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간절한 손길

주품이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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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5:21 ~ 43}
[두 여인의 간절한 손길]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34.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35.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원어사전:
회당장:ajrcisunavgwgo"(752, 아르키쉬나고고스)
회당장 ruler of synagogue.
명사 아르키쉬나고고스는 아르코(a[rcw, 757: 지배하다, 다스리다)와 쉬나고게(sunagwghv, 4864: 집합, 회당)에서 유래했으며, '회당장'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아르키쉬나고고스는 9회 나오며 '회당장'을 의미한다.
회당장은 회당의 낭독자나 교사를 선택하고, 공중 연설자의 강연을 검토하고 그 모든 것이 예법에 맞고 전통적인 관례에 일치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임무이다.

야이로:!Iaveiro"(2383, 이아에이로스)
야이로 Jairus(인)
이아에이로스는 '그가 깨우치신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야이르(2971, 70인역본), 또는 대상 20:5에서 역시 '그가 깨우시리라'를 뜻하는 야이르(3265)에서 유래한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야이로'라고 번역했다.

발:pouv"(4228, 푸스)
발 foot
(c) 힘의 상징으로서의 발.
롬 16:20에서 하나님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약속은 하나님 자신이 사탄을 그들의 발 아래 상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d) 복종을 표현함.
복종의 표시로 사람의 발 앞에 앉거나 엎드리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그 사람의 특성이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과의 특별한 관계에 의해 묘사될 때에만 발견된다. 행 22:3에서 바울에 대한 언급에서 그런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 엄한 교훈을 받았고". 여기에서 그의 선생의 발 아래 앉아 있는 학생이라는 외면적인 상태를 반영하지만 토라에 대한 존경이 학생들로 하여금 이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한다는 사실도 표현한다. 소유를 판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헌물로 두었다고 하는 구절에서 그 사도들은(행 4:35 행 4:37 행 5:2) 주님과 하나님을 대표한다.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삽비라가 속일 때 그녀는 성령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행 5:9). 그래서 그녀가 베드로의 발에 엎드러져 죽을 때에(행 5:10), 그것은 하나님의 재판하시고 벌하시는 권세가 사도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인 것이다.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막 6:11과 병행구 행 13:51)도 이런 맥락에서 언급되어야 한다. 이것은 명백히 재판하고 벌하는 행위이다. 막 6:11의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에이스 마르튀리온 아우토이스; 눅 9:5은 에이스 마르튀리온 에프 아우토이스)라는 표현이 보여주는 것처럼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법정의 고소 행위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위에 근거하는 사도의 권능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도들의 능력은 제한된다.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에 절했을 때(행 10:25), 베드로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도 단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계 19:10 계 22:8 이하에서, 천사조차도 요한계시록 기자가 경배하기 위해 그의 발에 엎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e) 예수님에 대한 경의(veneration)을 표현함.
다른 한편, 복종과 경배의 표현은 예수님의 발에 무제한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예수님과의 관계와 비교할 때 발을 씻는 것과 기름 부음과 입맞춤의 의미는 명백해진다. 예수님을 그의 신적인 특성에 의해 죄를 용서하시는 자로 이해할 때, 그 인격 전체에서 예수님은 이미 죄 있는 인간을 초월하신다. 신의 현현에서처럼, 그의 발은 여전히 죄많은 세상에 뻗어 있으며, 그러므로 그의 발에 경의를 표하고 경배드려야 하며 희생 제물이 드려져야 한다.
(f) 발 씻기심.
마지막으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이 행위는 언뜻 보아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광의 주님이 인간의 발을 향해 몸을 굽힌다는 것은 역설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요점은 정확히 이 역설 속에 존재한다. 그것의 목적은 병원학적 기초에 근거하여 고정된 씻는 의식을 제정하기 위함도 아니고 잘못된 의식들에 대한 안전 장치를 제공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 행위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설명해준다. 그는 자신을 발을 씻기는 천한 일로 낮추신다. 즉 그는 그의 신적인 영광을 버리고 그렇게 행함으로 그가 위하여 이 봉사를 행한 그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신다.

