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D 빌려서 씁니다;;; 평생 글이라고는 써본 적이 없어 글솜씨가 발바닥이라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ㅠㅠ
여자들은 취집을 하는데 남자들이 취가를 하는 경우가 있냐는 톡을 보고 문득 제 인생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나이 아직 30에서 2년 더 먹은 조금은 파릇한 연식이고 저희 마님은 나보다 띠동갑에서 한살 모자란 분이지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천만 다행히도 졸업하자마자 일을 구해서 민원대행, 사무위탁 하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던 제게 어느 날 사랑이란 게 찾아왔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열한 살 많고 완전 푹 빠질 듯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수줍은 듯한 인상에 포근한 미소가 같은 사무실 여직원에게도 말 한 마디 못 붙여보던 숫기 없는 제 가슴에 불을 제대로 질렀고 이 여자가 내 여자야~ 하는 목소리가 최면이라도 걸듯이 머릿속에 뱅뱅 돌았었지요.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나 제가 먼저 편지를 써서 쥐어주며 그렇게 시작됐고 여친도 영계백숙이 싫진 않았던지 너무 튕기지 않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우리는 너무나도 다정스런 커플이 되었습니다.^^
가까이 살고 있지 않아 거리가 있어 주말에만 데이트를 하는데 항상 직접 싸온 도시락을 대접했고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만날 때마다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이 여자를 꼭 내 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25살 풋내기 가슴 속에 꽉 들어찼었습니다.ㅎㅎㅎ
그런데 100일 쯤 지났을 때 머뭇거리며 하는 말이 자기를 결혼상대로 생각하려면 마음을 접으라는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여친의 부모님이 야채 도매상을 하다가 사업이 잘못되어 집안이 내려앉았고 한집에 같이 살 형편이 못 되어 남동생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여친은 고시원에 머물면서 정말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더군요. 언니와 여동생이 있기는 하지만 시집가서 살고 있어 친정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채 힘들게 말을 꺼내는 여친을 앞에 두고 차마 헤어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이때만도 혈기가 넘치던 때라 내가 어떻게든 이 여자를 보필해서 일어나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깟 형편 따위 내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 헤어지자는 소리는 말고 우리 미래만 생각하자고 큰소리를 탕탕 치고는 그날 그렇게 여친을 제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여친이 첫 여자였고, 여친도 제가 첫 남자였으니 책임감도 저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일단 큰소리를 쳐놨으니 그에 책임은 져야 할 터....
일단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여친을 고시원에서 나오게 하여 방을 하나 얻어 주었고 알바몬과 일자리 플러스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동안 달달이 생활비도 부치고 그동안 많은 고생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던 여친에게 보너스를 탈 때마다 보약도 지어주며 알뜰살뜰히 서포트를 했었지요.
카드회사에 들어가면 제가 여친에게 카드를 맞추고, 보험회사에 들어가면 보험을 들어주는 등 이 일, 저 일 취업과 퇴사가 반복되는 동안 여친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제 딴에는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 일 찾기가 어려웠던지 일을 쉬는 때가 적지 않았지만 생활비는 제가 한달도 빠지지 않고 보내주었기에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안정된 채 건강도 회복되어 가는 게 보였었지요.
그렇게 6년이 지났고.... 저는 서른이 넘었고 여친도 마흔 줄에 들었습니다.
저는 원룸에서 나와 고시원에 들어가고 여친에게 서포트한 돈은 줄잡아 6천만원 이상은 되었습니다. 특히 생활비도 그렇거니와 여자다 보니 옷이나 구두, 화장품도 적잖이 필요하여 시시때때로 선물하다 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이게 또 작은 게 아니더라구요;;;;
카드 연체가 늘어나 신용등급은 불량이 되고 월급 가불을 자주 하여 일하던 사무실에서도 눈총을 받고 부모님은 아들이 사귀는 여자가 열한살 많은 것부터 기함을 하셨지만 여친에게 그렇게 해주고 저는 옷 한벌도 제대로 못 사며 너절하게 사는 걸 보며 뒷목을 잡으셨습니다.ㅠㅠ
그렇게 살거면 집구석에 오지도 마라고 불호령을 내리셔서 연애 3년 차 쯤에 부모님과 연도 끊어지고 혈혈단신으로 혼자 내던져진 신세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한 두어달 정도 여친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 하다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 데이트를 하는데 문득 보니 여친은 뭔가 럭셔리한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는데 저는 한없이 초라한 모습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저는 한번도 여친에게 어디에 취업했냐, 무슨 일을 하냐 이런 걸 묻지 않았고 어디에 들어갔다, 그만뒀다 하는 걸 여친이 제게 말해주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날은 왠지 여친도 뭔가 제게 진지하게 할말이 있는 듯했습니다.
