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덧붙임: 네이트 들어와서 너무나 놀랬습니다.. 사실 모든게 내가 지고 갈 삶이라는걸 알면서도 한번쯤은 누구에게 응석도 부리고싶고 위로도 받고싶었지요.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지라 일부러 더 기대는 안했어요. 사실 한 두분쯤은 리플을 달아주시기를 바랬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것도 자기일처럼 리플로,쪽지로,메일로 격려와 충고를 주셔서 울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면서 죽길 바란적은 있어도 '자살'은 단 한번도 생각 안해본건,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도 아니거니와,가족도 있고 무엇보다 세상엔 이렇게 아버지와 비교할수 없는 좋은 사람들이 많단걸 알기때문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세상에 감사하게 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진지하게 얘길 해봤는데 동생이 고3이라 올해 안에는 이혼하실 생각이 없다하시네요. 너무 오래 지옥처럼 살아오신 나머지 이젠 자기자신에 대한 모든걸 체념해버린 엄마가 측은하고 답답합니다. 저로선 오히려 민감한 고3시기에 저런 아버지는 없는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엄마는 아들에겐 아빠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일단 1년간 아무일 일어나지 않기를 빌다가 내년에 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분 이혼하게 만들겁니다. 다만 궁금한 점은 예전에 저희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진이나 진단서는 남아있지 않고 증인은 대강 가장 오랫동안 저희집에 함께 살았던 고모가 좀 알고 계시지만 자세히는 모르시고 결국 폭력과 외도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인은 오로지 저 하나 뿐입니다. 최근엔 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리지 않으시고 심적으로 더 괴롭게 조이고 있어서 폭력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는데 그게 이혼사유가 될수 있나요? 제가 증언할수는 있지만 저의 증언이 효력이 있는지, 그리고 이 경우 이혼이 성립한다면 저희 어머니가 양육권을 모두 가질수 있으실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도 법률적으로 알아볼 예정입니다만 혹 법쪽으로 지식이 있으신 분들 제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긴 글에 또 긴 댓글 붙여서 죄송합니다. 항상 모든 분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저는 정말 이 나라에 쓰레기같던 아버지의 존재를 메꾸고도 남을만큼 충실하고 필요한 존재가 될것을, 약속드립니다. ------------------------------------------------------------------------------------- 전 어떤 흉악한 사람이든 그 사람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악만 끼치는 기생충같은 사람일지라도 사는 동안 단 한사람에게만이라도 진심으로 사랑을 줄수 있으며..(가족이든 애인이든..) 그리고 죽기전엔 한번쯤은 참회할수 있는게 인간이 아닐까? 라고 믿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21여년.. 지금 나의 아버지앞에서 이 모든것이 자신없게 무너져갑니다. 나의 아버지는 올해 쉰..인생의 2/3을 살았지만 아직도 정신적 도덕적 연령은 초등학생만큼도 못한, 인생의 절반 넘어를 헛살아온 그러나 자기자신은 헛살았다고 생각도 하지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버지의 폭력은 4,5살쯔음..? 모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밥상위 김치가 다 삭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배에 베개를 집어던지던 모습입니다. 보통 푹신한 베개가 아니라, 어른들이 좋아하는 딱딱한 배게를 예고없이 전속력으로 던져서 엄마는 마치 배에 총을 맞은 사람처럼 그대로 몸이 붕떠서 허리가 꺾이며 바닥으로 넘어지셨던 모습이 아직도 무슨 영화처럼 생생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노라하는 부잣집, 양반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얼굴도 한번 뵙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7년간 자식이 없다 처음으로 우리아버지를 보셨고 저희 아버지가 태어난 이래 줄줄이 4남 1녀가 태어나 저희 아버지는 장남이자 동생 배를 틔운 복덩어리로 어릴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보물단지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고향은 요즘 세상에도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안이라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여보이는 엄~청 옛스런 시골마을이고 아버지의 집안은 대대로 마을의 지주, 때로는 탐관오리로(제가 추측컨데..) 지배해온 가문이었지요. 그런 가문에 대한 저희 아버지의 애착과 기세등등함은 도를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요즘 세상에 누가 가문타령을 합니까? 전 그놈의 집안이 아버지때문에 치가 떨리게 싫어졌습니다. 친구들을 데려와도 사람의 성씨로 쟤는 ㅂ씨니 상놈 집안이라 예전에 태어났음 감히 니 그림자도 못 밟았을 애라니, ㅈ씨들은 대대로 무식한 머슴들이라니 멸시를 하고 정말 기가 막히지요. 그러면서 우리 가문 이름 하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는양 너무나 착각을 하고 사는게 이 사람,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래봤자 촌동네 옛날 양반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내는건 저였구요) 당연히 어릴때부터 우리아버지는 엄청난 왕자 대접을 받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엄마는 원망하십니다. 아버지를 이런식으로 키운 할머니를.. 할머니는 장남에게 너무나 많은것을 허락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장남은 커서 거짓말과 엄살과 허풍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건달이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그 옛날, 그것도 촌에선 구경도 하기 힘든 초콜릿과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꾀어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의 나쁜 버릇과 헤픈 씀씀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돈을 보고 꼬여드는 친구란 뻔하지요? 온갖 친구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 잘난 아버지 친구들에게 사기당한 재산만해도 억대에 이릅니다. 은행에 집어넣고 이자만으로 살아도 자손 대대로 먹고 살수있다던 집안의 재산을 깡그리 날리고도 남은 빚이 자기자신과 우리어머니까지 신용불량자로 만들어버린 인간이지만 여전히 "폼 안나는 일은 감히 내가" 하기 싫다며 백수로 놀고 먹는 아버지, 그러나 그건 용서한다해도 제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건 저희 엄마에게 행한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우리 엄만 종갓집 종부로 시집오셔서 신혼부터 우리 아빠아래 형제들, "3명의 도련님과 1명의 아가씨"를 모시고 살아야했구요.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덕에 없었던 시집 살이를 바로 옆집에 사셨던 먼 촌수의 할머님 세분에게 3배로 겪으셨습니다. 게다가 어릴때 너무나 속을 썩였던 제가 있었구요. 그 할머니들이 어떤 사람이었냐면 잠만 우리집에서 안 자지... 아침잠을 깬 순간부터 자러갈 시간까지 우리집에 셋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 세끼 다 받아먹고 온갖 훈수와 잔소리를 다하며 엄마를 괴롭혔습니다. 모유를 먹지 않아 우는 저에게 우유를 먹이려는 엄마를 호통치며 "애를 아랫목에 뒤집어두면 지가 죽을까봐 다 먹게 되어있다"며 생후 1개월도 안된 저를 정말로 아랫목에 뒤집어두고 방치해 거의 죽을뻔 하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저는 2.5키로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뻔했던 미숙아였습니다.) 고집이 쎈 저는 아랫목에 뒤집혀 굶겨진 채 자지러지게 울다 목이 쉬고 숨이 막혀 아사 직전까지 갔구요. 그제서야 죽을까봐 겁이 난 할머니들은 우유 먹이는걸 허락했구요. 우리 엄마도 엄마지요? 지금은 많이 강해지셨지만 그땐 자식 죽여가는걸 앞에서 뻔히보면서도 아무말 못하고 울기만 하던, 마음이 약하다못해 바보스럽고 순종적인 분이셨습니다. 저희 엄마는 할머니 세분을 봉양했고 1년에 스무번에 달하는 제사, 차례, 묘사준비와 시골 본가 관리, 수도 없이 종갓집으로 찾아오는 촌수도 까마득한 온갖 친척들과 손님 치레를 하셨구요. 삼촌들과 고모의 머슴처럼 살았습니다. 저희 엄마는 남들이 하루에 3번 차리는 밥상을 12번 차리셨습니다. 온갖 손님들과 할머니 3분, 아버지, 세명의 학생이던 삼촌들과 고모의 식사시간이 들쭉날쭉했고 한참 식성 왕성하던 삼촌들의 야참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었지요. 고모는 설겆이 한번 도와준적 없고 삼촌들과 아버지도 자신의 귀한 여동생이 부엌을 드나드는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고도 밥상도 엄마가 가지러 가기전까진 방밖으로 밀어주지도 않았고 물한잔 제손으로 안떠먹었지요.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넓고 크던 2층 주택 집 곧곧 하루에도 몇번씩 전쟁터처럼 뒤집혀지던 광경, 모두 출근하고 학교로 가면 할머니 3분의 온갖 참견을 받아가며 집안을 쓸고 닦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우는 저를 달래며 쉴틈없이 밥을 짓고 설겆이 하고 또 밥을 짓고 설겆이 하고 또 청소를 하고......... 게다가 저는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저때문에 저희엄마는 하루 2시간도 자지 못하고 저 강행군을 했습니다. 몸도 너무나 약하던 엄마가 쓰러지지않은게 신기하지만 생각해보면 저희엄마는 오랫동안 맘편히 쓰러질수조차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때문이죠. 