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쓰니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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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남들 다 제대하고 취업준비할 시점에서야 입대했기에

혹여나 적응하지 못해 힘들까 매일 매일 가슴 조리며 니 연락 기다리고

서울에 있는 내가, 아무리 따뜻한 신발을 신어도 발이 저릴정도로 추운날이면

너는 얼마나 더 추울까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올때면 내 마음도 한없이 무너졌어.

 

회사일에 스트레스받아 울고싶던 날에도

니 목소리 앞에선 난 늘 씩씩해야했어.

아무렴 나보다 힘들텐데

얼마나 나오고 싶을까

얼마나 답답할까

가늠할 수 없어 더 미안했고 그랬기에 더 응원했다.

 

너는 내가 아주 사소한 투정 한마디에도

니가 뭘 힘들다고 징징거리냐며 너도 여기있으면 그런소리 못할거라고 하는 네 덕에

나는 점점 벙어리가 되어갔다.

 

의논하고 싶은 일이 생길때에도,

한없이 기대고 싶은 날에도

나는 늘 씩씩해야했고, 나는 너를 위해 늘 한발 물러서야했지.

 

이런 내 배려를 언젠가 니가 알아주길 내심 바라면서 말이야.

내 생일에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전화한통 하지 않던 너에게 너무 서운했지만

훈련이 고된가 보다. 하며 그렇게 내가 내 자신을 위로하고 있더라.

 

휴가 나올때마다 나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먼저인 너였지만

얼마나 놀고싶었을까 또 다시 나는 너를 이해하려 애쓰고 배려하며 또 한발 물러섰어.

 

내가 가고 싶던 좋은 회사에 이직했을때

누구보다 너에게 축하받고싶어 들뜬목소리로 나 이직 성공했다고 말하자마자

쎄한 분위기가 흘렀고

너는 한톤 낮아진 목소리로

그딴걸 지금 여기에있는 나한테 자랑하고 싶냐며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지.

 

그 전화를 끊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

 

그렇게 버티다보니 드디어 니가 전역을 했고

나는 남들보다 몇년쯤 늦게 꽃신을 신었어.

그러나 니가 전역한지 일주일도 안되어 나는 너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지.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

나는 여자를 만나고 싶은거지 너를 만나고 싶은게 아닌가보다. 라는 너의 말에

나는 이제 너에게 여자가 아니냐고 물었는데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말하는 너를 내가 어떻게 붙잡을 수 있었겠니.

 

두달은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을정도로 살이 빠졌고 잠을 못잤어.

슬펐다가 분노했다가 증오했다가 다시 그리웠다가..

나는 내가 정신병에 걸린 줄 알았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울렁거렸어.

간간히 들려오는 네 소식은 나를 더 바닥으로 내몰았지.

너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 여자에게 꽃길만 걷게해주겠다고 하는 너의 댓글도 보았으니까.

 

꼭 꽃신 신겨서 내 손 꼭 잡고 꽃길만 걷게해준다고 입대전 약속했던 니가 떠올라서

가슴이 미어졌다..

 

세달쯤 지나니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내 생활을 되찾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밥이 소화가 되기 시작했어.

 

네달쯤 지나니 내가 이별후 망가졌던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밝아졌다.

나, 니가 없어도 괜찮구나. 라는걸 알게되었으니까.

 

여섯달쯤 되었을때 니가 새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신기하게도 무덤덤했어.

그냥. 그런가보다.

너는 이제 나에게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갔나봐.

 

계속해서 니 소식이 들렸어.

많이 힘들어한대.

술만 마시면 울면서 내 이름을 부른대.

그리고 너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 SNS를 보기 시작했어.

니가 보는게 싫어 비공개로 돌려버렸고

그러고 며칠이 지나지않아 너에게 연락이 왔지.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우는 너에게

나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하면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했어.

그때까진 나도 참 덤덤했는데

내 말에 한참을 흐느껴울던 니가 '나 때문에 고생했어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또 다시 울렁거렸다.

 

그 말이 듣고 싶었나봐.

고마웠다는 말.

고생했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이제야 온전히 훌훌 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