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9살 대구사는 남자입니다.
제가 판은 첨인데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말은 하고 싶은데 할 수있는데가 없어서 여기 할께용!
글실력이 좋지 않으니 이해해주세요 ㅠ
1998년쯤 저희 부모님이 결혼 하셨습니다.
1999년에 저를 임신하셨고 집이 망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2~3개를 말아드셔서 집안에 곳곳이
빨간 딱지로 도배를 하고 삼촌들이 찾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집이 너무 힘들고 해서 어머니가 낙태를 할려고 하셨데요.
이혼을 해야하닌까
4번정도 병원에서 낙태를 시도했지만 다 실패하셨데요.
그때의 전 너무 살고 싶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저를 2000년도에 저를 낳으셨죠.
너무 가난해서 아직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2002년도에
아파트를 이사갔습니다. (아직도 아파트 이름을 기억해요. 장미아파트) 그렇게 어릴때 부터 이리저리 대구의 모든 동네를 이사를 다녔어요.
그때는 집안이 어떤지 몰랐어요. 어린나머지
초1 2학기때 외할머니 소유의 빌라로 이사를 갔어요.
지금도 살고있는 진행중입니다.
아버지는 돈 벌러 울산을 가셨고 어머니랑 6년을 단 둘이서 살았어요.
초5때 아버지가 외도를 하신다는걸 알았어요
그때가 베가레이서가 나와서 아버지 폰이 베가레이서였는데
스마트폰이 신기하잔아요.
그러다가 만지작 마지작 하다가 문자 내용이랑 사진을 봤어요.
옛날에 아빠한테 전화걸었는데 여자가 받은적도 있었어요.
이걸 엄마가 알면 이혼하겠지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어요.
혼자만 알고 살았어요.
부모님은 전화로도 매일 싸우셨고 그렇기에 무서웠죠 이혼이란게
그렇게 살다가 중1때 아버지가 울산에서 대구로 오셨어요.
저는 평균 60정도 맞아본적 없는 멍청이였어요.
초4때 부터 기타만 쳤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3때 어머니가 아버지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했어요.
엄청나게 우울증에 걸리고 죽고싶었어요.
일어나지 말라고 마음에 못 박은 일이 일어났으니
고1때는 대구 공고를 합격했지만 심리 상태가 안좋아서
안다니기로 했어요.
꿈도 있었는데 기타 제작자였어요.
제가 음악이랑 그림그리기 시쓰기를 엄청나게 좋아했거든요.
앞에서 말했듯이 집이 엄청 가난했어요.
너무너무너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고기집에서
하루에 12시간 근무 한달에 4번 쉬고 200벌었어요.
17살이란 나이에는 큰돈이죠 아니 우리집에는 엄청 큰돈이죠.
그렇게 6개월 동안 일하면서 형들 한테 엄청 맞았어요.
고깃집에는 불방이라고 불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틈만 나면 맞았어요.
코를 풀어서 맞고 밥 늦게 먹는다고 맞고
그러다가 어느날인데 어디지역 농협에서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데 저보고 소주를 다따르고 소주를 마시면 만원을 주겠다. 했어요.
마셨어요. 돈을 벌어야 하닌까
음악을 해야하닌까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쓰레기닌까
그러고나서 만원 받고 형들이 좋냐? 하면서 엄청 맞고 그날 찌찔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6개월만 일하고 그만 뒀어요.
근데 그만 두면 돈이 없어서 음악을 못하잔아요.
제가 200을 벌어서 100만원은 어머니 드리고 100만원은
학원비랑 교통비등으로 다 썻는데 돈이 없잔아요.
그래서 음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끊었는데
선생님이 다시 오라고 돈 안받는다고 하셨는데
너무 쪽팔렸어요.
시내에 있는 규모있는 실용음악학원인데
너무 쪽팔렸어요.
거기 학생들 다 부자집 얘들이라 너무 비교되서 쪽팔렸어요.
