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까운 마음에 없는 형편이지만 재수를 시켜달라고 했다.다행히 그 때쯤 아빠 사업이 수익을 좀 내게 되면서 한 달에 100만원 하는 기숙학원비를 보내주었다. 3개월 동안 학원에서 먹고자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전국 상위 2~3%안에 들기 시작했다.5개월이 더 지나서 아빠 사업이 다시 망해서 학원에서 나왔다. 이 때 쯤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그래서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여전히 집은 예전 그 모양이었다. 매일 매일이 할머니와 아빠의 싸움의 연속이었다.멘탈을 다시 놓기 시작했고 불안증이 안 없어져서 아빠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능을 앞두고 20일 정도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수능 성적은 상위 4%였다.가군은 성적보다 살짝 높여서 고려대 국제학부 나군은 취업 생각에 경인교대 다군도 취업 생각에 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를 썼다.수능 성적 상 나군이 안정적인 지원이니 가, 다 군을 이렇게 쓴 건데하필 04학번 때 교대붐이 일어서 모든 교대의 점수가 급등했다.그리고 셋 다 떨어졌다. 군대를 갈지 삼수를 할지 고민하다가하던 공부 계속 하는게 나을 것 같아 삼수를 결정했다.가정형편이 너무 안 좋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공부를 했다.편의점에서 4개월동안 10시간씩 일했다. 아침 8시까지 오후 6시까지.이 때 처음 받은 월급으로 마트에서 갈비세트를 사서 집에 갔다.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셨다.그렇게 번 돈으로 독서실비, 문제집값하며 공부했다. 알바를 10시간이나 하며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의고사를 풀어봤더니 500점 만점에 400점이 안 나왔다. 아빠한테 무조건 학원을 2달만 보내달라고 했다.아빠는 어찌어찌 마련해서 학원을 보내주었다.9월 교평원 모의고사는 400점, 11월은 450점까지 회복했고 수능을 봤다 수능에서는 440점 나왔으나 물수능이었어서 지방 교대도 못가는 성적이었다. 4수를 하기로 결정했다.근데 앞길이 너무 막막해서 우울증이 다시 도진건지 헛구역질하고 매일 울었다. 그러다 정신이 차려졌다. 그냥 괴로워하다가는 답이 없을 것 같아서감정을 배제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폰 번호도 바꾸고 친구번호도 다 지우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매일매일 아침마다 성당가서 명상하고 공부했다 그 때는 아빠가 어찌어찌 돈을 쥐어짜며 7개월 동안 통학학원비를 내주었다.그리고 6월 교평은 전국 0.3% 성적으로 받았다.8월 중순에 학원비를 못내서 학원에서 쫓겨났다. 학원비를 어찌 마련해볼까해서 그동안 내내 알바했던 편의점 사장님께60만원만 빌려달라 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다행히 아빠가 또 어찌어찌 돈을 마련해와서 학원에 들어갔고수능 때 470, 0.7%까지 받고 서울교대에 들어갔다. 성적이 좋아서 입학장학금을 받았는데 아빠가 그 돈을 좀 보내달라했다.돈을 보내고 몇 달동안 아빠는 연락이 없었다. 거의 실종된거나 마찬가지였다. 알고보니 교대에 들어가던 때 즈음에 아빠가 마카오를 다니기 시작한거다. 또 도박을 한거다. 나는 과외 25만원짜리 하나가 들어와서 생활비하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군대에 집 상황을 얘기하자 전우돕기 성금모금을 30만원씩 두 번 주었다.군대 있는 동안 아빠는 조선소에 일을 구했는데조선소 일하러 갈 차비가 없다며 나한테 돈을 부쳐달라고 했다.군인신분에 돈이 없어서 고참에게 사정을 말하고 3만원을 빌려 부쳤다.나중에 그 고참이 간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그 간부가 나중에 10만원을 더 주며 집에 보내라고 하였다. 그 즈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제대 1개월 전당시 받던 군인 월급 5개월치 꼬박 모았던 50만원도 집으로 보냈다.원래 그 돈은 제대하고 복학할 때 첫 달 생활비로 쓰려고 했는데아빠가 자꾸 돈이 없다고 돈을 부치라 해서 집으로 보냈다. 제대 후에 집에 가보니 왜 자꾸 돈이 없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마카오 도박으로 성공한 사람 집에 가서 숙식하며 배웠단다. 직접 해봐야한다며 300만원을 내놓으란다.