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놈들이 보이지 안는군!" 난 중얼거리며 그녀가 가르쳐 준대로 내려갔다. 이미 한번 가봤던 길이라 익숙하게 갈 수 있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시체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이상하게 사방이 조용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간을 내려가자 그 큰 기와집이 보였다.
역시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난 가봤던 대로 낮은 담을 타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번처럼 모두 대전에 모여있는지 지키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익숙한 걸음으로 사랑채 쪽으로 접어들어 들어갔다.
마사가 말한 검은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조용히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검은 연못과 괴상한 나무들만이 반겨주었다.
난 숨을 죽이며 연못의 세 번째 나무에 가보니 그녀의 말처럼 이상하게 생긴 글자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글자보다는 그림에 가까웠다. 부적에 쓰는 글과 비슷하게 보였는데 피빛으로 물들어 있어 섬짓했다.
붉은 글씨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이 짜릿하여 깜짝 놀랐다.
"뭐야? 무슨 전기 장치라도 해 놓은 거야?"
그러나 망설이고 있을 수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힘껏 눌렀다. 그러자 글씨로 된 부분이 뒤로 푹 꺼지며 무엇인가 툭하고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기관장치가 돌아가는 듯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연못의 검은 물이 빠지면서 바닥이 올라왔다.
바닥에 조그마한 입구가 보이자 그곳을 열어보니, 그녀의 말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안쪽은 이상하게 어둡지가 않았다.
횟불이나 다른 조명장치가 보이지 안는데도 걸어가는데 지장이 없었다. 계단은 끝이 없을 것처럼 길게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수 천 개는 되는 것 같았 다. 몇 분 여를 걸어 내려오자 기다란 통로가 나왔다.
좁다란 것이 겨우 두세 명 정도만 간신히 지나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양쪽 벽은 알지 못하는 이상한 글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자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참으로 신기하고 묘했다.
복도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듯 이어졌고 그 이상한 문자들도 끝없이 이어졌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야?" 내가 투덜거리며 어느 정도 걸었을 때 계속 한 길로만 이어졌던 통로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뭐야? 이런 말없었는데..."
난 당황되었다.
분명 그녀는 길을 쭉 따라가라고 했고, 갈라진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길은 좌측과 우측으로 두 개가 갈라지고 앞쪽으로 또하나의 길이 이어졌다.
"신경쓰지 말고 그냥 쭉 가면 될 거야. 그녀가 갈라진 길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으니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막 신경 쓰지 않고 앞쪽으로 이어진 길을 가려 할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좌측 길에서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좌측 길로 조금 들어서서 귀를 기울여 보니 사람소리가 확실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누군가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목소리로 들어보아 여자 같았다. 그러나 난 신경쓸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어떻하지? 그냥 갈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잘 못하면 나도 죽을 수 있어!"
난 고개를 저으며 그냥 가려했다. 그때 다시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의 목소리가 익었다. "아는 사람 목소리 같은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점점 다가 서고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겠다는 것이 한 걸음씩 가게 된 것이다.
"제발! 제발! 살려줘요." 다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난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매리씨?"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되자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었다. 걸음 좀 빨리 해서 앞쪽으로 나가자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며 커다란 방이 나왔다.
난 혹시 몰라 조심히 접근해서 주위를 살폈다.
안 쪽은 원형으로 된 큰방이었는데 그 방안은 철창으로 된 감옥이 둥글게 나뉘어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여러 사람이 갇혀있었다. 그 중엔 이매리도 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녀가 여기 잡혔지? 난 그 좀비들에게 죽었는지 알았는데....'
그러나 내 놀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엇! 저거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은 박상무 아냐?'
그것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곳에 죽은 박상무가 갇혀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김철민! 이거 어떻게 된거야? 죽은 강훈이까지.....어떻게 죽은 사람들이 모두 저 방에 갇혔지?'
난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조용히 접근해 보았다.
다행히 검은 옷을 입은 간수 한 사람만이 멍청히 지키고 있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이해가....안되는군!' 좀 더 가까이 접근하자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헉! 이향숙까지 그리고 이태훈.....모두 다 이곳에 갇혀있다니....모두 분명 내 눈으로 죽는 것을 보았는데...'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이 모두 거짓이고 환상이었다는 말인가?
내가 혼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매리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제발! 살려줘요! 제발!"
그녀의 말은 검은 옷을 입은 간수에게 애원하는 것인지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바라고 소리를 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외침에 검은 옷의 사람이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크...걱정마라! 너희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시간의 문이 열리면 혼돈의 강을 건너게 될 거다." 갑자기 김철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이 개새끼! 여기서 나가면 너 죽인다! 빨리 문열어! 너희들 불법 감금죄로 고발할거야!" "크크크...아직도 네 놈은 여긴가 어딘 줄 모르는 구나 여긴 지옥과 천국의 중간이자 출발지이기도하지.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지옥으로 보내주지"
난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심했다.
저들을 탈출시켜 나와 같이 여기서 빠져나가야 되는지 아님 나 혼자라도 도망가야하는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저 김철민이라 놈은 그 나쁜 김대성의 동생이구. 저 박상무란 놈은 은혜를 나에게서 뺏기게 했던 놈이다. 그리고 이태식이나 강훈은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이구. 또한 저들은 살인 청부까지 하지 않았던가.....내가 왜 저들을 구해 주어야 하지? 여자들이 불쌍하기는 하나....그녀들도 나와는 상관없다. 그리고 잘 못하다가는 나도 잡힐지도 몰라. 난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다시 은혜에게 돌아 가야해...가서 그 김대성이란 놈의 정체를 밝히고 찾아야해.....'
생각을 마치자 난 바로 그 곳을 나오려 했다. 그런데 돌아서며 살짝 본 이향숙의 모습이 너무 애처러워 보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듯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불쌍해 보였다. 김철민에게 배신당해 죽기까지 했던 그녀를 보니 마치 나와 같아 보였다. 또 이상하게 그녀의 모습에서 은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향숙과 다른 여자들만 구하자! 저 나쁜 남자들은 내버려두고...'
마음을 먹은 난 처음 이곳에 들어 올 때부터 준비했던 몽둥이를 들고 조용히 검은 옷의 간수에게 접근했다.다행이라면 감옥을 지키는 사람은 그 뿐인 것 같았다. 그 간수만 제압한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간수는 김철민과 대화하느라 내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조용히 접근하여 몽둥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나며 간수가 기절했다. 간수가 쓰러지자 사람들이나를 보고 반가워 소리쳤다.
"강민수씨! 잘했어요. 어서 이 문 좀 열어요!"
