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글
새벽에 쓴 글이였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사실 자라오면서는 제 자신을 한탄하기 바빴어요 남들 다 평범한 가정인데 왜 난 이렇게 평범하지 못할까 그러면서요..그런 생각이 최고조로 들었을때 아빠가 돌아가셨죠 아빠가 절 많이 아껴주셨거든요 흠 좀 덧붙이자면 제가 태어났을땐 아빠랑 엄마가 연애중이셨어요. 이모는 산후조리만 외할머니 집에서 하고 바로 절 맡기고 일하러 가신걸로 알아요 그때도 엄마아빠가 결혼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절 데리고 놀러를 많이 다녔어요 아빠가 어디 가는걸 좋아해서 두 분이서 절 데리고 다녔던게 다 사진으로 남아서 너무 감사해요. 아빠는 여행 다니는걸 참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때가 크리스마스 전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가족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워두셨다가 돌아가셨죠 아빤 경찰이었는데 공무집행 중에 흉기에 찔려 돌아가셨죠.. 흠.. 아빠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 아빠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엄청났어요 행복했고 단란했던 가족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를 몸소 느끼면서 진짜..하... 말로 형용할 수가 없네요.. 왜 안 좋은 일은 다 나한테만 일어나는걸까 생각하며 하루하루가 우울했죠..아빠가 있었으면 지금의 생활이 좀 더 행복했을텐데 아빠가 있었으면 정말 덜 힘들었을텐데 하면서 말이죠... 아빠가 정말 많이 보고싶네요...
이모랑은 사이가 좀 서서히 안좋다가 최근들어서? 제가 이모가 뭔 말만하면 예민하게 굴어서 짜증을 부립니다. 이유는 이모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혼을 해서 엄마가 저랑 큰동생이랑 이모랑 일본여행을 갔다오라고 했는데 일본 여행때 저와 동생이 짜놓은 계획표에 이모가 알게모르게 불만 아닌 불만을 표출하면서(밥이 입에 맞지 않는다,일본이 일본 같지 않고 한국같다 한국가 다를게 없네, 호텔 조식이 입에 안맞다) 그게 돌아오는 귀국길에 그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공항에서 혼자서 울었습니다. 나름 이모 기분 좋게 해주려고 짠 계획에 이모가 태클을 걸니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제일 화가 났던 말은 여행 마지막날 제가 생리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쉬려고 누웠는데 큰동생은 피규어에 관심이 많아 피규어 쇼핑을 한다는거예요. 전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이모가 동생 피규어 사는데 같이 와달라고 했었습니다 근데 제가 생리가 터지면 그 날 생리통이 너무 심하기때문에 계속 누워만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전 못가겠으니 둘이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얕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모는 제가 완전 잠에 든줄 알고 “시간 귀한줄 모르고 쳐 자빠져 자고있네”라고 하더라고요 전 진짜 아파서 잠을 잤던 건데 그래서 그 얘기 듣고 그냥 일어나서 결국 동생 피규어 사는 곳에 가서 쇼핑 다 하고 왔습니다. 쇼핑 하면서 아까 나한테 했던 말 들었다고 하니 미안하다 사과하더라고요.....
그 말이 직격타였어요 그리고 한국와서 이모에게 정말 엇나갔습니다..한국 돌아와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여행으로 인해서 제가 과거에 친구들한테 받았던 그 상처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짙어졌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고 있는 정신과 병원 선생님께 제 출생의 비밀을 다 꺼내놔야할까도 했지만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선생님이 일 그 얘기를 꺼내면 또 우느라 제대로 말도 못할까봐 병원을 꽤 오래다녔는데도 한번도 얘기하지 못했어요.
