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성전은 왜 붕괴 되었나 -1

000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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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에서 크게 조희성이 '영생교'를
이영수가 '에덴성회'를
유인구, 유재열이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을 거쳐 '장막성전'을 차려 각각 갈라져 나옵니다.
 
장막성전의 원래 모태는 김종규를 교주로 하여 1964년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이란 사찰 암자에 있었던 호생기도원으로 
김종규의 환상적 신앙에 젖어 있었던 유재열은 당시 18세의 나이로 호생기도원에서 기성교회를 공격하면서 스가랴 12 : 1을 인용,
장막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역사한다고 주장 합니다.
 
유재열은 1966년 5월 20일로부터 1,260일이 지난 1969년 1월 1일이 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니 '회개하고 구원의 장막에 모이라. 이 곳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며
14만 4천명이 모일 때 종말이 온다고 외쳐 서울, 인천 수원 등지에서 사람들이 그 한정된 수에 들려고 시간을 다투어 모여 듭니다.
마지막 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가산을 다 팔아 바치고 처음 모인 수는 3백여명으로 그 수가 점차 늘어나
1970년말 통계에 따르면 약 8백 세대 5,000여명이 장막성전에 입주하여 또 하나의 신앙촌으로 격리 집단을 형성합니다. 
신도는 70% 가량이 여자로 연령은 40대 중년층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학력은 무학 내지 초등학교 졸업 정도이고
신도의 95%가 기성교회와 전도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다른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추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출처] 서울육백년사:장막성전(이삭교회)
                                                                                                                            
조사를 해보니
장막성전은 사이비 종교의 정화로 멸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막성전이 무너진 것은 ‘청지기 교육원’이 침노해서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 정화’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1975년 9월 유재열씨가 구속된 사건이 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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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몇 개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