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새롭게 하심

주품이201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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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31 ~ 37
주품이 큐티 ^ ^
{주님의 새롭게 하심}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원어역사사전
시돈
Sidwvn(4605, 시돈)
시돈 Sidon(지)
시돈은 히브리어 치돈의 음역이며, 어원은 추트('사냥하다', 아람어에서는 '낚시질 하다')이다. 따라서 본래 이 이름은 이 곳에 물고기가 풍부한데서 연유했다. 시돈은 뵈니게의 매우 오래된 도시이며, 두로(Tyre)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져 있고 베이루트(고대의 베리두)에서 남쪽으로 역시 20마일 가량 떨어져 있다. 시돈은 바다에 면하고 있으며, 상업은 시돈 주민의 특성을 결정지었다. 시돈의 뒤에는(동쪽) 높은 레바논 산맥이 둘려 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건설했다고 한다. 이것은 시돈의 오랜 역사를 생생하게 증거해주는 것이다(창 10:15 대상 1:13). 시돈은 B.C. 1400-1375년의 텔 아마르나 서신에서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시대에 땅을 분배할 때 "큰 시돈"은 스불론과 아셀 지파 접경에 있었다(수 19:28). 시돈은 B.C. 2,000년경에 가장 번영을 누렸다. 시돈 상인들과 선원들이 이사야(사 23:2)와 에스겔(겔 27:8)에 의해 언급된다.
시돈 사람들의 광신적인 바알과 아스다롯 숭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많은 배교를 하게 하였는데, 시돈 왕 엣 바알의 딸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왕상 16:31-33 왕상 18:18 이하; 왕상 18:25-28 왕상 18:40).
앗수르가 멸망했을 때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고, 페르시아에게 점령 당하여 그 통치 기간 동안에- 다섯번째 페르시아 통치 관구의 시돈 속주로서- 시돈의 부는 뵈니게의 모든 다른 지역의 부를 능가하였다. 페르시아의 크세륵세스와 그리스의 해전에 시돈의 함대와 선원들이 참가하였으며, 알렉산더 대제(B.C. 330년)에 의해 페르시아의 속박에서 풀려났다.
신약시대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왔다(눅 6:17).

에바다:
ejffaqav(2188, 엡파다)
에바다
엡파다는 아람어 페타흐(열다)의 엣파알 명령형 엗 파타흐(너는 열리라)의 음역이다.
신약성경에서 엡파다는 막 7:34에 한번 나오며, '너는 열리다'를 의미한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데가볼리:
Dekavpoli"(1179, 데카폴리스)
데가볼리 Decapolis (지)
데카폴리스는 데카(devka, 1176: 열, 십)와 폴리스(povli", 4172: 도시)에서 유래했으며, '열 개의 도시'를 뜻하며, 요단강 동쪽 지방인 데가볼리를 가리킨다.
데가볼리라는 명칭은 요단강 넘어 시리아와 접하여 있고, 그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더 작은 마을들과 함께 열 개의 주요한 성읍을 포함하는 므낫세 지파의 한 지역에 의해 생겨났다. 그러나 고대 지리학자들은 이 열 개의 성을 열거하는데 있어서 서로 다르게 열거한다. Pliny 1. c는 다마스커스를 열 개의 성읍 가운데 포함시키나 요세푸스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데가볼리는 3회 나온다(마 4:25 막 5:20 막 7:31).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 예수님은 이번에는 이방 두로를 이어 이스라엘 중심 보다 그 주위의 이방인 지역이 섞인 곳을 향해 복음 전도 여행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곳은 지금의 이스라엘이 아닌 레바논 지역과 이스라엘 동쪽 지역인 시리아에 인접한 지역 데가볼리입니다. 지금 이 지역들은 이슬람에 가까운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화 율이 낮을 뿐 지역은 조금씩 교회가 세워져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더 복음의 불모지 시리아에서도 교회가 있는 것을 기사를 통해 확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돈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이 공주로 있던 곳으로 매우 우상제사가 심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레바논이 우상제사에 반대하는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듯 현재까지 하나님과 매우 반대하는 지역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요단강 동쪽도 하나님과는 비교적 먼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 하나님적인 곳이 강하기도 하지만 두로와 시돈과 데가볼리 지역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신약시대 예수님을 많이 찾아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친기독적인 흐름은 어느정도 2000년을 지나는 동안 작게나마 유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하나님과 소외되는 멀어지는 지역과 사람이라도 그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을 봅니다. 그 중 하나는 반벙어리이며 귀먹어리 사람을 고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손을 대시고 말씀의 명령으로 신속하게 고치시는 능력을 보이십니다. 본문에는 에바다가 열리라는 뜻만을 적어 놓았지만 더 자세히는 너는 열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며 피조물의 창조주인 것을 봅니다.

