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왔습니다. 수원의 초등학교와 너무 달라 적응을 못 했었고, 그러다 보니 저는 아이들에게 '촌스럽다', '촌놈' 등이란 말을 하였고, 이에 화가 난 아이들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적응이 힘들어서 다시 수원으로 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 다른 반이었지만, 어떤 여자애가 저에게 먼저 다가왔었어요. 아무도 저에게 다가가기 싫어했었지만, 그 아이는 용기를 내서 저에게 다가온 것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네요. 다음 해, 6학년이 되었고 저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왕따였던 저와 그래도 어울려주었기 때문에 그 아이와 본격적으로 친구가 된 거죠. 사실 그 아이 말고 다른 아이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 어쩌다가 그 다른 아이는 사이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헤어졌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그 두 아이와 같은 학교에 들어갔었어요. 저는 먼저 만난 그 아이와 초6부터 같이 등하교까지 했었습니다. 가끔 사이가 틀어져 혼자였던 적은 있었지만, 거의 매일 같이 있었죠. 중2 때 사귄 친구가 하나 더 있었지만, 두 친구는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내가 공부를 더 잘했으면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에 다녔을지도 몰랐고, 그랬으면 내 인생의 흑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었나 겨울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아이와 다시 연락이 되었는데, 그 애는 공과금이나 그런 것을 대어 돈을 빌려달라 하였죠. 처음엔 없다 하였지만, 사정이 딱하게 되자 저는 몰래 내 통장에 있는 75만원을 꺼내 주었어요. 그 이후로 크게 혼이 나게 되었고, 이 이상은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였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자동적으로 연락이 끊어지겠지라 생각하였으나 그 친구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6년 겨울, 그 아이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알아서 잘 살겠지라 생각했으나 그건 큰 착각이었죠.
2007년, 같이 공부하던 선배가 졸업을 하였는데 선배와 했었던 과제물을 돌려주기 위해서 연락을 하다 어느 날 연락이 되어 찾아 갔었습니다. 전 그 때 과제물만 돌려주고 나왔어야 했었죠. 일을 하는 선배의 모습에 멋있어 보여서 저도 하겠다고 했었으나 알고 보니 다단계였습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전 허무함에 삶의 의욕도 잃어버렸죠. 게다가 당시 600만원의 빚도 있어서 용돈이나 다단계 물품 처분한 돈으로 겨우 이자나 갚고 있었습니다. 결국 졸업하기 전에 부모님께 사정을 얘기하고 일을 해결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절대로 다단계의 '다'자도 생각하지 않았고 다시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다단계의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저는 취업을 못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공부에 손을 뗀 상태라 다시 공부하긴 어려웠었고, 결국엔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전 소방서에 2개월 반을 일하게 된 기회가 생겼고 다음에는 동사무소에서 거의 1년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일하면서 차츰 독립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도 그 당시에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일을 다시 쉬게 되었을 때, 아빠의 도움으로 지금의 회사에 일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 친구와 연락은 하고 지냈으나 2013년 정도에 계를 한다고 해서 저와 같이 곗돈을 마련하자 해서 거의 월 30만원씩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 당시의 월급은 지금보단 적은 편이라 적금, 예금 등을 하면 제가 쓸 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급만으로 부족한 때가 와서 전 카드의 현금서비스에 손을 대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이었고 한 두달 후에는 그 값까지 포함해서 카드값을 내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카드값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카드론을 생각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바로 실행을 하지 못했죠. 거기서 멈췄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캐피탈에 300만원을 처음으로 대출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달 후, 카드론으로 캐피탈의 것을 일부 상환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때까지만 해도 카드론의 500만원은 갚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2014년 8월, 당시 그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운영한 죽집에 누군가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죠.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방에 가기 싫다 해서 그렇게 해서 전에 빌렸던 그 캐피탈에서 850만원을 빌려 얼마를 줬습니다. 그런데 그 해 10월, 이번엔 위암 판정을 받았다 해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울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고 싶다'라 말했어요. 그래서 또 저축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려 400만원 정도를 주다 보니 이번엔 제가 월불입금을 내기 버겁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2월 말에 다른 저축은행에서 700만원을 빌려 이전의 저축은행에서 받은 금액을 상환하였고 남은 돈으로는 생활비로 썼습니다.
여기서라도 멈추었으면 좋았을텐데...