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열쇠는 어디 있죠?" 김철민이 반기며 말했다. "강민수씨 저 알죠? 그 간수 허리에 봐요!" 그의 말대로 묵직한 열쇠가 간수의 허리춤에 있었다. 난 열쇠를 집어서 여자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갔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따로 갇혀 있었는데 이들 외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갇혀있었다.
그들은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우리도 구해줘요! 우리도 살려줘요!" 난 그들이 시끄럽게 소리지르자 다른 간수들이 달려올 것이 겁이나 소리쳤다. "조용해요! 당신들이 떠들면 다른 간수가 달려올 것 아니 예요!" 그러나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자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소리쳐댔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았다.
난 바로 여자들이 갇혀 있는 문을 열고 소리쳤다.
"모두 나와요!" 이매리와 김미숙이 나오며 말했다. "고마워요! 민수씨! 얼른 다른 사람도 구해줘요!"
그런데 그녀 둘 만 반갑게 나오고 강민희나 이향숙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볼 뿐 나오지 않았다.
"뭐해요? 향숙씨! 민희씨! 어서 나와요!" 내 말에 뒤에 나와 있던 이매리와 김미숙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들은 그냥 두고 가요. 모두 정신이 나갔어요."
난 그녀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이향숙과 강민희를 흔들었으나 그녀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이 봐요! 향숙씨 어서 여기서 도망갑시다." 내가 소리 치며 그녀를 흔들자 그녀가 멍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돼요. 전 혼돈의 강을 건너야 해요."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 이렇게 죽을 거예요?" "혼돈의 강을 건너야 해요. 혼돈의 강을...." 그녀들은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다.
더 이상 그녀들 때문에 지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향숙만은 이렇게 둘 수 없었다.
난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제발! 힘내요 향숙씨!" 내가 그녀를 잡고 일으키자 그녀가 뿌리치며 내게 말했다. "강민수씨 혼자 가세요. 이미 제 시간의 문은 열리고 있어요. 전 혼돈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고마워요. 제 상처가 민수씨 때문에 아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소리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맑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자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난 그녀를 포기하고 강민희를 보자 그녀 역시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러나 민수씨 혼자 가야해요. 그녀와 전 이미 시간의 문이 열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무슨 말인가 내게 하려다 그만 두고 다시 말했다. "빨리가요! 그 할머니가 곧 올 거예요." "미안해요!"
난 할 수 없이 그녀들을 두고 나왔다. 내가 감옥 안에서 나오자 김철민과 이태훈이 소리쳤다.
"이봐! 민수씨! 여기도 얼른 열어줘!" 그러나 난 그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다. "매리씨 ,미숙씨 얼른 갑시다. 놈들이 곧 올 거예요." 이매리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저들은요? 태훈씨도 구해줘요." 김미숙도 나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철민씨도 구해줘요." 답답한 그녀들을 보며 화가나서 소리쳤다. "저 김철민이 어떤 놈 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예요? 저 이향숙이란 여자하고 사귀던 놈이라구요. 그리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어요. 저 이태훈은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이고요. 그런데 그들을 구해주라구요?" 내 말에 김미숙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요! 그러나 제 배속에는 이미 저 사람의 애가 있어요. 애 아버지를 이렇게 두고 갈 수 없어요." 그녀의 말에 난 놀라서 김철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민수씨 제발 살려줘요!" 이매리가 다시 날 붙잡고 말했다. "전...전 태훈씨 없으면 못살아요!"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마치 비상벨이 울리는 듯 소리였다.
"이런 제길! 들켰잖아!" 난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이매리에게 열쇠를 던져 주며 소리쳤다. "난 모르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요! 그리고 빠져나갈 곳은 가운데 통로 끝에 있는 광장이니까 그곳으로 와요!"
난 그녀들에게 말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통로로 달려나갔다.
다행히 아직 통로에는 지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통로를 계속해서 달려가다 보니 뒤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사람들의 소리였다.
"이런! 들켰구나...빨리 가야겠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들켜서 그들이 쫒아 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난 모든 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이태훈에 의해 칼에 찔린 상처가 욱신거리고 아파서 빨리 달릴 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얼마간 달려가자 마사의 말대로 앞쪽에 거대한 공간이 들어 났다.
"저기구나!" 반가운 마음에 달려들어갔다.
원형으로 된 거대한 대전이 들어 났는데 마치 커다란 축구 경기장 같았다. 천장은 원형 돔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도 알 수 없는 그 문자가 빽빽하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대전 중앙에는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석상의 머리는 부처의 그것과 비슷했으나 얼굴은 자비스런 표정이 아니고 큰 노여움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손은 하늘을 가르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여원인(與願印)자세인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었다. 또한 대전 중앙 바닥엔 커다란 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원 안으로 작은 원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가 있었다.
난 여원인을 취하고 있는 석상의 손을 보고 마사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저 손을 돌리라고 했다. 그러면 바닥에서 문이 열린다고..."
주저하지 않고 석상 쪽으로 달려갔다. 막 내가 석상 앞에 도착했을 때 노여운 외침이 들렸다. "이놈! 멈춰라!" 내가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보니 원형 벽 한쪽이 갈라지며 새로운 입구가 생겨났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엇! 할머니!" 그곳에서 나온 사람은 대모라 불리운 그 초가집의 할머니와 검은 도포를 입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대모 할머니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다시 소리쳤다.
"놈! 멈추거라! 네 놈은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난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말했다. "왜요? 할머니가 누군데 나를 붙잡아와서 나가지 못하게 해요. 왜요?" 내 물음에 대모 할머니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했다. "이놈! 누가 너를 여기에 붙잡아 놓았다는 거냐? 네 놈 스스로 들어 온 것이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요? 전 분명 산을 타고 있었단 말이예요." "흥! 또 그년이 장난 친 것이지...그년이 아니라면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겠냐? 그년은 어디 있냐?" "누구를..." "흥! 말 안해도 다 안다. 마사 그년이 네게 시켰지? 이곳이 빠져나가는 길이라고?" 할머니의 말에 난 놀랐다. "그 악마 년의 말을 믿는다 말이냐? 그년이 너도 잡아 온 것이냐!" "무슨 소리죠?" "넌 마사에게 속은 거야. 그년이 너와 모든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나에게 뒤집어씌운 거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시체들에게서 나를 구해주고 빠져나갈 곳까지 가르쳐준 그녀가 꾸민 일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해맑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는 거짓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거짓말 말아요! 난 돌아갈 거예요." "멍청놈! 그년의 말대로 하면 넌 지옥에 떨어져....네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니야....그년이 너를 속인 거야." "증명해봐요! 그럼...당신은 왜 나를 잡으려고 하죠?" 내 말에 할머니는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너를 지옥에 빠지지 않게 지키려는 것이지." "거짓말 말아요! 이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다 봤어요. 나도 그들처럼 감옥에 넣을 거잖아요."