그래서 공장, 편의점 온갖 군데를 다 찾아다녔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하는 야간마트에서 알바를 구하고과외를 5개 하면서 돈을 모아서 아빠에게 줬다. 그 때 병신처럼 돈을 준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니 그동안 그렇게 아빠가 쓸데없는거 하며 돈 써놓고도자랑스러워하며 이런 공부를 했다고 하니'어디 한번 해봐라.'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앞으로 내가 벌 돈에 비하면 300정도는 그리 감당 못할 돈은 아니니'그렇게 큰소리 쳤으니 어디 한번 다 해봐라.' 싶은 생각이었다. 근데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빚을 내기 시작했다저축은행, 3금융권 막 빚을 내더니 3000 정도의 빚이 내 이름으로 생겼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내가 알바, 과외해서 갚았다.하루에 잠은 4,5 시간만 잤다. 학교 복학을 앞두고 아빠랑 크게 싸웠다.아빠가 내 돈을 날려먹은 것, 빚을 낸 것 등에 대해 화가 났다.그 때 아빠는' 어차피 그 돈이 너한테 있었어도 너가 흥청망청 다 써버렸을꺼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할머니랑 아빠가 싸우는 것을 하도 많이 본 터라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서울로 올라가서 복학을 했고 아빠가 만나는 여자가 생겼다.그 여자 덕분에 아빠 경제사정이 나아진 것인지 잠잠했고 나는 나대로 근로장학생과 과외를 해서 한 달에 200 넘게 벌었고그걸로 학비랑 생활비를 충당했다. 아빠는 내가 대학생활을 하던 중에 간간히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대주기도 했는데 약 1500 정도였다.예전에 아빠가 내 아름으로 내서 내가 갚은 빚 3000에 대한 보상이었다. 졸업을 하고 임용시험에 붙어 서울로 발령이 났다. 잠잠하던 아빠는 다른 사람 대신 잘못을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되었고 그 보상으로 2500을 받았다. 그 돈으로 내 명의로 된 제주도 땅을 샀다. 아빠는 그 쯤 또 마카오 자금이 필요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다녔다.보다못한 내가 1500만원을 마통을 뚫어서 빌려줬다.그래도 4수까지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표시였고땅도 샀으니 돈을 갚아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2년 후 제주도 땅은 땅값이 올라 9000에 팔았다.세금과 중개수수료 제외하니 6500이 남았다. 아빠는 그 돈 중 2000을 나에게 갚고 나머지는 본인이 갖고 다시 마카오로 갔다.아빠는 돈을 다 잃었다. 당시 나는 빚이 4000 있었다. 보증금 1000과, 아빠 빌려줬던 1500과 나머지 1500은 주식을 굴렸다.아빠가 준 2000도 주식에 포함시켰다. 다행히도 꾸준히 수익이 나고 있었다. 어느날부터 문자가 자꾸 오기 시작하는데신용도가 자꾸 떨어진다는 것이었다.알고보니 내가 모르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가 1000이 있었다. 아빠가 신용불량자라 은행을 이용할 수 없으니편하게 이용하고 선결제로 아빠가 결제하라고 드린 내 명의의 신용카드를 두 개가 문제였다. 그래서 아빠에게 항의를 하고 다시는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쓰지 않기로 다짐을 받고내 주식자금을 빼서 1000을 갚았다.카드 회사에도 전화해서 신용카드에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그런데 아빠 집 컴퓨터에 있던 내 공인인증서로 카드론을 뚫어서 또 1000을 뺐다.마카오 자금이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일주일 정도 아빠에게 연락을 안 했는데 일주일 후에 아빠가 연락을 해서 대뜸 화를 냈다.'고작 천만원에 안부연락도 없이 부자간의 연을 끊으려 하냐.'고 화를 냈다.'연을 끊는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니'3개월 후 까지 책임지고 갚아주겠다.'고 했으나 당연히 갚지 않았다. 오히려 마카오 가서 카드론 1400을 또 썼다. 사채도 300을 더 썼다.처음 일이 터졌을 때 신용카드를 뺐었어야 했는데 병신같은 내 잘못이었다. --------------------------------------------------------- 하도 오빠한테 들었던 내용들이라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지만 다시 세세한거 하나하나 물어보고 정리해서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화나요. 참 착한 제 남자친구지만 참 병신같네요.
