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왔다

ㅇㅁ2018.01.09
조회107

별 볼일 없는 20대 여자입니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야기 하러 왔어요 글 말투는 편하게 음슴체로 할게요


간단하게 어릴때의 나를 소개하자면 집을 나가는게 꿈이었던 남자같은 아이 정도 되겠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유치원 다닐때는 누구보다 밝고 유쾌한 천상 여자.. 좀 과한가? 하여튼 하라는거 다 하고 알아서 공부하고 이쁜짓만 하는 아이였음. 그때의 꿈은 피아니스트, 선생님 같은 예뻐 보이는 직업을 갖는 거였는데 오래가지는 못했음

아빠는 아마도 좋은 사람임 아는 사람들에게 정말 친절하고 유쾌한 아저씨. 좀 친한척이 과하긴 한데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익어있음. 단점은 술 좋아하고 가부장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거? 주정이 친한척이니까 막 누구 때리지도 않음 그러니 딱히 나도 술 먹는거에 대해 이해는 못해도 경계는 거의 0.1%였음.

그런데 내가 초3때 아빠가 소주를 꽤나 많이 먹고 온 날 아빠한테 성추행 당함. 지금도 떠올리는게 충격적이라 구체적으로는 안 적겠는데 대충 내꺼 만지고 대딸시키고 지꺼에 키스해달라하고 그랬음. 그러다 집 문 소리가 나서 엄마오나보다 아쉽네 하고 바로 골아떨어졌음. 어린 나는 그 날 아빠와 조금 떨어져서 잤음.

안타깝게도 다음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빠의 그 당시 끊긴 필름은 돌아오지 않음. 나는 매일 그 때가 생각나면서 온 몸을 찢어버리고 그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정작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감

그때부터 주류와 아빠를 혐오하기 시작했음 처음에는 나쁜 꿈을 꿨구나 그러면서 현실부정도 하고 그랬는데 지독하게도 날이 갈수록 기억이 선명해졌고 내가 내린 결단은 혐오스러운 것들에게서 도망치자는 것이었음

아빠가 술을 끊으면 다시 아빠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서 술을 마실때마다 화를 내고 핀잔을 줬음. 하지만 아빠는 개의치 않고 소주 맥주 막걸리 보드카 온갖 술들을 즐겼음. 술을 먹는 아빠에게 5년이란 시간동안 화를 내다가 깨달았음. 나는 아빠를 절때 바꿀 수 없다는 걸. 술은 절때 아빠의 곁에서 떠나가지 않았음

그래서 나는 아빠를 떠나기로 했음 성인만 되면 성인만 되면 이 말만 하염없이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갔음. 그러다가 아빠가 집에 친할머니를 모셔옴 몸이 불편하시니 걱정되서 못 살겠대. 온 가족이 반대했지만 아빠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까지 기어코 모셔왔음 그때부터 미칠듯한 스트레스가 시작되어버림

아들이 가부장제에 찌들어 있는데 그 엄마는 어땠겠음. 할머니는 나와 엄마가 바쁘던 말던 눈에 보이면 일을 시키고 앉아있지를 못하게 했음.

아빠가 내 허벅지가 굵다며 계속 핀잔을 줬었는데 그와 겹쳐서 먹을 걸 계속 권하는 할머니는 증오스러울 정도였음 먹을걸 권한다는게 이거 한번 먹어볼래-? 이정도가 아님. 먹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방에 던져놓고 가고 안먹겠다고 돌려주면 화를 냄. 어이없다고 쏘아붙이는 그 말부터가 너무 싫은데 나한테는 늘 오빠가 먹다 남긴 걸 먹고 치워야한다고 줬음. 먹을걸 권하는게 끝이냐. 그랬으면 좀 덜 싫었을지도 모름

시도때도없이 온 집안을 치우고 중요한걸 버림. 그리고 그 물건을 찾으려 물어보면 늘 대답이 똑같음 버린 적 없다고 하는데 그럼 그 말만 하던가 본인의 일상을 또 쭈우우욱 이야기하면서 결백을 증명하려고 함. 말이 안통하겠다 싶어서 쓰레기통을 뒤지다보면 잃어버린 물건이 나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균에 감염되서 변에 문제가 생겼었음. 그래서 하루 두 번 꼭 먹여야 하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음.