저희 아버지는 요즘 시대같으면 누구도 시집은 커녕 맞선자리조차 들어오기 힘들 조건의 (너무나 까다롭고 친척많은 종갓집 종손에 부모없는 동생이 줄줄줄 넷이나 딸린.. 게다가 저희엄마는 그 동생들을 하나하나 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야했습니다.) 신랑감이면서, 어찌나 뻔뻔스럽고 기세등등했던지.. 뭘 믿고 그랬을까요? 찬 물에 수도꼭지에서 애를 업고 빨래하는 엄마, 손이 트고 폐결핵까지 걸렸는데도 밤중에 울어대는 나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며 추운 밤 엄마와 나를 밖으로 내쫓았고, 시동생(삼촌들)의 밥상에 어쩌다 한번 고기가 없다며 밥상을 뒤집고 임신 4개월이던 엄마의 배를 발로 찼습니다. 그 당시 엄마 뱃속에서 아빠 발길질을 받던 제 동생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엄마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쥐어뜯고 하루에도 수십번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자기 맘에 안들면 바로 손부터 날아가고 욕이 튀어나오던 더러운 성질머리때문에 저희 엄만 심장이 너무 약해지셨으며 저와 저희엄만 지금도 큰소리를 들으면 심하게 깜짝깜짝, 움찔거리며 놀랍니다. 저는 어릴때 빌었습니다. 아빠가 제발 오늘은 소리를 안 지르고 넘어가게 해주세요. 사업을 시작하며 하루에 한번 얼굴도 보기 힘들던 아빠, 출근도 퇴근도 자기멋대로였으며 사업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긴채 사장직함으로 돈을 뿌리고 여자들만 만나던 아빠.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1시간에 2번꼴로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으며 엄마멱살부터 잡던 아빠. 아직도 귀에 선한 악몽같은 광경이지요. 씨발년이라는 욕부터 시작하며 니가 도대체 남편을 뭘로 보는거야 엉! 하고 멱살을 휘어잡고 너무 작고 갸냘프던 엄마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던 아빠. 제발 그러지말라고 아빠 다리에 매달려 울부짖던 나. 엄마와는 달리 나와 내동생, 특히 나를 애지중지하던 아빠지만 화가 나면 자식도 없습니다. 발에 매달린 나를 발로 차고 욕을 퍼붓고 리모콘을 내 머리에 던져 박살낸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제동생은 너무 어렸고,거의 밤잠이 깊기에 이런걸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아빠에 대한 증오가 뿌리깊지 않지만 저는 모든것을 기억합니다. 의지할 언니나 오빠가 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 세상 모르고 자는 동생이 혹시나 깰까, 그래서 저 추악한 광경을 보게 될까 문을 닫고 동생 귀를 막고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아빠나 자기자신중 어느 한명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소망했습니다. 평온하게 잠든 동생이 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너무나 많이 기절할만큼 울었습니다. 그때의 저에겐 제 방에 있는 성모상과 십자가가 유일한 희망이고 구원이었지만 그들은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몇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않습니다. 여전히 아이는 엄마의 비명소리와 아빠의 욕설이 동생에게 들릴까 가슴 졸이며 울고, 견디다 못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아빠에게 제발 엄마 때리지마세요 아빠,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라며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는 잘못한것이 없지만 항상 빌고 빌었습니다. 아이는 10살도 되지않은 나이에 이미 가슴 졸이며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비굴해질 요령을 배웠습니다. 사업이 성공해 돈을 벌며 아버지는 더 난폭해집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리는것으로 모자라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방안으로 끌고가 문을 잠급니다. 눈 앞에서 맞는것보다 단절된 문안에서 이루어지는 보이지않는 폭력이 아이에겐 더 큰 공포입니다. 그것은 정말 아빠의 발에 매달려 말릴 수조차 없는 무기력하고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나는 안방과 연결된 베란다로 넘어갑니다. 유리창안의 안방에서 엄마는 아빠의 손에 들려져 벽에 밀어붙여진채 목이 졸리고 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강요하고 엄마는 말을 할수가 없어 숨이 막힌채 꺽꺽거립니다. 때때로 아빠는 엄마를 베란다 난간에 몸을 반 이상 밀어 냅니다. 10층 고층아파트의 난간에서 엄마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고 아빠는 엄마의 목을 조르며 죽으라고 합니다. 죽으라고, 니년이 죽으라고. 난 니년 아니라도 데리고 살 년이 많다고. 멍청하고 답답한 니년이 죽어서 내가 딴 여자 데리고 살수있게 해달라고. 엄마는 아빠가 두려워 세탁기 속에도 숨고 쌀독속에 숨기도 하지만 대부분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동네 망신이 두려워 집밖으로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 배운 달걀의 용도는 엄마의 멍든 눈에 문지르는 것입니다. 엄마는 피멍들고 아빠의 손자국이 난 목과 멍투성이인 몸을 감추기 위해 목이 길고 발끝까지 옷자락이 덮는 홈웨어를 입기 시작합니다. 아빠는 와이셔츠에 립스틱자국을 수도 없이 묻혀오고 동네에 온갖추문이 가득 퍼질정도로 매일매일 여자들과 함께 나돕니다. 아빠가 여자들과 찐하게 뒹구는걸 가까운 사람들까지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알려주고 엄마는 모든걸 알면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너무나 강하고 성품이 꼿꼿한 엄마는 아빠의 추태가 혐오스럽고 사람들 보기 창피합니다. 집에는 다방여자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아빠는 자식들과 엄마가 어쩌다 대동하게 된 단란주점에서,(기가 막히지요. 그 어린애들과 마누라를 어떻게 데리고 갈수있는지...) 아가씨의 엉덩이를 주물럭대며 브루스를 춥니다. 또는 나를 태우고 어딘가를 지나는길에 다방에 들러 내게 요구르트를 쥐어주고 눈앞에서 다방 레지들과 수작을 나눕니다. 심지어 아빠 친구 부부와 우리 가족이 대동한 식당에서까지 식당 아줌마에게 몰래 폰번호를 건네주며 추태를 부립니다. 아빠 친구 부인이 그걸 보고 거품을 물며 아빠를 혼내지만 아빠는 진심으로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정말로" 알지 못해서 어리둥절하고 이미 체념한 엄마는 제발 사람들 눈에만 띄지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몇년, 겉으로 포기엔 풍족한 콩가루 집안에서 엄마는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종교와 사회봉사활동에 매달리며 집을 자주 비우고 활달한 동생이 집밖에서 뛰어놀며 거의 매일을 보내는 동안, 어릴땐 너무나 활발하고 명랑하던,그래서 친구들도 참 많던 저는 잦은 전학과 어린나이에 너무 많이 보고겪은 모든것으로 인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책만을 읽으며 점점 말이 없어져가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보다 다루기 편하고 어른을 편하게 하는 아이는 "어른에게 착한 아이"이기에 아무도 나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서로의 틀에만 박혀가며 가족은 하나로 뭉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기만 하며 팽팽하고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6학년이 되던 해,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빚쟁이들의 위협을 겪게 되었습니다. 겪지 않은 사람외엔 모를거에요, 그 무서움을. 우리는 한여름에 겨울 커튼을 치고 살았고 혹여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방에 모여 부둥켜 안고 지냈습니다.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을 갔구요. 자신에게 빚쟁이들의 추격이 따라오는걸 피하기 위해 우리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있는대로 뿌리고 갔기때문에 우리집으로 모두가 몰려왔습니다. 초인종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죽기보다 싫은 마음을 아세요? 저는 지금도 누가 우리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그리고 전화벨 소리가 제일 싫습니다. 깜짝깜짝 놀라고, 죄도 없는데 전화 받기가 겁이 나서 지금도 전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습니다. 항상 전화기에 아빠없다고 거짓말하던 기억때문에 전화가 정말이지 싫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싫습니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엄마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수시로 우리를 모아두고 다짐시켰습니다. 초인종소리가 나면 누구냐고 묻지도 말고 숨죽이고, 집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주의깊게 듣고, 학교마치면 곧장 집에 와서 나가지말고, 전화도 받지 말고, 집안에서 밖으로 새어나갈만큼 떠들지 말고, 우리는 '죽은 듯이 없는듯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현관에서 가장 먼 안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초인종 소리가 나면 엄마는 우리를 끌어안습니다. 셋이서 끌어안고 초인종소리와 발소리가 사라질때까지 이불속에서 버팁니다. 빛이 새어나갈까봐 커튼을 두껍게 쳐서 온통 어두운 집안에서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속이거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위장하는 법을 배웠구요. 