카페에 마주 앉아 말없이 애꿎은 커피만 마시고 있었고 저는 여친이 헤어지자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만큼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가슴만 두근두근 하고 있다가 여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 마디였습니다.
“우리 결혼해요.”
헤어지자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판에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하자는 말이 나오니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지만 여친은 뭔가 제대로 결심을 한 듯싶었습니다.
취업과 퇴사를 반복하며 5년을 보낸 끝에 여친은 번듯한 교육회사의 지사장이 되었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월수 500~1,000을 찍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었던 거였지요. 저야 뭐 6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150~200 안팎에서 왔다갔다 하는 월급쟁이였구요ㅜㅜ
그 자리에 오른 후에도 1년을 제게 숨기고 직장만 부지런히 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제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명의로 2억 짜리 빌라도 한 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출을 끼고는 있었지만 절반 이상 갚은 상태였었지요.
모은 돈도 한 푼 남아 있지 않고 신용불량자에 고시원에 얹혀사는 제가 여친의 프로포즈를 거절할 각이 아니었습니다.ㅠㅠ 서로 성공해서 근사하게 프로포즈를 하고픈 꿈은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아련한 꿈으로만 남아 있던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여친이 먼저 제게 해버렸던 것이 아쉬웠을 뿐이었지요.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이제는 내가 당신 행복하게 해줄게.”
이 말 한 마디에 저는 그저 고마워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날 곧바로 여친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만나 뵈었고 두 분께서는 우리 딸 인생을 건져 준 복덩어리 사위라며 어찌나 예뻐해 주시던지요.
저보다 두 살 많은 처남, 여덟 살 많은 처제, 열다섯 살이 많은 처형을 그날 모두 만나 뵈었고 그 집안에서 제가 가장 막내라서 예쁨을 많이 받았습니다.^_^
그리고 여친이 마련한 빌라를 보았고 이미 들어가 있는 가구와 가전들이 보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저를 호적에서 파버리시겠다고 난리시니 말씀조차 꺼내지 못했고 그야말로 데릴사위처럼 혼사를 치렀는데 제 예물은 처형님이, 예복은 처제가 맞춰주고 예식장에 처가댁 지인들과 친지들만 모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는데 이것만은 제 부모님의 허락을 나중에라도 받게 되면 하자고 고집을 부렸고 이제는 와이프가 된 여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많은 나이차로 인해 와이프의 언니 분과 동생 분에게 처형, 처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큰누님, 작은누님이라고 하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부르는 법이 어디 있냐고 꾸중을 하시곤 하십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때부터 또 다른 시련이 시작되었지요(......)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와이프가 비로소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직장 다니느라 하루 종일 집이 비어있고 들어와 보면 으스스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닌데 이래서 어떻게 사냐? 내가 당신보다 몇 배는 더 버는 것 같은데 그깟 몇 푼 번다고 나대지 말고 그냥 집안 살림이나 조신하게 하고 있는 게 어떠냐? ..... 는 말이었습니다.