할머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통로 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감옥에서 탈출하려던 김미숙과 이매리 그리고 김철민,이태훈,강훈,박상무 등이었다.
그들은 이미 검은 옷을 입은 간수들에게 붙잡혀서 끌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내가 소리쳤다.
"저들은 뭐죠? 저들이 뭘 잘 못했다고 감옥에 넣었죠? 저도 그렇게 할거잖아요!" 내 말에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로 잡혀 온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큰 죄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도망가려 했어. 그래서 잡고 있는 것이다." "저도 여기서 도망 갈 거예요. 그러니 저도 감옥에 집어넣겠죠?" "맞다! 넌 여기서 나가지 못해!"
더 이상 할머니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마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틀리더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난 석상에 다가가 석상의 손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큰 진동이 울리며 바닥의 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기이잉....기이이이이이.....
그러더니 원형의 바닥이 사라지며 찬란한 빛이 솟아 올라왔다.
너무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이었다. 사람들은 그 빛에 놀라서 분분히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고, 대모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더욱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순환의 빛을 열다니! 저 놈을 잡아라!"
그녀의 명령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다가 오자 난 놀라서 외쳤다.
"다가오지마! 뛰어 내릴 거야!"
그러나 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빛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내 소리에 다가오던 사람들이 주춤 거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날카롭게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난 그녀의 심상치 않은 눈빛과 말에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았다.
"네 놈과 이놈들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모두 그 마사란 년이 부린 수작이다. 이곳은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에 있는 각성의 공간이자 안개마을이라는 곳이다. 여기는 죽은 자만이 올 수 있고 산자는 올 수 없다. 그러나 가끔 실수로 산 자들이 오기도 하지만 시간의 문이 열려 혼돈의 강을 건너기 전에 모두 되돌려 보낸다. 이 안개마을은 그런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책임지며 관리를 하는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은 자 아닌 산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린 그들을 시간의 문이 열리기 전에 다시 되 돌려보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곳에서 다시 살아 간 자들이 운명의 고리를 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난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더욱 혼란 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무슨 행동이요?" "되돌아 간 사람들은 갑자기 죄를 짓기 시작했어. 그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최악의 죄를....자신의 부모를 죽이거나 동생을 죽이기도 했고, 자신의 아들딸을 죽이기도 했어. 절대 금기해야하는 천륜이 어긋났지. 또한 자신의 친구와 이웃까지 가리지 않고 죽이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승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현생에서 헤메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은 마사란 년이 그들에게 인연의 악업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연의 악업이 뭐죠?" "그것은 업이다. 전생과 전전생의 과거 삼생을 이어 온 업의 순환 고리를 그년이 깬 것지. 전생에 악업으로 맺어졌던 연이 부부로 태어나기도 하고 부모 자식관계로 태어나기도 하며 이웃으로 또는 동생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서로에게 있는 한의 악연을 풀기 위한 고리의 순환이다. 그렇게 서로 모르고 인연이 계속되면서 스스로 그 악업을 푸는 것이지. 그런데 마사는 그들에게 그 악업을 기억하게 하고, 세상에 돌려보낸 거야. 그 악업을 극복하고 아무 일도 없이 생을 사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악업에 마음의 혼란을 겪게 된다. 그 혼란에 의해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는 지도 모르고 악행을 행하게 되지.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들어온 산 사람들을 다시 되돌려 보내지 못하고 이곳에서 살게 한다. 이 안개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난 대모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럼 저들은 왜 감옥에 있었죠?" 내가 김철민등의 일행을 가르키며 말하자 할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이미 이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였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고선도 그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도망치려했다." "예? 그럼 모두 죽은 사람들이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서는 죽음이란 없다. 이미 모두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데 너희들은 죽은 자들이 아닌 산자들, 이곳에서 유일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 그러나 이곳에서 죽었다고 현실에서 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각성의 공간이기 때문이지." "정말 말도 안돼!" "네가 이해를 못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마사란 년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아마 저 사람들도 마사를 만났을 거다 그래서 서로의 악연에 대한 것이 마음속에서 자라났을 것이고, 그리고 그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서로를 죽인 것이지. 너도 마사가 준 정화차를 마셨지?" "정화차? 예!" "그건 악업의 연을 가슴속에 새기게 하는 악마의 차다. 그것을 마시면 마음에 용기가 생기는 듯하지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증오다. 네 마음속의 증오와 욕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지."
대모 할머니의 말을 들을수록 난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렇게 여기 어둠 속에서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스러웠다.
"그러나 전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아직 내 명이 많이 남아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 평생을 살라고요? 그럴수는 없어요. 너무 억울해서 그럴 수는 없어요. 할머니는 알고있죠? 어떻하면 되지요? 어떻게 하면 다시 살아 되돌아갈 수 있지요?" 내 울분에 찬 말에 할머니는 안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네가 정화차만 마시지 않았다면 몰랐으되 이미 네 가슴에 스며든 욕망과 증오의 사슬은 끊을 수 없다. 시간의 문이 열려 혼돈의 강을 건너 새로운 세상에 나가서 사는 길밖에 없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았다. "이럴수는 없어요. 정말....이럴수는 없어요." 넋이 빠져 내가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이곳도 한동안 지내기는 괜찮다. 이곳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시간의 문만 열리면 넌 또 다른 세상에서 또다른 인연을 맺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난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들려오지 않았다.
집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은혜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은혜가 보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다면....보고 싶구나 은혜야!'
미치도록 은혜가 생각나자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김대성의 얄미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 놈만 아니었다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은혜와 헤어져야하는가. 그 놈이 은혜 아버지 회사를 사기 쳐서 빼앗지만 않았다면 은혜가 나에게서 헤어지자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쁜놈! 그런 놈은 잘살고 있는데....은혜는 그것도 모르고 놈과 결혼 할 텐데.....안돼!.........안돼!'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모든 잘못이 김대성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놈을 죽이고 싶어졌다.
"정신차려라! 이 멍청한 눔아! 네가 생각을 잘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후회 할짓 말고 얼른 이리루와!" 내 불안한 모습을 보고 대모 할머니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오지 말아요! 전 이렇게 끝낼 수 없어요. 은혜를 만날 거예요." "안돼! 지옥에 떨어져 이놈아! 넌 다른 세상에서 지금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지금 여기서 나가면 넌 끔찍스런 지옥에 떨어져!"
그러나 할머니의 설득은 이미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난 눈을 들어 이매리와 김미숙 그리고 김철민 등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다시 할머니의 보니 애처로움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미안해요! 할머니....전....너무...은혜가 보고 싶어요."
말을 하며 난 찬란한 빛이 뿜어 나오는 원 속으로 뛰어 들었다.
