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닦으라고 놔주었더니 도망가려고 하잖아. 너 이렇게 치사한 자식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치사한 사람인가봐. 어쩌다 언니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니들 누군데 사람 갈 길도 못 가게 막아?”
남자는 화가 많이 나있는지 소리를 질렀다.
“얘가 할 말 있대. 그거 들으면 있겠다고 해도 보내줄 거니까 얘기 들어.”
“날 찾았다는 게 너냐? 할 말 있음 빨리 해.”
‘진짜 빨리 말해야겠군. 근데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화순이 언니 지금 화가 많이 나있어요. 빨리 사과 안 하시면 무서운 일이 생길 거에요.”
급한 맘에 두서없이 말이 나왔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나이들도 어려 보이는데. 그리고 할 말 있으면 자기가 직접 와서 할 것이지 왜 얘들을 보내. 너는 그 여자 똘마니고 얘네들은 네 똘마니냐? 이것들이 단체로 오면 내가 빌 줄 알았나부지. 것도 몇 년이나 지난 일 가지고.”
“넌 내가 똘마니로 보여? 난 누구 똘마니같은 짓 안 해. 너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얘 말 들어.”
멀대가 또 흥분했다.
“나이어린 게 어디서 찍찍 반말이야.”
“여기서 반말이다. 어쩔 건데.”
아이들이 동시에 노려보자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쪽수에 밀릴 거란 계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름이 뭐에요?”
“이름은 왜? 그것도 안가르쳐주디?”
“제 이름은 강혜림입니다. 소개가 늦었네요. 아저씨는요?”
“나 김원철이다.”
“김원철씨 똑바로 들으세요. 언니가 직접 못 온 이유는 벌써 죽었기 때문이에요. 죽은 사람이 여기 올 수는 없잖아요.”
“화순이가 죽어?”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언니는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서 밥도 못먹고 며칠을 계속 울기만 했어요.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갔지만 언니는 당신이 죽었다는 슬픔에 더 이상 살 의지가 없었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렇게 조금씩 말라가던 언니가 끝내 병원에서 자살했어요. 죽었다구요. 당신 때문에. 당신없는 세상 살기 싫다고 죽은 거에요.”
눈물이 나왔다.
5년 동안 지내면서도 언니의 이 같은 슬픔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많이 미안했다.
원철씨는 잠시 놀란 듯 싶었다.
그러나 놀람 뿐이었다.
“그게 왜 나 때문이지? 자기가 죽은 거 아니야. 내가 죽으라고 한 게 아니잖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는 듯한 저 뻔뻔함. 속에 있는 무언가가 울컥했다.
언니가 전해주었던 분노의 감정이 내 마음 속에서도 느껴졌다.
그때 멀대가 격분하며 다시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너 같은 놈이 좋다고 따라 죽은 사람인데 불쌍하지도 않냐? 남자자식이 당당하게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될 걸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난 거짓말하는 놈들 싫다구.”
“야, 이거 놔.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해도 여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잖아. 안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의 말에 나도 멀대도 할말이 없었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원철씨의 말대로 그 결과는 우리는 모르는 거니까.
“이런 일이면 난 이젠 가겠어. 더 이상 이일로 찾아오면 나도 경찰에 신고할테니 그렇게 알아.”
“잠깐만요. 저는 원철씨 돕고자 왔어요. 언니의 말이 혼자 가지는 않겠다고 했어요. 아직 원철씨를 찾아가지 않은 거라면 조만간 분명히 언니가 원철씨 찾아갈거에요.”
“그럼 네 말은 그럼 귀신이 날 찾아온다는 거야? 이 것들 단체로 돌았구만.”
“안 찾아간다면 다행이겠죠. 그래도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제 핸드폰 번호에요.”
“필요 없어. 이런 거. 젊어 보이는 친구들이 안됐구만. 단체로 돌았네.”
돌아가려는 원철씨를 붙잡고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멀대가 날 잡아 끌었다.
“혜림아. 이자식한테 네 연락처 주지마.”
그리고는 내 연락처를 뺏어 버렸다.
“안돼. 이러지마. 꼭 줘야 한다 말이야.”
다시 멀대의 손에서 연락처를 가로챘다.