지가 무슨 김숙도 아니고 무슨 조신하게 살림 타령이냐 싶고 같은 말이라도 저렇게 하냐 싶었지만 이미 전세는 역전되고 와이프는 마님으로 진화된 상태라 제가 그날로 직장을 관두고 집안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정주부라 쓰고 영어로 House-husband라 번역하며 졸지에 전업남편 신세가 된 저는 마님이 출근하면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살림하는 법을 배우기 바빴고 한달 정도 지나자 밥, 요리, 빨래, 설거지, 청소 등등 집안일이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습니다ㅠㅠ;;;;
분명히 신혼여행 때는 제가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으니 이제는 자기가 저를 위해 희생하겠다며 하고 싶은 일이든 공부든 사업이든 팍팍 밀어줄 테니 염려 놓으라더니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달 만에 안면을 싹 바꾸고 밀어주기는커녕 저를 가사일에 밀어넣어 버렸으니 이것도 밀어주긴 밀어준 건가 싶더라구요.ㅜㅜ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돈줄 쥔 쪽이 갑이고 저는 을인지라 묵묵히 집에서 살림을 하고 와이프가 입고 나갈 옷들을 다려놓고 퇴근할 때 맞추어 밥도 해놓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집안 살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와이프가 원하는 내조(!!)에는 다른 부가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는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와이프가 퇴근하면 시중을 들고 잠들기 전에는 수청까지 들며 그야말로 밤낮없이 전천후 주부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와이프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족욕을 하면서 제가 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었는데 어쩌다가 제가 이런 것도 와이프가 좋아하겠다 싶어 한번 해주었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부탁하여 제가 괜히 맛보여줬나 후회하기도 했습니다ㅠㅠ
판에 글 쓰는 주부님들이 흔히 말하는 독박가사, 무료섹파, 종년 취급이라는 말에 참으로 200% 공감하고도 남는 하루하루였지요ㅠ.ㅠ
대개 이런 경우에 남편들은 자격지심?이란 게 있어 와이프한테 땡깡도 부린다고 하더라만 저는 마님이 눈치 보지 않고 밖에서 당당하게 본인 할 일을 하기를 원했고 제가 거기에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몸이 힘들었지 마음까지 지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닭살 돋지만 와이프를 많이 사랑하기도 하구요.
와이프는 확실히 예전보다 성격이 많이 변해서 가끔은 밑도 끝도 없이 집안 꼴이 왜 이 모양이냐며 짜증도 부리고 트집을 잡으며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이 여편네가 또 회사에서 뭔 일이 있었구나. 그려;;;; 남편한테 화풀이하지 누구한테 하겠냐;;;’ 싶어 그냥 미안해 미안해 하며 다독거리기만 했고 그러면 와이프는 자기대로 미안한지 오래지 않아 제 눈치를 보며 애교를 부리곤 하여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딱 한번 정말 마음이 상한 때가 있었는데 얘기를 주고받다가 와이프가
“이젠 뭐 당신은 벌이도 없잖아. 내가 경제는 다 책임지는데 당신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집안일이나 잘 챙겨.”
라는 말을 던졌을 때 이때만은 정말 마음이 쓰라려 표정관리가 안 되더라구요.
와이프도 아차 싶었는지 얼른 제 손을 잡으며 사과를 하는데 이미 마음이 너무 아파 쉽사리 풀리지는 않았지만 화내지 말자고 속으로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화는 내지 않았지만 말은 해보자 싶어 처음으로 와이프에게 언제는 날 행복하게 해준다더니 이게 뭐냐, 그때는 사업이든 일이든 밀어주고 도와주겠다더니 이게 도와주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연신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와이프의 대답은 그 약속은 못 지켜 미안하지만 당신이 밖에서 딴 일 하는 게 싫으니 그냥 조용히 내조만 해주면 안 되겠냐는 거였지요.
결혼 전에 약속해 놓고 결혼하고서 안면 바꾸는 남편들에게 빡치는 아내분들 마음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열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집도 재산도 모조리 다 와이프 것이고 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니 저쪽이 갑이고 제가 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단히 빡친 김에 할 말이나 다 하자는 심산으로 미친 척 하고 와이프에게 내지른 말이...
당신은 뭐 당신만 돈 버는 줄 아냐. 내가 뒷바라지를 안 하면 그 돈 온전하게 벌 수나 있을 것 같냐. 집안 살림 가사도우미 쓰면 얼만지 아냐.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 자기 전에 안마해 주고 마사지 해주는 거 돈 내고 받으려면 얼만지 아냐.