기타는 20만원짜리 낡도 꾸질꾸질한 콜트 g250
그것도 겨우겨우 70만원주고 기타도 샀는데 사자마자 한달뒤에 끊었어요.
그래서 음악이랑 연을 끊고 방황하다가 인생멘토를 난나고
18살 때
부산 양정동에서 자취하면서 사진기자 인턴을 하면서 30만원으로 생활했어요.
저는 적다고 생각안했어요.
카메라 기술도 배우고 전국을 돌아 다니닌까.
5개월 동안 거기서 일 했어요.
4개월때쯤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2017 뉴 k7을 타고 저는 놀랐죠.
아니 저런차를 왜 아빠가
저희집 차는 초2때 중고로 구매한 2000년식 레조를 타고
다녔어요.
17살때 폐차를 했지만 그 흰둥이(차)
흰둥이를 살려고 그때가 한 400만원정도 였는데 아빠랑 싸게 살려고 중고차 단지를 5군데 정도 돌아다녔어요.
흰둥이랑은 추억이 많았어요.
가족이였죠 하나의
그래서 아버지가 왔는데
니 카메라 하나?라고 하셨고
전 아 네..
아버지가 이리 와바라 하면서
엄청큰 박스 하나랑 카메라가방을 주셨어요.
엄청큰 박스에는 니콘 f4
카메라 가방에는 후지 파인칙스 3pro
카메라 두대를 주셨는데
아버지가 원래 카메라가 전공이셨어요.
군대를 다녀오셔서 나이가 너무 많아 방송국에 취직 못하고
가요방 같은걸 운영하셨데요.
니콘 f4는 필름 카메라인데 아버지가 내가 쓰던놈이다.
다른 카메라는 제가 초등학생때 샀는데 울산에 계시다 보닌까
카메라를 가르쳐 줄려고 하다가 이혼을 해서 이제야 준다고 하셔서 오신거더라구요...
놀랐어요. 아직도 나를 생각하시나
그러다가 아버지랑 요즘도 연락하고 자주 만납니다.ㅎㅎ
그렇게 아버지가 이제 아빠는 빛 다 갚고 차샀다.
라고 하셨어요. 친구가 로봇공장을 열었는데 거기서 이사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만나다가 이번에 아빠가 너 대학갈레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안갈레 라고 말했는데
아빠가 나는 고등학교 안나와서 안된다.
아빠는 회사 면접 볼때 검정고시는 무족건 탈락 시킨다.
이게 현실이다.
대학나와야 된다.
1년 일찍 가야된다. 라고 닥달하셨어요.
너무 가기 싫었어요. 더 놀고 싶고 하고 싶은것도 많은데 구지...
하지만 선택했어요. 제 스스로 한테 물어보고
가기로
대학가서 공부하고 싶다.
살면서 70점 이상 맞아본적 없는 돌대가리인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했죠.
그렇게 대학교 면접도 보고 바로 어제 후보였는데 제가 막차타서 턱걸이로 합격했어요.
아빠가 등록금하고 이미 모아놓으셔서
이제 아빠 돈 많이 버닌까 돈 걱정하지말라고
아빠랑 만나면서 술도 배우고
(무족건 한병만 먹어라 한잔 먹어도 대리 불러라 라고)
어머니는 아직도 빛을 반도 못 갚으셨고 많이 가난했는데
한줄기 빛이 생기닌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집이 뉴스에 나올정도로 집이 다 타버려서
초등학생때 수학여행도 못갈뻔 했어요.
급식비는 밀려서 행정실에서 납부하고
우유는 사치이고
이런 제가 이제 행복하게 살 기회가 오니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 힘들일이 있으면 회피하지말고 부딪히고 내가 그동안 힘든일들은 발판이라 앞으로 있을 힘들일들의 예방접종이라 생각할려고 합니다.
긴글 읽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힘들때 약을 먹지않고 더욱더 제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사진속 카메라가 아버지가 주신 카메라중 하나 입니다.
얄심히 살겠습니다.!
