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그냥문득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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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셀 수 없이.
내 마음의 높은 계단 위에서 그녀를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매일 어두운 밤 귀갓길엔 홀로 대문 앞에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푸른 철문을 열면 계단을 나뒹굴어 자빠진 그녀를 보게 될까봐. 
나는 겁이 난다.
*노래를 크게 틀고 한창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었다. 추운 날씨에 내 방문은 닫혀 있었고,
문 밖에선 아주 작은 둔탁한 소음만 들렸다.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후 우당탕 소리와 함께 동생이 나를 불렀다. 꽤나 다급하고 애처로운 목소리.
물을 떠달라거나 라면을 끓여달라는 외침은 분명 아니었다. 재빨리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동생의 흐느끼는 소리에 현관 계단 아래를 내려다 보니 동생이
술에 취해 뻗은 그녀를 안고 울고 있었다. "119 빨리 119!!!"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맥이 빨리 뛰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중고등학교를 살았던 집이 재개발에 들어갔다. 물론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
궁궐 같은 전원주택 지하의 창고 같은 사글세 방이었으니까. 천장이 얼마나 낮은지
발뒤꿈치를 들면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옷장이 들어가지 않아 위아래로 잘라냈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녀는 하루종일 툴툴 거렸다. 한겨울엔 화장실이
다 얼어붙어 대소변 조차 집에서 마음대로 보지 못하는 집. 집이라고 부르기도
내심 민망한 그런 곳. 재개발덕에 내쫓기듯 이사를 준비했다. 여러곳을 둘러봤다.
적은 돈으로 집을 구하려니 당연히 눈에 안차는건 마찬가지. 사실 이전 창고에 비하면
후보들은 '집'이라는 명칭이 제법 어울리는 곳들이었다. 지금 집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저 계단을 빼면, 지금 그녀가 술독에 빠져 아픈줄 모르고 나뒹굴고 있는 이 높은 턱을 빼면,
큰 방 2개 작은방 1개 베란다에 옥상까지 있는, 옛 건물이라 2층까지 쭉 오르는 높은 계단을
빼면 최고의 집. 집을 보러와서 대문을 열자마자 "아...위험하겠네" 라며 그녀와 눈을 맞췄던

그 날. 나는 이런 날이 올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는 꽤 오래 버텼으리라.
*구급대원이 와서 응급처치를 했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구급대원 말로는
이 계단에서 떨어지고도 이정도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출혈 하나 없이 멀끔하고, 오른 손목만 힘없이 축 쳐져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저건 뼈가 부러져서 쳐진것이리라, 그렇게 나 혼자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그녀를
병상에 눕혔다. 새벽2시던가. 왼손은 가운 주머니에 쑤셔넣고, 오른손으론 눈을 비비며,
당직의사가 나왔다. 느릿한 발걸음은 다혈질 내 동생을 충분히 분노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그녀의 옆구리를 오른 손가락 검지로 쿡쿡 찌르며 의사가 물었다.
"술에 취한건가요?" 응급대원이 대답했다. "술에 취하셨고 오른손목 골절로 보입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사가 한참 서있다가 대답했다. "음..네.." 목소리도 느려터졌다.
동생이 이를 악물고 의사를 노려봤다. 난 의사의 명찰을 확인했다.
이 놈을 지금 패버릴 수가 없으니, 내일 날이 밝거든 꼭 병원에 항의하리라.
나중에 들은 바로는 내 동생은 소화기로 의사의 머리를 내려칠까 잠깐 고민했다고 말해줬다.
누가봐도 그는 지금의 그녀를 짐짝으로 여겼다. 평화로운 응급실과 당직의 숙면을 방해한
짐짝. 사방에 술냄새를 풍기고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살아 있지만 정신은 없는 짐짝.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거실에 형제가 나란히 누웠다.
"이럴줄 알았어" 사실 둘 다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번 있을 일이라는 것을.
나는 거실 벽면에 크게 걸린 예수님 얼굴 액자를 보고 마음 속으로 물어봤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그가 대답했다. "나니까 이정도였다"
나는 웃었다.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불꺼진 어두운 거실에서 실성했다.
동생이 내게 물었다. "왜 웃어? 웃겨? 지금 웃음이 나와?"
"아니 내가 예수님한테 왜그랬냐고 이래야했냐고 했더니, 자기덕에 이정도라고 하시네,
맞아...생각해봐...20cm 계단 15개, 그 위에서 그냥 뒹굴었는데, 머리에 상처도 없어...
기적이야...새 삶이다"
" 하~ 맞네...신기하네"

두 형제는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눈은 근심이 가득했지만...안도감이 퍼졌다.

*그녀의 손목은 철심으로 고정되었고, 또 그 철심을 빼는 수술까지 2년정도 걸렸다.
2년 후 오늘 새벽 1시쯤 공부를 마치고, 방문을 열었는데 거실에 그녀가 잠들어 있었다.
거나하게 먹고 세상 모르고 자는 듯했다. 누가봐도 불편하고 이상한 자세였다. 
그녀는 신께서 주신 새로운 삶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내다 버리며 살고 있다. 
정내미가 떨어지고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안방에는 눕히자. 
갑자기 날이 차가워졌으니...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잠에서 깬듯 한숨을 푹 내쉬고
앉아서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그 영혼 없는 눈동자가 나를 어둠속으로 내던졌다.
그 눈빛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일까? 아니다. 이건 악마가 아닐까. 나를 시험하는.
내가 그녀를 단숨에 마음의 계단 아래로 밀어버릴 수 있도록 하는 마법이다. 
동시에 그런 생각과 상상이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그 무거운 마음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녀는 술로 그녀의 힘든 육체를 달래고, 나는 그녀의 술로 나날이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이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어머니를 죽였다.
내 마음의 높은 계단 위에서 그녀를 사정없이 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