학교로, 집으로, 빚쟁이들이 들이닥칠까봐 조마조마하며 우리가 지지도 않은 빚으로 인해 우리가 죄인이 된듯 주눅들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허영심은 끝이 없어서 그후로도 끊임없이 부도를 내면서도 아빠는 사업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장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족이 숨죽이며 시체처럼 사는 동안, 엄마가 노이로제가 걸려 사는 동안 우리를 도와준 친척 아무도 없었고, 엄마 아빠가 키우고 결혼시킨 삼촌고모들 누구도 우릴 도와주지 않았고 아빠는 자기 혼자 유유히 몸 피해다니며 혹시 자기 몸에 털끝만큼이라도 상처입을까봐 덜덜 떠는거 외엔 우리 걱정 한번 없이 돌아다니며 도박하고, 여자들이랑 드라이브하고 좋다는 정력제 다 챙겨먹고 잘 살았습니다. 어느날 한번 아빠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가 울며 하소연 하자 버럭 화를 내던 아빠, "그거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해?? 뭐가 어려워?? 없는척 잠깐만 하고 살면 될거 아냐!!" 중학교 3학년, 드디어 돌이킬수 없을만큼 사업이 망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엄마는 결심을 하고 저와 제 동생만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게에 딸린 단칸방이었습니다. 5평도 안되는 단칸방과 난생 처음 쥐라는걸 구경시켜준 부엌, 3집이 함께 쓰는 공용 푸세식 화장실, 샤워실도 세면기도 없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찬물로 세수를 했고 셋이서 그나마 잡다한 가구로 들어찬 집에서 발도 못 펴고 잠을 잤습니다. 5평도 안되는 작은 단칸방에, 그나마 경매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챙겨온 잘 살던 시절의 좋은 가구들. 그 방을 가득 메운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TV를 보며 그 우스꽝스러운 풍경에 셋 다 말할수 없이 참담했습니다. 이사하던 날은 비가 왔고 남들 눈을 피해 몰래 몰래 이사하느라 너무나 힘이 들고 서러웠지만 아빠는 짐 드는것 한번 도와주지 않고 못마땅해하며 담배만 피우다 가버렸습니다. 자기 말로는 다 해결할수 있는데 우리가 조금만 더 참지 못하고 고생을 자처한다면서, (지금껏 해결은 커녕 빚만 더 불었고 그 집은 결국 경매로 모두 넘어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없으면 자기 먹고 자는건 어떡하냐고 짜증내다 가버린 뒷자리에서 우린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갑작스레 바뀐 비참한 환경에 슬퍼할 여유도 없이 흠뻑 젖은채 열심히 짐을 나르고 정리했습니다. 저희 엄마, 마음 약하고 누구나 귀부인같다고 하던 우리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저희 가게는 바로 제가 전학간 학교의 앞이었습니다. 잘 살던 집 아이들이 유난히 많던 그 학교에서 저는 학교앞 코딱지 만한 가게 딸이었고 엄마는 저랑 같은 반 아이들의 동전을 벌기 위해 열심히 비위를 맞추고 새벽부터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다른 가게는 남자와 함께 하는 모든것을 홀로 짊어지고 나르고 정리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가게를 하고 계시고 백원짜리 하나에 덜덜 떨며 짜장면 한번 시켜먹을까 말까 하루종일 고민하다 돈이 아까워 라면을 끓여드십니다. 혹 우리에게 짜장면이나 짬뽕 시켜주실땐 우리몫만 시키시고 자신은 국물이나 찌꺼기에 찬밥을 비벼 한끼를 해결하십니다. 저는 단칸방에 사는게 부끄럽지 않아서 친구를 단칸방에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전 오히려 숨죽이고 살던 그 지옥같던 넓은 집 보다, 혼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던 그 썰렁한 아파트보다 셋이 몸을 밀착하고 하루종일 같이 보낼수밖에 없는 단칸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따를 당했어요. 몇몇 아이들은 일부러 제 어깨를 치고 지나가놓고 더럽다고 호들갑을 떨며 제가 보는 앞에서 어깨를 털거나 진저리를 치고, 대놓고 욕을 하고 도시락도 혼자 먹고, 책상도 외따로 떨어져서, 쉬는 시간 항상 친구들과 노는것에 너무나 익숙하던 제가 쉬는 시간이 가장 두려웠어요. 할일이 없었고 말을 걸 사람도 없었기에, 저를 바라보던 시선을 피해 졸리지도 않은데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죠. 그 사실을 알게된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저는 저대로 난생처음 겪어본 왕따에 얼마나 울었는지.. 지옥같던 시절이었겠죠, 엄마에게는.. 저에게도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다행히 고등학교로 올라간 후 전 예전처럼 많은 친구가 생겼고,두번의 이사끝에 작은 아파트 전세로 들어가 우린 다시 각자 방을 가질수 있었지만, 다시 아빠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빚쟁이들이 우릴 다시 괴롭히지 못하도록 이사간 곳 전화번호를 아빠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빠는 엄마를 닥달해 전화번호를 알았고 주소를 모든 사람들에게 생각없이 떠벌리고 다녔지요. 저는 친구까지 잃었습니다. 빚쟁이들 몰래 이사하느라 전학 당일까지 친구들에게 전학간단 말을 할수 없었고 수많은 친구들은 울고불고 편지하라며 약속했지만 그걸 지킬수 없단걸 아는 저의 그 비참하고 서럽던 심정, 빚쟁이들에게 소문이 퍼질까봐 이사하는 곳까지 비밀로 해야했기 때문에 이사가는 도시도 거짓말로 다른 곳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우린 정든 고향의 정든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어야 했습니다. 왕따를 당하며 피눈물 나게 친구들이 그리웠고 유일한 보람은 그 시절의 추억이었고, 아이들이 날 원망할 거란 생각에 너무나 많이 울었지만, 가슴 찢어지게 아팠지만, 누구에게도 우리가 어디에 산다는걸 말해서는 안되기에 나도, 내동생도, 엄마도, 모두와 연락을 끊었고 다시 첩자처럼 숨어 살았고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지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피눈물 흘리며 지켜온 안식을 아빠는 너무나 쉽고 생각없이 부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우리집 주소를 내뱉었고 또다시 자기가 빠져나가기 위해 우리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줬고 급기야 나의 학교로 빚쟁이가 찾아오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시절 나는 모든것을 거짓으로 위장하고 살았는데, 정직하라고 끝없이 배울 그 나이에 사는 곳, 학교, 전화번호까지 거짓말로 위장하고 살았는데.. ..글이 자꾸 너무 길어지네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어서 간추릴 부분 간추리고 삭제할 부분 지워내도 너무 기네요. 나눠쓸까 하다 그냥 씁니다. 한분이라도 봐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라도 여기에 비워내는 넋두리로도 전 시원할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 못하거든요. 아직도 빚쟁이가 있기 때문에 전 친구에게도 이런 얘길 하지 못해요. 여직껏.. 여러 일이 있다 저희 아빠는 경매로 넘어간 집대신 여관을 전전하며 살게 되었고 저희엄마는 이혼을 요구했지만 동의해주지 않았을뿐더러, 저희집이 잘 살때는 엎어지던 친척들 저희가 그렇게 살땐 안부전화 한번 없더니 엄마가 이혼 상의를 한번 하자마자 일제히 우리엄마를 비난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되도 않는 여편네라니, 비열하다느니, 남편을 버린다느니,이혼이라니 감히 우리집안에.. (이놈의 이씨집안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지금도 우리아빠 집안 우리아빠랑 아빠 형제빼고 다 잘났습니다. 검사, 경찰, 의사, 정치인... 그러면 뭐합니까. 비리투성이에 속물인 인간들. 전 성공하면 이 인간들에게 가장 먼저 복수하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현실을 깨달아서 성공하긴 힘들것 같지만..^^;) 그 상황에서도 아빠는 제사를 꼬박꼬박 모셔야 한다하여 우린 아득한 촌수의 조상님까지 제사를 모시고. 아빠는 슬그머니 우리 생활에 침입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돈 문제와 여러 문제로 친척들 사이의 의리도 틀어졌구요, 전 정말 혈육의 비정함을 알았습니다. 어릴적 한집에서 지내며 우리엄마가 차려준 밥, 엄마가 빨고 다려준 옷을 입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대신 엄마아빠가 보호자로 그 힘든 결혼 절차 4번이나 치러내고 시집장가 보냈는데.. 어릴적에 첫조카인 저를 그렇게 이뻐했었는데, 각자 가정을 이룬 후엔 모든게 과거일뿐이더군요. 이 글을 보면서 혹 찔리는 분들 있다면 정말 그러는거 아닙니다. 자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혈육, 조카들 보살피세요. 그 조카나 친척들이 인간성 되먹지 못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기 가족 감싸기 급급해서 조카 혈육들 박대하지 마세요. 그거 다 자기 자식들에게 돌아옵니다. 혼자 사는 세상 아니잖습니까. 당신네들이 영원히 자기 자식 지켜줄수 있는거 아니고, 죽고 자식들만 남으면 그 자식들이 서로 의지할건 결국 자기 형제 혹은 사촌들 아닙니까? 전 이제 제 사촌친척들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도움 주고 받고 감싸안을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제사? 그거 이제 제 동생 의무 아니게 할겁니다. 제 동생 종손이지만 그 의무는 지나가는 개나 주던지, 둘째 작은 아버지네가 다 가져가십시오. 종갓집 고통 느껴보시고, 의지할 친척없이 살아보십시오. 당신들끼리 잘 살던지.. 우리 단칸방에 살때 쌀 한됫박 보탬 없고, 제사 제수비용 아까워 덜덜 떨고, 혹여 우리가 자기들에게 구걸이라도 할까, 손 한번 벌릴까 겁이 나서 외면하며 아빠가 빌려간돈을 엄마에게 모진 말로 닥달하던 당신들이 그 잘난 집안 전통 핏줄 다~~~~~ 가져가십시오. 난 내 몸에서 이씨집안 피가 반이나 흐르고 있다는게 치가 떨립니다. 뽑아내고싶도록 싫습니다. 그후로도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큰소리였고 폭력도 휘둘렀으나 저와 제 동생이 크면서 횟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미 제동생이 아빠보다 키도, 힘도, 더 자라버렸거든요. 그러다 저와 아빠의 싸움이 터졌습니다. 대학문제로 인한 다툼이었는데 그때 저는 모든걸 폭팔시켰습니다. 아빠가 엄마와 우리에게 행한 모든것들과, 저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저는 어릴적,아빠의 친척이자 저의 육촌 오빠 되는 사람에게서 오랫동안 성추행을 당했습니다.-까지 모두 쏟아냈습니다. 아빠는 칼을 휘두르며 날뛰었고 엄마에게 한 폭행에 대해 따져묻는 저에게 변명 하더군요. "ㅇㅇ아, 우리나라 모든 가정들이 다 그렇게 살아. 