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추가) OO시 축제에서 당첨된 경품을 안주겠대요

연필잡이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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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조카 러시아 갑니다~!!!


  새벽녘에 정신없이 올린 글을 이렇게 많이 봐주시리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같이 화도 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따뜻한 말씀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한편으론 제가 생각나는대로 쓴 글의 내용만으로 어디인지 추려내시는 걸 보고, 새삼 네티즌 수사대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제가 법과 제도를 잘 알지 못하다보니 신문고나 다른 민원 제기로 해결해볼 생각을 못하고, 조카가 사는 지역의 법무사나 변호사님께 이번 일을 맡아주십사고 알아봤습니다.

최수진 변호사님께서 걱정해주신대로 사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인지라, 다른 분들도 제게 난색을 표하셨습니다.

의뢰인이 찾을 수 있는 금액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니 소송을 하기 부적합하다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소송은 말리시더군요.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다시 최수진 변호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 그래도 소송이라도 해서 아이 걸 찾아주고 싶다는 제 뜻을 들어주셔서 오늘 낮에 찾아뵙고 사건위임계약서를 작성하고 왔습니다.

정말 따뜻하게 배려해주시고, 평소 맡으시는 사건에 비해 소소할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기댈 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서 돌아오는 길이 두근두근 했어요.



  이 와중에 여러 기자님들이 제게 연락을 주셨습니다.밤에 판에 글을 올리며 홧김에 여러 언론사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기사제보를 막 썼어요.솔직히 지방 소도시의 별 일 아닌 사건, 누가 들여다 보기나 하겠나하고 막 썼는데 몇 군데를 썼는지 세보기도 많을 만큼요.일단 전화 주셔서 제보내용이 좀 황당해서 이게 사실인가 싶어 전화 주신 분도 계셨고, 시에 어떻게 된건지 알아보러 가보시겠다고들 해주셨어요.그러더니 오늘 새벽부터 기사가 막 쏟아지더군요.제가 해당 시 출신임에도 결혼 후 남편의 직장 문제로 타지에 나와살고 있어 발만 동동 굴렀는데, 중간중간 시에서 나온 이야기도 전해주시고, 신경써주신 기자님들께도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 9시 쯤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시에서 여행사에 월드컵 여행 패키지라도 끊어주겠다고 했다고요.갑자기 이렇게 상황이 돌변하니 어안이 벙벙하고, 이 사람들은 결국 해줄거면 빨리 해주지 소송한다고 서류 다 쓰고 왔더니 이제야 이러네요.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구나 하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부랴부랴 판에 들어와 이렇게 되었노라고 후기를 남깁니다.그리고 댓글을 읽다보니 제가 처음에 올린 축제 당첨시 사진이 해당 축제의 홍보에 쓰인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다행히 그렇게 쓰인 사진은 아니고 당첨 당시 기뻐하는 아이 사진을 찍어두었던 겁니다.


  다시 한 번 많은 염려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지난 몇 주간 정말 피가 말랐습니다.이런 건 이제 저에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앞으로는 누구도 이런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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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5일, OO시에서 하는 축제에 가족들과 함께 갔습니다.
이 축제는 OO시에서 예산을 들여 올해로 21년째 하고 있는 행사예요.
개막식 날, 응모권을 추첨해 경품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 초등학교 4학년인 제 조카아이가 1등에 당첨이 됐습니다.
경품 내용은 사진에 있는 대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가서 한국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거예요.