(2편)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친구의 어린시절
너무 아까운 마음에 없는 형편이지만 재수를 시켜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 때쯤 아빠 사업이 수익을 좀 내게 되면서
한 달에 100만원 하는 기숙학원비를 보내주었다.
3개월 동안 학원에서 먹고자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전국 상위 2~3%안에 들기 시작했다.
5개월이 더 지나서 아빠 사업이 다시 망해서 학원에서 나왔다.
이 때 쯤 아빠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여전히 집은 예전 그 모양이었다. 매일 매일이 할머니와 아빠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멘탈을 다시 놓기 시작했고 불안증이 안 없어져서 아빠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능을 앞두고 20일 정도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수능 성적은 상위 4%였다.
가군은 성적보다 살짝 높여서 고려대 국제학부
나군은 취업 생각에 경인교대
다군도 취업 생각에 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를 썼다.
수능 성적 상 나군이 안정적인 지원이니 가, 다 군을 이렇게 쓴 건데
하필 04학번 때 교대붐이 일어서 모든 교대의 점수가 급등했다.
그리고 셋 다 떨어졌다.
군대를 갈지 삼수를 할지 고민하다가
하던 공부 계속 하는게 나을 것 같아 삼수를 결정했다.
가정형편이 너무 안 좋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공부를 했다.
편의점에서 4개월동안 10시간씩 일했다. 아침 8시까지 오후 6시까지.
이 때 처음 받은 월급으로 마트에서 갈비세트를 사서 집에 갔다.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셨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독서실비, 문제집값하며 공부했다.
알바를 10시간이나 하며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의고사를 풀어봤더니 500점 만점에 400점이 안 나왔다.
아빠한테 무조건 학원을 2달만 보내달라고 했다.
아빠는 어찌어찌 마련해서 학원을 보내주었다.
9월 교평원 모의고사는 400점, 11월은 450점까지 회복했고 수능을 봤다
수능에서는 440점 나왔으나 물수능이었어서 지방 교대도 못가는 성적이었다.
4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앞길이 너무 막막해서 우울증이 다시 도진건지 헛구역질하고 매일 울었다.
그러다 정신이 차려졌다.
그냥 괴로워하다가는 답이 없을 것 같아서
감정을 배제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폰 번호도 바꾸고 친구번호도 다 지우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성당가서 명상하고 공부했다
그 때는 아빠가 어찌어찌 돈을 쥐어짜며 7개월 동안 통학학원비를 내주었다.
그리고 6월 교평은 전국 0.3% 성적으로 받았다.
8월 중순에 학원비를 못내서 학원에서 쫓겨났다.
학원비를 어찌 마련해볼까해서 그동안 내내 알바했던 편의점 사장님께
60만원만 빌려달라 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다행히 아빠가 또 어찌어찌 돈을 마련해와서 학원에 들어갔고
수능 때 470, 0.7%까지 받고 서울교대에 들어갔다.
성적이 좋아서 입학장학금을 받았는데 아빠가 그 돈을 좀 보내달라했다.
돈을 보내고 몇 달동안 아빠는 연락이 없었다. 거의 실종된거나 마찬가지였다.
알고보니 교대에 들어가던 때 즈음에 아빠가 마카오를 다니기 시작한거다.
또 도박을 한거다.
나는 과외 25만원짜리 하나가 들어와서 생활비하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에 집 상황을 얘기하자 전우돕기 성금모금을 30만원씩 두 번 주었다.
군대 있는 동안 아빠는 조선소에 일을 구했는데
조선소 일하러 갈 차비가 없다며 나한테 돈을 부쳐달라고 했다.
군인신분에 돈이 없어서 고참에게 사정을 말하고 3만원을 빌려 부쳤다.
나중에 그 고참이 간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여
그 간부가 나중에 10만원을 더 주며 집에 보내라고 하였다.
그 즈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제대 1개월 전
당시 받던 군인 월급 5개월치 꼬박 모았던 50만원도 집으로 보냈다.
원래 그 돈은 제대하고 복학할 때 첫 달 생활비로 쓰려고 했는데
아빠가 자꾸 돈이 없다고 돈을 부치라 해서 집으로 보냈다.
제대 후에 집에 가보니 왜 자꾸 돈이 없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마카오 도박으로 성공한 사람 집에 가서 숙식하며 배웠단다.
직접 해봐야한다며 300만원을 내놓으란다.