엄마가 잘못하면 아빠가 당연하게 때려야되는거야. 여자는 사흘에 한번 때려야 한다는건 속담에도 있지만 아빠가 그렇지는 않았잖니? 당연히 세상 모든 여자들이 맞고 사는거고, 그건 엄마가 잘못했기때문에 아빠가 그런거야. 이건 당연한거야~~" 소름끼치는건 이말이 아빠의 진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말에 동조하는 분 계시나요? 정말로 세상 모든 가정들이 이렇게 사나요? 아빠는 진심으로 말하고 믿고 있더군요, 이런 가정은 너무나 흔하다고. 다만 우리엄마가 인내심이 부족하고 남편 모실줄 몰라서 반항하는거라고. 제가 그럼 제가 결혼해서 제 남편이 저를 때려도 되는거냐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펄쩍 뛰더군요. 저와 제 엄마가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이놈의 기집애가 오냐오냐 했더니 지랄한다고 펄펄 뛰며 저를 때리더군요. 저에게만은 약하던 아빠, 그러나 그 사랑이 진심으로 자식을 향한 사랑이라기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귀여운 애완동물 대하듯 값싼 사랑, 자기 좋을때만 뽀뽀와 애정을 퍼붓고 화가 나면 앞뒤 볼것 없던 얄팍한 사랑. 그걸 알고있엇기때문에 더 슬프던 저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맞아봤습니다. (엄마를 때리는걸 말리던 때를 제외하고 아빠가 저를 향한 폭력으로.) 칼을 뽑아 날뛰던 아빠와 그런 아빠에게 울며 처음으로 대들던 동생, 울부짖으며 아빠보다 세진 힘으로 아빠를 붙잡고 그래도 난 이제껏 아빠를 사랑했다며, 하지만 이제부턴 그럴수 없을것 같다며 엉엉 울던 서럽게 울던 덩치 크고 어린 내 동생, 바닥에 쓰러져 제정신 아닌듯이 울던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온 몸의 눈물이 다 빠져나가도록 울고 이제는 미친듯이 웃고 있던 나. 모두에게 그 날밤은 최고의 지옥이었지만 저는 후련했습니다. 그날을 계기로 뭔가 변했냐고요? 그렇다면 제가 이런글을 쓰지 않겠지요. 그후로도 이런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아빠는 기가 꺾인듯 보였고 집에 오면 리모콘 하나 자기 손으로 안 집던 사람이 자진해서 설겆이도 하고 마늘까기도 도와주고.. 저도 잠시지만 처음으로 화목한 가정을 꿈꿨지만 그 모든건 우리에게 불쌍하고 정신차린것처럼 보이기 위한것, 우리가 친절하게 대하면 아닐말로 다시 '기어오르듯' 권위를 찾으려 했고 아빠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놈의 집구석은 가장의 권위를 무시한다' 였지요.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의 권위는 태양왕처럼 찬란하고 누구도 감히 뒤엎을수 없는 절대 왕좌, 아무때나 밥상을 뒤집고 숟가락을 던지고 아내 목을 졸라도 누구나 반항없이 복종하며 자기가 미소를 한번 보내면 상을 받은 노예처럼 황공함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그런 가족들위에 군림하는 것이었고 그게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었지만 우린 미안스럽게도 아빠의 그런 위대한 꿈을 이뤄줄 수 없었지요. 아빠는 요근래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며 정신 차린듯 보였지만 최근 다시 밥상을 뒤집고 엄마 뺨을 때리며 "니가 그따구로 하고 다니니까 옛날에 맞고 살았지! 당연히 맞을만 했네 니가 행실을 잘했으면 내가 때렸겠냐" 폭언을 퍼부었고 지금 독립해 편입준비를 하고 있는 저에겐 온갖 상냥한 말로 전화를 하지만 엄마에겐 그 스트레스를 다 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빠의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엄마 욕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아빠의 친구들은 우리엄마를 미친년이라고 부르며 정신병자라고 알고있고, 친척들도 다 엄마를 너무나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뭉쳐다녀 엄마에겐 제사와 집안행사가 지옥입니다. 아빠는 저에 대한 구속과 집착이 심각하여 제가 전화를 한번이라도 받지않으면 계속 해대고 끊임없는 전화와 간섭, 지금도 오직 저를 곁에 두고싶다는 이기심 하나로 엄마를 닥달해 엄마가 나돌아 댕기는 딸내미 앉힐 생각은 안하고 병신같이 쿵짝이 맞아 내버려둔다며 저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뒤로 엄마에겐 어서 나 내려오게 해서 지방대 편입시키고 시집이나 잘 가게 하라고 닥달하고 있더군요. 지금 저는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만 저는 그림을 그리고싶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싶습니다. 당연히 제 인생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빠에게 딸이란 자기 인생의 일부이며 여자란 적당히 이름난 4년제를 나와 선보고 시집가는 인생이 평탄하며 결국 이 길밖에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그전에 가지는 직업이나 모든 것은 결국 시집가기 전의 방황이나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지방 4년제.. 요즘 취업난이 얼마나 심한지 아시지요? 인 서울 4년제 나와서도 청년실업이 오십만~-_-;(논스톱 아시죠?)에 달한다는 요즘에 .. 답답합니다. 그리고 대학나와서 직장없이 앉아있으면, 직장도 없고 인물도 별거 없고 집에 재산은 커녕 빚만 있는 여인네 누가 얼씨구나 데려간답니까? 같이 벌어야 산다는 요즘에.. 참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전 그지가 되도 저 하고싶은거 하며 즐겁게 살고싶습니다. 지금 편입하려는것도 제 꿈을 위한 독립의 일보인데.. 아빠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황당하며, 그런 아빠에게 너무나 오랜 세월 눌려살아 이혼도 강경하게 못하는 엄마가 답답하고 불쌍하고, 독립한 저 탓에 집에서 혼자 아빠의 히스테리에 당하는 제 동생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엄마는 꾸준히 이혼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빠는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이혼하거나 아빠가 파산신고를 내지않는한 저와 제 동생이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돈을 벌면 자동적으로 저희 월급이 차압당해 아빠 빚갚는데 쓰이게 되구요, 그것때문에라도 엄마는 이혼을 하고싶어하시지만 아빠는 절대 엄마를 놓아주실 생각이 없습니다. 엄마는 무엇보다 제 결혼때문에 망설이십니다. 이혼한 부모때매 혼삿길 망칠거라고. 전 정말 괜찮은데.. 요즘 이혼한 집이 한 둘도 아니고요.. 엄마는 신혼초에도 도망가려다 마침 저를 임신해서 결국 계속 사셨고, 자살하려다가 저때문에 못 죽었고, 이혼도 저때문에 못하신다 합니다. 그런 엄마가 제겐 또 커다란 애증의 대상이며 저의 든든하고 세상 가장 소중한 혈육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 인생의 짐이기도 합니다. 전 엄마의 발목을 잡은것 같은 기분으로, 제가 알지 못하는 모든 더러운 일들까지 따로 하소연 할곳 없는 엄마에게서 모두 들으며, 오로지 혼자 짊어지고 와야했습니다. 제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에 남자고, 어릴때 일어났던 많은일을 거의 기억못하지만 저는 엄마를 이해할수 있는 성인 딸에 유일한 한풀이 대상이라 모든것을 몇십번씩 적나라하게 듣고 되새기며 살아야했고, 이제는 잊고싶은 기억도 '엄마를 위해'잊어서는 안되며 '엄마 대신' 엄마가 원하는 행복을(비록 그게 제가 원하는 행복과 다를지라도)성취해야하며, '엄마를 봐서라도' 친척들에게 복수할수있을만큼 성공한 삶을 살라합니다. 내 인생은 엄마가 바라는 그 행복과 너무 다른데, 내가 살고싶은건 그런게 아닌데, 저는 엄마가 저에게 하소연하는것처럼 누구에게 토해낼곳이 없습니다. 엄마의 소망을 무시하고 제 인생을 살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여기까지 힘든 내색 크게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명랑한 성격에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있지만, 이따금 제가 크게 잘못되어있다는걸 느낍니다. 차곡차곡 쌓여온 모든것들이 저를 벽 한쪽으로 밀어붙여 저는 가끔 터질것만 같습니다. 이젠 아빠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정말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20여년간 혹여나, 언젠가는. 인간이 되줄거라 믿어왔지만 이번 기회로 아빠에 대한 마지막 희망도 버렸습니다.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저렇게 살겠지요? 우린 죽을때까지 괴롭고 서럽고 아픈, 완전히 미워할수도 그렇다고 사랑할수도 없어 괴로운 저 굴레 안에 갇혀살거구요. 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해본적 있습니다. 우린 어떤 죄를 지었기에 엄마와 나와 내동생은 이토록 고통받아야 되는지.. 우린 항상 수난이 가득한 삶덕에 아주 작은 일에도 너무나 고마워하는 버릇이 생겼고 작은 행복에도 충분히 감사하게 되었지만, 너무 잦은 불행에도 익숙하기에 그 작은 행복뒤에 큰 불행은 반드시 온다는 것또한 체념처럼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행복하지도 못했지요. 행복할만하면 정말 거짓말처럼 반드시, 절대로. 단언할수 있을만큼 불행이 왔으니까요.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의 큰 사고와 병치레도 아빠를 제외한 세가족 모두 2번 이상씩 경험했고,의료사고를 겪기도 하고 사기도 많이 당하고, 저는 유난히 성추행범이나 치한들을 많이 겪었고(다행히 정말 큰일은 당한적이 없지만), 엄마쪽 아빠쪽 친척들 모두 돈을 받아가기만 하지 돌려줄줄은 모르고, 돈이 모일만 하면 꼭 큰 사고가 생겨 저금도 제대로 할수 없었고 장사가 좀 될만할때 집 주인이 가게를 뺏어가기도 하고, 도둑이 들기도 했지요. 모든건 지금도 유유자적한 아빠의 업을 우리가 대신 받는건가요? 이런 말 하면 벌받을지 모르지만 저는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돌아가신다면 눈물정도는 흘려 줄수 있을것 같아요. 그를 위해.. ......정말 너무 긴 글이었군요. ^^; 난생처음으로 토해논 제 21년.. 그래도 이젠 조금 답답함이 트인것 같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혹시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혹 이 일이 님 아는 사람 일 같다면 그냥 저를 모른척 해주세요. 우리 가족은 아직도 떳떳하지 못하거든요. 아직도 그 시절처럼, 우린 그렇게 남 볼새라 숨어 살고 있지요.. ☞ 클릭, 여섯번째 오늘의 톡! [말말말]시아버님 이런말 정말 밉다!