제가 다시 제대로 의사선생님께 제 모든걸 털어놓으면 조금은 힘든걸 덜 수 있을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댓글 써주신 모든 분들께도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같아요. 넋두리로 쓴 글이었는데 많이 위로해주셔서 감사하고 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진짜 너무 감사드려요. 그럼 여러분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다시 한 번 제 글에 위로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방탈 죄송해요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이 곳에 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전 25살 여대생이에요
말 그대로 전 엄마가 둘 아빠가 둘이에요
정확히 절 이 세상에 낳게만 한 부모님과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절 키워주신 부모님 이렇게 각각 둘 씩이요
그치만 전 생물학적 부모님껜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죠
친모는 이모 친부는 어디서 뭘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모와 친부는 혼인신고는 했지만 제가 태어나고 한 달 후에 이혼을 했습니다(우연히 집에서 서류를 봤어요.)
그리고 전 태어나고 3살까지 외할머니 손에 길러지다 3살이 되던 그 해 2월부터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시고나서 엄마아빠의 자식이 되었어요. 엄마아빠는 처음에 이모 이모부로 부르다가 제가 4살이 되던 때에 엄마가 갑자기 저보고 “이제 이모보고 엄마라고 부르고 이모부보고 아빠라고 부를래”라고 해서 그 때부터 엄마 아빠라고 불렀어요.
밑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어요
그 둘과는 제가 성이 같지 않았어요. 출생신고 할 때 친부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죠.
초등학생땐 여동생,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친구들은 제 가정사를 몰랐죠 그들에게 제 가정사를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의 가장 큰 약점이었거든요. 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은 저보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가 동생들이랑 성이 다른게 너네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렇대 네가 엄마따라 온거고 너네 아빠는 새 아빠라던대??”, “너 입양됐어? 너 친아빠 친엄마 어딨는지 알아?”라며 전 저에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 들끼리 소설을 지어냈죠. 가장 충격적인건만 썼고 이런 비슷한 류의 얘기들을 정말 많이 들었네요...
이 이야기를 듣지 않게된건 후에 법이 바뀌어서 전 아빠 성 따라 바꾸고 전 아빠의 친양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14살이 되고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어요 성도 아빠와 동생들과 같아서 지긋지긋한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들이 꾸며낸 소설 그치만 나에겐 비수가 돼 가슴이 꽂혔던 그 얘기들을 듣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았죠.
그치만 중학교 2학년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친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빠 휴대폰에 그 분의 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분께 전화했죠. 잘 살고 계신 것 같더군요. 제 사진을 한 번 보내드리고 이틀정도 연락하다 연락하지 않게되었습니다.
그 해 아빠가 돌아가셔서 절 친자식보다 더 아껴주셨던 아빠를 뒤로하고 책임지지도 못할거면서 절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던 무책임한 친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락했던 제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친모는 그러니까 제 이모는 절 낳고 엄마와 아빠에게 절 맡기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이모와 조카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절 큰 딸로 보듬어준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으로(제 짐작이지만) 아빠 묘지에만 가시면 아직도 우십니다. 아빠가 저에게 사랑을 줬던 만큼 이모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장례식 마지막날부터 저희 집에서 같이 살고 계시고 아빠의 빈 자리를 이모가 챙겨주시고 계십니다. 친자식인 저보다 제 동생들을 친자식처럼 챙겨주세오 누가보면 정말 이모의 아이들이 제 동생들인줄 알아요. 저한텐 진짜 딱 조카처럼 대합니다. 솔직히 이모랑 전 많이 싸워요 엄마랑 동생들은 제발 그만 좀 싸우라고 합니다. 사소한걸로 많이 싸우는데 솔직히 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슴속에 상처는 더 깊어지고 제게 이런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얼굴도 모르는 친부보다 매일보는 이모에게 훨씬 더 원망스럽습니다.
제게 이런 가정사가 있다는건 저와 젤 친한 친구 두명 만 알고있는데 제게 친모 친부가 있던 사실때문에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다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더 심해졌고 지금도 약 복용하고 상담받으면수 꾸준하 치료중이에요 그 동안에 자살 시도도 많이 했고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였으면 아예 애초부터 아이를 낳지 말지 이런 생각때문에 저에게 무슨 일만 있으면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때문에 계속 죽고만 싶었죠
그치만 친구들 덕분에 정말 여기까지 버텼습니다 그 두 친구들 덕분에 너무 감사해요. 제가 성장해온 과정을 가족이 아닌 친구들이 보기에 이모가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예 키우질 못하면 입양을 보내던지 맘이 약해 그건 못하고 가까이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보고싶고 또 그로인해 가까이서라도 보니까 버린게 아니라 책임진거라고 자기위안 받고싶은거 아니냐며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합니다.