뒤쪽에서 할머니의 외침이 어렴풋 들려왔다.
"안돼 이눔아! 왜 운명 줄을 놓을 줄 모르냐!"
그러나 이미 내 몸은 한없이 아래로아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빛은 너무 따스한고 아름다웠다. 끝없는 찬란한 빛 속에 묻혀서 떨어지며 난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마치 영원히 깨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의식을 잃어 가는 내 귓속으로 간간히 사람들의 말소리가 간간히 들려 왔다.
마치 아득한 저 편의 꿈속에서 들리는 듯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아! 찾았어요. 여기 있어요." "살았나?" "예! 숨을 쉬네요." "빨리 옮겨! 다행이군! 저 쪽 팀의 다른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운이 좋은 사람이군!" "그러게요. 몸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천운이군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계곡에 와서 추락한 건지 이해 안되는군요." "그러게 말야....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도 없는데...." "길도 없는데 뭐하러 여기와서 떨어져 죽었는지....." "혹시! 자살 아닌가요?" "자네는 등산와서 자살하나?"
"모르죠!" "자...자....빨리 옮기 자구!" ..... .... .....
-에필로그-
어두컴컴한 방에 두 남자 앉아있었다.
검은 가죽잠바를 입은 남자가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그랬나?" "........."
앞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숙인 체 아무 말도 없다.
가죽 잠바의 남자가 한숨을 쉬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는 깊게 한 목 음을 빨아들이고 내 뿜으며 자신의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앞에 앉은 남자에게 내 밀며 말했다.
"자! 한 대 펴봐!"
그의 말에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담배를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초췌한 얼굴의 남자는 깊게 담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연기를 내 뱉었다.
"휴~"
그의 얼굴은 초췌했으나 눈동자는 무척 맑았다.
인상도 부드러워 보는 이에게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상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다시 가죽잠바의 남자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지?" 남자는 가죽잠바의 물음에 얼굴을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요." "그럴 수밖에 없다니? 뭐가?" 무엇인가 말하려던 남자는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며 눈을 무섭게 뜨고 말했다. "그놈은...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왜?" "놈이 내 애인을 가로챘으니까요. 그리고 놈이 내 애인 아버지의 회사를 사기 쳐서 빼었어요. 그렇게 놈이 하지만 않았다면 전 그녀와 결혼 할 수 있었는데 놈이 제 애인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헤어지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놈은 이태훈과 강훈이란 사람을 시켜서 박상무라는 남자를 죽이게 했어요. 살인 청부를 했다고요. 그런데 박상무가 그것을 알고 강훈이를 죽였어요. 그리고 이태훈이가 다시 박상무를 죽이고요. 또한 이태훈은 강민희라는 여자도 죽였어요. 그 모든 것이 그 김대성이란 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산에 갔을 때 그들을 만나서 다 보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안개마을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어요." "안개마을은 또 뭐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강과 혼돈의 강 중간에 있는 곳 이예요. 죽은 자만이 갈 수 있죠." "헛참! 믿을 수 없는 말이군!" "알아요. 저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하지만 사실 이예요. 그리고 그 김대성이 저지른 일도 모두요." "그래? 그런데 왜 김대성 말고 차성우는 왜 죽였나?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 아닌가?" "몰라요! 저도 왜 그랬는지 그가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김대성이 박상무와 짜고 대명을 망하게 했다니까 저 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전 있는 사실을 모두 말 해줬는데....저 보고 누군데 와서 이상한 말을 하냐고 ....분명 제가 은혜씨의 애인아라는 것을 알면서도....말싸움을 하다 저도 모르게 그만....흑! 흑!" "그럼! 차은혜는 왜 죽였지?" "은헤요? 은혜가 왜 죽어요?" "네가 죽였잖아! 김대성, 차성우 그리고 차은혜까지 모두 죽였잖아!" 가죽 잠바를 입는 남자가 무섭게 소리치며 말하자 남자는 두려움에 움찔거리며 더듬 거렸다. "난...난....몰라요....내가 왜...은...혜를....아니야...........난 아니야........내가 왜 은혜를 죽여....아니야.....이건"
남자가 실없이 주절거리며 이상증세를 보이자 가죽잠바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간 후에도 남자는 마치 정신이상자처럼 벌벌 떨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가죽잠바의 남자는 밖으로 나오자 옆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 쪽에 있던 세 명의 사람들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죽잠바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벽에는 방금 그가 들어갔었던 방이 유리 넘어로 다 보이고 있었다. 그 방엔 여전히 그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때 방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말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안경을 낀 남자가 대답했다. "글세요. 자아의 상상에 빠진 정신병의 일종 같습니다. 저 사람은 차은혜라는 여자와 자기가 애인 사이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김대성이라는 사람에게 그 애인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거죠." "맞아요. 차은혜는 몇 년 전부터 강민수에게 스토커를 당하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그는 몇 번씩이나 경찰서에 잡혀갔었는데 미리 정신적인 문제인지 알았다면 이렇게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 텐데...안타깝군요." "강민수는 스스로 차은혜를 자신의 애인이라 생각하고, 대성이라는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를 속여서 결혼한다고 상상을 한 겁니다. 그리고 등산에서 만났던 박상무나 다른 사람들을 김대성의 부하 쯤으로 생각했겠지요. 아마도 등산하다 사고 당한 것이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는 것이죠. 특히나 박상무나 다른 등산을 하다 죽은 사람들은 김대성이라는 사람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김대성은 2년전에 벌써 차은혜와 약혼 한 사이고 양가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정혼을 했던 사이라고 들었는데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토커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 강민수가 사고 난 것은 지리산 서쪽의 안개봉이었고,다른 사람이 사고 당한 곳은 그 반대쪽인 연곡이었는데 서로 어떻게 만났을까요? 사고 당한 시각도 비슷했다면 같은 곳에 있지는 않았을 텐데....이상한 일이죠?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이름까지 대면서 상상을 한다니..." "음...확실히 그것이 이상하긴 해요." "어쨌든 저 강민수는 정신이상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겠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말을 하며 다시 유리 창안의 방을 보았다. 그곳에는 강민수가 덜덜 떨며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몰라.....알지 못해.....그녀가 오고 있다는 것을.....그녀가 곧 너희들에게도 갈 것이라는 것을..."
기이한 여행-6(마지막회)
어두운 터널과 토담을 통과해서 나가니 안개마을은 여전히 안개로 뒤덮혀 있었다.
다행히 그 이상한 좀비들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놈들이 보이지 안는군!"
난 중얼거리며 그녀가 가르쳐 준대로 내려갔다. 이미 한번 가봤던 길이라 익숙하게 갈 수 있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시체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이상하게 사방이 조용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간을 내려가자 그 큰 기와집이 보였다.