파란만장했던 19살의 인생
19살 대구사는 남자입니다.
제가 판은 첨인데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말은 하고 싶은데 할 수있는데가 없어서 여기 할께용!
글실력이 좋지 않으니 이해해주세요 ㅠ
1998년쯤 저희 부모님이 결혼 하셨습니다.
1999년에 저를 임신하셨고 집이 망해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2~3개를 말아드셔서 집안에 곳곳이
빨간 딱지로 도배를 하고 삼촌들이 찾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집이 너무 힘들고 해서 어머니가 낙태를 할려고 하셨데요.
이혼을 해야하닌까
4번정도 병원에서 낙태를 시도했지만 다 실패하셨데요.
그때의 전 너무 살고 싶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저를 2000년도에 저를 낳으셨죠.
너무 가난해서 아직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2002년도에
아파트를 이사갔습니다. (아직도 아파트 이름을 기억해요. 장미아파트) 그렇게 어릴때 부터 이리저리 대구의 모든 동네를 이사를 다녔어요.
그때는 집안이 어떤지 몰랐어요. 어린나머지
초1 2학기때 외할머니 소유의 빌라로 이사를 갔어요.
지금도 살고있는 진행중입니다.
아버지는 돈 벌러 울산을 가셨고 어머니랑 6년을 단 둘이서 살았어요.
초5때 아버지가 외도를 하신다는걸 알았어요
그때가 베가레이서가 나와서 아버지 폰이 베가레이서였는데
스마트폰이 신기하잔아요.
그러다가 만지작 마지작 하다가 문자 내용이랑 사진을 봤어요.
옛날에 아빠한테 전화걸었는데 여자가 받은적도 있었어요.
이걸 엄마가 알면 이혼하겠지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어요.
혼자만 알고 살았어요.
부모님은 전화로도 매일 싸우셨고 그렇기에 무서웠죠 이혼이란게
그렇게 살다가 중1때 아버지가 울산에서 대구로 오셨어요.
저는 평균 60정도 맞아본적 없는 멍청이였어요.
초4때 부터 기타만 쳤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3때 어머니가 아버지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했어요.
엄청나게 우울증에 걸리고 죽고싶었어요.
일어나지 말라고 마음에 못 박은 일이 일어났으니
고1때는 대구 공고를 합격했지만 심리 상태가 안좋아서
안다니기로 했어요.
꿈도 있었는데 기타 제작자였어요.
제가 음악이랑 그림그리기 시쓰기를 엄청나게 좋아했거든요.
앞에서 말했듯이 집이 엄청 가난했어요.
너무너무너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고기집에서
하루에 12시간 근무 한달에 4번 쉬고 200벌었어요.
17살이란 나이에는 큰돈이죠 아니 우리집에는 엄청 큰돈이죠.
그렇게 6개월 동안 일하면서 형들 한테 엄청 맞았어요.
고깃집에는 불방이라고 불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틈만 나면 맞았어요.
코를 풀어서 맞고 밥 늦게 먹는다고 맞고
그러다가 어느날인데 어디지역 농협에서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데 저보고 소주를 다따르고 소주를 마시면 만원을 주겠다. 했어요.
마셨어요. 돈을 벌어야 하닌까
음악을 해야하닌까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쓰레기닌까
그러고나서 만원 받고 형들이 좋냐? 하면서 엄청 맞고 그날 찌찔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6개월만 일하고 그만 뒀어요.
근데 그만 두면 돈이 없어서 음악을 못하잔아요.
제가 200을 벌어서 100만원은 어머니 드리고 100만원은
학원비랑 교통비등으로 다 썻는데 돈이 없잔아요.
그래서 음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끊었는데
선생님이 다시 오라고 돈 안받는다고 하셨는데
너무 쪽팔렸어요.
시내에 있는 규모있는 실용음악학원인데
너무 쪽팔렸어요.
거기 학생들 다 부자집 얘들이라 너무 비교되서 쪽팔렸어요.