“내 걸로 줄게. 그러면 되잖아. 이런 자식한테 네 연락처 넘기기 싫어. 그리고 이제는 아무한테나 네 연락처 주지마.”
말 한마디에 멀대의 마음이 전해왔다.
‘멀대,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따뜻한 거야? 이런 내가 이상하지도 않니?’
“내꺼다. 받아. 내가 너 또 괴롭히면 경찰에 신고할 때도 좋을 테니 받아둬.”
남자는 멀대는 무서웠는지 아님 진짜 경찰 신고용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순순히 받았다.
그리곤 발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주리도 왔고 일단 할 일도 마쳤기에 우리는 일단 밥을 먹으러 고기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였는데도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드문드문 있었다.
온 가게에 진동하는 고기냄새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가 고파왔다.
“여기 고기 잘하는 집이야. 우리 혜림이 고기 괜찮지?”
‘우리 혜림이란다. 은근슬쩍 이렇게 엮이는 건가. 닭살 스럽지만 부인하고 싶지는 않네.’
“그럼. 맛있는 집처럼 보여. 내가 살게. 다들 아침부터 너무 고마워.”
“고마워할 거 없어. 내 친구들은 이런 거 사주면 더한 것도 잘해.”
멀대의 말을 듣고 보니 모두 진짜로 그렇게 보였다.
‘진짜 머슴들 같구나.’
“너 진짜 무당이냐?”
바람은 항상 저런식이었다.
“어. 네 표현대로라면 맞아. 그런데 이젠 아니야. 그 언니가 갔으니 나한테 그런 능력이 없어진 거지. 이제 너 바람기 있다던가 그런 거 안보여. 좋겠다. 앞으로 걱정 안해도 되니까.”
그러면서 바람을 쏘아본다고 표정관리해서 쳐다보는데, 헉 이런, 바람이 너무 잘생긴, 그야말로 꽃미남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그냥 보니 무지하게 잘생겼구나. 여자가 안 따르는 것이 이상하지. 주리 마음이 이해가 가네.’
“그럼 너 이제 보통 사람 된 거지? 잘됐다. 얘가 사실은 그 것땜에 예전부터 마음 고생이 많았거든.”
“우리 혜림이한테 잘된 일이란 거지. 그럼 오늘 우리 신나게 놀자.”
‘이게 잘된 건가? 바라던 일이란 생각은 드는데 나 왜 이렇게 허전하지. 언니가 없는 것도 그렇고 그런 능력이 없는 것도 영 어색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식당에서 나왔을 때도 아침 일찍 나와서인지 아직 해가 남아있었다.
주리는 더 놀다가자고 성화였다.
“미안해. 다음에 놀자. 오늘 너무 고마웠어.”
“데려다줄게.”
멀대가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바람의 눈치를 살폈다.
세상에 껍데기가 무어라고 그런 것에 현혹되다니.
하지만 저런 꽃미남을 앞에 두고 침 안 흘릴 여자가 있으랴.
물론 바람은 관심도 없었다.
“아니야. 나 괜찮아. 혼자 가고 싶어. 주리야 가자.”
바람을 염두해놓고 한 말이였는데 주리가 의외의 말을 한다.
“난 좀 더 놀다갈께. 집에 가도 할 일도 없고.”
‘이게 무어냐. 이게 아니지 않느냐. 둘이 연결되는 걸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았건만 오늘 아예 연결을 시키고 말았네.’
그건 둘째치고 이젠 바람이 남의 떡이라는 게 사실 더 아까웠다.
‘그럼 멀대한테라도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어.’
“그래. 너 피곤해보인다. 먼저 가 쉬어. 내가 전화할게. 내가 친구들 불러낸 거니까 나도 친구들이랑 좀 있다갈게.”
멀대는 선수를 쳐서 혼자 가라고 말했다.
‘너도 점쟁이인거냐? 그렇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법. 오늘 깨달은 것도 아니고.’
5. 꿀꿀이 바구미 2장 (02)
2-2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을 때 생각지 못한 광경에 깜짝 놀랐다.
멀대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남자는 코피가 터진 건지 아님 다른 곳이 터진 건지 얼굴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멀대의 얼굴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사람 찾아 달라고 했지, 패달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다혈질 멀대잖아.’
“여봉아! 왜 그래?”
순간 찾았던 사람을 만나게 된 사실도 잊고 멀대의 얼굴부터 살폈다.