저도 그 얘긴 동의합니다. 또 이모가 저에게 짜증을 낼 때마다 솔직히 내가 이모가 짜증낸거에 천배로 짜증을 부려도 화내면 안되는 사람이 나에게 짜증을 부리니 너무 힘듭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이기적인가요?
커가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드는데 지금 남자친구한테도 아빠가 돌아가신 얘기를 정말 힘들게 얘기를 꺼냈는데 거기에 정말 저에겐 아킬레스건인 이 얘기를 미래의 배우자에게 말해야 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이 두 친구들한테도 울며불며 힘들게 꺼낸 얘기를... 제게 이런 큰 짐을 안겨준 이모와 친부에게 원망스럽고 왜 이모가 동생들과 비교해 저에게 까탈스럽게 구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참고로 엄마는 이모의 동생입니다) 이모가 재혼을 하셨는데 얼마전 이모부와 이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운전을 하는데 옆에서 외할머니가 저보고 이모한테 잘해라 이모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이혼하고 지내는데 이모한테 살갑게 굴어라 이러시는겁니다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전 이모가 하나도 불쌍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보다 천배는 더 불쌍합니다 적어도 이모는 친모 친부와 길러준 부모님이 같으니까요 그래서 어렸을적 친구들로 놀림을 받아 어린날을 상처와 눈물로 보내진 않았을테니까요.
그냥 하소연하며 쓴 글인데 이모랑 앞으로 이대로 지내야 ㅔ하는건지 친부가 연락오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막막하네여(이모통해서 저랑 연락을 시도 하려했다는걸 우연히 들었어요 제 휴대폰 번호가 바뀌었거든요)
+추가글 조언 감사합니다)전 엄마가 둘 아빠가 둘이에요
새벽에 쓴 글이였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사실 자라오면서는 제 자신을 한탄하기 바빴어요 남들 다 평범한 가정인데 왜 난 이렇게 평범하지 못할까 그러면서요..그런 생각이 최고조로 들었을때 아빠가 돌아가셨죠 아빠가 절 많이 아껴주셨거든요 흠 좀 덧붙이자면 제가 태어났을땐 아빠랑 엄마가 연애중이셨어요. 이모는 산후조리만 외할머니 집에서 하고 바로 절 맡기고 일하러 가신걸로 알아요 그때도 엄마아빠가 결혼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절 데리고 놀러를 많이 다녔어요 아빠가 어디 가는걸 좋아해서 두 분이서 절 데리고 다녔던게 다 사진으로 남아서 너무 감사해요. 아빠는 여행 다니는걸 참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때가 크리스마스 전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가족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워두셨다가 돌아가셨죠 아빤 경찰이었는데 공무집행 중에 흉기에 찔려 돌아가셨죠.. 흠.. 아빠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 아빠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엄청났어요 행복했고 단란했던 가족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를 몸소 느끼면서 진짜..하... 말로 형용할 수가 없네요.. 왜 안 좋은 일은 다 나한테만 일어나는걸까 생각하며 하루하루가 우울했죠..아빠가 있었으면 지금의 생활이 좀 더 행복했을텐데 아빠가 있었으면 정말 덜 힘들었을텐데 하면서 말이죠... 아빠가 정말 많이 보고싶네요...
