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반지를 뺄게요.

201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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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헤어지면서 오늘은 집에서라도 밀린 회사일을 해야하니 못본다고 했습니다.그래도 저녁은 먹자길래 서둘러 만나러 갔죠. 맛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갑자기 할말이 있다고. 그만 만나자고 합니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서로 가족에게 소개시키고 결혼하겠다고 한 게 지난 2월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결혼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그래요. 당신도 나도 몸이 영 건강하지 못하죠. 최근 주말마다 아픈 당신 때문에 응급실 밖에서 당신이 낫기를 기다린 게 두 번이군요. 나는 일주일동안 장염땜에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살았고요. 평생 같이 살면서 괜찮을까, 당신도 나만큼 걱정이 되었겠죠.

나한테 부담주는게 싫다고, 말은 안해도 힘들어하는게 보인다고.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참고 견디다 어느날 화를 내곤 하는 내가 당신은 무섭다고 합니다. 화 안내는 사람이 갑자기 화내는게 더 무섭다고요..

그래요. 나는 사회성도 떨어지고 말도 잘 못하고 붙임성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당신을 앞에 놓고 트위터나 들여다보고, 게임 좋아하고. 혼자있기 좋아하고 집안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자기가 싫다고 말해도 그때뿐이고 바뀌지 않는 내가 당신은 싫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고 먹는것, 쇼핑하는것들을 좋아하지만 나는 집에서 책이나 보거나 게임이나 하는 걸 좋아하죠. 우리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어요.

당신 어머니를 뵈어도 친근하게 대하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구는것도 당신은 불만이었나봅니다. 적어도 실례를 저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내 성격인걸 어쩌겠어요. 나도 32년 살면서 사람한테 상처받고 고통받고 죽지 못해 산다고 생각한 시절이 길었어요. 쉽게 바뀌지 않는걸요. 그래요. 나 문제가 많은 사람이네요.
나도 즉흥적이고 제멋대로고 경제적인 풍요는 바라면서 그걸 얻기까지 들여야 하는 노력에는 관심도 없는 당신에게 실망할 때가 많았어요.내가 뭔가 다 챙겨주기만 바라고 당신이 날 챙겨준 적도 별로 없었죠. 당신이 아플 때, 나는 당신이 가야 할 거의 모든 병원을 다 따라다녔지만 내가 아플 때 당신이 먼저 내 집에 와서 뭔가 돌봐준 일은 한 번도 없군요..

그래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내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당신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음으로 서로 마음이 통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제 당신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당신도 겉으로는 밝은 척 하지만 안에 빈자리가 많아서 하루라도 같이 있어주지 않는 걸 견딜 수가 없다고요. 내가 당신 주변 사람과 만나는걸 부담스러워 하는 것 만큼 당신도 내 주변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요.

아파트 전세 살 만큼 모아놓은 돈도 없고. 차도 없죠. 무릎이 고장나서 1년넘게 병원을 다니는 당신에게 나랑 돌아다니는 건 고역이었겠죠. 옛날부터 당신은 귀부인이 되는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돈많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주는 남자 만나서 호강하고 살아야 천수를 누릴 것 같다고..
그래요. 나랑 가는 길은 고생이 많겠죠. 이해해요. 나도 나 따위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 여러가지 문제로 여러 번 헤어질 위기를 겪었었죠. 안될 일이었군요.
당신은 내게 그래도 인성이 된 사람이니 괜찮다고 했었죠. 글쎄요. 나는 그냥 참고 견디는 것밖에 몰랐을 뿐이에요. 그것 때문에 당신은 고구마 잔뜩 먹으며 사는 기분이었겠군요.

내가 싫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마음 약하게 만들지 말라고,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거라고요?


대체 무슨 기분으로 헤어지겠다고 말하는 날 뽀뽀를 하고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거죠.?그런데도 진심으로 나랑 평생 함께하는건 안되겠다고 잘도 말할수가 있군요.

나는 당신이 오늘을 길게 준비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헤어질 뻔 할 때마다 나는 사람 버리는 걸 잘 못한다고 말했어요. 당신은 항상 심한 말을 해도 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죠. 그런데도 오늘은 냉정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잘도 할 수 있군요...
나는 지금 당신 말고도 고민거리가 너무 많았어요. 지난 한 주 동안 새벽 세시 전에 잠든 날이 없었군요. 덕분에 머리가 마비되어서인지 당신을 설득할 여유도, 눈물을 흘릴 기분도 되지 않는군요.
이건 불행일까요 다행일까요. 지난번에 당신이 헤어짐을 말했을 때 나는 결국 정신과를 가야 했었죠. 이번엔 적어도 후폭풍이 있을 때까지는 정신과 약 먹고 사는 걸 미룰 수 있을 것 같네요. 회사일도 바쁘니까..

반지를 빼 보니 그 자리에 굳은살이 박혀 있군요. 다음 주면 우리 2 주년이었어요. 허망하기 그지없네요.1년 전에도 헤어지잔 말 듣고 판에 써놓은 글이 있군요.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나니,이럴 거였으면 그때 끝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