당신 드라마 볼 때 과일 깎고 차 끓여 오고 기분 우울하다면 안주 만들어서 술상 차려 내고 술 시중까지 드는데 당신이 호빠에 가도 열한살 어린 호스트 만나려면 한두푼인줄 아냐. 내가 하루 종일 집안에 박혀 있으면서 밤낮으로 당신 시중을 드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코피를 쏟고 주부 노릇 두세달 만에 살이 15킬로나 빠진 걸 알기나 하냐.
당신 돈 버는 것만 대단하고 나는 뭐 노는 줄 아냐...... 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와이프가 제대로 빡쳤고 네일아트 비싸게 한 손톱으로 사정없이 제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버리더군요;;;ㅠㅠ 피까지 나자 그제서야 와이프가 어쩔 줄 몰라 빨간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하는데 저는 그저 머릿속이 텅 빈 듯 갑갑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말이 좀 심했대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대체 이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심경이 여러 모로 복잡했습니다;;;;ㅠㅠ
인간적으로 그랬으면 각방을 써도 뭣할 판에 각방은 절대로 안 된다고 우겨 함께 누웠더니 자기 손으로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서 피까지 본 사람더러 수청을 들라고 하니 이건 무슨 제가 전생에 춘향이였고 와이프는 변사또였나 싶어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어쩌나.... 잡은 물고기한테 먹이를 안 주면 굶어 죽으니 잡아 놓은 물고기와 오래 오래 살려면 먹이를 주는 수밖에요;;;
아니, 어쩌면 그 생각은 마님이 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서 잠자리로 화해를 시도한다는 몰지각한 남편들 때문에 속이 썩는 아내분들 심정이 또 다시 뼈가 시리게 공감이 됩니다.
이제 겨우 7개월의 신혼이지만 깨만 쏟아지는 게 아니라 피도 쏟아지고 제 체중도 쏟아지고 영혼도 쏟아지는 듯하여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만 이것도 ‘취가’라면 취가라고 해야 할까요?
여성분들만 취집을 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취가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는 하는데 제게 여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 편 셔터맨 취급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 와이프 덕분에 호강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ㅠㅠ
세상에 둘도 없을 파란만장 취가 스토리 (스압...)
* ID 빌려서 씁니다;;; 평생 글이라고는 써본 적이 없어 글솜씨가 발바닥이라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ㅠㅠ
여자들은 취집을 하는데 남자들이 취가를 하는 경우가 있냐는 톡을 보고 문득 제 인생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나이 아직 30에서 2년 더 먹은 조금은 파릇한 연식이고 저희 마님은 나보다 띠동갑에서 한살 모자란 분이지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천만 다행히도 졸업하자마자 일을 구해서 민원대행, 사무위탁 하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던 제게 어느 날 사랑이란 게 찾아왔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열한 살 많고 완전 푹 빠질 듯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수줍은 듯한 인상에 포근한 미소가 같은 사무실 여직원에게도 말 한 마디 못 붙여보던 숫기 없는 제 가슴에 불을 제대로 질렀고 이 여자가 내 여자야~ 하는 목소리가 최면이라도 걸듯이 머릿속에 뱅뱅 돌았었지요.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나 제가 먼저 편지를 써서 쥐어주며 그렇게 시작됐고 여친도 영계백숙이 싫진 않았던지 너무 튕기지 않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우리는 너무나도 다정스런 커플이 되었습니다.^^
가까이 살고 있지 않아 거리가 있어 주말에만 데이트를 하는데 항상 직접 싸온 도시락을 대접했고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만날 때마다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이 여자를 꼭 내 껄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25살 풋내기 가슴 속에 꽉 들어찼었습니다.ㅎㅎㅎ
그런데 100일 쯤 지났을 때 머뭇거리며 하는 말이 자기를 결혼상대로 생각하려면 마음을 접으라는 거였습니다. 알고 보니 여친의 부모님이 야채 도매상을 하다가 사업이 잘못되어 집안이 내려앉았고 한집에 같이 살 형편이 못 되어 남동생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여친은 고시원에 머물면서 정말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더군요. 언니와 여동생이 있기는 하지만 시집가서 살고 있어 친정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채 힘들게 말을 꺼내는 여친을 앞에 두고 차마 헤어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고 이때만도 혈기가 넘치던 때라 내가 어떻게든 이 여자를 보필해서 일어나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깟 형편 따위 내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 헤어지자는 소리는 말고 우리 미래만 생각하자고 큰소리를 탕탕 치고는 그날 그렇게 여친을 제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여친이 첫 여자였고, 여친도 제가 첫 남자였으니 책임감도 저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일단 큰소리를 쳐놨으니 그에 책임은 져야 할 터....