아무리 말해도 바뀌는 건 없고 할머니에게 감사하고 이해하라는 아빠의 태도에 점점 스트레스의 골은 깊어져만 갔음.

그러다 중3 중간고사를 치면서 내가 받은 스트레스들이 터져나와버렸음 시험지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대체 뭘 물어보는건지 알 수가 없었음 예를 들자면 '올바른 문장을 고르시오' 라는 질문에서 올바른 문장을 못 찾기보다는(못 찾기도 했음) 어떤 문장을 찾으라는지 이해하질 못함. 마침 미친듯이 가위에 눌려서 하루 2~3시간만을 자던 터라 엄마에게 말하고 병원에 가게 됨 그렇게 알아낸 나의 병명은 우울증이었음

예고진학을 희망하고 있었지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포기했고(동그라미 네모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그려짐) 좋아하던 게임도, 책읽기도, 정상적인 생활마저도 모두 불가능하게 됬음. 아무것도 되지 않아 고등학교도 포기하려던 찰나 불길한 생각이 스쳤음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면 이 집구석에서 3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는 거..

사실 우울증이 오고 될 대로 되라 상태여서 이대로 죽은듯이 살다가 정말 죽어버릴까 했었는데 결정적으로 아빠를 떠나려고 한 사건이 생김 아빠가 늘 하던 말은 내가 우울증에서 나아지도록 스스로 노력을 하라는 거였음. 나는 노력을 너무 많이 해서 아픈건데.

날이 갈수록 아빠가 증오스러워지던 찰나 어떤 날 새벽 ‪휴대폰을 뺏겼고 노트북도 뺏겼음 새벽에 아빠가 갑자기 내방에 들어와서 빨리 자라고 짜증이란 짜증을 다 냈는데 잠을 못자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 나로써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었음.

얌전히 누워있었을 뿐인데 방에 찾아와서 언성을 높이는 이유가 뭐냐 따졌더니 아빠방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댔음.‬ 열이 확 올랐음. 잠을 못 자서 괴로워하고 있는 딸한테 내지도 않은 목소리를 운운하며 화를 낸다는게 뭐하는 짓거린가 싶었음. 그냥 자겠다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유독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었음. 그렇게까지 아빠에게 화를 낸건 처음이었음.

입다물고 뒤척이고 있었는데 왜 찾아와서 난리냐고 물었음. 정확히는 소리를 질렀지만. 내 톤은 굉장히 높았고 아빠는 날 미쳤다고 했음. 싸가지가 없다며 머리를 맞았음. 밀쳐졌음. 예전이었다면, 평소였다면 더 가해질 처벌들을 두려워했을 텐데 그저 화가 나고 억울했음. ‬나는 맞을때마다 더욱 거세게 항의했음. 나는 내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다는 아빠에게 미쳤다고 했음.

그렇게까지 반발하며 험한 말을 쓰는 나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나봄. 처음 보는 나의 모습을 순종적으로 돌려놓기 위해 아빠는 매를 가져왔음.

그 사이에 잠에서 깬 엄마는 아빠를 안방으로 밀어넣고 나를 내 방으로 잡아 끌었음. 나는 내 방으로 향하면서도 끝까지 소리 높혀 화를 냈음. 내 말에 더 화가 나서 끝을 볼 작정으로 따라온 아빠는 엄마의 만류로 휴대폰과 노트북을 압수하고 돌아갔음.

억울한것도 맞은것도 나인데 왜 뺏기는 것 마저 나인지 이해할수가 없었음. 그저 화가 났음.

아침이 되니 내 것이었던 기기들은 모두 아빠와 함께 아빠의 학교에 가 있었음. 딸 주제에 감히 가장이자 장남인 아빠에게 대든 벌이었음.

