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56.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원어사전:
게네사렛:Gennhsarevt(1082, 겐네사렛)
게네사렛 Gennesaret.
1. 구약성경.
게네사렛은 가버나움과 막달라 사이에 있는 갈릴리 바다의 서쪽 해안에 접해 있는 작은 평야이다. 구약성경에는 킨네레트(민 34:11), 킨네로트(수 12:3), 킨네레트(신 3:17)로 나타난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4마일 정도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폭은 약 2마일에 이른다.
이 땅은 지중해보다도 650피이트 낮은 갈릴리 바다의 해면에서 완만하게 솟아있는 평원이다. 삼면에는 구릉이 날카롭게 솟아 있다. 가버나움에서 디베랴까지 국도가 해안을 끼고 뻗어 있다.
그리스도 시대에 이 평야는 요세푸스가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웅변적으로 묘사한 팔레스타인의 기름진 농경 지대였다(Jos. War III. x. 8). 토양은 마치 나일강의 델타의 토양처럼 기름지다. 기후는 덥기도하고 온화하기도 하다. 관개에 이용하는 풍부한 물은 주변의 구릉에서 흘러 나오는 시내와 여러 샘물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 땅에서는 포도, 무화과, 올리브, 호도(요세푸스), 쌀, 밀, 채소, 멜론같은 중요한 농산물들 뿐만 아니라 많은 야생 나무와 꽃들도 산출되었다. 랍비들은 이 평야를 "하나님의 동산"과 "낙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시장:ajgoravj(58, 아고라)
시장 market.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아고라(Homer 이래)는 아게이로(ajgeivrw: 함께 모으다)에서 유래했으며, `회합(집회)의 장소 place of assembly '를 의미한다.
아고라는 본래 공적 집회의 어떤 장소였으며, 고대 희랍 시대에서는 시장이나 정치 회합이나 재판의 경청, 특히 교역을 위한 장소로 정규적으로 사용했던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와 동일시 되었다.
성함을 얻으니라:
swvzw(4982, 소조)
구원하다 save, 해받지 않게 하다 keep from harm, 보존하다.
(f) 히브리서에서 소조는 2회 나온다. 히 5:7에서 소조는 하나님 아버지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예수님과 제자의 무리는 게네사렛에서 더욱 본격적인 전도사역의 일을 감당하십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바다 서북쪽의 완만한 지역에 속하는 해변가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 보다 낮아서 대부분 깊이 파인 벼랑과 같은 지형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북쪽 만큼은 완만한 해변가와 같아서 본문과 같이 많은 사람이 운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부터는 마을, 도시, 촌, 시장(집회장소, 부흥회)을 진입하셔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주님을 믿게 하십니다.
자주 말씀 드리지만 주님의 치유하심은 이사야에서 예언한 구원자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며 은혜의 해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히브리어 헨이나 헬라어 카리스입니다. 친히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많은 지식과 시간을 들여 병을 치유하는 거와는 달리 바로 낮게 하는 선한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불가능한 사건들입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이제 오심과 천국을 미리 맛보는 걸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곳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고 천국은 그 완전한 일들을 완성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 천국은 완전한 치유가 있기에 병자나 약자는 존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병자나 약자가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병자나 약자가 완전히 치유를 받기에 병자나 약자가 영원히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영원한 불구의 곳이요 천국은 완전한 치유와 기쁨과 성함이 있습니다.
아무데나 도시와 촌 구분없이 예수님의 두루 전도하심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부한 자나 가난 한 자나 지식이나 노예나 바쁜 자나 한가한 자나 남녀노소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구분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 시장은 어린이나 한가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고 노예를 매매하는 곳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모세 율법에도 법이 있기에 그 때에는 노예가 존재하였나 봅니다. 그들 가운데에도 무덤에서도 주님은 전하시고 병과 결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십니다.