일단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여친을 고시원에서 나오게 하여 방을 하나 얻어 주었고 알바몬과 일자리 플러스 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동안 달달이 생활비도 부치고 그동안 많은 고생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던 여친에게 보너스를 탈 때마다 보약도 지어주며 알뜰살뜰히 서포트를 했었지요.
카드회사에 들어가면 제가 여친에게 카드를 맞추고, 보험회사에 들어가면 보험을 들어주는 등 이 일, 저 일 취업과 퇴사가 반복되는 동안 여친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제 딴에는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 일 찾기가 어려웠던지 일을 쉬는 때가 적지 않았지만 생활비는 제가 한달도 빠지지 않고 보내주었기에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이 안정된 채 건강도 회복되어 가는 게 보였었지요.
그렇게 6년이 지났고.... 저는 서른이 넘었고 여친도 마흔 줄에 들었습니다.
저는 원룸에서 나와 고시원에 들어가고 여친에게 서포트한 돈은 줄잡아 6천만원 이상은 되었습니다. 특히 생활비도 그렇거니와 여자다 보니 옷이나 구두, 화장품도 적잖이 필요하여 시시때때로 선물하다 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이게 또 작은 게 아니더라구요;;;;
카드 연체가 늘어나 신용등급은 불량이 되고 월급 가불을 자주 하여 일하던 사무실에서도 눈총을 받고 부모님은 아들이 사귀는 여자가 열한살 많은 것부터 기함을 하셨지만 여친에게 그렇게 해주고 저는 옷 한벌도 제대로 못 사며 너절하게 사는 걸 보며 뒷목을 잡으셨습니다.ㅠㅠ
그렇게 살거면 집구석에 오지도 마라고 불호령을 내리셔서 연애 3년 차 쯤에 부모님과 연도 끊어지고 혈혈단신으로 혼자 내던져진 신세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한 두어달 정도 여친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 하다가 만나자고 연락이 와 데이트를 하는데 문득 보니 여친은 뭔가 럭셔리한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는데 저는 한없이 초라한 모습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저는 한번도 여친에게 어디에 취업했냐, 무슨 일을 하냐 이런 걸 묻지 않았고 어디에 들어갔다, 그만뒀다 하는 걸 여친이 제게 말해주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날은 왠지 여친도 뭔가 제게 진지하게 할말이 있는 듯했습니다.
카페에 마주 앉아 말없이 애꿎은 커피만 마시고 있었고 저는 여친이 헤어지자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만큼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가슴만 두근두근 하고 있다가 여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 마디였습니다.
“우리 결혼해요.”
헤어지자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판에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하자는 말이 나오니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지만 여친은 뭔가 제대로 결심을 한 듯싶었습니다.
취업과 퇴사를 반복하며 5년을 보낸 끝에 여친은 번듯한 교육회사의 지사장이 되었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월수 500~1,000을 찍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었던 거였지요. 저야 뭐 6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150~200 안팎에서 왔다갔다 하는 월급쟁이였구요ㅜㅜ
그 자리에 오른 후에도 1년을 제게 숨기고 직장만 부지런히 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제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명의로 2억 짜리 빌라도 한 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출을 끼고는 있었지만 절반 이상 갚은 상태였었지요.
모은 돈도 한 푼 남아 있지 않고 신용불량자에 고시원에 얹혀사는 제가 여친의 프로포즈를 거절할 각이 아니었습니다.ㅠㅠ 서로 성공해서 근사하게 프로포즈를 하고픈 꿈은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아련한 꿈으로만 남아 있던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여친이 먼저 제게 해버렸던 것이 아쉬웠을 뿐이었지요.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이제는 내가 당신 행복하게 해줄게.”