기타는 20만원짜리 낡도 꾸질꾸질한 콜트 g250
그것도 겨우겨우 70만원주고 기타도 샀는데 사자마자 한달뒤에 끊었어요.
그래서 음악이랑 연을 끊고 방황하다가 인생멘토를 난나고
18살 때
부산 양정동에서 자취하면서 사진기자 인턴을 하면서 30만원으로 생활했어요.
저는 적다고 생각안했어요.
카메라 기술도 배우고 전국을 돌아 다니닌까.
5개월 동안 거기서 일 했어요.
4개월때쯤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2017 뉴 k7을 타고 저는 놀랐죠.
아니 저런차를 왜 아빠가
저희집 차는 초2때 중고로 구매한 2000년식 레조를 타고
다녔어요.
17살때 폐차를 했지만 그 흰둥이(차)
흰둥이를 살려고 그때가 한 400만원정도 였는데 아빠랑 싸게 살려고 중고차 단지를 5군데 정도 돌아다녔어요.
흰둥이랑은 추억이 많았어요.
가족이였죠 하나의
그래서 아버지가 왔는데
니 카메라 하나?라고 하셨고
전 아 네..
아버지가 이리 와바라 하면서
엄청큰 박스 하나랑 카메라가방을 주셨어요.
엄청큰 박스에는 니콘 f4
카메라 가방에는 후지 파인칙스 3pro
카메라 두대를 주셨는데
아버지가 원래 카메라가 전공이셨어요.
군대를 다녀오셔서 나이가 너무 많아 방송국에 취직 못하고
가요방 같은걸 운영하셨데요.
니콘 f4는 필름 카메라인데 아버지가 내가 쓰던놈이다.
다른 카메라는 제가 초등학생때 샀는데 울산에 계시다 보닌까
카메라를 가르쳐 줄려고 하다가 이혼을 해서 이제야 준다고 하셔서 오신거더라구요...
놀랐어요. 아직도 나를 생각하시나
그러다가 아버지랑 요즘도 연락하고 자주 만납니다.ㅎㅎ
그렇게 아버지가 이제 아빠는 빛 다 갚고 차샀다.
라고 하셨어요. 친구가 로봇공장을 열었는데 거기서 이사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만나다가 이번에 아빠가 너 대학갈레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안갈레 라고 말했는데
아빠가 나는 고등학교 안나와서 안된다.
아빠는 회사 면접 볼때 검정고시는 무족건 탈락 시킨다.
이게 현실이다.
대학나와야 된다.
1년 일찍 가야된다. 라고 닥달하셨어요.
너무 가기 싫었어요. 더 놀고 싶고 하고 싶은것도 많은데 구지...
하지만 선택했어요. 제 스스로 한테 물어보고
가기로
대학가서 공부하고 싶다.
살면서 70점 이상 맞아본적 없는 돌대가리인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했죠.
그렇게 대학교 면접도 보고 바로 어제 후보였는데 제가 막차타서 턱걸이로 합격했어요.
아빠가 등록금하고 이미 모아놓으셔서
이제 아빠 돈 많이 버닌까 돈 걱정하지말라고
아빠랑 만나면서 술도 배우고
(무족건 한병만 먹어라 한잔 먹어도 대리 불러라 라고)
어머니는 아직도 빛을 반도 못 갚으셨고 많이 가난했는데
한줄기 빛이 생기닌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집이 뉴스에 나올정도로 집이 다 타버려서
초등학생때 수학여행도 못갈뻔 했어요.
급식비는 밀려서 행정실에서 납부하고
우유는 사치이고
이런 제가 이제 행복하게 살 기회가 오니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 힘들일이 있으면 회피하지말고 부딪히고 내가 그동안 힘든일들은 발판이라 앞으로 있을 힘들일들의 예방접종이라 생각할려고 합니다.
긴글 읽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힘들때 약을 먹지않고 더욱더 제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사진속 카메라가 아버지가 주신 카메라중 하나 입니다.
얄심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