때 필요한건 다름아닌 돈입니다.
제품의 질따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실 예로 kc인증을 거친 여러 업체에서 알러지반응이나 쇳조각등이 발견되기도 해 허술함을 스스로 입증했으며 대놓고 인증서장사를 하겠다며 작게는 수만원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의 가격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판매하는 상인과 공방들이, 심지어 구매대행을 하는 업체가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소비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 인증을 거치지 않는다면 수백수천의 벌금과 3년이하의 징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에 어울리는 법안일까요?
기업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는 법안이 아니라요?
스스로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몇몇 작가 지인들과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법안 발효되면 싹 가지고 튀어ㅋㅋ"
"발효된다고 하면 옷부터 사ㅋㅋ 평생 입어야 하는데 비싸서 못입어ㅋㅋ"
2018년 01월, 이 말도 안되는 법이 시행됩니다.
국회 본회의 파업등을 빌미로 이 악법은 개정안조차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기업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인증받은 제품이라도 중고거래를 해서는 안된다는 전안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는 전안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청원링크입니다.
첫 청원이 완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회에선 미적대고 있습니다.
작게는 이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제 희망이고 더 나아가 소소한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어머님들과 악세사리등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주던 친구들의 웃음일 수 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만의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는 형제나 자매들의 꿈일수 있습니다.
말기암에 찾은 꿈, 그리고 전안법
이상하게 몸이 나른하고 가슴에 통증이 심해 찾은 병원에서 듣게된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진단과 불행중 다행으로 찾아왔던 남자친구의 한마디..
"살자, 살아서 하고싶은것도 하고 먹고 싶은것도 다먹자"
저는 서른 두살의 여성이고 말기 유방암 환자입니다.
스물일곱에 암진단을 받고 완치를 앞두고 있던 7월에 뼈와 가슴에 재발 판정을 받았어요.
원인이야 많았겠지만 유추된 원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현대인의 일상, 호르몬의 불균형등이 있었습니다.
판정을 받았을 당시에 저는 거의 포기자였습니다.
종양은 생각보다 컸고 임파선 전이도 있어 포기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유방암환자에겐 드물게 찾아온다는 암성통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있거나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절망을 하고 있던 그때,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하고싶은것 먹고싶은것 다 해. 꿈도 찾고. 아픈걸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자."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암 수술을 받고 보니,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7년동안 일했고 어렵사리 대학생활도 했지만 막상 투병이 시작되니 써주는 직장도 받아주는 직장도 없더군요.
설상가상으로 절개한 임파선 부위가 자주 마비되어 그나마 할 수 있던 생산일용직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은건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없어져버린 민머리와 가슴과 팔에 남은 수술자국, 점점 마비되가던 왼쪽팔과 지독히도 몰아치던 생활고였습니다.
다시 포기하려던 그 순간,
적당한 바느질과 뜨개질이 팔과 손의 소근육에 좋다며 남자친구가 내밀던 책 몇권과 약간의 원단, 그리고 실..
팔을 못쓰는것보다야 낫지 않겠냐는 말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것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투병생활과 함께 뜨개질과 바느질로 인형과 작은 소품, 옷가지를하나하나 만들기를 몇년 ..
그 사이 저는 오심구토와 어지럼증이 동반된 고통스런 항암치료도, 살이 시커멓게 죽어가는 수십번의 방사선 치료도 이겨내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주변 지인, 엄마의 도움으로 판촉물과 기념품, 아기 선물등과 옷가지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판매하고 플리마켓을 진행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의 재발이 찾아와 다시 고통과 힘든 약물치료가 병행되어 잘 수 있는 날보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날이 늘었지만 그래도 행복했고 이겨낼 수 있다고 꿈이 있다고 실과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과 동시에 전안법의 발효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안법이란 전기안전법으로, 우리가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고 위한다' 라는 명목으로 발효된 법안입니다.
보기좋은 명목과 허울에 쌓여있지만 그 속은 생활용품에 대한 기준도,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안전한지에 대한 기준도 없는 박근혜정부 당시 산업통산자원부가 그 위원회를 거쳐 19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입니다.
이 법안에는 문제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앞서 말한것과 같이 여기엔 기준이 없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마저도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식으로 kc인증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제품이라도 밑도 끝도 없이 그 법안에 걸리게 됩니다.
비단 의상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피부에 닿는 악세사리류는 물론 그 범위가 실과 원단, 부착되는 부자재류 그 이상으로 광범위합니다.
문제는 다시 제기됩니다. 아무리 인증을 받은 기초 부자재를 사용한다 해도 중간 제품에 또 인증을 받아야하며 중간제품을 받았다 해도 다시 완제품을, 그 완제품도 색상별로 디자인별로 심지어는 단추 하나만 달라져도 다시 인증을 받아야합니다.
이 인증을 받을때 필요한건 다름아닌 돈입니다.
제품의 질따위는 안중에 없습니다.
실 예로 kc인증을 거친 여러 업체에서 알러지반응이나 쇳조각등이 발견되기도 해 허술함을 스스로 입증했으며 대놓고 인증서장사를 하겠다며 작게는 수만원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의 가격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판매하는 상인과 공방들이, 심지어 구매대행을 하는 업체가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소비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 인증을 거치지 않는다면 수백수천의 벌금과 3년이하의 징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에 어울리는 법안일까요?
기업의 건강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는 법안이 아니라요?
스스로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몇몇 작가 지인들과 이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법안 발효되면 싹 가지고 튀어ㅋㅋ"
"발효된다고 하면 옷부터 사ㅋㅋ 평생 입어야 하는데 비싸서 못입어ㅋㅋ"
2018년 01월, 이 말도 안되는 법이 시행됩니다.
국회 본회의 파업등을 빌미로 이 악법은 개정안조차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기업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인증받은 제품이라도 중고거래를 해서는 안된다는 전안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는 전안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청원링크입니다.
첫 청원이 완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회에선 미적대고 있습니다.
작게는 이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제 희망이고 더 나아가 소소한 취미생활을 즐기시는 어머님들과 악세사리등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주던 친구들의 웃음일 수 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만의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는 형제나 자매들의 꿈일수 있습니다.
청원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나누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청원링크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57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