그래서 공장, 편의점 온갖 군데를 다 찾아다녔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하는 야간마트에서 알바를 구하고
과외를 5개 하면서 돈을 모아서 아빠에게 줬다.
그 때 병신처럼 돈을 준 이유가 뭔가 생각해보니
그동안 그렇게 아빠가 쓸데없는거 하며 돈 써놓고도
자랑스러워하며 이런 공부를 했다고 하니
'어디 한번 해봐라.'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벌 돈에 비하면 300정도는 그리 감당 못할 돈은 아니니
'그렇게 큰소리 쳤으니 어디 한번 다 해봐라.' 싶은 생각이었다.
근데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빚을 내기 시작했다
저축은행, 3금융권 막 빚을 내더니 3000 정도의 빚이 내 이름으로 생겼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내가 알바, 과외해서 갚았다.
하루에 잠은 4,5 시간만 잤다.
학교 복학을 앞두고 아빠랑 크게 싸웠다.
아빠가 내 돈을 날려먹은 것, 빚을 낸 것 등에 대해 화가 났다.
그 때 아빠는' 어차피 그 돈이 너한테 있었어도 너가 흥청망청 다 써버렸을꺼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할머니랑 아빠가 싸우는 것을 하도 많이 본 터라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서울로 올라가서 복학을 했고 아빠가 만나는 여자가 생겼다.
그 여자 덕분에 아빠 경제사정이 나아진 것인지 잠잠했고
나는 나대로 근로장학생과 과외를 해서 한 달에 200 넘게 벌었고
그걸로 학비랑 생활비를 충당했다.
아빠는 내가 대학생활을 하던 중에
간간히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대주기도 했는데 약 1500 정도였다.
예전에 아빠가 내 아름으로 내서 내가 갚은 빚 3000에 대한 보상이었다.
졸업을 하고 임용시험에 붙어 서울로 발령이 났다.
잠잠하던 아빠는 다른 사람 대신 잘못을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되었고
그 보상으로 2500을 받았다.
그 돈으로 내 명의로 된 제주도 땅을 샀다.
아빠는 그 쯤 또 마카오 자금이 필요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다녔다.
보다못한 내가 1500만원을 마통을 뚫어서 빌려줬다.
그래도 4수까지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표시였고
땅도 샀으니 돈을 갚아줄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2년 후 제주도 땅은 땅값이 올라 9000에 팔았다.
세금과 중개수수료 제외하니 6500이 남았다.
아빠는 그 돈 중 2000을 나에게 갚고 나머지는 본인이 갖고 다시 마카오로 갔다.
아빠는 돈을 다 잃었다.
당시 나는 빚이 4000 있었다.
보증금 1000과, 아빠 빌려줬던 1500과 나머지 1500은 주식을 굴렸다.
아빠가 준 2000도 주식에 포함시켰다.
다행히도 꾸준히 수익이 나고 있었다.
어느날부터 문자가 자꾸 오기 시작하는데
신용도가 자꾸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내가 모르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가 1000이 있었다.
아빠가 신용불량자라 은행을 이용할 수 없으니
편하게 이용하고 선결제로 아빠가 결제하라고 드린 내 명의의 신용카드를 두 개가 문제였다.
그래서 아빠에게 항의를 하고 다시는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쓰지 않기로 다짐을 받고
내 주식자금을 빼서 1000을 갚았다.
카드 회사에도 전화해서 신용카드에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그런데 아빠 집 컴퓨터에 있던 내 공인인증서로 카드론을 뚫어서 또 1000을 뺐다.
마카오 자금이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일주일 정도 아빠에게 연락을 안 했는데
일주일 후에 아빠가 연락을 해서 대뜸 화를 냈다.
'고작 천만원에 안부연락도 없이 부자간의 연을 끊으려 하냐.'고 화를 냈다.
'연을 끊는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니
'3개월 후 까지 책임지고 갚아주겠다.'고 했으나 당연히 갚지 않았다.
오히려 마카오 가서 카드론 1400을 또 썼다. 사채도 300을 더 썼다.
처음 일이 터졌을 때 신용카드를 뺐었어야 했는데 병신같은 내 잘못이었다.
---------------------------------------------------------
하도 오빠한테 들었던 내용들이라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지만
다시 세세한거 하나하나 물어보고 정리해서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화나요.
참 착한 제 남자친구지만 참 병신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