역시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난 가봤던 대로 낮은 담을 타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번처럼 모두 대전에 모여있는지 지키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익숙한 걸음으로 사랑채 쪽으로 접어들어 들어갔다.
마사가 말한 검은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조용히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검은 연못과 괴상한 나무들만이 반겨주었다.
난 숨을 죽이며 연못의 세 번째 나무에 가보니 그녀의 말처럼 이상하게 생긴 글자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글자보다는 그림에 가까웠다. 부적에 쓰는 글과 비슷하게 보였는데 피빛으로 물들어 있어 섬짓했다.
붉은 글씨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이 짜릿하여 깜짝 놀랐다.
"뭐야? 무슨 전기 장치라도 해 놓은 거야?"
그러나 망설이고 있을 수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힘껏 눌렀다. 그러자 글씨로 된 부분이 뒤로 푹 꺼지며 무엇인가 툭하고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기관장치가 돌아가는 듯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연못의 검은 물이 빠지면서 바닥이 올라왔다.
바닥에 조그마한 입구가 보이자 그곳을 열어보니, 그녀의 말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안쪽은 이상하게 어둡지가 않았다.
횟불이나 다른 조명장치가 보이지 안는데도 걸어가는데 지장이 없었다.
계단은 끝이 없을 것처럼 길게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수 천 개는 되는 것 같았
다. 몇 분 여를 걸어 내려오자 기다란 통로가 나왔다.
좁다란 것이 겨우 두세 명 정도만 간신히 지나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양쪽 벽은 알지 못하는 이상한 글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자도 아니고 한글도 아니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참으로 신기하고 묘했다.
복도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듯 이어졌고 그 이상한 문자들도 끝없이 이어졌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야?"
내가 투덜거리며 어느 정도 걸었을 때 계속 한 길로만 이어졌던 통로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뭐야? 이런 말없었는데..."
난 당황되었다.
분명 그녀는 길을 쭉 따라가라고 했고, 갈라진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길은 좌측과 우측으로 두 개가 갈라지고 앞쪽으로 또하나의 길이 이어졌다.
"신경쓰지 말고 그냥 쭉 가면 될 거야. 그녀가 갈라진 길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으니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막 신경 쓰지 않고 앞쪽으로 이어진 길을 가려 할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좌측 길에서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좌측 길로 조금 들어서서 귀를 기울여 보니 사람소리가 확실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누군가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목소리로 들어보아 여자 같았다. 그러나 난 신경쓸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어떻하지? 그냥 갈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잘 못하면 나도 죽을 수 있어!"
난 고개를 저으며 그냥 가려했다. 그때 다시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의 목소리가 익었다.
"아는 사람 목소리 같은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점점 다가 서고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겠다는 것이 한 걸음씩 가게 된 것이다.
"제발! 제발! 살려줘요."
다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난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매리씨?"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되자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었다.
걸음 좀 빨리 해서 앞쪽으로 나가자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며 커다란 방이 나왔다.
난 혹시 몰라 조심히 접근해서 주위를 살폈다.
안 쪽은 원형으로 된 큰방이었는데 그 방안은 철창으로 된 감옥이 둥글게 나뉘어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여러 사람이 갇혀있었다. 그 중엔 이매리도 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녀가 여기 잡혔지? 난 그 좀비들에게 죽었는지 알았는데....'
그러나 내 놀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엇! 저거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은 박상무 아냐?'
그것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곳에 죽은 박상무가 갇혀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김철민! 이거 어떻게 된거야? 죽은 강훈이까지.....어떻게 죽은 사람들이 모두 저 방에 갇혔지?'
난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조용히 접근해 보았다.
다행히 검은 옷을 입은 간수 한 사람만이 멍청히 지키고 있어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이해가....안되는군!'
좀 더 가까이 접근하자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헉! 이향숙까지 그리고 이태훈.....모두 다 이곳에 갇혀있다니....모두 분명 내 눈으로 죽는 것을 보았는데...'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이 모두 거짓이고 환상이었다는 말인가?
내가 혼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매리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제발! 살려줘요! 제발!"
그녀의 말은 검은 옷을 입은 간수에게 애원하는 것인지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바라고 소리를 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외침에 검은 옷의 사람이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크...걱정마라! 너희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시간의 문이 열리면 혼돈의 강을 건너게 될 거다."
갑자기 김철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이 개새끼! 여기서 나가면 너 죽인다! 빨리 문열어! 너희들 불법 감금죄로 고발할거야!"
"크크크...아직도 네 놈은 여긴가 어딘 줄 모르는 구나 여긴 지옥과 천국의 중간이자 출발지이기도하지.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지옥으로 보내주지"
난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심했다.
저들을 탈출시켜 나와 같이 여기서 빠져나가야 되는지 아님 나 혼자라도 도망가야하는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저 김철민이라 놈은 그 나쁜 김대성의 동생이구. 저 박상무란 놈은 은혜를 나에게서 뺏기게 했던 놈이다. 그리고 이태식이나 강훈은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이구. 또한 저들은 살인 청부까지 하지 않았던가.....내가 왜 저들을 구해 주어야 하지? 여자들이 불쌍하기는 하나....그녀들도 나와는 상관없다. 그리고 잘 못하다가는 나도 잡힐지도 몰라. 난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다시 은혜에게 돌아 가야해...가서 그 김대성이란 놈의 정체를 밝히고 찾아야해.....'
생각을 마치자 난 바로 그 곳을 나오려 했다. 그런데 돌아서며 살짝 본 이향숙의 모습이 너무 애처러워 보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듯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는데 불쌍해 보였다. 김철민에게 배신당해 죽기까지 했던 그녀를 보니 마치 나와 같아 보였다. 또 이상하게 그녀의 모습에서 은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향숙과 다른 여자들만 구하자! 저 나쁜 남자들은 내버려두고...'
마음을 먹은 난 처음 이곳에 들어 올 때부터 준비했던 몽둥이를 들고 조용히 검은 옷의 간수에게 접근했다.다행이라면 감옥을 지키는 사람은 그 뿐인 것 같았다. 그 간수만 제압한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간수는 김철민과 대화하느라 내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조용히 접근하여 몽둥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나며 간수가 기절했다.
간수가 쓰러지자 사람들이나를 보고 반가워 소리쳤다.
"강민수씨! 잘했어요. 어서 이 문 좀 열어요!"
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열쇠는 어디 있죠?"
김철민이 반기며 말했다.
"강민수씨 저 알죠? 그 간수 허리에 봐요!"
그의 말대로 묵직한 열쇠가 간수의 허리춤에 있었다. 난 열쇠를 집어서 여자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갔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따로 갇혀 있었는데 이들 외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갇혀있었다.
