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의욕만 앞서는 멍청한 어른이였다.(내용수정 및 추가)

Raphael2018.04.23
조회49,420
그냥 문득 생각이나 주저리 적어봤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공감해주시고 읽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잠시나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신 분들, 여학생의 마음에 맘아파 하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이 일은 제가 군 제대 직후였던 3년전 일입니다. 제대 다음날 부터 출근했던 회사를 다닐때 있던 일인데.. 지금은 그 학생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굳이 그 학교를 빙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건 여전합니다. 부디 건강히 잘 지내길.. 분명 동네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쳤지만, 그 학생이 멀쩡하게 잘 걸어다녀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길.. 다시 한번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네이트 판에는 처음 글을 써봤는데...원래 좀 주작이라던가 하는 글들이 많은가봐요..^^;; 못미더우신 분들에게 굳이 강요하진 않겠습니다..ㅎㅎ;; 믿고싶으신대로 믿고, 보고싶으신 대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또, 원래 어디가 글을 올릴때면 늘 맞춤법 검사를 진행했었는데 ㅠ 이번엔 그걸 생략한게 후회되네요ㅠ 맞춤법은 다시 수정했습니다.
아, 그리고 전 참고로 전 작가라던가, 출판쪽의 종사자가 아닙니다..^^;; 부족한 글에 과찬 감사드리며, 평범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27세 청년입니다. 어른이라고 쓰긴했지만..당시엔 어른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나이였네요..; 물론 지금도요.ㅠ
젊은 혈기에 정의라고 믿었던 것들이 과연 정의였나 싶은 생각에 혼자 간직해왔던 글입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제가 끄적거렸던, 제 생각이나 경험들이 몇개 있는데 기회가 되면 또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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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은 생략합니다.