세상에는..영원히 "인간"이 될수없는 인간 쓰레기도 있나요..?
잠시..
덧붙임: 네이트 들어와서 너무나 놀랬습니다.. 사실 모든게 내가 지고 갈 삶이라는걸 알면서도
한번쯤은 누구에게 응석도 부리고싶고 위로도 받고싶었지요.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지라 일부러 더 기대는 안했어요. 사실 한 두분쯤은 리플을 달아주시기를 바랬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그것도 자기일처럼 리플로,쪽지로,메일로 격려와
충고를 주셔서 울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면서 죽길 바란적은 있어도 '자살'은
단 한번도 생각 안해본건,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도 아니거니와,가족도 있고
무엇보다 세상엔 이렇게 아버지와 비교할수 없는 좋은 사람들이 많단걸 알기때문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세상에 감사하게 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진지하게 얘길 해봤는데 동생이 고3이라 올해 안에는 이혼하실 생각이
없다하시네요. 너무 오래 지옥처럼 살아오신 나머지 이젠 자기자신에 대한 모든걸 체념해버린
엄마가 측은하고 답답합니다. 저로선 오히려 민감한 고3시기에 저런 아버지는 없는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엄마는 아들에겐 아빠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일단 1년간 아무일
일어나지 않기를 빌다가 내년에 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분 이혼하게 만들겁니다.
다만 궁금한 점은 예전에 저희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진이나 진단서는
남아있지 않고 증인은 대강 가장 오랫동안 저희집에 함께 살았던 고모가 좀 알고 계시지만
자세히는 모르시고 결국 폭력과 외도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인은 오로지 저 하나 뿐입니다.
최근엔 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리지 않으시고 심적으로 더 괴롭게 조이고 있어서 폭력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는데 그게 이혼사유가 될수 있나요? 제가 증언할수는 있지만 저의 증언이
효력이 있는지, 그리고 이 경우 이혼이 성립한다면 저희 어머니가 양육권을 모두 가질수
있으실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도 법률적으로 알아볼 예정입니다만 혹 법쪽으로 지식이 있으신
분들 제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긴 글에 또 긴 댓글 붙여서 죄송합니다.
항상 모든 분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저는 정말 이 나라에 쓰레기같던 아버지의 존재를
메꾸고도 남을만큼 충실하고 필요한 존재가 될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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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떤 흉악한 사람이든 그 사람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악만 끼치는 기생충같은 사람일지라도
사는 동안 단 한사람에게만이라도 진심으로 사랑을 줄수 있으며..(가족이든 애인이든..)
그리고 죽기전엔 한번쯤은 참회할수 있는게 인간이 아닐까? 라고 믿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21여년.. 지금 나의 아버지앞에서 이 모든것이 자신없게 무너져갑니다.
나의 아버지는 올해 쉰..인생의 2/3을 살았지만 아직도 정신적 도덕적 연령은
초등학생만큼도 못한, 인생의 절반 넘어를 헛살아온 그러나 자기자신은 헛살았다고
생각도 하지않는 사람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버지의 폭력은 4,5살쯔음..?
모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밥상위 김치가 다 삭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배에 베개를 집어던지던
모습입니다. 보통 푹신한 베개가 아니라, 어른들이 좋아하는 딱딱한 배게를 예고없이 전속력으로
던져서 엄마는 마치 배에 총을 맞은 사람처럼 그대로 몸이 붕떠서 허리가 꺾이며 바닥으로
넘어지셨던 모습이 아직도 무슨 영화처럼 생생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노라하는 부잣집, 양반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내가 얼굴도 한번 뵙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7년간 자식이 없다 처음으로 우리아버지를 보셨고
저희 아버지가 태어난 이래 줄줄이 4남 1녀가 태어나
저희 아버지는 장남이자 동생 배를 틔운 복덩어리로 어릴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보물단지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고향은 요즘 세상에도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안이라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여보이는
엄~청 옛스런 시골마을이고 아버지의 집안은 대대로 마을의 지주,
때로는 탐관오리로(제가 추측컨데..) 지배해온 가문이었지요.
그런 가문에 대한 저희 아버지의 애착과 기세등등함은 도를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요즘 세상에 누가 가문타령을 합니까? 전 그놈의 집안이 아버지때문에
치가 떨리게 싫어졌습니다.
친구들을 데려와도 사람의 성씨로 쟤는 ㅂ씨니 상놈 집안이라 예전에 태어났음 감히 니 그림자도
못 밟았을 애라니, ㅈ씨들은 대대로 무식한 머슴들이라니
멸시를 하고 정말 기가 막히지요. 그러면서 우리 가문 이름 하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는양 너무나 착각을 하고 사는게 이 사람,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래봤자 촌동네 옛날 양반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내는건 저였구요
)
당연히 어릴때부터 우리아버지는 엄청난 왕자 대접을 받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엄마는
원망하십니다. 아버지를 이런식으로 키운 할머니를..
할머니는 장남에게 너무나 많은것을 허락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장남은 커서 거짓말과 엄살과 허풍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건달이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그 옛날, 그것도 촌에선 구경도 하기 힘든 초콜릿과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꾀어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의 나쁜 버릇과 헤픈 씀씀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돈을 보고 꼬여드는 친구란 뻔하지요? 온갖 친구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 잘난 아버지 친구들에게 사기당한 재산만해도 억대에 이릅니다.
은행에 집어넣고 이자만으로 살아도 자손 대대로 먹고 살수있다던 집안의 재산을
깡그리 날리고도 남은 빚이 자기자신과 우리어머니까지 신용불량자로 만들어버린 인간이지만
여전히 "폼 안나는 일은 감히 내가" 하기 싫다며 백수로 놀고 먹는 아버지,
그러나 그건 용서한다해도 제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건 저희 엄마에게 행한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우리 엄만 종갓집 종부로 시집오셔서 신혼부터 우리 아빠아래 형제들,
"3명의 도련님과 1명의 아가씨"를 모시고 살아야했구요.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덕에 없었던 시집 살이를 바로 옆집에 사셨던
먼 촌수의 할머님 세분에게 3배로 겪으셨습니다.
게다가 어릴때 너무나 속을 썩였던 제가 있었구요.
그 할머니들이 어떤 사람이었냐면 잠만 우리집에서 안 자지...
아침잠을 깬 순간부터 자러갈 시간까지 우리집에 셋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 세끼 다 받아먹고 온갖 훈수와 잔소리를 다하며 엄마를 괴롭혔습니다.
모유를 먹지 않아 우는 저에게 우유를 먹이려는 엄마를 호통치며
"애를 아랫목에 뒤집어두면 지가 죽을까봐 다 먹게 되어있다"며 생후 1개월도 안된
저를 정말로 아랫목에 뒤집어두고 방치해 거의 죽을뻔 하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저는 2.5키로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뻔했던 미숙아였습니다.)
고집이 쎈 저는 아랫목에 뒤집혀 굶겨진 채 자지러지게 울다 목이 쉬고 숨이 막혀 아사 직전까지 갔구요.
그제서야 죽을까봐 겁이 난 할머니들은 우유 먹이는걸 허락했구요.
우리 엄마도 엄마지요? 지금은 많이 강해지셨지만 그땐 자식 죽여가는걸 앞에서 뻔히보면서도
아무말 못하고 울기만 하던, 마음이 약하다못해 바보스럽고 순종적인 분이셨습니다.
저희 엄마는 할머니 세분을 봉양했고 1년에 스무번에 달하는 제사, 차례, 묘사준비와 시골 본가
관리, 수도 없이 종갓집으로 찾아오는 촌수도 까마득한 온갖 친척들과 손님 치레를 하셨구요.
삼촌들과 고모의 머슴처럼 살았습니다.
저희 엄마는 남들이 하루에 3번 차리는 밥상을 12번 차리셨습니다.
온갖 손님들과 할머니 3분, 아버지, 세명의 학생이던 삼촌들과 고모의 식사시간이 들쭉날쭉했고
한참 식성 왕성하던 삼촌들의 야참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었지요.
고모는 설겆이 한번 도와준적 없고 삼촌들과 아버지도 자신의 귀한 여동생이 부엌을 드나드는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고도 밥상도 엄마가 가지러 가기전까진 방밖으로 밀어주지도 않았고 물한잔
제손으로 안떠먹었지요.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넓고 크던 2층 주택 집 곧곧 하루에도 몇번씩 전쟁터처럼 뒤집혀지던 광경,
모두 출근하고 학교로 가면 할머니 3분의 온갖 참견을 받아가며 집안을 쓸고 닦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우는 저를 달래며 쉴틈없이 밥을 짓고 설겆이 하고 또 밥을 짓고 설겆이 하고 또 청소를
하고.........
게다가 저는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저때문에 저희엄마는 하루 2시간도 자지 못하고 저 강행군을
했습니다. 몸도 너무나 약하던 엄마가 쓰러지지않은게 신기하지만
생각해보면 저희엄마는 오랫동안 맘편히 쓰러질수조차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때문이죠.
저희 아버지는 요즘 시대같으면 누구도 시집은 커녕 맞선자리조차 들어오기 힘들 조건의
(너무나 까다롭고 친척많은 종갓집 종손에 부모없는 동생이 줄줄줄 넷이나 딸린..
게다가 저희엄마는 그 동생들을 하나하나 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야했습니다.)
신랑감이면서, 어찌나 뻔뻔스럽고 기세등등했던지.. 뭘 믿고 그랬을까요?
찬 물에 수도꼭지에서 애를 업고 빨래하는 엄마, 손이 트고 폐결핵까지 걸렸는데도
밤중에 울어대는 나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며 추운 밤 엄마와 나를 밖으로 내쫓았고,
시동생(삼촌들)의 밥상에 어쩌다 한번 고기가 없다며 밥상을 뒤집고
임신 4개월이던 엄마의 배를 발로 찼습니다.