2015년, 그는 또 자기가 무슨 보험에서 지원하는 집짓기 캠페인에 해당이 되어서 집터, 건설비 등이 필요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대부업체에 500만원, 400만원을 빌렸습니다.
사실 그 해 6월, 전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게 되었죠. 바로 자기 대출에 '보증'을 서달라 하였습니다. 난 안된다, 죽어도 못한다 라고 나섰지만, 결국엔 져 버려서 해 버렸습니다. 그러다 500만원의 이자가 부담스러워 다른 저축은행에서 1000만원을 빌려 그 500만원을 상환하였죠. 그러다 8월에는 자기 둘째 아들이 왕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서 가해자 쪽 부모를 고소하려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 해서 또 얼마를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제가 월급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금 명목으로 다른 곳에서 또 차례대로 200만, 300만, 200만씩 빌렸습니다.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곳이 없던 저는 어느 날, '채무통합'에 대해 알게 되었고, 거기에 잘 알고 있던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바꿔드림론'을 알게 되었고, 다음 해 1월에 실행을 하게 되었습니다.(저축은행 천만원이 빌린 지 6개월이 되기를 기다림)
바꿔드림론으로 갈아탄 뒤, 다른 대출은 은행권으로 가려 했으나 은행에서 거절당하게 되어 할 수 없이 고금리의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월불입금은 더 많아졌습니다.
내 사정을 안 20년지기는 항상 '너에게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또 부탁을 하였습니다.
사실 마음속에선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딱한 사정을 알아버리고는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카드나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여 현금화하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내 보험과 적금, 예금 등을 다 써버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요. 친구라 생각했던 건 알고 보니 암덩어리였고 난 마치 암에 걸린 시한부 환자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어요.
전 그냥 그를 친구라 생각한 거 뿐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죄만 더 지었네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2013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아니, 2007년 이전이라도...
시간을 돌려서 다시 어려질 수만 있다면...
안녕하세요?
하도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엔 판에다 올리게 되었습니다.
1996년 6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왔습니다. 수원의 초등학교와 너무 달라 적응을 못 했었고, 그러다 보니 저는 아이들에게 '촌스럽다', '촌놈' 등이란 말을 하였고, 이에 화가 난 아이들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적응이 힘들어서 다시 수원으로 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 다른 반이었지만, 어떤 여자애가 저에게 먼저 다가왔었어요. 아무도 저에게 다가가기 싫어했었지만, 그 아이는 용기를 내서 저에게 다가온 것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네요.
다음 해, 6학년이 되었고 저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왕따였던 저와 그래도 어울려주었기 때문에 그 아이와 본격적으로 친구가 된 거죠. 사실 그 아이 말고 다른 아이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 어쩌다가 그 다른 아이는 사이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헤어졌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그 두 아이와 같은 학교에 들어갔었어요. 저는 먼저 만난 그 아이와 초6부터 같이 등하교까지 했었습니다. 가끔 사이가 틀어져 혼자였던 적은 있었지만, 거의 매일 같이 있었죠.
중2 때 사귄 친구가 하나 더 있었지만, 두 친구는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내가 공부를 더 잘했으면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에 다녔을지도 몰랐고, 그랬으면 내 인생의 흑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었나 겨울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아이와 다시 연락이 되었는데, 그 애는 공과금이나 그런 것을 대어 돈을 빌려달라 하였죠. 처음엔 없다 하였지만, 사정이 딱하게 되자 저는 몰래 내 통장에 있는 75만원을 꺼내 주었어요. 그 이후로 크게 혼이 나게 되었고, 이 이상은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였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자동적으로 연락이 끊어지겠지라 생각하였으나 그 친구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6년 겨울, 그 아이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알아서 잘 살겠지라 생각했으나 그건 큰 착각이었죠.
2007년, 같이 공부하던 선배가 졸업을 하였는데 선배와 했었던 과제물을 돌려주기 위해서 연락을 하다 어느 날 연락이 되어 찾아 갔었습니다. 전 그 때 과제물만 돌려주고 나왔어야 했었죠.
일을 하는 선배의 모습에 멋있어 보여서 저도 하겠다고 했었으나 알고 보니 다단계였습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전 허무함에 삶의 의욕도 잃어버렸죠. 게다가 당시 600만원의 빚도 있어서 용돈이나 다단계 물품 처분한 돈으로 겨우 이자나 갚고 있었습니다.