그들은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우리도 구해줘요! 우리도 살려줘요!"
난 그들이 시끄럽게 소리지르자 다른 간수들이 달려올 것이 겁이나 소리쳤다.
"조용해요! 당신들이 떠들면 다른 간수가 달려올 것 아니 예요!"
그러나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자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소리쳐댔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았다.
난 바로 여자들이 갇혀 있는 문을 열고 소리쳤다.
"모두 나와요!"
이매리와 김미숙이 나오며 말했다.
"고마워요! 민수씨! 얼른 다른 사람도 구해줘요!"
그런데 그녀 둘 만 반갑게 나오고 강민희나 이향숙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볼 뿐 나오지 않았다.
"뭐해요? 향숙씨! 민희씨! 어서 나와요!"
내 말에 뒤에 나와 있던 이매리와 김미숙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들은 그냥 두고 가요. 모두 정신이 나갔어요."
난 그녀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이향숙과 강민희를 흔들었으나 그녀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이 봐요! 향숙씨 어서 여기서 도망갑시다."
내가 소리 치며 그녀를 흔들자 그녀가 멍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돼요. 전 혼돈의 강을 건너야 해요."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 이렇게 죽을 거예요?"
"혼돈의 강을 건너야 해요. 혼돈의 강을...."
그녀들은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다.
더 이상 그녀들 때문에 지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향숙만은 이렇게 둘 수 없었다.
난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제발! 힘내요 향숙씨!"
내가 그녀를 잡고 일으키자 그녀가 뿌리치며 내게 말했다.
"강민수씨 혼자 가세요. 이미 제 시간의 문은 열리고 있어요. 전 혼돈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고마워요. 제 상처가 민수씨 때문에 아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소리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맑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자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난 그녀를 포기하고 강민희를 보자 그녀 역시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러나 민수씨 혼자 가야해요. 그녀와 전 이미 시간의 문이 열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무슨 말인가 내게 하려다 그만 두고 다시 말했다.
"빨리가요! 그 할머니가 곧 올 거예요."
"미안해요!"
난 할 수 없이 그녀들을 두고 나왔다. 내가 감옥 안에서 나오자 김철민과 이태훈이 소리쳤다.
"이봐! 민수씨! 여기도 얼른 열어줘!"
그러나 난 그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다.
"매리씨 ,미숙씨 얼른 갑시다. 놈들이 곧 올 거예요."
이매리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저들은요? 태훈씨도 구해줘요."
김미숙도 나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철민씨도 구해줘요."
답답한 그녀들을 보며 화가나서 소리쳤다.
"저 김철민이 어떤 놈 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예요? 저 이향숙이란 여자하고 사귀던 놈이라구요. 그리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어요. 저 이태훈은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이고요. 그런데 그들을 구해주라구요?"
내 말에 김미숙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요! 그러나 제 배속에는 이미 저 사람의 애가 있어요. 애 아버지를 이렇게 두고 갈 수 없어요."
그녀의 말에 난 놀라서 김철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민수씨 제발 살려줘요!"
이매리가 다시 날 붙잡고 말했다.
"전...전 태훈씨 없으면 못살아요!"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마치 비상벨이 울리는 듯 소리였다.
"이런 제길! 들켰잖아!"
난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이매리에게 열쇠를 던져 주며 소리쳤다.
"난 모르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요! 그리고 빠져나갈 곳은 가운데 통로 끝에 있는 광장이니까 그곳으로 와요!"
난 그녀들에게 말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통로로 달려나갔다.
다행히 아직 통로에는 지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통로를 계속해서 달려가다 보니 뒤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사람들의 소리였다.
"이런! 들켰구나...빨리 가야겠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들켜서 그들이 쫒아 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난 모든 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이태훈에 의해 칼에 찔린 상처가 욱신거리고 아파서 빨리 달릴 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얼마간 달려가자 마사의 말대로 앞쪽에 거대한 공간이 들어 났다.
"저기구나!"
반가운 마음에 달려들어갔다.
원형으로 된 거대한 대전이 들어 났는데 마치 커다란 축구 경기장 같았다. 천장은 원형 돔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도 알 수 없는 그 문자가 빽빽하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대전 중앙에는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석상의 머리는 부처의 그것과 비슷했으나 얼굴은
자비스런 표정이 아니고 큰 노여움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손은 하늘을 가르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여원인(與願印)자세인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었다. 또한 대전 중앙 바닥엔 커다란 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원 안으로 작은 원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가 있었다.
난 여원인을 취하고 있는 석상의 손을 보고 마사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저 손을 돌리라고 했다. 그러면 바닥에서 문이 열린다고..."
주저하지 않고 석상 쪽으로 달려갔다. 막 내가 석상 앞에 도착했을 때 노여운 외침이 들렸다.
"이놈! 멈춰라!"
내가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보니 원형 벽 한쪽이 갈라지며 새로운 입구가 생겨났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엇! 할머니!"
그곳에서 나온 사람은 대모라 불리운 그 초가집의 할머니와 검은 도포를 입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대모 할머니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다시 소리쳤다.
"놈! 멈추거라! 네 놈은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난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말했다.
"왜요? 할머니가 누군데 나를 붙잡아와서 나가지 못하게 해요. 왜요?"
내 물음에 대모 할머니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했다.
"이놈! 누가 너를 여기에 붙잡아 놓았다는 거냐? 네 놈 스스로 들어 온 것이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요? 전 분명 산을 타고 있었단 말이예요."
"흥! 또 그년이 장난 친 것이지...그년이 아니라면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겠냐? 그년은 어디 있냐?"
"누구를..."
"흥! 말 안해도 다 안다. 마사 그년이 네게 시켰지? 이곳이 빠져나가는 길이라고?"
할머니의 말에 난 놀랐다.
"그 악마 년의 말을 믿는다 말이냐? 그년이 너도 잡아 온 것이냐!"
"무슨 소리죠?"
"넌 마사에게 속은 거야. 그년이 너와 모든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나에게 뒤집어씌운 거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시체들에게서 나를 구해주고 빠져나갈 곳까지 가르쳐준 그녀가 꾸민 일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해맑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는 거짓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거짓말 말아요! 난 돌아갈 거예요."
"멍청놈! 그년의 말대로 하면 넌 지옥에 떨어져....네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니야....그년이 너를 속인 거야."
"증명해봐요! 그럼...당신은 왜 나를 잡으려고 하죠?"
내 말에 할머니는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너를 지옥에 빠지지 않게 지키려는 것이지."
"거짓말 말아요! 이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다 봤어요. 나도 그들처럼 감옥에 넣을 거잖아요."
할머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통로 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감옥에서 탈출하려던 김미숙과 이매리 그리고 김철민,이태훈,강훈,박상무 등이었다.
