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에서 아버지 부의금을 빼돌렸습니다

둘째아들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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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친가랑 연끊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저히 하소연 하거나 조언 구할곳이 없어서 글 남깁니다. 일단 요새는 친척끼리 연을 끊고 사는 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돈문제 일수도 있고 부모님 모시는게 될 수도 있고.. 저희집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15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현재는 23살이고 위로 형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 목적으로 간호 조무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형은 현재 특전 부사관으로 근무 중이고 저는 전문대 간호학과에 재학중입니다. 어디 나가서 떵떵거리며 자랑할 만한 스펙들은 아니지만 어머니 혼자서 아들 둘 별 탈 없이, 나쁜길로 한번도 샌적 없이 혼자서 잘 키웠다고 어머니 스스로도 자랑스러워 하시고 저도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 다 편찮으셔서 각자 다른 요양병원으로 입원 하시고는 친가와의 교류는 사실상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명절때 전화 한통 해본적 없었고 하다못해 카카오톡 게임 초대 한번도 한적 없이 지낸지 6년쯤 지난 저번주에 어머니의 병원에 약품을 납품하는 작은고모부 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큰고모의 둘째딸이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처음에는 축하한다 식은 어디서 올리냐 등등 얘기를 하다가 날짜를 물어보니 내일이랍니다 그것도 강릉에서, 참고로 저희 친가 가족들은 모두 안동에 살고 저희가족은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 청첩장은??” 하고 물어보니 저희는 초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때문에 어머니와 한달에 두어번은 얼굴을 봐야하는 작은고모부는 혹시 나중에 알게 되면 서운할까봐 연락을 줬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저희를 부르지 않은건지 짐작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연락을 안하고 지낸건 맞지만 저희가 돈을 빌렸다가 안갚은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머리채잡고 상엎어가며 싸운적도 없고, 축하해줄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왜 초대를 하지 않은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부르지도 않은 자리를 가는것도 웃기겠다 싶어서 축의금을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있던 다음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락은 어머니가 아닌 저희 형에게 왔습니다. 형은 연락을 준 삼촌에게 알겠다고 하고 그런데 왜 어머니가 아닌 나에게 연락을 준거냐 물어보니 삼촌은 저희 어머니는 안왔으면 한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형은 이해할수 없는 부탁이고 어머니에게 전하기도 힘든 일이라 이유를 물었지만 그냥 그렇게 해달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눈이 빨개지셔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어머니를 보고 저는 삼촌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오지 말랍니까?” 물어보니 “괜히 싸운다 그냥 그렇게 해줘..” 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누가 뭘 잘못해서 누구랑 누가 싸우냐 “ 물어보니 대답을 못하길래 정말 혹시나 싶어서 “아빠가 엄마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자살 하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어려서 몰랐지만 경제적인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앟다고 합니다. 집세는 5~6달 기본으로 밀려있었고, 가스비를 못내서 가스레인지 옆에 버너를 두고 살았고 뜨거운물이 안나와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서 머리를 감고, 지진이 나면 쓰는 양초를 저희집은 전기가 끊킬때 썻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어린 형과 저는 마냥 좋았습니다. 소풍온것 마냥 신나서 가스버너를 쓰는걸 좋아했고 무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양초를 켜두는걸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집이 힘들다는걸 지금와서 알았을 정도로 당시에는 행복했고 잘 살아왔는데 아버지는 그런 저희를 보고 속이 썩어 문드러져 더이상은 참지 못하셨던것 같습니다. 잘못된 선택이었고 이때까지 평생을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아버지의 선택으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빠없이 살아온건 저희 형제고 아버지의 빚을 갚으며 마흔 넘은 홀몸으로 사회에 뛰어든건 저희 어머니 입니다. 말도안되는 소리를 들은 저는 그자리에서 눈물이 핑 돌며 얼어버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직장에 휴가를 냈지만 갈곳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엄마없다 기죽지 말고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오라며 짐을 싸 주셨습니다. 다음날, 형은 군대에서 저는 집에서 안동으로 향했고 저희형제는 만나자 마자 가슴에 웅어리진 말을 삼키고 할아버지에게 향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장남이었습니다. 유교식 장례라면 형이 상주를 해야 맞는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기독교 신자셨고, 상주 목록에 형 이름은 빠져있었습니다. 군복을 입고 빈소를 찾아간 형에게 친척들은 “이야 군복 멋있네~” 하며 계속 그 옷을 입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상복을 입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형은 조용히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두시간 정도 부의금을 받고 있다 아버지 친구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사실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희 집에 가장 큰 도움을 준 분이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상황을 대충 전해들으신 아버지 친구분은 저에게 잠깐 올라와달라고 하셨고 올라가보니 친구분 두분이서 담배만 피고 들어오지는 않고 계셨습니다 제가 “들어오시지 왜 여기 계세요?” 여쭤보니 “너 아버지 손님 받을사람 하나 없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상주이름에 형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고 하니 “이건 남에 초상집이지..” 하며 제 얼굴 보러 왔다 하고 “형 잘챙겨라, 동생 역할 잘 하고” 하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서 아버지가 겹쳐 보였고 내려가자 마자 상조 사무실에서 형 상복을 주문하고 상주 명단 제일 위에 형 이름을 올려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에게 “아빠 손님들이 문앞까지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하고는 태연하게 부의금을 계속 받았습니다.