왜 내가 그토록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려니 넘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왜 미친개처럼 달려들면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딘가 크게 망가진 것 같은 생각들이 나를 파고들었음. 이 괴로움이 아빠를 벗어나면, 이 집구석을 벗어나면 끝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음. ‬

그래서 무작정 멀리 있는 고등학교에 원서를 썼음. 공부 스트레스 안 받게 성적 낮고 좀 노는 학교로.

그리고 무작정 돈을 모았음. 성인이 되면 내 할 일을 찾고 내 집을 만들기 위해 아끼던 책, 장난감, 전자기기 많은 것들을 팔았고 알바를 시작했음. 고등학생이 되기 전 학생들을 받아주는 곳이 얼마 없어서 전단지를 돌리고 식당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차곡차곡 모아갔음. 나가서 놀겠다고 용돈을 타고 친구집에 머물러 있다 오거나 친구 게임하는거 구경하다 오기도 하고 돈을 저축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음

그렇게 기숙사로 떠나는 날 정말 속이 시원했음. 노는 시골학교를 넣었더니 남자만 가득하고 여자가 거의 없어서 좀 걱정되긴 했는데 그런거 상관 없었음. 집을 벗어난다는게 너무나도 행복했음.

고등학교는 정말 무난하게 보냈음. 다행히도 큰 사건 안 터지고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졸업했음.

글도 못 읽고 기억력도 치매 수준인 나를 고스란히 받아준 좋은 친구들 덕에 집을 벗어나고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나를 꾸미고 내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음. 우울증이 영원히 나를 수렁으로 끌고 갈 동반자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의 변화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음.

글을 읽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되자 내가 한 일은 공부였음. 국과사영같은 과목들 말고 모델링, 프로그래밍, 일러스트, 조소, 중장비, 드론 등등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서 다 공부해봤고 틈틈히 언어도 공부했음 모든것을 내가 독립할 밑천으로 삼기로 한 오기였음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성공적으로 졸업하자마자 나는 아빠와 모든 연락을 끊고 어디에서든지 일 할 곳을 찾았음. 모은 돈으로 월세방을 구해서 주변에서 여러 알바를 하며 내가 직업으로 삼을 만한 일들을 찾아 보고 있음. 아직도 안정적인 일이 없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지만 난 만족함. 난생 처음으로 좋은 예감이 들고 있음. 아직 세상 맛을 못 봐서 희망찬 소리만 뱉어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나를 좀 더 믿어보고 싶음

무엇보다 아빠의 곁을 벗어났잖음? 무언가를 포기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 거지같은 우리 아빠. 포기하고 싶을 때 늘 생각하며 더 노력하기로 했음

엄마랑 아빠는 나와 오빠가 독립하자마자 이혼했는데 엄마가 드디어 할머니에게서 벗어나게 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아빠한테는 연락 끊기 전에 내 지난 일들을 알린 후에 사과할거면 돈으로 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손편지 써줬음. 연락 끊을 때 조차도 효녀라니 욕도 좀 할 걸 그랬음. 이후에 진짜로 입금했길래 사과 안 받는단 의미로 고스란히 되돌려줬음.

이후에 한번 만나서 잘 풀었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성인의 삶을 만끽하고 있음. 아직 소주에 거부감은 좀 있지만 친구가 맥주 사서 놀러오면 치킨 시키고 광란의 밤을 보냄


글 끝나서 말하는건데 아빠한테 기기를 전부 빼앗긴 날 새벽에 오빠가 노래부르고 있었음. 근데 방이 가까워서 내 목소리로 착각했고 그렇게 날 갈군것임ㅋㅋㅋㅋ 물론 아빠 자존심이 쌔서 그 다음 날 착각한건 인정해도 내 버르장머리가 너무 없었다고 오히려 혼냈었지만 지금 다 사과 받았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로 했음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직장 생기면 또 자랑하러 오겠음 모두 행복하길 바람

늦었지만 해피 뉴 이어!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