그들은 이미 검은 옷을 입은 간수들에게 붙잡혀서 끌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내가 소리쳤다.
"저들은 뭐죠? 저들이 뭘 잘 못했다고 감옥에 넣었죠? 저도 그렇게 할거잖아요!"
내 말에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로 잡혀 온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큰 죄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도망가려 했어. 그래서 잡고 있는 것이다."
"저도 여기서 도망 갈 거예요. 그러니 저도 감옥에 집어넣겠죠?"
"맞다! 넌 여기서 나가지 못해!"
더 이상 할머니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마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아니 틀리더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난 석상에 다가가 석상의 손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큰 진동이 울리며 바닥의 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기이잉....기이이이이이.....
그러더니 원형의 바닥이 사라지며 찬란한 빛이 솟아 올라왔다.
너무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빛이었다.
사람들은 그 빛에 놀라서 분분히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고, 대모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더욱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순환의 빛을 열다니! 저 놈을 잡아라!"
그녀의 명령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다가 오자 난 놀라서 외쳤다.
"다가오지마! 뛰어 내릴 거야!"
그러나 소리는 쳤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빛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내 소리에 다가오던 사람들이 주춤 거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날카롭게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난 그녀의 심상치 않은 눈빛과 말에 근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았다.
"네 놈과 이놈들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모두 그 마사란 년이 부린 수작이다. 이곳은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에 있는 각성의 공간이자 안개마을이라는 곳이다. 여기는 죽은 자만이 올 수 있고 산자는 올 수 없다. 그러나 가끔 실수로 산 자들이 오기도 하지만 시간의 문이 열려 혼돈의 강을 건너기 전에 모두 되돌려 보낸다. 이 안개마을은 그런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책임지며 관리를 하는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죽은 자 아닌 산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린 그들을 시간의 문이 열리기 전에 다시 되 돌려보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곳에서 다시 살아 간 자들이 운명의 고리를 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난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더욱 혼란 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무슨 행동이요?"
"되돌아 간 사람들은 갑자기 죄를 짓기 시작했어. 그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최악의 죄를....자신의 부모를 죽이거나 동생을 죽이기도 했고, 자신의 아들딸을 죽이기도 했어. 절대 금기해야하는 천륜이 어긋났지. 또한 자신의 친구와 이웃까지 가리지 않고 죽이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승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현생에서 헤메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은 마사란 년이 그들에게 인연의 악업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연의 악업이 뭐죠?"
"그것은 업이다. 전생과 전전생의 과거 삼생을 이어 온 업의 순환 고리를 그년이 깬 것지. 전생에 악업으로 맺어졌던 연이 부부로 태어나기도 하고 부모 자식관계로 태어나기도 하며 이웃으로 또는 동생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서로에게 있는 한의 악연을 풀기 위한 고리의 순환이다. 그렇게 서로 모르고 인연이 계속되면서 스스로 그 악업을 푸는 것이지. 그런데 마사는 그들에게 그 악업을 기억하게 하고, 세상에 돌려보낸 거야. 그 악업을 극복하고 아무 일도 없이 생을 사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악업에 마음의 혼란을 겪게 된다. 그 혼란에 의해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는 지도 모르고 악행을 행하게 되지.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들어온 산 사람들을 다시 되돌려 보내지 못하고 이곳에서 살게 한다. 이 안개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난 대모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럼 저들은 왜 감옥에 있었죠?"
내가 김철민등의 일행을 가르키며 말하자 할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이미 이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였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고선도 그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도망치려했다."
"예? 그럼 모두 죽은 사람들이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서는 죽음이란 없다. 이미 모두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데 너희들은 죽은 자들이 아닌 산자들, 이곳에서 유일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 그러나 이곳에서 죽었다고 현실에서 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각성의 공간이기 때문이지."
"정말 말도 안돼!"
"네가 이해를 못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마사란 년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아마 저 사람들도 마사를 만났을 거다 그래서 서로의 악연에 대한 것이 마음속에서 자라났을 것이고, 그리고 그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서로를 죽인 것이지. 너도 마사가 준 정화차를 마셨지?"
"정화차? 예!"
"그건 악업의 연을 가슴속에 새기게 하는 악마의 차다. 그것을 마시면 마음에 용기가 생기는 듯하지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증오다. 네 마음속의 증오와 욕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지."
대모 할머니의 말을 들을수록 난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렇게 여기 어둠 속에서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스러웠다.
"그러나 전 아직 죽지 않았잖아요! 아직 내 명이 많이 남아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 평생을 살라고요? 그럴수는 없어요. 너무 억울해서 그럴 수는 없어요. 할머니는 알고있죠? 어떻하면 되지요? 어떻게 하면 다시 살아 되돌아갈 수 있지요?"
내 울분에 찬 말에 할머니는 안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네가 정화차만 마시지 않았다면 몰랐으되 이미 네 가슴에 스며든 욕망과 증오의 사슬은 끊을 수 없다. 시간의 문이 열려 혼돈의 강을 건너 새로운 세상에 나가서 사는 길밖에 없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았다.
"이럴수는 없어요. 정말....이럴수는 없어요."
넋이 빠져 내가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이곳도 한동안 지내기는 괜찮다. 이곳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시간의 문만 열리면 넌 또 다른 세상에서 또다른 인연을 맺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난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들려오지 않았다.
집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은혜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은혜가 보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다면....보고 싶구나 은혜야!'
미치도록 은혜가 생각나자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김대성의 얄미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 놈만 아니었다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은혜와 헤어져야하는가. 그 놈이 은혜 아버지 회사를 사기 쳐서 빼앗지만 않았다면 은혜가 나에게서 헤어지자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쁜놈! 그런 놈은 잘살고 있는데....은혜는 그것도 모르고 놈과 결혼 할 텐데.....안돼!.........안돼!'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모든 잘못이 김대성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놈을 죽이고 싶어졌다.
"정신차려라! 이 멍청한 눔아! 네가 생각을 잘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후회 할짓 말고 얼른 이리루와!"
내 불안한 모습을 보고 대모 할머니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오지 말아요! 전 이렇게 끝낼 수 없어요. 은혜를 만날 거예요."
"안돼! 지옥에 떨어져 이놈아! 넌 다른 세상에서 지금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지금 여기서 나가면 넌 끔찍스런 지옥에 떨어져!"
그러나 할머니의 설득은 이미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난 눈을 들어 이매리와 김미숙 그리고 김철민 등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다시 할머니의 보니 애처로움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미안해요! 할머니....전....너무...은혜가 보고 싶어요."
말을 하며 난 찬란한 빛이 뿜어 나오는 원 속으로 뛰어 들었다.
뒤쪽에서 할머니의 외침이 어렴풋 들려왔다.