컴퓨터등 인간의 모든 프로세서 기계가 명령어를 통해 그것을 다스리듯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기 위해 명령어를 쓰십니다. 너는 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 그의 입이 열리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이를 통해 순수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믿는 것을 봅니다. 이 기록과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이심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치유는 그 어눌했던 자의 믿음과 그를 돕고자 하는 자의 믿음에 의한 것임을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을 의지하면 우리가 나아질거야 하는 분명한 믿음들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치료는 지체되지 않고 급속히 이루어지고 모든 그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을 봅니다. 매우 낮고 천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자유를 얻고 병의 노예요 마귀의 노예의 사람이 즉시 창조주 하나님이신 주인을 잘 만나고 큰 도움을 얻게되 자유롭게 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침은 어떠한 분은 상대를 저주할 때 침이 일반적으로 사용이 된다 합니다. 그 침은 그 병자안에 있던 악령이 떠나기 위해 침을 내신다고 해석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창조의 능력이고 생각합니다. 악령을 내쫓는 것이 아니고 그 침 자체가 혀에 녹아져 일반인과 같이 혀의 말할 수 있는 근육으로 바뀐다는 것이죠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과 같이요

보잘것이 없어 보이는 침이 하나님 안에서는 창조의 능력 생명의 능력이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라도 주님은 그 안에 믿음을 보시고 큰 능력으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전도 구제 나눔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믿음 안에 늘 꾸준히 낙심치 말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엔 영원한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박혀 있는 상급이 될 것입니다.

내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여 우리가 그들을 자유하게 하였는가 나를 돌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의 복음에 순종하여 나와 우리 가정이 참 자유 가운데 놓여 있는 가를 돌아 보십시오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하며 권위를 가지고 나 또한 자유과 권위와 감사의 길로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급속하게 치료의 손길을 우리 하나님은 내미시고 즉시로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에 대하여 3가지를 연구하여 보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대상을 선정하시고 강제가 아닌 자유를 주시고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영원히 죄를 사하여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주시는 것을 봅니다. 즉 사랑의 3 속성은 대상성, 자유성, 영원성이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그 사랑을 하기를 원합니다. 전도의 대상을 찾으시고 강제가 아닌 자유함 가운데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꾸준하게 전하시기를 원합니다.

자유를 준다하여 상대가 복음을 거부하면 끊는 경우가 저를 포함해 많을 텐데 계속 상대의 믿음의 상태를 보며 매일 전하던가 주간 단위로 전하던가 월간 단위로 전하던가 상태를 가늠해 보시고 아예 복음을 거부하는 분이라면 자주 기도라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야로 복음의 씨를 뿌리시는 자녀들의 열심을 귀하게 보십니다. 열매가 곧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한 은혜를 사랑의 복음을 전하시기를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 성도와 나 자신이 되기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이전 본문을 통해 천하게 여겨진 이방의 여인의 자유함과 오늘 본문을 통해 천박하게 여겨진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자유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인은 딸을 사랑하였고 병자의 지인은 그 병자를 사랑하여 믿음으로 모두가 사랑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선한 역사와 구원을 얻게 됨을 봅니다. 이제는 주님 다시는 우리가 불신과 불순종과 무정함으로 다시 허물을 범하여 옛사람과 어제의 일들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 생각과 행동들을 온전하도록 용서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믿음의 생활들안에 거하여 다시 시험 받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 가득한 한반도와 세상과 이웃의 모든 가정들과 우리 가정과 모든 개인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 찬양 송축 감사 존귀 홀로 받으시길 원하오며 늘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