출근길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중학교가 하나 있는데, 내 출근 시간은 얼추 학생들 등교 시간과 비슷해, 출근할 때면 언제나 많은 중고등학생과 함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날도 평소처럼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다소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여학생이 걸어가고 있었다. 비틀비틀하며 자기 가방만 한 교과서들을 들고 걸어가는데 정말 도와주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안쓰러웠다. 그래서 혹여나 넘어져 책이 엎어질까, 그 아이 느린 걸음을 맞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따라갔다. 
그때, 뒤에서 막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한 남학생이 그 여자애를 툭 치고는 멀리 달아났다. 학생이 늦어서 뛰어가다 부딪힌 그림과는 전혀 다른, 누가 봐도 불편한 학생을 장난치는 모습이었다. 학생은 그대로 옆으로 꼬꾸라졌고, 책은 다 엎어졌다. 난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극도의 분노를 느꼈고, 남학생이 여학생을 밀친 지 정확히 2초 만에 전속력으로 그 남학생한테 달려갔다. 다행히 여학생은 다치진 않은듯하고 같이 가던 학생들이 책을 같이 주어 도와주는 듯 했다. 
히히덕거리며 달려가던 남자애는 내가 쫓아오는걸 느꼈는지 웃음기 없이 당황한 듯 뛰어갔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난 그 남학생 목덜미를 잡았다. 
"왜 이러세요!!" "이 개 같은 비열한 새끼야, 너 몇 학년 몇 반 네 어미 번호 다 불러!!" "아 왜요! 왜 이래요!" "몰라?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 내가 알려줄게" "그냥 지각할까 봐 급해서 뛰어가다 부딪힌 거에요!" 
내가 여자애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지가 제 잘못을 안다는 정확한 증거와 함께 난 정말 힘으로 걔를 끌어당겼다. 학생들은 내 주위로 구름처럼 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평온한 아침 등굣길에 웬 남학생과 덩치 큰 남자가 추격전을 펼치고 있었으니 그보다 더 재밌는 구경거리가 어딨겠는가? 정문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진 교사분께서 허겁지겁 달려오셨다. 
"왜 그러십니까,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저에게 말씀하시죠!" "수고하십니다, 이 애새끼 부모하고 경찰서 가서 얘기하겠습니다" "일단…. 저 들어가서 말씀하시겠습니까? 보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죠" 
선생님께선 주변 애들을 정리시키곤 교무실 한 칸에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나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가 출근 중이란 것도 잊은 채 자리에 앉아선, 남학생한테 네가 한 잘못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아니…. 그냥 뛰어가다가…. 다리 아픈 애를 친 거 뿐이에요" "그래. 네가 빨리 뛰어가다가 쳤을 뿐이지, 바로 뒤에서 누가 봐도 일부러 팔을 뻗어 친 게 내 눈깔이 잘못 돼서 그랬다 치자. 그럼 넌 왜 웃었니? 왜 정신 나간 새끼처럼 헤헤거리며 뛰어간 거야?" "그냥….;;;" 
매일 아침 정문 앞에서 전교생들을 모두 마주치는 선생님은 다리가 불편한 여학생이 누군지 바로 알아차리는 듯했고, 이 철딱서니 없는 애새끼가 뭔 잘못을 했는지, 이 남자가 왜 눈이 뒤집혀 뛰어왔는지 이제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기…. 선생님 제가 상황파악이 됩니다…. 이 철없는 우리 학교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불편한 학생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듯하네요 아는 여학생인데…. 괜찮으시다면 이 학생이 여학생에게 직접 사과하게끔 하고, 저희 학교 내 지침대로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뇨? 말씀 다 끝나셨으면 이 남학생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시고 전 이 학생 경찰서로 인계하렵니다. 사과는 학생 부모가 여학생 부모에게 해야죠. 얘가 뭔 잘못이겠습니까 부모가 잘못이지" 
내가 경찰서와 부모를 이야기하자 애는 거의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눈 한번 안 깜빡거렸다. 
"네가 장난을 쳤던 무엇을 했던 관심 없고, 네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가르쳐주마, 네가 살아온 생에 최악의 하루를 오늘 내가 선물해줄 테니 잘 한번 보내봐라. 이 하루 중에 너는 잘못을 한 약자인데, 그 약자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느껴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중학교 1, 2학년 되는 남자애에게 했던 저 말을 과연 애는 알아들었을까…. 싶긴하다. 뭐 느낌은 전달 됐는지 남자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난 시끄럽다며 다그쳤다. 
이에 선생님은"아…. 그럼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며 학생을 데리고 나갔고, 5분 후에 그 다리 다친 여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나를 보자 설움이 복받쳤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정말 처음에 느꼈던 그 분노가 다시 느껴졌다. 난 아이와 둘이 얘기하겠다고 하곤 남학생과 선생님을 잠시 내보냈다. 내가 내보낸 건 선생님으로서 그 학생을 훈계해주길 바라서였다. 난 여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좀 전에 당장이라도 교수형을 집행할 것 같았던 톤을 버리고 정말 차근차근 물어봤다. 
"다친 데는 없니?" "원래 다리가 안 좋았어?" "등하굣길이 힘들진 않니? 집은 근처니?"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니? 지속해서 누가 괴롭히거나 했니?" "저 남자애는 아는 애니?" 등등…. 
여자아이는 그래도 조곤조곤 울먹이며 답을 해줬다. 아이는 중학생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숙한 말투였다.
다친 곳은 없지만, 많이 놀랐다고 한다. 아마 자신이 넘어지고 나서 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더 놀란듯하다. 원래 사람이 많거나 자동차나 자전거가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은 피하지만 등굣길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여러모로 많이 놀랐다고 한다. 다리는 어릴 때부터 자주 넘어지고 오래 못 걷고 했다가 초등학교 체육장 때 쓰러져 병원을 가니 태어날 때부터 골밀도가 낮아 거의 70대 노인 다리 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비틀거리며 걷는 것도 꾸준히 운동하고 재활을 하지 않으면 그마저도 못한 채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고 말하며 여학생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데,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에 담이 올 정도로 몇 번을 천장을 보며 참았는지 모른다. 또래 여학생들이 이쁘고 늘씬한 다리 자랑하며 치마를 줄일 때, 이 소녀는 성인 팔목 같은 앙상한 다리를 감추려 일부러 치마를 늘려야 했을 것이다. 장난을 친 남자아이는 같은 학년 남자애인데 원래 장난이 심하고 가끔 지나갈 때 놀리듯이 자신의 걸음걸이를 흉내 냈다고 한다. 그 외에 심한 장난은 없었다고 하는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더 질문하기를 포기했다. 어쩌면 내가 아무리 근사한 톤으로 위로하듯 물어본다 한들, 이 사춘기 여학생에게 이 시간 자체가 괴로운 시간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나지막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우선…. 황당하고 화나는 아침이었을 텐데 너의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구나…. 난 저 아이를 경찰서에 인계해서 호되게 혼내올 낼 생각이야. 저 아이를 본보기로 해서라도 절대 너를 비롯한 또 다른 힘든 친구들이 고생하지 않게 하려는데 네가 간곡히 원치 않는다면 이대로 끝낼게. 어떻게 생각하니?" 
여학생은 고개를 몇 번이나 저으며 말했다.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왜~?" 
이윽고 한 한마디에 난. 5분 정도를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고. 
"공부 열심히 하고 꼭 운동 꾸준히 하면 꼭 나을 거야~! 등하굣길 조심히 다니렴!" 
하며 애써 웃고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겨 학교를 나와, 다 늦은 출근을 했다. 회사엔 오전 반일을 썼고, 회사에 가서도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그날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조두순 사건'으로 전국이 분노에 치밀었을 때, 사고 1년 후에 피해학생 아버님과의 인터뷰를 보며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제정신의 인터뷰가 될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근데 그 맘을 아주 조금을 알 거 같다. 
정말 황폐한 언덕엔 폭풍이 불어봤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걸…. 이미 황폐해진 마음엔 분노든 슬픔이든…. 자리를 잡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무너졌다는 게 이런 마음일까…. 정말 풀 한 포기를 억지로도 심을 수 없을 정도로 그날 하루가 황폐해졌다. 지금도 가끔 출근길에 학교를 보면 마음이 미어져 아예 출근길 루트를 다시 잡아 빙 돌아가곤 한다. 마치 자기 보호를 하듯 내 마음이 무너질게. 걱정돼 반사적으로 외면하는 것 같다. 그 한마디는 아마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경찰서에 가서 저희 엄마가 알게 되면…. 너무 마음 아파 하실 것 같아서요." 