"안돼 이눔아! 왜 운명 줄을 놓을 줄 모르냐!"
그러나 이미 내 몸은 한없이 아래로아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빛은 너무 따스한고 아름다웠다. 끝없는 찬란한 빛 속에 묻혀서 떨어지며 난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마치 영원히 깨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의식을 잃어 가는 내 귓속으로 간간히 사람들의 말소리가 간간히 들려 왔다.
마치 아득한 저 편의 꿈속에서 들리는 듯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아! 찾았어요. 여기 있어요."
"살았나?"
"예! 숨을 쉬네요."
"빨리 옮겨! 다행이군! 저 쪽 팀의 다른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운이 좋은 사람이군!"
"그러게요. 몸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천운이군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계곡에 와서 추락한 건지 이해 안되는군요."
"그러게 말야....이곳은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도 없는데...."
"길도 없는데 뭐하러 여기와서 떨어져 죽었는지....."
"혹시! 자살 아닌가요?"
"자네는 등산와서 자살하나?"
"모르죠!"
"자...자....빨리 옮기 자구!"
.....
....
.....
-에필로그-
어두컴컴한 방에 두 남자 앉아있었다.
검은 가죽잠바를 입은 남자가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그랬나?"
"........."
앞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숙인 체 아무 말도 없다.
가죽 잠바의 남자가 한숨을 쉬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는 깊게 한 목 음을 빨아들이고 내 뿜으며 자신의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앞에 앉은 남자에게 내 밀며 말했다.
"자! 한 대 펴봐!"
그의 말에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담배를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초췌한 얼굴의 남자는 깊게 담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연기를 내 뱉었다.
"휴~"
그의 얼굴은 초췌했으나 눈동자는 무척 맑았다.
인상도 부드러워 보는 이에게 친근감을 느끼게하는 상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다시 가죽잠바의 남자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지?"
남자는 가죽잠바의 물음에 얼굴을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요."
"그럴 수밖에 없다니? 뭐가?"
무엇인가 말하려던 남자는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며 눈을 무섭게 뜨고 말했다.
"그놈은...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왜?"
"놈이 내 애인을 가로챘으니까요. 그리고 놈이 내 애인 아버지의 회사를 사기 쳐서 빼었어요. 그렇게 놈이 하지만 않았다면 전 그녀와 결혼 할 수 있었는데 놈이 제 애인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헤어지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놈은 이태훈과 강훈이란 사람을 시켜서 박상무라는 남자를 죽이게 했어요. 살인 청부를 했다고요. 그런데 박상무가 그것을 알고 강훈이를 죽였어요. 그리고 이태훈이가 다시 박상무를 죽이고요. 또한 이태훈은 강민희라는 여자도 죽였어요. 그 모든 것이 그 김대성이란 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산에 갔을 때 그들을 만나서 다 보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안개마을에 갇혀서 나올 수가 없어요."
"안개마을은 또 뭐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강과 혼돈의 강 중간에 있는 곳 이예요. 죽은 자만이 갈 수 있죠."
"헛참! 믿을 수 없는 말이군!"
"알아요. 저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하지만 사실 이예요. 그리고 그 김대성이 저지른 일도 모두요."
"그래? 그런데 왜 김대성 말고 차성우는 왜 죽였나?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 아닌가?"
"몰라요! 저도 왜 그랬는지 그가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김대성이 박상무와 짜고 대명을 망하게 했다니까 저 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전 있는 사실을 모두 말 해줬는데....저 보고 누군데 와서 이상한 말을 하냐고 ....분명 제가 은혜씨의 애인아라는 것을 알면서도....말싸움을 하다 저도 모르게 그만....흑! 흑!"
"그럼! 차은혜는 왜 죽였지?"
"은헤요? 은혜가 왜 죽어요?"
"네가 죽였잖아! 김대성, 차성우 그리고 차은혜까지 모두 죽였잖아!"
가죽 잠바를 입는 남자가 무섭게 소리치며 말하자 남자는 두려움에 움찔거리며 더듬 거렸다.
"난...난....몰라요....내가 왜...은...혜를....아니야...........난 아니야........내가 왜 은혜를 죽여....아니야.....이건"
남자가 실없이 주절거리며 이상증세를 보이자 가죽잠바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간 후에도 남자는 마치 정신이상자처럼 벌벌 떨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가죽잠바의 남자는 밖으로 나오자 옆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 쪽에 있던 세 명의 사람들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죽잠바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벽에는 방금 그가 들어갔었던 방이 유리 넘어로 다 보이고 있었다. 그 방엔 여전히 그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때 방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말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안경을 낀 남자가 대답했다.
"글세요. 자아의 상상에 빠진 정신병의 일종 같습니다. 저 사람은 차은혜라는 여자와 자기가 애인 사이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김대성이라는 사람에게 그 애인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거죠."
"맞아요. 차은혜는 몇 년 전부터 강민수에게 스토커를 당하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그는 몇 번씩이나 경찰서에 잡혀갔었는데 미리 정신적인 문제인지 알았다면 이렇게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 텐데...안타깝군요."
"강민수는 스스로 차은혜를 자신의 애인이라 생각하고, 대성이라는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를 속여서 결혼한다고 상상을 한 겁니다. 그리고 등산에서 만났던 박상무나 다른 사람들을 김대성의 부하 쯤으로 생각했겠지요. 아마도 등산하다 사고 당한 것이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는 것이죠. 특히나 박상무나 다른 등산을 하다 죽은 사람들은 김대성이라는 사람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김대성은 2년전에 벌써 차은혜와 약혼 한 사이고 양가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정혼을 했던 사이라고 들었는데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토커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 강민수가 사고 난 것은 지리산 서쪽의 안개봉이었고,다른 사람이 사고 당한 곳은 그 반대쪽인 연곡이었는데 서로 어떻게 만났을까요? 사고 당한 시각도 비슷했다면 같은 곳에 있지는 않았을 텐데....이상한 일이죠?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이름까지 대면서 상상을 한다니..."
"음...확실히 그것이 이상하긴 해요."
"어쨌든 저 강민수는 정신이상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겠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말을 하며 다시 유리 창안의 방을 보았다. 그곳에는 강민수가 덜덜 떨며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몰라.....알지 못해.....그녀가 오고 있다는 것을.....그녀가 곧 너희들에게도 갈 것이라는 것을..."
- 그동안 수고스럽게 보아 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마미님의 쪽지에 용기가 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발생하는 황당하고도 끔찍스런 범죄들을 보며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설정을 해 보았으나 많이 부족했습니다.
다음에는 판타지 쪽에 글을 올릴까 생각하는데 ... 끝까지 용기를 주셨으면 합니다.
마미님도 꼭 찾아와 주실거라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