이 말 한 마디에 저는 그저 고마워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날 곧바로 여친의 아버님과 어머님을 만나 뵈었고 두 분께서는 우리 딸 인생을 건져 준 복덩어리 사위라며 어찌나 예뻐해 주시던지요.
저보다 두 살 많은 처남, 여덟 살 많은 처제, 열다섯 살이 많은 처형을 그날 모두 만나 뵈었고 그 집안에서 제가 가장 막내라서 예쁨을 많이 받았습니다.^_^
그리고 여친이 마련한 빌라를 보았고 이미 들어가 있는 가구와 가전들이 보기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저를 호적에서 파버리시겠다고 난리시니 말씀조차 꺼내지 못했고 그야말로 데릴사위처럼 혼사를 치렀는데 제 예물은 처형님이, 예복은 처제가 맞춰주고 예식장에 처가댁 지인들과 친지들만 모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는데 이것만은 제 부모님의 허락을 나중에라도 받게 되면 하자고 고집을 부렸고 이제는 와이프가 된 여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많은 나이차로 인해 와이프의 언니 분과 동생 분에게 처형, 처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큰누님, 작은누님이라고 하는데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부르는 법이 어디 있냐고 꾸중을 하시곤 하십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때부터 또 다른 시련이 시작되었지요(......)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와이프가 비로소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직장 다니느라 하루 종일 집이 비어있고 들어와 보면 으스스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닌데 이래서 어떻게 사냐? 내가 당신보다 몇 배는 더 버는 것 같은데 그깟 몇 푼 번다고 나대지 말고 그냥 집안 살림이나 조신하게 하고 있는 게 어떠냐? ..... 는 말이었습니다.
지가 무슨 김숙도 아니고 무슨 조신하게 살림 타령이냐 싶고 같은 말이라도 저렇게 하냐 싶었지만 이미 전세는 역전되고 와이프는 마님으로 진화된 상태라 제가 그날로 직장을 관두고 집안에 들어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정주부라 쓰고 영어로 House-husband라 번역하며 졸지에 전업남편 신세가 된 저는 마님이 출근하면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살림하는 법을 배우기 바빴고 한달 정도 지나자 밥, 요리, 빨래, 설거지, 청소 등등 집안일이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습니다ㅠㅠ;;;;
분명히 신혼여행 때는 제가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으니 이제는 자기가 저를 위해 희생하겠다며 하고 싶은 일이든 공부든 사업이든 팍팍 밀어줄 테니 염려 놓으라더니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달 만에 안면을 싹 바꾸고 밀어주기는커녕 저를 가사일에 밀어넣어 버렸으니 이것도 밀어주긴 밀어준 건가 싶더라구요.ㅜㅜ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돈줄 쥔 쪽이 갑이고 저는 을인지라 묵묵히 집에서 살림을 하고 와이프가 입고 나갈 옷들을 다려놓고 퇴근할 때 맞추어 밥도 해놓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집안 살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와이프가 원하는 내조(!!)에는 다른 부가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는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와이프가 퇴근하면 시중을 들고 잠들기 전에는 수청까지 들며 그야말로 밤낮없이 전천후 주부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와이프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족욕을 하면서 제가 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었는데 어쩌다가 제가 이런 것도 와이프가 좋아하겠다 싶어 한번 해주었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부탁하여 제가 괜히 맛보여줬나 후회하기도 했습니다ㅠㅠ
판에 글 쓰는 주부님들이 흔히 말하는 독박가사, 무료섹파, 종년 취급이라는 말에 참으로 200% 공감하고도 남는 하루하루였지요ㅠ.ㅠ
대개 이런 경우에 남편들은 자격지심?이란 게 있어 와이프한테 땡깡도 부린다고 하더라만 저는 마님이 눈치 보지 않고 밖에서 당당하게 본인 할 일을 하기를 원했고 제가 거기에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몸이 힘들었지 마음까지 지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닭살 돋지만 와이프를 많이 사랑하기도 하구요.
