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곧 군대를 가는 대학생 입니다.제가 지금 껏 살아온 얘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조언을 듣고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제 인생을 고쳐보려고 합니다.저는 이제 21살 98년 생 입니다. 원래 태어난 것은 97년 소띠 입니다.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말로는 꽤나 큰 규모의 사업이라고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 아버지의 사업이 작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셨습니다.어머니께서 어느날 아버지의 통장을 보고 계셨는데 하루에도 몇억에서 수십억씩 왔다갔다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80년대 말~90년대 초 일거라고 추측이 됩니다.아버지의 지갑에는 기본 300만원 씩 현찰로 매일 들고 다니셨다고 했습니다.그러고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버릴 때 쯔음 저를 가지셨다고 하셨습니다.한참 힘들 때 제가 태어났다고 하셨구요. 이제 제가 왜 98년생의 삶을 살았는지 이유 입니다.당시에 저는 2.3kg 정도로 몸무게가 매우 미달이였습니다.너무나도 작았고 약했기에 의사도 제가 죽을거라 얘기를 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약 1년간을 인큐베이터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 인큐베이터 한 달 이용료가100만원 정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달에 벌어오신 돈은 70만원 남짓이라고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저를 그만 포기하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회사의 부도, 돌려막기에 사용된 카드빚, 그리고 인큐베이터... 아버지는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버리셨습니다.그런 상황이였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께 아이는 절대 포기 할 수 없다.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말하셨습니다. 제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데 아버지가 빚독촉에 시달려 도망을 한참 다니시고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였기에 누나는 고모에게 맡겨졌습니다.저는 아직 어렸지만 누나는 곧 유치원에 입학을 해야했기에 누나는 고모에게 저는 엄마와함께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낮에는 전단지, 밤에는 포장마차 장사를 하셨습니다.저는 매우 작은 원룸에 혼자 지냈구요. 그때 제 나이가 3살? 4살 정도 였는데아직도 기억하는게 어머니 가방에 가득들어간 전단지와 빵 입니다.빵은 정말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그 빵이 샤니제과에서 나온 스위트 골든볼파티와 똑같이 생겼네요. 어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 남짓 이였습니다. 그마저도이웃집에 살고 계셨던 아주머니가 절 돌보러 잠깐 올 때도 있었기에 이틀에 한번 어머니의얼굴을 잠깐 보는것이 전부였습니다. 빵이 다 떨어져 너무 배가 고프면 각티슈를 물게 풀어서먹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관리를 잘못해 물때가 잔뜩 낀 가습기의 냄새였습니다.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 냄새는 정말 지독했습니다 ㅋㅋ..가끔 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지루해서 의자를 끌고와서 현관문을 열고 밖에서 놀다가경찰관께서 저를 고아인 줄 알고 경찰서로 대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한태엄청 혼이 났었죠. 여러번 탈출과 경찰서행을 가서인지 경찰관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고저에게 장난감을 사주시기도 했습니다.그러고 어느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위암으로 위절제술을 하게 된 것 이였죠. 병원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습니다.비록 작은 침대와 그 밑에 간이 침대였지만 어머니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고남부럽지 않은 시간이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어머니의 몸상태가 좋아지셨고 퇴원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셨던 할머니에게 맡겨졌습니다.어머니의 사정이 딱해서 저를 대신 맡아주시기로 한 것 입니다.저를 대신 맡아주신 할머니는 하룻밤만 더 자고 일어나면 어머니를 볼 수 있다고 매일밤마다 저를 달래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못 본지 2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보게 된 것 입니다.어머니는 아버지와 연락이 끊겨 3년 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내셨는데 아버지에게서 연락이오게 되었고 다시 온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새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직장을 새로 구하셨고 빚도 많이 남았지만 꽤나많이 갚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서 인천 가정동 시장에 있던반지하 빌라로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누나 초등학교와 거리가 가깝기에 그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지금보니 엄청 낡고 열악한 환경이였는데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가정동 시장에 있던 황실빌라 1동 시장과 가장 가까운 반지하 입니다.바로 옆집에 무당...? 비구니...? 아주머니가 살고 계셨습니다. 가끔 놀라가기도 했습니다.장수잠자리에게 물렸을 때 도움을 주셨지요 ㅋㅋ어느날 어머니께서 아파트 단지에 절 데려가셨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멋진 집은 처음봤습니다. 엄청나게 높은 건물과 바로앞에는 크고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터, 제 또래아이들도 있었거든요. 