이모랑은 사이가 좀 서서히 안좋다가 최근들어서? 제가 이모가 뭔 말만하면 예민하게 굴어서 짜증을 부립니다. 이유는 이모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혼을 해서 엄마가 저랑 큰동생이랑 이모랑 일본여행을 갔다오라고 했는데 일본 여행때 저와 동생이 짜놓은 계획표에 이모가 알게모르게 불만 아닌 불만을 표출하면서(밥이 입에 맞지 않는다,일본이 일본 같지 않고 한국같다 한국가 다를게 없네, 호텔 조식이 입에 안맞다) 그게 돌아오는 귀국길에 그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공항에서 혼자서 울었습니다. 나름 이모 기분 좋게 해주려고 짠 계획에 이모가 태클을 걸니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제일 화가 났던 말은 여행 마지막날 제가 생리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쉬려고 누웠는데 큰동생은 피규어에 관심이 많아 피규어 쇼핑을 한다는거예요. 전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이모가 동생 피규어 사는데 같이 와달라고 했었습니다 근데 제가 생리가 터지면 그 날 생리통이 너무 심하기때문에 계속 누워만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전 못가겠으니 둘이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얕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모는 제가 완전 잠에 든줄 알고 “시간 귀한줄 모르고 쳐 자빠져 자고있네”라고 하더라고요 전 진짜 아파서 잠을 잤던 건데 그래서 그 얘기 듣고 그냥 일어나서 결국 동생 피규어 사는 곳에 가서 쇼핑 다 하고 왔습니다. 쇼핑 하면서 아까 나한테 했던 말 들었다고 하니 미안하다 사과하더라고요.....
그 말이 직격타였어요 그리고 한국와서 이모에게 정말 엇나갔습니다..한국 돌아와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여행으로 인해서 제가 과거에 친구들한테 받았던 그 상처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짙어졌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고 있는 정신과 병원 선생님께 제 출생의 비밀을 다 꺼내놔야할까도 했지만 대학병원으로 옮긴 후 선생님이 일 그 얘기를 꺼내면 또 우느라 제대로 말도 못할까봐 병원을 꽤 오래다녔는데도 한번도 얘기하지 못했어요.
제가 다시 제대로 의사선생님께 제 모든걸 털어놓으면 조금은 힘든걸 덜 수 있을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댓글 써주신 모든 분들께도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같아요. 넋두리로 쓴 글이었는데 많이 위로해주셔서 감사하고 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진짜 너무 감사드려요. 그럼 여러분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다시 한 번 제 글에 위로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방탈 죄송해요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이 곳에 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전 25살 여대생이에요
말 그대로 전 엄마가 둘 아빠가 둘이에요
정확히 절 이 세상에 낳게만 한 부모님과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절 키워주신 부모님 이렇게 각각 둘 씩이요
그치만 전 생물학적 부모님껜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죠
친모는 이모 친부는 어디서 뭘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모와 친부는 혼인신고는 했지만 제가 태어나고 한 달 후에 이혼을 했습니다(우연히 집에서 서류를 봤어요.)
그리고 전 태어나고 3살까지 외할머니 손에 길러지다 3살이 되던 그 해 2월부터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시고나서 엄마아빠의 자식이 되었어요. 엄마아빠는 처음에 이모 이모부로 부르다가 제가 4살이 되던 때에 엄마가 갑자기 저보고 “이제 이모보고 엄마라고 부르고 이모부보고 아빠라고 부를래”라고 해서 그 때부터 엄마 아빠라고 불렀어요.
밑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어요
그 둘과는 제가 성이 같지 않았어요. 출생신고 할 때 친부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죠.
초등학생땐 여동생,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친구들은 제 가정사를 몰랐죠 그들에게 제 가정사를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의 가장 큰 약점이었거든요. 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은 저보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가 동생들이랑 성이 다른게 너네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렇대 네가 엄마따라 온거고 너네 아빠는 새 아빠라던대??”, “너 입양됐어? 너 친아빠 친엄마 어딨는지 알아?”라며 전 저에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 들끼리 소설을 지어냈죠. 가장 충격적인건만 썼고 이런 비슷한 류의 얘기들을 정말 많이 들었네요...
이 이야기를 듣지 않게된건 후에 법이 바뀌어서 전 아빠 성 따라 바꾸고 전 아빠의 친양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14살이 되고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어요 성도 아빠와 동생들과 같아서 지긋지긋한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들이 꾸며낸 소설 그치만 나에겐 비수가 돼 가슴이 꽂혔던 그 얘기들을 듣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았죠.