와이프는 확실히 예전보다 성격이 많이 변해서 가끔은 밑도 끝도 없이 집안 꼴이 왜 이 모양이냐며 짜증도 부리고 트집을 잡으며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이 여편네가 또 회사에서 뭔 일이 있었구나. 그려;;;; 남편한테 화풀이하지 누구한테 하겠냐;;;’ 싶어 그냥 미안해 미안해 하며 다독거리기만 했고 그러면 와이프는 자기대로 미안한지 오래지 않아 제 눈치를 보며 애교를 부리곤 하여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딱 한번 정말 마음이 상한 때가 있었는데 얘기를 주고받다가 와이프가
“이젠 뭐 당신은 벌이도 없잖아. 내가 경제는 다 책임지는데 당신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집안일이나 잘 챙겨.”
라는 말을 던졌을 때 이때만은 정말 마음이 쓰라려 표정관리가 안 되더라구요.
와이프도 아차 싶었는지 얼른 제 손을 잡으며 사과를 하는데 이미 마음이 너무 아파 쉽사리 풀리지는 않았지만 화내지 말자고 속으로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화는 내지 않았지만 말은 해보자 싶어 처음으로 와이프에게 언제는 날 행복하게 해준다더니 이게 뭐냐, 그때는 사업이든 일이든 밀어주고 도와주겠다더니 이게 도와주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연신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와이프의 대답은 그 약속은 못 지켜 미안하지만 당신이 밖에서 딴 일 하는 게 싫으니 그냥 조용히 내조만 해주면 안 되겠냐는 거였지요.
결혼 전에 약속해 놓고 결혼하고서 안면 바꾸는 남편들에게 빡치는 아내분들 마음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열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집도 재산도 모조리 다 와이프 것이고 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니 저쪽이 갑이고 제가 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단히 빡친 김에 할 말이나 다 하자는 심산으로 미친 척 하고 와이프에게 내지른 말이...
당신은 뭐 당신만 돈 버는 줄 아냐. 내가 뒷바라지를 안 하면 그 돈 온전하게 벌 수나 있을 것 같냐. 집안 살림 가사도우미 쓰면 얼만지 아냐.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 자기 전에 안마해 주고 마사지 해주는 거 돈 내고 받으려면 얼만지 아냐.
당신 드라마 볼 때 과일 깎고 차 끓여 오고 기분 우울하다면 안주 만들어서 술상 차려 내고 술 시중까지 드는데 당신이 호빠에 가도 열한살 어린 호스트 만나려면 한두푼인줄 아냐. 내가 하루 종일 집안에 박혀 있으면서 밤낮으로 당신 시중을 드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코피를 쏟고 주부 노릇 두세달 만에 살이 15킬로나 빠진 걸 알기나 하냐.
당신 돈 버는 것만 대단하고 나는 뭐 노는 줄 아냐...... 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와이프가 제대로 빡쳤고 네일아트 비싸게 한 손톱으로 사정없이 제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버리더군요;;;ㅠㅠ 피까지 나자 그제서야 와이프가 어쩔 줄 몰라 빨간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하는데 저는 그저 머릿속이 텅 빈 듯 갑갑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말이 좀 심했대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대체 이게 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심경이 여러 모로 복잡했습니다;;;;ㅠㅠ
인간적으로 그랬으면 각방을 써도 뭣할 판에 각방은 절대로 안 된다고 우겨 함께 누웠더니 자기 손으로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서 피까지 본 사람더러 수청을 들라고 하니 이건 무슨 제가 전생에 춘향이였고 와이프는 변사또였나 싶어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어쩌나.... 잡은 물고기한테 먹이를 안 주면 굶어 죽으니 잡아 놓은 물고기와 오래 오래 살려면 먹이를 주는 수밖에요;;;
아니, 어쩌면 그 생각은 마님이 하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서 잠자리로 화해를 시도한다는 몰지각한 남편들 때문에 속이 썩는 아내분들 심정이 또 다시 뼈가 시리게 공감이 됩니다.
이제 겨우 7개월의 신혼이지만 깨만 쏟아지는 게 아니라 피도 쏟아지고 제 체중도 쏟아지고 영혼도 쏟아지는 듯하여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만 이것도 ‘취가’라면 취가라고 해야 할까요?
여성분들만 취집을 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취가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는 하는데 제게 여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 편 셔터맨 취급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 와이프 덕분에 호강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