여자:고대에서 여자에 대한 경시는 많은 일화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남자들의 일반적인 말투, 즉 '불신자나 야만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감사할 일이다'에서 나타난다. 이 속담은 근동에서 생겨난 것임이 분명하다.
헬라 세계와 헬레니즘 세계. 아테네 여자들은 열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종종 개들에 의해 감시를 받았으며, 희극에서는 변덕스럽고 다투기 좋아하고 교양없는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남자의 보호가 없으면 학대 당하기 쉬웠다. 도리스 세계(The Doric world)에서는 여자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권리를 주었다. 아티카 세계에서도 여자 신분에 대한 높은 이상이 주장되었다. 플라톤은 여성 일반을 위해 평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떤 능력있는 여성들은 사적인 생활과 공적 생활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로마. 로마에서 가정 주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다. 여자들은 집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은 여자들에게 평등한 교육을 시킬 것을 주장했다. 로마사에서는 타락한 여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고귀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병:mavstix(3148, 마스틱스)
채찍(질) whip, scourging, 고통을 가함 torment.
막 5:29 막 5:34에서도 비유적 용법으로 혈루병에 걸린 여인의 특수한 병을 나타낸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것은 질병이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하는 당시의 믿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와 질병 사이의 필연적인 관련성을 부인했다(요 9:3).

몸:이 구절에서 몸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아마도 벧전 2:24의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를 제외하고는 그 외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것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몸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하여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ㅔ 형테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고전 15:38 고전 15:42 고전 15:44).
(h) 몸의 개념과 병행하여 영혼의 개념이 발달함에 따라 몸을 사슬 또는 무덤으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멸망하는 것은 불멸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편집자주석:헬라의 철학이 육체가 영원치 못하다는 것은 참진리인 기독교의 성도의 영혼육 불멸과는 다르다)

믿음:pivsti"(4102, 피스티스)
믿음 faith.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a) 명사 피스티스(Hes., Hdt.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확실성, 확고한 확신'을 의미한다.
(2) 피스티스는 사람이 가지는 확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향유하는 확신, 즉 '신뢰할 수 있음, 의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확실성이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다.
(3) 피스티스는 신뢰의 가능성,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보증, 증명, 증거, 신실성'을 의미한다.
(b) ① 원래 피스티스 어군은 '계약이나 약정을 존중하는 행동'을 나타내었다.
(b) 피스티스는 '엄숙한 약속, 서약'을 나타낸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12).
(c) 피스티스는 '증거, 보증'을 의미한다: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딤후 4:7.
(d)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믿음'을 나타낸다.
① 하나님에 대하여, 막 11:22 벧전 1:21 히 6:1....

평안:eijrhvnh(1515, 에이레네)
평화, 복지, 번영

히브리어 샬롬

달리다:taliqav(5008, 탈리다)
처녀, 소녀.

굼:kou'm(2891, 쿰)
굼, 일어나라.


# 어느 큰인물이 연약한 인물을 찾아가 위로하고 무릎으로 그분들게 절하고 간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 분 외에는 아무도 그 연약한 할머니들을 찾으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들을 찾으시기 위해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랑과 겸손이 없었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데 그런데를 가’ 하는 으스대는 교만함이 자리 잡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곳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라는 것을 아는 소망이 있는 자가 아니면 그런 용기 있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겸손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 속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인간은 원래 낮은 자이기에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예수님께서 그러한 연약한 여인을 찾는 다라는 것은 겸손 중의 겸손이요 겸손의 왕이 되시는 주님이신 것을 봅니다. 몸에 더러운 피가 묻은 병든 여인을 주님은 받아 주시고 고쳐 주셨으며 죽어가는 딸의 안타까움을 보다 못한 한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친히 예수님께서는 죽어 가는 아이를 살리시러 먼 곳까지 찾아 가시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두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성취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연약하고 힘없는 여인, 자신의 병을 고침 받고자 모든 것을 탕비하여도 얻지 못한 병의 중함, 죽음을 앞둔 소녀의 간절함과 그 귀엽고도 애달픈 딸을 보고 애처롭게 예수님을 찾아가 치유를 부르짖는 아버지의 바램, 그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에도 우리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여 주시고 늘 한결같은 소망이 되어 주시는 주님의 따뜻함은 주님만이 우리의 가까운 영웅이시오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심을 믿게 합니다.