난 의욕만 앞서는 멍청한 어른이란 걸. 그 날 알게 됐다.

댓글 55

오래 전

Best겪은 일을 정말 몰입도 있게 잘 쓰시네요. 생각이 많아지는 글이네요.

ㄹㄹ오래 전

Best아... 여학생 말이 너무 맘아프네요... 글쓴님 멋진분이세요 그 여학생이 정말 고마워했을거에요

루나오래 전

마음이 아프다 쓰니님이 그래도 지나치지않고 뛰어가서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니님덕분에 이후에 또 그러진 않았겠죠..

이름없는글쟁이오래 전

이 답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한 유튜버 분께서 소개해서 여기 검색해서 왔어요 저도 뇌성마비 장애인인데 이 글을 보고 어릴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냥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 제 걸응 따라하며 히히덕 거리는 애들이 떠오르고 저는 지금도 꼬마애들과 마주치면 겁부터나요 그리고 학교에 말하지 말라는것은 엄마때문일것도 있지안 보복이나, 학교에 큰일로 번질까봐 그랬던거 같애요 저도 그랬을거 같고요. 쓰니님 글보고 아 이런사람들이 나랏일을 해야되는데 이런생각이 들었어요 글 잘읽었고 그 여자애는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복받을실거예요

ㄷㅁ오래 전

지우지말아주세요!

ㅇㅇ오래 전

이남자 너무 괜찮다ㅜㅜ이런남자들이 많아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ㅇㅇ오래 전

숨도 못쉬게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문장 흡입력

좋은오래 전

의욕만 앞서는 멍청한 어른이었다고 생각하셨다니.. 아 찡해요ㅠ 제가 과연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렇게 할수있었을까요.. 그때 정말 잘하셨어요. 그 남학생은 님 아니었으면 아직까지 정신 못차렸을거 같아요. 다신 그러지 못하겠죠! 글쓰니에게 박수를!!!

ㅇㅇ오래 전

정의죠. 정의가 맞죠. 그 정의를 못본척 지나치는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글쓴이님께 놀라는 중입니다. 비록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사과를 받아내지만 못했지만 충분히 정의로운, 천사같은 어른이 있다는걸 여학생이 느꼈을테고, 미친 남학생도 자신이 한 장난으로 경찰서에 갈 수 있다는걸 느꼈을겁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어른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자신은 불의를 보고 바로잡으려고 해본적이 있는지, 그냥 모른척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어른아닌 사람들이 어른인척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ㅇㅇ오래 전

2018년 판춘문예 후보에 올려드립니다

ㅇ디ㅡ오래 전

개 멋있다.. 아니예요 그런 어른이라도 본받을꺼에요..

예리오래 전

이게 자작이든 상관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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