본문의 예수님과 백성들 간 두부류의 만남은 마치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같이 느껴집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그와 함께하는 예식장의 친구와 같은 들러리 제자들 신부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을 믿고자 달려가는 무리는 병자를 침상채로 메고 가고 옷가에라도 닿아서 치유 받고자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예수님과 같이 자상한 신랑이 신부를 깊이 사랑하여 모든 것을 해주듯이 우리 예수님은 작은 믿음 큰 믿음을 가진 자라도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치유하시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도 이러한 열망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비록 이 땅에는 부분적으로 성령님의 시대 속에 주님 나라의 맛을 보는 제한이 있지만 꾸준히 인내하는 믿음을 진정 가진 자에게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실 것입니다. 신부되신 정절이 우리에게는 있는 지요 맘이 누구에게 조금 상했다고 조금 힘들다고 교회의 쭉정이처럼 왔다 갔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날아다니지는 않는지요
침상채로 달려가고 지붕을 부수고 주님을 만나려는 맘과 다만 옷 가에라도 주님을 터치하고자하는 간절한 모습처럼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뜨거우신가요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의 날을 사모하는 여러분 그 열정 그 사랑이 신랑을 향한 그 열정이 영원히 식지 않기를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향하여 찾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운 신랑을 찾고 사랑하는 신부를 찾는 모습처럼 강제나 일방적이 아닌 서로 진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향합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춘향이가 이 땅의 핍박 속에도 신랑을 기다리는 열정이 변함이 없듯이 (춘향전이 오래전 잠시 복음이 들어왔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설이 있기는 합니다) 춘향이가 목숨을 다해 순결을 지키며 첫사랑을 지켜 내듯이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신과 어떤 우상과도 타협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된 교회의 모습 속에 온전함으로 그날을 고대하고는 있는지 점검해 볼 때인거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사랑이 식어가는 시대인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람을 향한 사랑이 식어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간과 가까운 이웃의 사람을 향한 시간보다는 돈많은 유명인, 영화나 만화 영화 드라마 연애인 걱정이나 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녁 예배도 연애인을 우상화하기 위해 없앤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의 도가 지나침을 봅니다. 이제는 회복하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과 인내하며 신랑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늘 변함 없으시기를 항상 간절히 찾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열정은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또한 그 열정 변함이 없으시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의 불을 기름 붓듯이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두열정이 만나 역사하고 더 큰 불을 일으키듯 이 땅 이 교회를 그 사랑의 열정으로 불을 부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뜨거운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지가 굳어 더욱 충성하는 열심이 주님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식지 않고 떠돌아 다니지 않고 사역을 위해 떠난 자는 여전히 그 사랑이 심지가 더욱 굳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스미디어가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사단을 위해 세속에 물드는 기계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민족간의 위기가 이제는 변하지 않는 평화 시대로 도달하여 잃어버린 민족간의 사랑을 주옵시고 인류간의 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과 인내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남북간의 긴장과 냉전을 완화시켜 녹여 주옵소서 평화의 복음이 전해지게 하여 주소서
신랑과 신부의 뜨거운 만남
주품이 qt ^ ^
[신랑과 신부의 뜨거운 만남]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56.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원어사전:
게네사렛:Gennhsarevt(1082, 겐네사렛)
게네사렛 Gennesaret.
1. 구약성경.
게네사렛은 가버나움과 막달라 사이에 있는 갈릴리 바다의 서쪽 해안에 접해 있는 작은 평야이다. 구약성경에는 킨네레트(민 34:11), 킨네로트(수 12:3), 킨네레트(신 3:17)로 나타난다.
이 평야는 길이가 약 4마일 정도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폭은 약 2마일에 이른다.
이 땅은 지중해보다도 650피이트 낮은 갈릴리 바다의 해면에서 완만하게 솟아있는 평원이다. 삼면에는 구릉이 날카롭게 솟아 있다. 가버나움에서 디베랴까지 국도가 해안을 끼고 뻗어 있다.
그리스도 시대에 이 평야는 요세푸스가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웅변적으로 묘사한 팔레스타인의 기름진 농경 지대였다(Jos. War III. x. 8). 토양은 마치 나일강의 델타의 토양처럼 기름지다. 기후는 덥기도하고 온화하기도 하다. 관개에 이용하는 풍부한 물은 주변의 구릉에서 흘러 나오는 시내와 여러 샘물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 땅에서는 포도, 무화과, 올리브, 호도(요세푸스), 쌀, 밀, 채소, 멜론같은 중요한 농산물들 뿐만 아니라 많은 야생 나무와 꽃들도 산출되었다. 랍비들은 이 평야를 "하나님의 동산"과 "낙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시장:ajgoravj(58, 아고라)
시장 market.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아고라(Homer 이래)는 아게이로(ajgeivrw: 함께 모으다)에서 유래했으며, `회합(집회)의 장소 place of assembly '를 의미한다.
아고라는 본래 공적 집회의 어떤 장소였으며, 고대 희랍 시대에서는 시장이나 정치 회합이나 재판의 경청, 특히 교역을 위한 장소로 정규적으로 사용했던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와 동일시 되었다.
성함을 얻으니라:
swvzw(4982, 소조)
구원하다 save, 해받지 않게 하다 keep from harm, 보존하다.