주변 아이들은 별로 말릴 생각도 없었는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얼굴 좀 봐.”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 자식이 좀 만 기다리라고 했더니 자꾸 간다고 성화잖아.”
“그래서? 그래서 때렸어?”
“때리기는. 박치기를 할 생각이였는지 붕 나르더니 지 코를 내 머리에 박더라구.”
“피는 닦게 해주지.”
“피 닦으라고 놔주었더니 도망가려고 하잖아. 너 이렇게 치사한 자식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치사한 사람인가봐. 어쩌다 언니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니들 누군데 사람 갈 길도 못 가게 막아?”
남자는 화가 많이 나있는지 소리를 질렀다.
“얘가 할 말 있대. 그거 들으면 있겠다고 해도 보내줄 거니까 얘기 들어.”
“날 찾았다는 게 너냐? 할 말 있음 빨리 해.”
‘진짜 빨리 말해야겠군. 근데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화순이 언니 지금 화가 많이 나있어요. 빨리 사과 안 하시면 무서운 일이 생길 거에요.”
급한 맘에 두서없이 말이 나왔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나이들도 어려 보이는데. 그리고 할 말 있으면 자기가 직접 와서 할 것이지 왜 얘들을 보내. 너는 그 여자 똘마니고 얘네들은 네 똘마니냐? 이것들이 단체로 오면 내가 빌 줄 알았나부지. 것도 몇 년이나 지난 일 가지고.”
“넌 내가 똘마니로 보여? 난 누구 똘마니같은 짓 안 해. 너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얘 말 들어.”
멀대가 또 흥분했다.
“나이어린 게 어디서 찍찍 반말이야.”
“여기서 반말이다. 어쩔 건데.”
아이들이 동시에 노려보자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쪽수에 밀릴 거란 계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름이 뭐에요?”
“이름은 왜? 그것도 안가르쳐주디?”
“제 이름은 강혜림입니다. 소개가 늦었네요. 아저씨는요?”
“나 김원철이다.”
“김원철씨 똑바로 들으세요. 언니가 직접 못 온 이유는 벌써 죽었기 때문이에요. 죽은 사람이 여기 올 수는 없잖아요.”
“화순이가 죽어?”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언니는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서 밥도 못먹고 며칠을 계속 울기만 했어요.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갔지만 언니는 당신이 죽었다는 슬픔에 더 이상 살 의지가 없었어요. 아무리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렇게 조금씩 말라가던 언니가 끝내 병원에서 자살했어요. 죽었다구요. 당신 때문에. 당신없는 세상 살기 싫다고 죽은 거에요.”
눈물이 나왔다.
5년 동안 지내면서도 언니의 이 같은 슬픔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많이 미안했다.
원철씨는 잠시 놀란 듯 싶었다.
그러나 놀람 뿐이었다.
“그게 왜 나 때문이지? 자기가 죽은 거 아니야. 내가 죽으라고 한 게 아니잖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는 듯한 저 뻔뻔함. 속에 있는 무언가가 울컥했다.
언니가 전해주었던 분노의 감정이 내 마음 속에서도 느껴졌다.
그때 멀대가 격분하며 다시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너 같은 놈이 좋다고 따라 죽은 사람인데 불쌍하지도 않냐? 남자자식이 당당하게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될 걸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난 거짓말하는 놈들 싫다구.”
“야, 이거 놔.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해도 여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잖아. 안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의 말에 나도 멀대도 할말이 없었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원철씨의 말대로 그 결과는 우리는 모르는 거니까.
“이런 일이면 난 이젠 가겠어. 더 이상 이일로 찾아오면 나도 경찰에 신고할테니 그렇게 알아.”
“잠깐만요. 저는 원철씨 돕고자 왔어요. 언니의 말이 혼자 가지는 않겠다고 했어요. 아직 원철씨를 찾아가지 않은 거라면 조만간 분명히 언니가 원철씨 찾아갈거에요.”
“그럼 네 말은 그럼 귀신이 날 찾아온다는 거야? 이 것들 단체로 돌았구만.”
“안 찾아간다면 다행이겠죠. 그래도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제 핸드폰 번호에요.”
“필요 없어. 이런 거. 젊어 보이는 친구들이 안됐구만. 단체로 돌았네.”
