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성전은 왜 붕괴 되었나-5

000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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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에서 나온 '장막성전'은 살펴보신 바와 같고 
'영생교'를 차린 조희성씨의 경우를 보실까요?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8D97B9661C13CDB412B1B65E8377F46B3FE&outKey=V1299f06a64002747cdecfcb862149b3bdc0cdd2f9028241bb720fcb862149b3bdc0c&width=544&height=306 또 '에덴 성회'를 차린 이영수씨의 경우를 볼까요? 
 
 [복사]http://blog.naver.com/kankani3/30047261255
1979년 11월 27일 동아일보의 기사일부 발췌--
아래는 기사의 내용.. 한문은 한글로 변환 시켰다. 
여신도를 간음, 재산까지 뺏어 내기도한 혐의로 구속된 <에덴성회>교주 이영수씨(35)는 박태선 장로가 운영하는 한국예수교 전도관 부흥협회(전도관)의 이탈신도들을 규합, 73년 11월 17일 <한국기독교 에덴성회>를 창립했다. 
창립당시는 50여명의 신도에 보증금40만원 월세5만원을 주고 빈 사무실 한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옛 서울사대 자리에 세운 2층 교회에 본부를 두고 대구 인천 등 18곳에 지부를 둘 정도로 번창했다.
교적부에 올라있는 신도는 7백여명이나 실제는 4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씨는 교주(일명 총회장)로서 <살아있는 신>으로 행세,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에덴성회>를 창립하기전까지는 불우한 처지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경북김천시에서 김천중학졸업1개월을 앞두고 서울로 와 자유당중앙당사 대일목재소 사환등으로 떠돌았고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찬송가집 제작업소 광해당에서 일하기도 했다. 62년 5월 전도관 전도사로 들어가 6년간 활동하다 68년4월 그만두고 69년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유니버샬 톱싱어 레코드사>라는 가요학원을 내는 한편 <꽃처럼 낙엽처럼> <석양길>이란 대중가요를 직접취입, 가수행세도 했다.
영화배우로 <8도 며느리>에 출연, <영규>역을 맡기도 했으며 70년9월에는 <국제영화>잡지사 기자도 하는등 이때부터 이씨는 천의 얼굴이 되었다.
73년 9월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전도관에 다시 전도사로 복직했다가 일주일만에 제명 당한 뒤 에덴성회를 창립했다. 교주가 된 이씨는 수완을 발휘, 주로 여신도를 통해 교세를 확장해 갔다.
그는 "말세를 구원하는데만 전념하고 성생활은 못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척추신경 마비를 당한 불구자" 라고 선전, 여신도들이 여관등 은밀한 곳에서 만나도 안심토록 했다. 그런 뒤 안찰기도를 해준다면서 추행했고 변태적인 방법으로 농락까지 했다.
이씨는 중3때 운동을 하다 척추를 다쳐 성기능이 약하지만 불구자는 아니라고 수사과정에서 실토했다는것.
성불구자 행세를 해온 이씨는 <에덴성회>집사인 김모부인(50)모녀와 성가대원 정모양(28) 자매를 농락해 그 여인들은 가정파탄까지 일으켰다.
교주 이씨를 걸어 고발장을 냈던 김모양(28)은 "에덴성회가 아니면 구원 받을수 없다"는 설교에 직장을 그만두고 애인과도 헤어진 뒤 교회 신축 공사장에 나가 모래등을 날랐던 열성 신도였다.
김양은 교주한테 불려가 여러 번 추행 당했는데 그때마다 "주의 종은 절대 정결하다. 마지막 축복은 교주와의 성관계로 얻을 수 있다"고 꾀었다는 것.
김양은 교회 복도 청소를 하던 중 이씨로부터 추행 당하기도 했는데 이씨는 먹던 사탕을 뱉어주며 "주의 종 손길마다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수사당국의 조사로는 30여명의 여신도가 수모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이런 비행이 탄로나 보복이 있을까 봐 여신도를 협박했고 프로권투 10년 경력의 송동호씨(40.구속)를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가 농락한 여신도를 송씨가 다시 농락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고 마룻바닥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는 광적인 분위기 속에 미남인 이씨가 나타나 설교하면 여신도는 문론 남신도도 안 빠져 들 수 없다는 신도들의 말이다. 리어카 행상 김도씨(40)는 <살아있는 신> 이씨에게 빠져 6백만원을 헌금하기도 했다.
이씨는 유창한 설교는 문론 사술까지 동원해 6년 동안에 2억여원을 헌금등 명목으로 모았다
사술 중의 하나가 <성화>라고 속여 파는 천연색사진. 지난 9월 부산집회때 사진사를 시켜 이씨 모습을 찍었는데 연기모양만 나오고 이씨 얼굴은 담기지 않았다고 선전했다. 미리 돈을 받고 이런 조작 사진을 만들어낸 사진사는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68년 4월 서울 청량리에서 에덴사진관을 경영한 일이 있는데 이때 경험을 살려 이런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이씨는 박태선장로가 운영하는 전도관의 전도사로 오랫동안 활약했기 때문에 <에덴성회> 의 교리는
전도관 교리와 비슷한점이 많으나 "박장로는 씨를 뿌리는 감람나무이며 나는 알곡을 거두는 감람나무다. 박장로는 모세의 성령을 받았는데 나는 여호수아의 성령을 받았으며 모세의 사명은 끝났다" 고 설교, 전도관에 도전해 왔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 탁명환)조사에 따르면 전도관 신도들이 계속 이탈, <에덴성회>에 가입하자 양측은 극단적으로 대립했으며 <에덴성회> 창립예배 때부터 전도관 청년 신도들이 몰려와 방해 공작을 한 일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