(f) 히브리서에서 소조는 2회 나온다. 히 5:7에서 소조는 하나님 아버지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예수님과 제자의 무리는 게네사렛에서 더욱 본격적인 전도사역의 일을 감당하십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바다 서북쪽의 완만한 지역에 속하는 해변가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 보다 낮아서 대부분 깊이 파인 벼랑과 같은 지형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북쪽 만큼은 완만한 해변가와 같아서 본문과 같이 많은 사람이 운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부터는 마을, 도시, 촌, 시장(집회장소, 부흥회)을 진입하셔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주님을 믿게 하십니다.
자주 말씀 드리지만 주님의 치유하심은 이사야에서 예언한 구원자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며 은혜의 해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히브리어 헨이나 헬라어 카리스입니다. 친히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많은 지식과 시간을 들여 병을 치유하는 거와는 달리 바로 낮게 하는 선한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불가능한 사건들입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이제 오심과 천국을 미리 맛보는 걸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곳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고 천국은 그 완전한 일들을 완성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 천국은 완전한 치유가 있기에 병자나 약자는 존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병자나 약자가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병자나 약자가 완전히 치유를 받기에 병자나 약자가 영원히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영원한 불구의 곳이요 천국은 완전한 치유와 기쁨과 성함이 있습니다.
아무데나 도시와 촌 구분없이 예수님의 두루 전도하심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부한 자나 가난 한 자나 지식이나 노예나 바쁜 자나 한가한 자나 남녀노소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구분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 시장은 어린이나 한가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고 노예를 매매하는 곳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모세 율법에도 법이 있기에 그 때에는 노예가 존재하였나 봅니다. 그들 가운데에도 무덤에서도 주님은 전하시고 병과 결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십니다.
본문의 예수님과 백성들 간 두부류의 만남은 마치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같이 느껴집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그와 함께하는 예식장의 친구와 같은 들러리 제자들 신부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을 믿고자 달려가는 무리는 병자를 침상채로 메고 가고 옷가에라도 닿아서 치유 받고자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예수님과 같이 자상한 신랑이 신부를 깊이 사랑하여 모든 것을 해주듯이 우리 예수님은 작은 믿음 큰 믿음을 가진 자라도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치유하시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교회도 이러한 열망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비록 이 땅에는 부분적으로 성령님의 시대 속에 주님 나라의 맛을 보는 제한이 있지만 꾸준히 인내하는 믿음을 진정 가진 자에게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실 것입니다. 신부되신 정절이 우리에게는 있는 지요 맘이 누구에게 조금 상했다고 조금 힘들다고 교회의 쭉정이처럼 왔다 갔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날아다니지는 않는지요
침상채로 달려가고 지붕을 부수고 주님을 만나려는 맘과 다만 옷 가에라도 주님을 터치하고자하는 간절한 모습처럼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뜨거우신가요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의 날을 사모하는 여러분 그 열정 그 사랑이 신랑을 향한 그 열정이 영원히 식지 않기를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향하여 찾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운 신랑을 찾고 사랑하는 신부를 찾는 모습처럼 강제나 일방적이 아닌 서로 진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향합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춘향이가 이 땅의 핍박 속에도 신랑을 기다리는 열정이 변함이 없듯이 (춘향전이 오래전 잠시 복음이 들어왔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설이 있기는 합니다) 춘향이가 목숨을 다해 순결을 지키며 첫사랑을 지켜 내듯이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신과 어떤 우상과도 타협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된 교회의 모습 속에 온전함으로 그날을 고대하고는 있는지 점검해 볼 때인거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사랑이 식어가는 시대인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람을 향한 사랑이 식어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간과 가까운 이웃의 사람을 향한 시간보다는 돈많은 유명인, 영화나 만화 영화 드라마 연애인 걱정이나 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녁 예배도 연애인을 우상화하기 위해 없앤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의 도가 지나침을 봅니다. 이제는 회복하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과 인내하며 신랑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늘 변함 없으시기를 항상 간절히 찾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열정은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또한 그 열정 변함이 없으시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의 불을 기름 붓듯이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두열정이 만나 역사하고 더 큰 불을 일으키듯 이 땅 이 교회를 그 사랑의 열정으로 불을 부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뜨거운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지가 굳어 더욱 충성하는 열심이 주님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식지 않고 떠돌아 다니지 않고 사역을 위해 떠난 자는 여전히 그 사랑이 심지가 더욱 굳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스미디어가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사단을 위해 세속에 물드는 기계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민족간의 위기가 이제는 변하지 않는 평화 시대로 도달하여 잃어버린 민족간의 사랑을 주옵시고 인류간의 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과 인내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남북간의 긴장과 냉전을 완화시켜 녹여 주옵소서 평화의 복음이 전해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