그 당시 엄마 뱃속에서 아빠 발길질을 받던 제 동생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엄마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쥐어뜯고 하루에도 수십번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자기 맘에 안들면
바로 손부터 날아가고 욕이 튀어나오던 더러운 성질머리때문에 저희 엄만 심장이 너무 약해지셨으며
저와 저희엄만 지금도 큰소리를 들으면 심하게 깜짝깜짝, 움찔거리며 놀랍니다.
저는 어릴때 빌었습니다. 아빠가 제발 오늘은 소리를 안 지르고 넘어가게 해주세요.
사업을 시작하며 하루에 한번 얼굴도 보기 힘들던 아빠, 출근도 퇴근도 자기멋대로였으며
사업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긴채 사장직함으로 돈을 뿌리고 여자들만 만나던 아빠.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1시간에 2번꼴로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으며 엄마멱살부터
잡던 아빠.
아직도 귀에 선한 악몽같은 광경이지요. 씨발년이라는 욕부터 시작하며 니가 도대체 남편을 뭘로
보는거야 엉! 하고 멱살을 휘어잡고 너무 작고 갸냘프던 엄마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던 아빠.
제발 그러지말라고 아빠 다리에 매달려 울부짖던 나.
엄마와는 달리 나와 내동생, 특히 나를 애지중지하던 아빠지만
화가 나면 자식도 없습니다.
발에 매달린 나를 발로 차고 욕을 퍼붓고 리모콘을 내 머리에 던져 박살낸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제동생은 너무 어렸고,거의 밤잠이 깊기에 이런걸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아빠에 대한 증오가 뿌리깊지 않지만
저는 모든것을 기억합니다.
의지할 언니나 오빠가 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
세상 모르고 자는 동생이 혹시나 깰까, 그래서 저 추악한 광경을 보게 될까 문을 닫고
동생 귀를 막고 미친듯이 울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아빠나 자기자신중
어느 한명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소망했습니다.
평온하게 잠든 동생이 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너무나 많이 기절할만큼
울었습니다. 그때의 저에겐 제 방에 있는 성모상과 십자가가 유일한 희망이고 구원이었지만
그들은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몇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않습니다. 여전히 아이는 엄마의 비명소리와 아빠의 욕설이
동생에게 들릴까 가슴 졸이며 울고,
견디다 못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아빠에게 제발 엄마 때리지마세요 아빠,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라며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는 잘못한것이 없지만 항상 빌고 빌었습니다.
아이는 10살도 되지않은 나이에 이미 가슴 졸이며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비굴해질 요령을 배웠습니다.
사업이 성공해 돈을 벌며 아버지는 더 난폭해집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리는것으로 모자라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방안으로 끌고가 문을 잠급니다.
눈 앞에서 맞는것보다 단절된 문안에서 이루어지는 보이지않는 폭력이 아이에겐 더 큰 공포입니다.
그것은 정말 아빠의 발에 매달려 말릴 수조차 없는 무기력하고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나는 안방과 연결된 베란다로 넘어갑니다. 유리창안의 안방에서 엄마는 아빠의 손에 들려져
벽에 밀어붙여진채 목이 졸리고 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강요하고
엄마는 말을 할수가 없어 숨이 막힌채 꺽꺽거립니다.
때때로 아빠는 엄마를 베란다 난간에 몸을 반 이상 밀어 냅니다.
10층 고층아파트의 난간에서 엄마의 몸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고 아빠는 엄마의 목을 조르며
죽으라고 합니다. 죽으라고, 니년이 죽으라고. 난 니년 아니라도 데리고 살 년이 많다고.
멍청하고 답답한 니년이 죽어서 내가 딴 여자 데리고 살수있게 해달라고.
엄마는 아빠가 두려워 세탁기 속에도 숨고 쌀독속에 숨기도 하지만
대부분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동네 망신이 두려워 집밖으로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 배운 달걀의 용도는 엄마의 멍든 눈에 문지르는 것입니다.
엄마는 피멍들고 아빠의 손자국이 난 목과 멍투성이인 몸을 감추기 위해
목이 길고 발끝까지 옷자락이 덮는 홈웨어를 입기 시작합니다.
아빠는 와이셔츠에 립스틱자국을 수도 없이 묻혀오고 동네에 온갖추문이 가득 퍼질정도로
매일매일 여자들과 함께 나돕니다.
아빠가 여자들과 찐하게 뒹구는걸 가까운 사람들까지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알려주고
엄마는 모든걸 알면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너무나 강하고 성품이 꼿꼿한 엄마는
아빠의 추태가 혐오스럽고 사람들 보기 창피합니다.
집에는 다방여자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아빠는 자식들과 엄마가 어쩌다 대동하게 된 단란주점에서,(기가 막히지요. 그 어린애들과
마누라를 어떻게 데리고 갈수있는지...) 아가씨의 엉덩이를 주물럭대며 브루스를 춥니다.
또는 나를 태우고 어딘가를 지나는길에 다방에 들러 내게 요구르트를 쥐어주고
눈앞에서 다방 레지들과 수작을 나눕니다.
심지어 아빠 친구 부부와 우리 가족이 대동한 식당에서까지 식당 아줌마에게
몰래 폰번호를 건네주며 추태를 부립니다.
아빠 친구 부인이 그걸 보고 거품을 물며 아빠를 혼내지만
아빠는 진심으로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정말로" 알지 못해서 어리둥절하고
이미 체념한 엄마는 제발 사람들 눈에만 띄지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몇년, 겉으로 포기엔 풍족한 콩가루 집안에서 엄마는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종교와 사회봉사활동에 매달리며 집을 자주 비우고
활달한 동생이 집밖에서 뛰어놀며 거의 매일을 보내는 동안,
어릴땐 너무나 활발하고 명랑하던,그래서 친구들도 참 많던 저는
잦은 전학과 어린나이에 너무 많이 보고겪은 모든것으로 인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책만을 읽으며 점점 말이 없어져가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보다 다루기 편하고
어른을 편하게 하는 아이는 "어른에게 착한 아이"이기에 아무도 나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서로의 틀에만 박혀가며 가족은 하나로 뭉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기만 하며 팽팽하고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6학년이 되던 해,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빚쟁이들의 위협을 겪게 되었습니다.
겪지 않은 사람외엔 모를거에요, 그 무서움을.
우리는 한여름에 겨울 커튼을 치고 살았고 혹여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방에 모여 부둥켜 안고 지냈습니다.
아빠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을 갔구요.
자신에게 빚쟁이들의 추격이 따라오는걸 피하기 위해 우리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있는대로
뿌리고 갔기때문에 우리집으로 모두가 몰려왔습니다.
초인종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죽기보다 싫은 마음을 아세요?
저는 지금도 누가 우리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
그리고 전화벨 소리가 제일 싫습니다.
깜짝깜짝 놀라고, 죄도 없는데 전화 받기가 겁이 나서
지금도 전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습니다.
항상 전화기에 아빠없다고 거짓말하던 기억때문에
전화가 정말이지 싫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싫습니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엄마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수시로 우리를 모아두고 다짐시켰습니다.
초인종소리가 나면 누구냐고 묻지도 말고 숨죽이고, 집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주의깊게 듣고,
학교마치면 곧장 집에 와서 나가지말고, 전화도 받지 말고, 집안에서 밖으로 새어나갈만큼
떠들지 말고, 우리는 '죽은 듯이 없는듯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현관에서 가장 먼 안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초인종 소리가 나면 엄마는 우리를 끌어안습니다. 셋이서 끌어안고 초인종소리와
발소리가 사라질때까지 이불속에서 버팁니다.
빛이 새어나갈까봐 커튼을 두껍게 쳐서 온통 어두운 집안에서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속이거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위장하는 법을 배웠구요.
학교로, 집으로, 빚쟁이들이 들이닥칠까봐 조마조마하며
우리가 지지도 않은 빚으로 인해 우리가 죄인이 된듯 주눅들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허영심은 끝이 없어서 그후로도 끊임없이 부도를 내면서도 아빠는 사업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장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족이 숨죽이며 시체처럼 사는 동안, 엄마가 노이로제가 걸려 사는 동안
우리를 도와준 친척 아무도 없었고,
엄마 아빠가 키우고 결혼시킨 삼촌고모들 누구도 우릴 도와주지 않았고
아빠는 자기 혼자 유유히 몸 피해다니며 혹시 자기 몸에 털끝만큼이라도
상처입을까봐 덜덜 떠는거 외엔 우리 걱정 한번 없이
돌아다니며 도박하고, 여자들이랑 드라이브하고 좋다는 정력제 다 챙겨먹고 잘 살았습니다.
어느날 한번 아빠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가 울며 하소연 하자 버럭 화를 내던 아빠,
"그거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해?? 뭐가 어려워?? 없는척 잠깐만 하고 살면 될거 아냐!!"
중학교 3학년, 드디어 돌이킬수 없을만큼 사업이 망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엄마는 결심을 하고 저와 제 동생만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게에 딸린 단칸방이었습니다.
5평도 안되는 단칸방과 난생 처음 쥐라는걸 구경시켜준 부엌, 3집이 함께 쓰는 공용 푸세식 화장실,
샤워실도 세면기도 없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찬물로 세수를 했고
셋이서 그나마 잡다한 가구로 들어찬 집에서 발도 못 펴고 잠을 잤습니다.
5평도 안되는 작은 단칸방에, 그나마 경매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챙겨온
잘 살던 시절의 좋은 가구들.
그 방을 가득 메운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TV를 보며 그 우스꽝스러운 풍경에
셋 다 말할수 없이 참담했습니다.