결국 졸업하기 전에 부모님께 사정을 얘기하고 일을 해결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절대로 다단계의 '다'자도 생각하지 않았고 다시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다단계의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저는 취업을 못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공부에 손을 뗀 상태라 다시 공부하긴 어려웠었고, 결국엔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전 소방서에 2개월 반을 일하게 된 기회가 생겼고 다음에는 동사무소에서 거의 1년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일하면서 차츰 독립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용카드도 그 당시에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일을 다시 쉬게 되었을 때, 아빠의 도움으로 지금의 회사에 일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그 친구와 연락은 하고 지냈으나 2013년 정도에 계를 한다고 해서 저와 같이 곗돈을 마련하자 해서 거의 월 30만원씩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 당시의 월급은 지금보단 적은 편이라 적금, 예금 등을 하면 제가 쓸 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급만으로 부족한 때가 와서 전 카드의 현금서비스에 손을 대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이었고 한 두달 후에는 그 값까지 포함해서 카드값을 내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카드값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카드론을 생각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바로 실행을 하지 못했죠. 거기서 멈췄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캐피탈에 300만원을 처음으로 대출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달 후, 카드론으로 캐피탈의 것을 일부 상환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때까지만 해도 카드론의 500만원은 갚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2014년 8월, 당시 그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운영한 죽집에 누군가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죠.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방에 가기 싫다 해서 그렇게 해서 전에 빌렸던 그 캐피탈에서 850만원을 빌려 얼마를 줬습니다.
그런데 그 해 10월, 이번엔 위암 판정을 받았다 해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울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고 싶다'라 말했어요. 그래서 또 저축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려 400만원 정도를 주다 보니 이번엔 제가 월불입금을 내기 버겁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2월 말에 다른 저축은행에서 700만원을 빌려 이전의 저축은행에서 받은 금액을 상환하였고 남은 돈으로는 생활비로 썼습니다.
여기서라도 멈추었으면 좋았을텐데...
2015년, 그는 또 자기가 무슨 보험에서 지원하는 집짓기 캠페인에 해당이 되어서 집터, 건설비 등이 필요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대부업체에 500만원, 400만원을 빌렸습니다.
사실 그 해 6월, 전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게 되었죠. 바로 자기 대출에 '보증'을 서달라 하였습니다. 난 안된다, 죽어도 못한다 라고 나섰지만, 결국엔 져 버려서 해 버렸습니다.
그러다 500만원의 이자가 부담스러워 다른 저축은행에서 1000만원을 빌려 그 500만원을 상환하였죠. 그러다 8월에는 자기 둘째 아들이 왕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서 가해자 쪽 부모를 고소하려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 해서 또 얼마를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제가 월급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금 명목으로 다른 곳에서 또 차례대로 200만, 300만, 200만씩 빌렸습니다.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곳이 없던 저는 어느 날, '채무통합'에 대해 알게 되었고, 거기에 잘 알고 있던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바꿔드림론'을 알게 되었고, 다음 해 1월에 실행을 하게 되었습니다.(저축은행 천만원이 빌린 지 6개월이 되기를 기다림)
바꿔드림론으로 갈아탄 뒤, 다른 대출은 은행권으로 가려 했으나 은행에서 거절당하게 되어 할 수 없이 고금리의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월불입금은 더 많아졌습니다.
내 사정을 안 20년지기는 항상 '너에게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또 부탁을 하였습니다.
사실 마음속에선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딱한 사정을 알아버리고는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카드나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여 현금화하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내 보험과 적금, 예금 등을 다 써버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요. 친구라 생각했던 건 알고 보니 암덩어리였고 난 마치 암에 걸린 시한부 환자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어요.
전 그냥 그를 친구라 생각한 거 뿐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죄만 더 지었네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2013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아니, 2007년 이전이라도...
이제는 그 '암덩어리'를 떼고 제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가족들도 매일 저 때문에 울고 화내고 그래요.
저는 지금 지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에요.
죽을 생각을 하려 해도 무서워서 못 죽어요.
제 빚 7천이라도 갚고 죽든 어쩌든 해야할 거 같은데...
전 지금 그 '암덩어리'를 고소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에겐 그는 친구가 아니라 떼어내야 내가 살 수 있는 '암덩어리'입니다.
욕은 정중히 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