돌아가려는 원철씨를 붙잡고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멀대가 날 잡아 끌었다.
“혜림아. 이자식한테 네 연락처 주지마.”
그리고는 내 연락처를 뺏어 버렸다.
“안돼. 이러지마. 꼭 줘야 한다 말이야.”
다시 멀대의 손에서 연락처를 가로챘다.
“내 걸로 줄게. 그러면 되잖아. 이런 자식한테 네 연락처 넘기기 싫어. 그리고 이제는 아무한테나 네 연락처 주지마.”
말 한마디에 멀대의 마음이 전해왔다.
‘멀대, 너는 왜 이렇게 나에게 따뜻한 거야? 이런 내가 이상하지도 않니?’
“내꺼다. 받아. 내가 너 또 괴롭히면 경찰에 신고할 때도 좋을 테니 받아둬.”
남자는 멀대는 무서웠는지 아님 진짜 경찰 신고용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순순히 받았다.
그리곤 발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주리도 왔고 일단 할 일도 마쳤기에 우리는 일단 밥을 먹으러 고기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였는데도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드문드문 있었다.
온 가게에 진동하는 고기냄새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가 고파왔다.
“여기 고기 잘하는 집이야. 우리 혜림이 고기 괜찮지?”
‘우리 혜림이란다. 은근슬쩍 이렇게 엮이는 건가. 닭살 스럽지만 부인하고 싶지는 않네.’
“그럼. 맛있는 집처럼 보여. 내가 살게. 다들 아침부터 너무 고마워.”
“고마워할 거 없어. 내 친구들은 이런 거 사주면 더한 것도 잘해.”
멀대의 말을 듣고 보니 모두 진짜로 그렇게 보였다.
‘진짜 머슴들 같구나.’
“너 진짜 무당이냐?”
바람은 항상 저런식이었다.
“어. 네 표현대로라면 맞아. 그런데 이젠 아니야. 그 언니가 갔으니 나한테 그런 능력이 없어진 거지. 이제 너 바람기 있다던가 그런 거 안보여. 좋겠다. 앞으로 걱정 안해도 되니까.”
그러면서 바람을 쏘아본다고 표정관리해서 쳐다보는데, 헉 이런, 바람이 너무 잘생긴, 그야말로 꽃미남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그냥 보니 무지하게 잘생겼구나. 여자가 안 따르는 것이 이상하지. 주리 마음이 이해가 가네.’
“그럼 너 이제 보통 사람 된 거지? 잘됐다. 얘가 사실은 그 것땜에 예전부터 마음 고생이 많았거든.”
“우리 혜림이한테 잘된 일이란 거지. 그럼 오늘 우리 신나게 놀자.”
‘이게 잘된 건가? 바라던 일이란 생각은 드는데 나 왜 이렇게 허전하지. 언니가 없는 것도 그렇고 그런 능력이 없는 것도 영 어색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식당에서 나왔을 때도 아침 일찍 나와서인지 아직 해가 남아있었다.
주리는 더 놀다가자고 성화였다.
“미안해. 다음에 놀자. 오늘 너무 고마웠어.”
“데려다줄게.”
멀대가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바람의 눈치를 살폈다.
세상에 껍데기가 무어라고 그런 것에 현혹되다니.
하지만 저런 꽃미남을 앞에 두고 침 안 흘릴 여자가 있으랴.
물론 바람은 관심도 없었다.
“아니야. 나 괜찮아. 혼자 가고 싶어. 주리야 가자.”
바람을 염두해놓고 한 말이였는데 주리가 의외의 말을 한다.
“난 좀 더 놀다갈께. 집에 가도 할 일도 없고.”
‘이게 무어냐. 이게 아니지 않느냐. 둘이 연결되는 걸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았건만 오늘 아예 연결을 시키고 말았네.’
그건 둘째치고 이젠 바람이 남의 떡이라는 게 사실 더 아까웠다.
‘그럼 멀대한테라도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어.’
“그래. 너 피곤해보인다. 먼저 가 쉬어. 내가 전화할게. 내가 친구들 불러낸 거니까 나도 친구들이랑 좀 있다갈게.”
멀대는 선수를 쳐서 혼자 가라고 말했다.
‘너도 점쟁이인거냐? 그렇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법. 오늘 깨달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쓸쓸히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