그치만 중학교 2학년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친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빠 휴대폰에 그 분의 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분께 전화했죠. 잘 살고 계신 것 같더군요. 제 사진을 한 번 보내드리고 이틀정도 연락하다 연락하지 않게되었습니다.
그 해 아빠가 돌아가셔서 절 친자식보다 더 아껴주셨던 아빠를 뒤로하고 책임지지도 못할거면서 절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던 무책임한 친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락했던 제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친모는 그러니까 제 이모는 절 낳고 엄마와 아빠에게 절 맡기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이모와 조카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절 큰 딸로 보듬어준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으로(제 짐작이지만) 아빠 묘지에만 가시면 아직도 우십니다. 아빠가 저에게 사랑을 줬던 만큼 이모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장례식 마지막날부터 저희 집에서 같이 살고 계시고 아빠의 빈 자리를 이모가 챙겨주시고 계십니다. 친자식인 저보다 제 동생들을 친자식처럼 챙겨주세오 누가보면 정말 이모의 아이들이 제 동생들인줄 알아요. 저한텐 진짜 딱 조카처럼 대합니다. 솔직히 이모랑 전 많이 싸워요 엄마랑 동생들은 제발 그만 좀 싸우라고 합니다. 사소한걸로 많이 싸우는데 솔직히 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슴속에 상처는 더 깊어지고 제게 이런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얼굴도 모르는 친부보다 매일보는 이모에게 훨씬 더 원망스럽습니다.
제게 이런 가정사가 있다는건 저와 젤 친한 친구 두명 만 알고있는데 제게 친모 친부가 있던 사실때문에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다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더 심해졌고 지금도 약 복용하고 상담받으면수 꾸준하 치료중이에요 그 동안에 자살 시도도 많이 했고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였으면 아예 애초부터 아이를 낳지 말지 이런 생각때문에 저에게 무슨 일만 있으면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때문에 계속 죽고만 싶었죠
그치만 친구들 덕분에 정말 여기까지 버텼습니다 그 두 친구들 덕분에 너무 감사해요. 제가 성장해온 과정을 가족이 아닌 친구들이 보기에 이모가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예 키우질 못하면 입양을 보내던지 맘이 약해 그건 못하고 가까이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보고싶고 또 그로인해 가까이서라도 보니까 버린게 아니라 책임진거라고 자기위안 받고싶은거 아니냐며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합니다.
저도 그 얘긴 동의합니다. 또 이모가 저에게 짜증을 낼 때마다 솔직히 내가 이모가 짜증낸거에 천배로 짜증을 부려도 화내면 안되는 사람이 나에게 짜증을 부리니 너무 힘듭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이기적인가요?
커가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드는데 지금 남자친구한테도 아빠가 돌아가신 얘기를 정말 힘들게 얘기를 꺼냈는데 거기에 정말 저에겐 아킬레스건인 이 얘기를 미래의 배우자에게 말해야 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이 두 친구들한테도 울며불며 힘들게 꺼낸 얘기를... 제게 이런 큰 짐을 안겨준 이모와 친부에게 원망스럽고 왜 이모가 동생들과 비교해 저에게 까탈스럽게 구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참고로 엄마는 이모의 동생입니다) 이모가 재혼을 하셨는데 얼마전 이모부와 이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운전을 하는데 옆에서 외할머니가 저보고 이모한테 잘해라 이모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이혼하고 지내는데 이모한테 살갑게 굴어라 이러시는겁니다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전 이모가 하나도 불쌍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보다 천배는 더 불쌍합니다 적어도 이모는 친모 친부와 길러준 부모님이 같으니까요 그래서 어렸을적 친구들로 놀림을 받아 어린날을 상처와 눈물로 보내진 않았을테니까요.
그냥 하소연하며 쓴 글인데 이모랑 앞으로 이대로 지내야 ㅔ하는건지 친부가 연락오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막막하네여(이모통해서 저랑 연락을 시도 하려했다는걸 우연히 들었어요 제 휴대폰 번호가 바뀌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