어머니는 저에게 이곳에서 살고 싶냐고 물었습니다.저는 이곳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고 답을 했구요. 얼마 안있어서 정말 그곳으로 이사를가게 되었습니다. 눈을 떠보면 곰팡이도 쓸지 않은 하얀벽지의 집에 제가 있는 것 입니다.정말 꿈인줄 알았습니다. 제가 전에 살던집에서 나던 퀘퀘한 냄새와 곰팡이로 얼룩진누런 벽지도 없었고 방과 거실도 엄청나게 넓었기 때문입니다.이 집이 현재 인천 검암동에 있는 신명스카이뷰 입니다.그곳에서 2년동안 살고 제가 초등학교 2학년 4월달에 마전동에 위치한 대원아파트로 이사를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친하던 친구 A가 있었는데 A에게 B라는 친구가 생겼고A와 B랑 자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B가 저와 A의 사이를 이간질 시켜서A와 B가 저를 왕따 시켰습니다. 정말 믿었고 친했던 친구였기에 충격이 매우 컸습니다.(중학교 때 B랑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B는 왕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초딩때 B의 집에 놀러갔는데 B는 부모님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컴퓨터로 여자속옷을 검색해서그것을 눈이 빠질정도로 쳐다봤습니다 ㅋㅋㅋㅋㅋ)하필이면 아토피도 매우 심각해져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촌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얼마나 촌동네였냐면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 2리에 살았습니다. 시내로 나가는버스는 하루에 몇대 지나다니지 않았고 주위에는 온통 논밭과 산, 경운기가 자주 보였습니다.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새로운 학교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그곳에서 1년을 생활하고 다시 인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교복에서 실밥이너무 자주 나와서 라이터를 들고다니며 실밥을 제거하고 다녔는데 라이터 소지가 적발되어학생부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부에 있었던 선생님께 제가 교복에 실밥을 제거하느라 라이터를 사용했다고 자초지종 설명을 하였으나 믿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담배를피우지 않았습니다. 학생부에 담배를 걸렸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학기 초였고 저와 얼굴도모르는 사이입니다. 학생부 선생님은 그 동급생에게 저와 담배를 피운적 있냐고 물어봤고사실대로 얘기하면 그 학생은 이번 한번은 봐준다고 했었습니다. 그 학생은 제가 몇반인지는잘 모르지만 애들하고 몇번 같이 담배를 피웠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나는 쟤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는 담배를 피운적도 없다고 말을 했지만 학생부 선생님은입에 거짓말을 달고 산다며 다짜고짜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리셨습니다.꼭 이런새끼가 컴퓨터에 야동을 엄청 깔고 항상 야동만 보는 변태 새끼라고 인신모독도하셨습니다. 학생부에 계셨던 선생님 아니 선생님이라 부르기 싫습니다 강아지라고 할게요.그 강아지가 저한태 야야 너 야동봐 안봐? 딸딸이 쳐본적 있지? 라고 물어봤고 저는 야동도보고 자위도 한적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당시에 친구들에게 처음 야동을 접했습니다.)그리고는 완전 변태 새끼라며 일주일에 딸딸이 열번도 넘게 치지 않나면서 제 성기를자로 툭툭 건들이셨습니다. 니네 부모님이 아시면 아주그냥 강아지를 낳았다고 놀랄거라고말도 했습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말대꾸를 한다며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의자로 저를 때렸습니다. 30분 정도 엎드려뻗쳐를 시키다가 다른 학생부 강아지도 저에게 와서는 갑자기발로 저를 밀었습니다. 저는 쓰러지면 맞을까봐 버텼습니다. 그리고는 어쭈? 이놈이 버티네?하면서 발로 저를 찼습니다. 너무 아파서 쓰러졌는데 어쭈? 이번에는 쓰러지네? 하면서저를 구두발로 툭툭 쳤습니다. 1시간이 넘도록 각종 폭언과 체벌을 당했고 두시간이 가까워저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전에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었고 담임(여선생 늙었음. 40대?)이저를 엎드려뻗쳐 시키고 구둣발로 제 등을 밟고 찼습니다. 그때 제 등 전체에 시퍼렇게 피멍이들었는데 누나가 그것을 보고는 엄마한태 얘기를 해서 부모님이 엄청화가 나서 담임과싸웠고 특히 어머니가 엄청 속상해 하셨습니다.) 전에도 이런일이 있어서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봐... 야동을 보고 자위를 해서 혼날까봐 말하지 못했습니다.이 일로 인해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로 정말 방황을 했습니다.일진들과 어울려 담배도 피우고 패싸움도 하고 오토바이도 타면서 엄청 사고를 쳤습니다.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고 일진과 같이 다니면 사고를 쳐서일진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초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며 다녔습니다.(이 친구들도 담배를 배워서 학교 끝나고 어른들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그러다가 일진애들이 단체로 저를 괴롭혔고 학교폭력도 당했습니다. 다시 우울증이 도졌고힘들었습니다. 다행이도 더이상 못버틸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관과 담임쌤이도와줘서 학교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폭행, 담배 심부름, 폐가에가두기 등등... 엄청 힘들었습니다. 혹시나 지금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주저말고 사이버경찰청 민원포털에 신고하세요. 정말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려면신고밖에 답이 없습니다.)자살 고위험군으로 설문조사가 나와서 중학교 2학년 때 wee클래스로 1년 동안 상담을받아야 했습니다. 당시에 wee클래스 상담사 선생님, 담임 선생님 덕분에 정말많이호전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여성분이셨는데 유일하게 아직도 찾아 뵙고 있습니다.wee 클래스 상담사 선생님 덕분에 포스코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인천 유일하게저가 받았다고 하네요... 