그렇게 가시방석 같은 상을 다 치루고 큰고모 집에 가서 정산을 했습니다. 누구 손님이 더왔네 누구 손님이 더왔네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집집마다 100만원 씩을 나눠가지고 남은 돈은 할머니 요양병원에 쓰자 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근데 그때, 능글맞게 웃으며 너네도 백만원~ 하며 주황색 봉투를 건네는 친척들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너네는 어려서 우리가 무시하는것도 모르지? 수고했어 이런 대접 받는다고’ 라는 느낌을 받고 저는 일어나서 친척들에게 “다들 저희 엄마 왜 안온줄 아시죠?” 물어보니 그자리에 있던 모두가 정색을 하며 저를 말렸습니다. 오늘 할 말이 아니다, 너네는 어려서 모른다 ,일단 그만해라 등등 저는 그 상황이 큰 강이 범람해서 모두가 화들짝 놀라 물난리에 대비하는 사람들처럼 보였고 저는 저도 모르게 준비해둔것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시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직장에 공가내고 이틀동안 집에 혼자있었어요 저희 엄마 기분 어땠을것 같아요?” 여기까지가 진짜 한 말이고 속으로는 ‘그리고 저희 아빠 여기 있었으면, 장담하는데 여기 있는사람 다 맞아 죽었어요 살아있을땐 집에 전기끊켜도 한번 들여다 보지도 않더니 가고 나니까 왜 의리 좋았던 척 합니까 다른 가족들 얼마나 힘들었던 간에 중학교때부터 아빠없이 살아오고, 지금도 나라에서 지원받아 학교다니는건 저에요 어리광도 부릴 사람한테 부려야지 정말 다들 너무하시네요’ 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하다가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와서 담아 둔 말은 다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을 하자 듣지도 않고 거의 소리를 지르며 각자 자기 얘기를 했는데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너네가 크면 알게된다.. 등등의 말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받은 돈을 내려두며 “이 돈 받으면 나중에 트집잡을거 뻔하고 저희 아빠 손님 아무도 안왔으니까 그냥 두고 갈게요” 하고 말하자 “이거 안받는건 우리 안보겠다는거지?” 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왔고 저는 대답도 안하고 나왔습니다.

형은 방에서 얘기를 좀 더 나누다가 결국 돈봉투를 받아 왔습니다. 형이 나오는걸 보고 저는 또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참았습니다. 친척들이 안보일때 까지 그 집 모퉁이를 돌자 마자 저는 주저앉으며 울었고 제가 무슨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저에게 “난 또 꼴에 장남이라고 참았는데 고맙다. 대신 말해줘서” 하고 계속 저를 안아줬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고 어머니께는 걱정하지 마라고 잘 하고 왔고 엄마 서러운거 다 얘기했고 그사람들 다시 볼 일 없으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며어른 흉내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형에게 돈봉투 얘기를 듣고는 돈을 돌려주고 할머니 요양비에 쓰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돈도 돌려주고 사실상 연을 끊었고, 가족 셋 모두 다 속앓이 하다 좀 나아지는가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할아버지께서 주말에 밥 한끼 할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평소에도 저희를 많이 예뻐해주셨던 터라 당연히 알겠다고 하고 작은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자리에서 작은할아버지는 “내가 나이만 먹었지 어른노릇 못해 미안하다. 니가 얼마나 힘들었니 니가 얼마나 고생했니 왜 그걸 모르니 걔네들은” 하며 어머니와 저희 가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자연스럽게 작은할아버지와 몇번의 만남을 더 가졌고, 어머니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의 얘기를 하다가 문뜩 부의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작은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혹시 그때 내가 보낸 부의금 받았나?” 여쭤보셨고 어머니는 일지를 봐야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작은할아버지는 “그때 애들 큰고모한테 봉투로 전해줬다. 너 전해주라고 그 돈 혹시 받았니” 라고 물어보셨고 어머니는 전혀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일지를 뒤져보니 작은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오셨었는데 이름이 없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장례식장에 와서 얼굴만 비치고 간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심끝에 친척 몇분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금 일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때 오신건 기억 나는데 성함이 없어서 연락드립니다.” 하고 하자 이름이 없는 분들은 모두 저희 친가쪽 가족들에게 부의금을 전해드렸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마 동생 부의금을 가로채는 상식밖의 일이 있었을까 하며 어머니는 저에게 속풀이를 하셨습니다.

전 그때처럼 감정적으로 얘기하기보다 대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그냥 계속 없는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지, 친가 가족들에게 얘기를 해야할지, 한다면 무슨말을 할지, 더 나아가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때는 어떻게 버틸지.. 너무 고민입니다 저보다 어머니가 속상해 하시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얘기가 더 있지만 혼자 휴대폰으로 긴 글을 쓰다보니 말실수와 맥락에 맞지 않는 구절이 많은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