  어린 아이가 당첨이 되었으니 러시아까지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건지, 축제 조직위원회라는 곳에 정말 수차례 문의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직 2년이나 남았다,
우리나라 축구가 32강 본선 진출이 되야 가는 거다,
기다려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아이는 이후로 관련 축구경기는 나중에 다시보기로라도 보고, 관련 뉴스도 찾아보고,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말에 기뻐했어요.
그러다 월드컵 티켓 예매가 오픈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니 저흰 더 초조하더군요.
보호자는 사비로 가야하니 항공권이나 경기티켓도 알아봐야 하고, 학교에도 여행 관련 서류를 내야하고, 직장에 휴가를 내야하니 할 일이 많죠.
하다못해 혹시 제공되는 숙소에 보호자가 같이 잘 순 있는지, 경기티켓이 지정좌석이던데 비용을 부담할테니 아이와 같이 볼 수 있는 자리의 티켓을 같이 부탁할 수는 없는지라도 대답을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올해 4월 20일에서야 해당 축제 조직위원회라는 곳에서 해당 경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이유는 2016년~2017년에 해당 축제를 진행한 임직원이 모두 그만뒀고,
현재 축제를 진행하는 자신들은 아무런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으며,
이 경품 지급을 할 예산이 없으므로 지급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OO시 문화관광체육국의 국장에게도 이 문제를 문의했습니다.
그간 OO시 국장을 통해 들은 말들은
이 내용을 파악하는 중이다,
지역 연계된 축구단이 관련있으니 그쪽과 협의해 보겠다,
자신이 혹시나해서 여행사에 월드컵 경기관람 상품이라도 있는 지 알아봤는데 없더라,
대신에 OO시에 2박 3일 여행오는 건 어떻겠냐,
OO시에서 2018 월드컵 출정식을 하는데 보통 서울서 하던 걸 유치한 거라 의미가 있으니 이걸 보러 와라,
자신도 책임이 없다고 하고 빠져도 되는데 그래도 지자체에서 있었던 행사니 자신은 중재를 해주려고 하는 거다,
어쨌든 시에도 예산이 없어 러시아 월드컵 경기 관람을 하게 해줄 순 없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마치 돈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강도가 된 것같아 자괴감이 듭니다.
우선 조카의 엄마인 제 동생과 다시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남의 돈을 훔치려 드는 사람들일까?  아무 권리도 없는 걸 달라고 떼쓰는 중인건가?
  아이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은 모두 없던 일이라고,
어차피 공짜로 당첨됐던 거니 못 받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학교나 열심히 다니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잘못은 나쁜 어른들이 하고 왜 우리 아이가 상처 받는 걸로 마무리가 되야 하는 걸까?
  우리 진짜 아무 힘 없구나.

  OO시는 몇 해 전부터 갑자기 뜨는 관광지가 된 곳으로, 사실 제 친정 동네고, 조카의 출생지입니다.
5월은 이 곳에서 몇 개의 축제가 연달아 열리고, 해당 축제도 올해 5월 5일, 어린이날에 또 열립니다.
곧 어버이날도 있고해서 조카는 할머니를 만나러 이번 어린이날 OO시에 갈거고, 앞으로도 갈겁니다.
일년에도 몇 번씩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무슨 마음이 들까요?

  아무리 무료로 진행된 경품행사였어도, 저는 조카 아이에게 정당히 러시아 월드컵을 보러 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저들이 당당하게 안해준다,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예전에 베스킨라*스와 스타*스 경품 관련 소송으로 유명한 최수진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소송을 하게 된다면 진행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기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는지 등등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소송이 아이 이름으로 진행되야 하는 것을 말씀해주시며 걱정해 주시더군요.
일단 변호사 수임료만해도 소송에 이겼을 때 찾을 수 있는 액수를 넘을 거라고요.

  현실적인 문제라 깊이 고민했습니다.
본래 제대로 약속이 이행됐다면 제가 보호자로 따라가기 위해 저축해둔 돈이 있었습니다.
이 돈으로 여행사를 통해 티켓을 구해서라도 러시아를 가야하나 싶었어요.
애초에 소송이 금전적으로 더 손해니까요.

  고민 끝에 결국 해당 축제 조직위원회나 OO시와 어떠한 타협도 되지 않아 어차피 못 갈거라면, 조카 위해서 쓰려고 했던 돈이니 조카가 본인 것을 정당히 받도록 해주는 데 쓰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소송이라는게 서로의 주장을 다투는 거니 질 수도 있겠지요.
결과가 어찌되든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아이에게 이러저러하게 최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이에게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네 권리를 찾으라고 가르치려면, 나부터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이렇게 제 자신이 갈아 없어지는 것 같은 소모전을 계속하는게 맞는 건지 확신도 없고, 걱정도 되고, 마음이 한없이 답답합니다.
이런 제가 어리석어 보이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혹시 해주실 수 있다면 앞으로 제 조카에게 진짜 좋은 일이 생기라고 기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