당시의 율법적으로 함부로 남에게 손을 대어 남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되는 법에도 그 여인은 주님께선 은혜의 주님이심을 그 율법을 극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을 바로 믿었던 것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도 당시 유대인의 훼방에도 자신이 회당장이라는 유명한 직분과 소문나서 유대인의 공격 표적이 될지 몰라도 자기 딸을 향한 사랑이 너무도 간절하여 어떤 비난에도 불구하고 딸의 병고침을 위하여 사랑의 주님을 향하여 달려 갔던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과 가슴 속에 사랑의 믿음을 가진 자와의 만남 속에서 큰 선한 역사와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영화보다도 멋있는 극적인 역사가 두 여인 가운데 일어나게 됩니다. 그 어느 의사도 고치지 못한 여인이 나음을 입게 되어 모든 수치를 씻어 버리고 율법의 법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며 소녀는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부활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인간의 법과 훼방과 멸시를 넘어 짜릿한 승리의 주님임을 모두가 목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법은 인간의 한계와 이전의 법을 초월한 무한히 주어지는 값없는 끝없는 사랑임을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약하고 부정해 보이고 나의 법대로 해도 안되고 인간의 법이 그러고 훼방하고 멸시를 당하여도 주님께 맡기시면 주님께서 해내시고 이루게 하심을 믿습니다. 내 방법이 아닌 주님께서 주신 방법대로 하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여 주님 안에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이 믿음의 길에 끝에 그 은혜의 시온의 대로는 더욱 평탄하고 빛을 발하여 놀라운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됨을 믿습니다.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 앞에 현실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판단하고 어리석게 생각할 뿐입니다. 인간의 나약한 불신의 생각의 거품이 언젠간 터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알지 못하게 커가며 강성하여 지며 점점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진동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뭐라 한들 흔들리지 마십시오 인간의 거품을 꺼지는 것을 볼 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아름답게 점점 커갈 뿐입니다. 이 영생의 대열에 흔들림 없이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그 어느 사람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안에 잠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노력 속에 흔들리지 마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보장이 되어주는 하나님의 비밀 안에 영원히 요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연약해 보여도 하나님은 당시의 마음에 찾아 오시기 원하며 당신의 마음에 항상 상주하시기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천대 받은 여인이라도 더러운 혈루증이라도 소녀같이 작은 여인이라도 주님은 그들을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새로운 소망 주시기 원합니다. 그런 연약한 자를 주님은 더욱 간절히 찾아 살리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그 은혜를 주신 분이 계십니까 이제는 그 은혜에 감사하시며 주님의 그 사랑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위에 천대 받은 여인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변호자가 되어주며 그들의 영혼이 살아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간의 마지막은 주님의 발 끝에 옺자락 끝의 시작일 뿐임을 믿습니다. 내가 하지 못한 장벽을 하나님의 끝이라 여기지 말고 주님을 다시 부여 잡고 새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닌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늘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나음을 받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이 제한하는 자기들이 오해한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말고 불가능이 없으시고 영원히 자애로운 하나님으로 바로 알아 항상 주님의 품을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옷자락을 잡음은 그 옷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남의 허물을 덮어 줌을 또한 믿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만을 계수하지 말고 그 인자함으로 남의 허물을 덮고 용서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여인의 부족함을 넘고 덮어 그들을 포용하시고 다가가시는 예수님의 초월한 사랑도 우리의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으신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