그 상담사 선생님 꼭 보고 싶습니다. (장학금은 어머니 금반지 선물하느라 전액 사용했습니다.)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고나서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뭘 해야하나 싶었습니다.나는 뭘 잘하고 앞으로 뭘해야하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초등학교 때 육상부 제의가 와서 육상선수가 될까 고민을 했지만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대고체력도 저질이 되어서 접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예전부터 그림을 잘그린다고칭찬을 받아서 애니고를 가기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공부를 손에 놓고놀고만 다녀서 성적은 바닥을 쳤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국어, 사회 같은 과목들은 80~90점대 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수학은 손을 놓은지 오래되어 바닥을 기었고 노력을했지만 수학은중반에서 수업을 계속들었고 그 성적을 간신히 유지했습니다. 애니고에 지원했지만 떨어지게 되었고 근처 가까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꿈 대신에 게임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꿈을 갖게 되었고 열심히 공부도하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게임관련 학과가 있는학교를 찾아봤습니다. 학과도 없고... 비슷한 학과가 있는 곳은 대부분 내신이 상위권이거나대회 수상을 받는 조건이더군요....하지만 큰 문제가 닥쳤습니다. 겨우 집안이 일어나는 것 같았는데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집은 전세집이였는데 집 주인이 파산신청을 내버려서 보증금 1도 못받고내쫓기게 생겼습니다. 1억의 전세 보증금 한분도 못받았습니다.법적으로 파산신청을 내면 보증금을 못돌려 받는다네요... 소송을 해서 배상판결을 받더라도돈이 없으면 안내면 그만이라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결국 포기했습니다.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한참 똥값으로 내려간 하나 뿐인 집을팔고 대출까지 껴서 겨우 지금사는 전세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평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집이 힘들었기에 묻어야 했습니다.대학을 노려보려면 몇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를 해야했지만 저는 그것을 포기해야했기에전문학교로 눈을 돌렸습니다. 일단 빠른 취직으로 집에 버팀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죠.혼자 미술 독학하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고3이 되서야 2달 동안 미술학원에서미술 기초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2달 동안 미술학원다닐 때 더 열심히 그릴걸... 하면서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근처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슬럼프에 빠져 한달 정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20살이 되고 전문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5시간이 넘습니다.출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히면 6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1학년 1학기 교수님의 C받이가 되었습니다. 온통 CCCCC입니다. 정말 열심히 했던 과목도B가 나왔고 심지어 D+도 나왔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아니였습니다.목표를 다시 잡았습니다. 너무 긴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표부터 이뤄가자고...새로 잡은 목표는 장학금을 받자 였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수업이 끝나도 10시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림을 그리고 잤습니다.하루에 3~4시간 잠을 잤습니다. 간혹 과제로 2시간을 자거나 밤을 새는 일도 있었습니다.여자친구도 정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1학년 2학기 온통 A+, A 입니다. 제일 낮은 것도B+이 나왔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이 나와 정말 행복했습니다.매일마다 코피가 터져나왔고 피를 토하기도 했습니다. 목과 척추에 무리가 왔습니다.그래서 물리치료와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왔죠. 정말 힘든 노력을 했지만 그만큼 결과가나와준 것에 큰 기쁨이 왔습니다. 특히 여자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지금은 군대를 가게되어 휴학을 했고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희귀동물 펫샵에서 일을합니다. 청소... 3kg에 육박하는 똥판을 80개나 갈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과 같이일하는 형들이 대우를 잘해주고 페이도 짭잘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하루 6시간 정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취미가 생겨서 여가 생활을 보냅니다.지금은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군대 가기전에 어머니 금목걸이 하나라도 걸어드릴려고말입니다. 군대는 6월 초에 입대를 합니다. 글이 너무 두서도 없고 길고... 형편없이 적은 것같네요. 앞으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판에는 처음으로 글을 적어보는데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긴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군대가는 대학생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