이사하던 날은 비가 왔고 남들 눈을 피해 몰래 몰래 이사하느라 너무나 힘이 들고 서러웠지만
아빠는 짐 드는것 한번 도와주지 않고 못마땅해하며 담배만 피우다 가버렸습니다.
자기 말로는 다 해결할수 있는데 우리가 조금만 더 참지 못하고 고생을 자처한다면서,
(지금껏 해결은 커녕 빚만 더 불었고 그 집은 결국 경매로 모두 넘어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없으면 자기 먹고 자는건 어떡하냐고 짜증내다 가버린 뒷자리에서
우린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갑작스레 바뀐 비참한 환경에
슬퍼할 여유도 없이 흠뻑 젖은채 열심히 짐을 나르고 정리했습니다.
저희 엄마, 마음 약하고 누구나 귀부인같다고 하던 우리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저희 가게는 바로 제가 전학간 학교의 앞이었습니다.
잘 살던 집 아이들이 유난히 많던 그 학교에서 저는 학교앞 코딱지 만한 가게 딸이었고 엄마는
저랑 같은 반 아이들의 동전을 벌기 위해 열심히 비위를 맞추고 새벽부터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다른 가게는 남자와 함께 하는 모든것을 홀로 짊어지고 나르고 정리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가게를 하고 계시고 백원짜리 하나에 덜덜 떨며
짜장면 한번 시켜먹을까 말까 하루종일 고민하다 돈이 아까워 라면을 끓여드십니다.
혹 우리에게 짜장면이나 짬뽕 시켜주실땐 우리몫만 시키시고 자신은 국물이나 찌꺼기에
찬밥을 비벼 한끼를 해결하십니다.
저는 단칸방에 사는게 부끄럽지 않아서 친구를 단칸방에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전 오히려 숨죽이고 살던 그 지옥같던 넓은 집 보다,
혼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던 그 썰렁한 아파트보다
셋이 몸을 밀착하고 하루종일 같이 보낼수밖에 없는 단칸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따를 당했어요. 몇몇 아이들은 일부러 제 어깨를 치고 지나가놓고
더럽다고 호들갑을 떨며 제가 보는 앞에서 어깨를 털거나 진저리를 치고,
대놓고 욕을 하고 도시락도 혼자 먹고, 책상도 외따로 떨어져서, 쉬는 시간 항상 친구들과
노는것에 너무나 익숙하던 제가 쉬는 시간이 가장 두려웠어요.
할일이 없었고 말을 걸 사람도 없었기에, 저를 바라보던 시선을 피해 졸리지도 않은데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죠.
그 사실을 알게된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저는 저대로 난생처음 겪어본 왕따에 얼마나 울었는지..
지옥같던 시절이었겠죠, 엄마에게는..
저에게도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다행히 고등학교로 올라간 후
전 예전처럼 많은 친구가 생겼고,두번의 이사끝에
작은 아파트 전세로 들어가 우린 다시 각자 방을 가질수 있었지만,
다시 아빠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빚쟁이들이 우릴 다시 괴롭히지 못하도록 이사간 곳 전화번호를 아빠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빠는 엄마를 닥달해 전화번호를 알았고 주소를 모든 사람들에게 생각없이
떠벌리고 다녔지요.
저는 친구까지 잃었습니다. 빚쟁이들 몰래 이사하느라 전학 당일까지 친구들에게
전학간단 말을 할수 없었고 수많은 친구들은 울고불고 편지하라며 약속했지만
그걸 지킬수 없단걸 아는 저의 그 비참하고 서럽던 심정,
빚쟁이들에게 소문이 퍼질까봐 이사하는 곳까지 비밀로 해야했기 때문에
이사가는 도시도 거짓말로 다른 곳이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우린 정든 고향의 정든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어야 했습니다.
왕따를 당하며 피눈물 나게 친구들이 그리웠고 유일한 보람은 그 시절의 추억이었고,
아이들이 날 원망할 거란 생각에 너무나 많이 울었지만, 가슴 찢어지게 아팠지만,
누구에게도 우리가 어디에 산다는걸 말해서는 안되기에
나도, 내동생도, 엄마도, 모두와 연락을 끊었고 다시 첩자처럼 숨어 살았고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지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피눈물 흘리며 지켜온 안식을 아빠는 너무나 쉽고 생각없이 부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우리집 주소를 내뱉었고
또다시 자기가 빠져나가기 위해 우리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줬고
급기야 나의 학교로 빚쟁이가 찾아오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시절 나는 모든것을 거짓으로 위장하고 살았는데,
정직하라고 끝없이 배울 그 나이에
사는 곳, 학교, 전화번호까지 거짓말로 위장하고 살았는데..
..글이 자꾸 너무 길어지네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어서 간추릴 부분 간추리고 삭제할 부분
지워내도 너무 기네요. 나눠쓸까 하다 그냥 씁니다. 한분이라도 봐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라도 여기에 비워내는 넋두리로도 전 시원할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 못하거든요.
아직도 빚쟁이가 있기 때문에 전 친구에게도 이런 얘길 하지 못해요. 여직껏..
여러 일이 있다 저희 아빠는 경매로 넘어간 집대신 여관을 전전하며 살게 되었고
저희엄마는 이혼을 요구했지만 동의해주지 않았을뿐더러,
저희집이 잘 살때는 엎어지던 친척들 저희가 그렇게 살땐 안부전화 한번 없더니
엄마가 이혼 상의를 한번 하자마자 일제히 우리엄마를 비난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되도 않는 여편네라니, 비열하다느니, 남편을 버린다느니,이혼이라니 감히 우리집안에..
(이놈의 이씨집안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지금도 우리아빠 집안 우리아빠랑 아빠 형제빼고
다 잘났습니다. 검사, 경찰, 의사, 정치인... 그러면 뭐합니까. 비리투성이에 속물인 인간들.
전 성공하면 이 인간들에게 가장 먼저 복수하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현실을 깨달아서 성공하긴 힘들것 같지만..^^;)
그 상황에서도 아빠는 제사를 꼬박꼬박 모셔야 한다하여 우린 아득한 촌수의 조상님까지
제사를 모시고. 아빠는 슬그머니 우리 생활에 침입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돈 문제와 여러 문제로 친척들 사이의 의리도 틀어졌구요,
전 정말 혈육의 비정함을 알았습니다.
어릴적 한집에서 지내며 우리엄마가 차려준 밥, 엄마가 빨고 다려준 옷을 입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대신 엄마아빠가 보호자로 그 힘든 결혼 절차 4번이나 치러내고
시집장가 보냈는데..
어릴적에 첫조카인 저를 그렇게 이뻐했었는데,
각자 가정을 이룬 후엔 모든게 과거일뿐이더군요.
이 글을 보면서 혹 찔리는 분들 있다면 정말 그러는거 아닙니다.
자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혈육, 조카들 보살피세요.
그 조카나 친척들이 인간성 되먹지 못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기 가족 감싸기 급급해서 조카 혈육들 박대하지 마세요. 그거 다 자기 자식들에게 돌아옵니다.
혼자 사는 세상 아니잖습니까.
당신네들이 영원히 자기 자식 지켜줄수 있는거 아니고, 죽고 자식들만 남으면 그 자식들이
서로 의지할건 결국 자기 형제 혹은 사촌들 아닙니까?
전 이제 제 사촌친척들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도움 주고 받고 감싸안을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제사? 그거 이제 제 동생 의무 아니게 할겁니다.
제 동생 종손이지만 그 의무는 지나가는 개나 주던지, 둘째 작은 아버지네가 다 가져가십시오.
종갓집 고통 느껴보시고, 의지할 친척없이 살아보십시오. 당신들끼리 잘 살던지..
우리 단칸방에 살때 쌀 한됫박 보탬 없고, 제사 제수비용 아까워 덜덜 떨고,
혹여 우리가 자기들에게 구걸이라도 할까, 손 한번 벌릴까 겁이 나서 외면하며
아빠가 빌려간돈을 엄마에게 모진 말로 닥달하던 당신들이
그 잘난 집안 전통 핏줄 다~~~~~ 가져가십시오.
난 내 몸에서 이씨집안 피가 반이나 흐르고 있다는게 치가 떨립니다. 뽑아내고싶도록 싫습니다.
그후로도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큰소리였고
폭력도 휘둘렀으나 저와 제 동생이 크면서 횟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미 제동생이 아빠보다 키도, 힘도, 더 자라버렸거든요.
그러다 저와 아빠의 싸움이 터졌습니다.
대학문제로 인한 다툼이었는데 그때 저는 모든걸 폭팔시켰습니다.
아빠가 엄마와 우리에게 행한 모든것들과, 저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저는 어릴적,아빠의 친척이자
저의 육촌 오빠 되는 사람에게서 오랫동안 성추행을 당했습니다.-까지 모두 쏟아냈습니다.
아빠는 칼을 휘두르며 날뛰었고 엄마에게 한 폭행에 대해 따져묻는 저에게 변명 하더군요.
"ㅇㅇ아, 우리나라 모든 가정들이 다 그렇게 살아. 엄마가 잘못하면 아빠가 당연하게 때려야되는거야.
여자는 사흘에 한번 때려야 한다는건 속담에도 있지만 아빠가 그렇지는 않았잖니?
당연히 세상 모든 여자들이 맞고 사는거고, 그건 엄마가 잘못했기때문에 아빠가 그런거야.
이건 당연한거야~~"
소름끼치는건 이말이 아빠의 진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말에 동조하는 분 계시나요?
정말로 세상 모든 가정들이 이렇게 사나요?
아빠는 진심으로 말하고 믿고 있더군요, 이런 가정은 너무나 흔하다고.
다만 우리엄마가 인내심이 부족하고 남편 모실줄 몰라서 반항하는거라고.
제가 그럼 제가 결혼해서 제 남편이 저를 때려도 되는거냐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펄쩍 뛰더군요.
