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볼려고 합니다.

gabriel2018.05.01
조회193
안녕하세요 33살의 남성입니다.재판을 앞두고 있으며 , 제가 더이상 할수 있는게 없다고 느껴지는 요즘처음으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볼려고 합니다.
우선 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습니다.제가 어렸을때 어머니와 같이 살던 단칸방에는 가전제품은 있었으니 웬일인지 전기가 들어오지않는 곳이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중동쪽으로 돈을 벌러간사이 어린 저를 데리고도망을 갔다고 하더군요.결국 생활고에 힘드셨는지 7살무렵의 저를 친할머니댁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 대문앞에서맛있는 것을 사오신다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믿을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택시안에서 하염없이 우시는 모습에 마지막이라고느껴졌고 실제로 제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할머니댁에서 자랐습니다.작은 시골로 같은 학년이 모두 18명정도되는 곳이었고 1학년 부터 5학년까지 쭉이어지면서사실 이때가 제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5학년떄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당시에는 저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는 마음에 기뻤습니다. 그렇게 서울 노량진 단칸방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97년도에는 왕따 및 이지메라는 단어가처음생기며 유행처럼 시작된 그것은 작고 당시 몸이 약한 저는 서울에서 왕따라는 것을 당하게되었습니다.
길게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이후 학교 생활은 저에게 지옥과 같았습니다.친구라는 단어보다는 폭력이라는 작은 사회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저를 괴롭혔던 그사람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더군요.
이러한 학교 생활로 인해 학교를 점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이는 곧바로 악순환이 되었습니다.학교에 가지않아 남는 시간을 위해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기도 하였고 가출도 하는등점점 학교생활과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중학교2학년 되던 때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평소 알콜중독이 있으셨던 아버지마저도저를 이날 만큼은 혼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침 찾아온 사춘기는 스스로 제가 뭘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이때 찾아간 곳은 모청소년 교육센터라는 곳으로 검정고시 준비 및 직업전문학교에 들어 갈수있는 곳이었습니다.기숙사로 이루어진 이곳은 외출 외박이 통제되었던 곳으로 천주교 제단에서 운용하는 곳이지만온갖 불량한 혹은 저와같이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전 트라우마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에는 너무 무서운 저였지만 그곳에서만큼은버텼습니다. 첫날부터 시작된 구타 폭력이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무작정 버텼습니다. 그냥 빨리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만 들 만큼..
이때쯤 제가 조금은 달라진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께서 끝내 술로 인해 돌아가셨습니다..주말 외박때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이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었습니다. 끝내 저는 불효만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그 시간만큼은 돌릴 수 없었기에 지금도 너무나도 죄송합니다.이때를 계기로 16살의 나이에 할수 있는것을 했습니다.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노력한만큼 제나이에 맞게 검정고시 역시 합격하여 주말에 방송통신고등학교를통해 학업을 이어가게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지내던 청소년센터에서도 평소 불량한 아이들이 떠나면서 조금은 삶에 여유가생겼습니다.  신부님 수사님들의 도움아래 엇나가지 않고 카톨릭 세례도 받으며 다시태어나고 싶었습니다. 평일에는 기술전문학교를 주말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통해 자격증 및 고등학교 졸업을 무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살이 된 저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경기도 작은 공장에서 시작된 사회의 생활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매일 야간 및 철야를 반복해도 수중에 있는 돈은 모아지지 않더군요.설상가상 저는 만14세 이후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 이기에 군대 역시 가야했습니다.
국방부에 전화하여 제 사정이 이렇고 저런데 어떡하냐는 말에는 군대가면 먹여주고 재워준다는것이 었고 결국 저는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에 비해 저는 그래도 공동체 생활을 어려서부터 하였기에열심히 생활했습니다.  다만 사회에 나가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무엇을 어떡해해야할지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했던거 같습니다.저도 꿈은 있지만 당장의 생활을 하는것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정대로 만기전역을 하게된 저는 서울 독산동의 친구집에서 우선 돈을 모아야 했기에신세를 지며 아르바이트를 할때도 있고 공장생활을 하면서 버텼습니다.정말 고되고 힘이 들었습니다. 제가 뭘 위해 일을 하고 살아가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다  27살의나이에 시골로 내려가서 아예 돈을 모아보자는 생각에 친구와 같이 찾아간 \금촌에서 한 반도체 업체에 취직하였고 여전히 반지하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때 였습니다.
한때 같은 청소년센터에서 지낸 한동생이 중국에서 스포츠 불법 사설 토토직원을 하면서돈을 얼마를 버니 어떻게 살고있느니 하면서 소식들이 들려왔었습니다.사실 저는 가족이 없기에 같이 살아온 친구들 및 동생들이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그런일을 한다고 하였을때 조차 그 동생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저역시 알기에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동생으로 부터 함께 일을 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법이지만 스스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다는 생각 , 나쁜일을 해야 이 지긋지긋한 삶을벗어날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 정말 단 한번만 이 반지하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생각등저는 많은 생각과 생각끝에 결국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당시 월급기준보다 적은 150만원의 급여로 일을 했습니다.충전 마감 환전 경기등록등 직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사실 너무나도 적은 돈에 그만둘려고 수도없이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동생 친구들이었기에 서로 의지하며 좋아질거라는 희망하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반복적인 삶은 4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어졌습니다.몇번의 그만둘때도 있었고 서로 웃을때도 있었지만 반복적인 삶의 끝에 나이는 나이대로먹어가면서 돈조차 제대로 못모으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할지 뭐부터시작해야할지이렇게 그만 두면 지금껏 보낸 시간이 너무 허무할거란 생각에 그렇게 일했습니다.
결국 저보다 오랜사람들이 그만두고 저보고 팀장을 맡으라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습니다.앞으로 제가 평생 이일을 할것도 아니었으며 이제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사장에게 더 늦기전에 그만두고 싶다고 한달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였고이를 받아들여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금촌이라는 곳에서 디스플레이 쪽 협력업체에서 일을 하며 여전히 돈도 없고월세 생활이지만 그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땀흘려 번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고 하루 일을 마치며 스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희망 이었습니다.그렇게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죄값역시 따라 왔습니다.일을 했던 그곳이 잡히면서 저역시 직원으로 일했기에 경찰조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경찰 조사를 받고 지금은 재판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이 일한 동생의 경우 1심에서 징역2년 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저역시 재판을 받게 될경우 교도소 생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재판을 기다리는 저로서는 이제는 모든것을 포기할려고 하였습니다.어떻게 해야 피할수 있지 라는 마음조차 무너져 희망을 찾는 거 조차 두렵습니다.변호사라도 선임하라고는 하지만 빛내면서 시작된 지금의 한국생활에  선임비조차부담이 되고있습니다.
이럴려고 시작된 제삶일까 싶더군요. 그렇게 몰래 모아온 수면제조차 지금은 바라만보고있습니다.  죽도록 포기하고 싶은 제가 역설적으로 그만큼 살고 싶다는 것을 발견하게되더군요..
지금 이글을 쓰면서 저 스스로 삶에 대해 반성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글을 씁니다.정말 단 한번만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이제는 평범하지 않은 지금까지와 같은 하류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어 누군지도모르는이곳에 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제발 누구든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저에게 도움을 주실수 있으신분도.. 혹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실수 있으신 분이 필요합니다.
빛을 내주신다면 죽더라도 그 빛만큼은 갚을 것이며 무엇이든 시키신다면 하겠습니다.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긴글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어린나이지만 제 이야기를 한번은 남기고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