저와 제 엄마가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이놈의 기집애가 오냐오냐 했더니 지랄한다고 펄펄 뛰며
저를 때리더군요.
저에게만은 약하던 아빠, 그러나 그 사랑이 진심으로 자식을 향한 사랑이라기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귀여운 애완동물 대하듯 값싼 사랑, 자기 좋을때만 뽀뽀와 애정을 퍼붓고
화가 나면 앞뒤 볼것 없던 얄팍한 사랑.
그걸 알고있엇기때문에 더 슬프던 저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에게 맞아봤습니다.
(엄마를 때리는걸 말리던 때를 제외하고 아빠가 저를 향한 폭력으로.)
칼을 뽑아 날뛰던 아빠와 그런 아빠에게 울며 처음으로 대들던 동생,
울부짖으며 아빠보다 세진 힘으로 아빠를 붙잡고 그래도 난 이제껏 아빠를 사랑했다며,
하지만 이제부턴 그럴수 없을것 같다며 엉엉 울던 서럽게 울던 덩치 크고 어린 내 동생,
바닥에 쓰러져 제정신 아닌듯이 울던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온 몸의 눈물이 다 빠져나가도록 울고 이제는 미친듯이 웃고 있던 나.
모두에게 그 날밤은 최고의 지옥이었지만 저는 후련했습니다.
그날을 계기로 뭔가 변했냐고요? 그렇다면 제가 이런글을 쓰지 않겠지요.
그후로도 이런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아빠는 기가 꺾인듯 보였고 집에 오면 리모콘 하나
자기 손으로 안 집던 사람이 자진해서 설겆이도 하고 마늘까기도 도와주고..
저도 잠시지만 처음으로 화목한 가정을 꿈꿨지만 그 모든건
우리에게 불쌍하고 정신차린것처럼 보이기 위한것,
우리가 친절하게 대하면 아닐말로 다시 '기어오르듯' 권위를 찾으려 했고
아빠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놈의 집구석은 가장의 권위를 무시한다' 였지요.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의 권위는 태양왕처럼 찬란하고 누구도 감히 뒤엎을수 없는 절대 왕좌,
아무때나 밥상을 뒤집고 숟가락을 던지고 아내 목을 졸라도 누구나 반항없이 복종하며
자기가 미소를 한번 보내면 상을 받은 노예처럼 황공함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그런 가족들위에
군림하는 것이었고 그게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었지만
우린 미안스럽게도 아빠의 그런 위대한 꿈을 이뤄줄 수 없었지요.
아빠는 요근래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며 정신 차린듯 보였지만 최근 다시 밥상을 뒤집고
엄마 뺨을 때리며 "니가 그따구로 하고 다니니까 옛날에 맞고 살았지! 당연히 맞을만 했네
니가 행실을 잘했으면 내가 때렸겠냐"
폭언을 퍼부었고 지금 독립해 편입준비를 하고 있는 저에겐 온갖 상냥한 말로
전화를 하지만 엄마에겐 그 스트레스를 다 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빠의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엄마 욕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아빠의 친구들은 우리엄마를 미친년이라고 부르며 정신병자라고 알고있고,
친척들도 다 엄마를 너무나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뭉쳐다녀 엄마에겐 제사와
집안행사가 지옥입니다.
아빠는 저에 대한 구속과 집착이 심각하여 제가 전화를 한번이라도 받지않으면 계속 해대고
끊임없는 전화와 간섭, 지금도 오직 저를 곁에 두고싶다는 이기심 하나로 엄마를 닥달해
엄마가 나돌아 댕기는 딸내미 앉힐 생각은 안하고 병신같이 쿵짝이 맞아 내버려둔다며
저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고, 뒤로 엄마에겐 어서 나 내려오게 해서
지방대 편입시키고 시집이나 잘 가게 하라고 닥달하고 있더군요.
지금 저는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만 저는 그림을 그리고싶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싶습니다. 당연히 제 인생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빠에게 딸이란 자기 인생의 일부이며
여자란 적당히 이름난 4년제를 나와 선보고 시집가는 인생이 평탄하며 결국 이 길밖에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그전에 가지는 직업이나 모든 것은 결국 시집가기 전의 방황이나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지방 4년제.. 요즘 취업난이 얼마나 심한지 아시지요?
인 서울 4년제 나와서도 청년실업이 오십만~-_-;(논스톱 아시죠?
)에 달한다는 요즘에 ..
답답합니다. 그리고 대학나와서 직장없이 앉아있으면,
직장도 없고 인물도 별거 없고
집에 재산은 커녕 빚만 있는 여인네 누가 얼씨구나 데려간답니까?
같이 벌어야 산다는 요즘에.. 참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전 그지가 되도 저 하고싶은거 하며 즐겁게 살고싶습니다. 지금 편입하려는것도
제 꿈을 위한 독립의 일보인데..
아빠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황당하며, 그런 아빠에게 너무나 오랜 세월 눌려살아 이혼도 강경하게
못하는 엄마가 답답하고 불쌍하고, 독립한 저 탓에 집에서 혼자
아빠의 히스테리에 당하는 제 동생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엄마는 꾸준히 이혼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빠는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이혼하거나 아빠가 파산신고를 내지않는한 저와 제 동생이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돈을 벌면
자동적으로 저희 월급이 차압당해 아빠 빚갚는데 쓰이게 되구요,
그것때문에라도 엄마는 이혼을 하고싶어하시지만
아빠는 절대 엄마를 놓아주실 생각이 없습니다.
엄마는 무엇보다 제 결혼때문에 망설이십니다. 이혼한 부모때매 혼삿길 망칠거라고.
전 정말 괜찮은데..
요즘 이혼한 집이 한 둘도 아니고요..
엄마는 신혼초에도 도망가려다 마침 저를 임신해서 결국 계속 사셨고,
자살하려다가 저때문에 못 죽었고, 이혼도 저때문에 못하신다 합니다.
그런 엄마가 제겐 또 커다란 애증의 대상이며
저의 든든하고 세상 가장 소중한 혈육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 인생의 짐이기도 합니다. 전 엄마의 발목을 잡은것 같은 기분으로,
제가 알지 못하는 모든 더러운 일들까지 따로 하소연 할곳 없는 엄마에게서 모두 들으며,
오로지 혼자 짊어지고 와야했습니다.
제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에 남자고, 어릴때 일어났던 많은일을 거의 기억못하지만
저는 엄마를 이해할수 있는 성인 딸에 유일한 한풀이 대상이라 모든것을 몇십번씩 적나라하게
듣고 되새기며 살아야했고, 이제는 잊고싶은 기억도 '엄마를 위해'잊어서는 안되며
'엄마 대신' 엄마가 원하는 행복을(비록 그게 제가 원하는 행복과 다를지라도)성취해야하며,
'엄마를 봐서라도' 친척들에게 복수할수있을만큼 성공한 삶을 살라합니다.
내 인생은 엄마가 바라는 그 행복과 너무 다른데, 내가 살고싶은건 그런게 아닌데,
저는 엄마가 저에게 하소연하는것처럼 누구에게 토해낼곳이 없습니다.
엄마의 소망을 무시하고 제 인생을 살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여기까지 힘든 내색 크게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명랑한 성격에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있지만, 이따금 제가 크게 잘못되어있다는걸 느낍니다.
차곡차곡 쌓여온 모든것들이 저를 벽 한쪽으로 밀어붙여 저는 가끔 터질것만 같습니다.
이젠 아빠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정말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20여년간 혹여나, 언젠가는.
인간이 되줄거라 믿어왔지만
이번 기회로 아빠에 대한 마지막 희망도 버렸습니다.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저렇게 살겠지요?
우린 죽을때까지 괴롭고 서럽고 아픈, 완전히 미워할수도 그렇다고 사랑할수도 없어 괴로운
저 굴레 안에 갇혀살거구요.
전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해본적 있습니다. 우린 어떤 죄를 지었기에 엄마와 나와 내동생은
이토록 고통받아야 되는지..
우린 항상 수난이 가득한 삶덕에 아주 작은 일에도 너무나 고마워하는 버릇이 생겼고
작은 행복에도 충분히 감사하게 되었지만,
너무 잦은 불행에도 익숙하기에 그 작은 행복뒤에 큰 불행은 반드시 온다는 것또한
체념처럼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행복하지도 못했지요. 행복할만하면 정말 거짓말처럼 반드시, 절대로. 단언할수
있을만큼 불행이 왔으니까요.
우리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의 큰 사고와 병치레도 아빠를 제외한 세가족 모두
2번 이상씩 경험했고,의료사고를 겪기도 하고 사기도 많이 당하고,
저는 유난히 성추행범이나 치한들을 많이 겪었고(다행히 정말
큰일은 당한적이 없지만), 엄마쪽 아빠쪽 친척들 모두 돈을 받아가기만 하지 돌려줄줄은 모르고,
돈이 모일만 하면 꼭 큰 사고가 생겨 저금도 제대로 할수 없었고 장사가 좀 될만할때 집 주인이
가게를 뺏어가기도 하고, 도둑이 들기도 했지요.
모든건 지금도 유유자적한 아빠의 업을 우리가 대신 받는건가요?
이런 말 하면 벌받을지 모르지만 저는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돌아가신다면 눈물정도는 흘려 줄수 있을것 같아요. 그를 위해..
......정말 너무 긴 글이었군요. ^^;
난생처음으로 토해논 제 21년.. 그래도 이젠 조금 답답함이 트인것 같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혹시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혹 이 일이 님 아는 사람 일 같다면 그냥 저를 모른척 해주세요.
우리 가족은 아직도 떳떳하지 못하거든요. 아직도 그 시절처럼,
우린 그렇게 남 볼새라 숨어 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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