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작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써보겠어요. 말투를 바꾸고 게시글을 올려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제 글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저의 평소 말투로 적을게요. 집단의 요구에 따라 정체성을 바꾸어야하는 것 또한 가부장제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가부장제와 타자화에 대해서 조금 설명하고 싶어요. 물론 저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제 막 세계의 부조리에 눈을 뜨신(?) 분들도 계실테니까 그분들을 위해서요! 각 철학자들마다 용어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또 정의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책 한권을 다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좁은 인터넷 게시판에선 완벽한 설명을 다 하지 못한 다는 점 양해해주세요.
먼저
'타자'란, 쉽게 말해서 집단의 내부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뜻해요. 차별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더 쉽게
설명하자면, 지배계층 혹은 기득권에 반대되는 피지배계층, 소수자, 약자등으로 설명한다면 많은 경우 맞아떨어져요. 그렇지만 완벽한
동의어는 아니라서 애매하게 다른 부분이 있어요. 이 세계의 약자라 하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유색인종이란 단어도
차별적이죠)이 있겠지요. 그리고 이들은 동시에 타자이지요.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대게의 경우 타자는 약자가 맞지만,
가끔씩 꼭 약자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단 한명의 부유한 아이가 다니고
있다면, 그 부유한 아이는 사회적으론 강자지만 그 학교 안에선 타자가 되어요. 한국에 백인이 이민와서 살고 있다면, 그 백인 역시
강자지만 타자인 것이지요. 즉 타자는 단순히 약자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집단의 외부에 위치하는 존재'를 뜻해요.
여기서 '타자화'라는 단어를 살펴볼텐데, 말그대로 타자화는 한 존재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뜻해요.
타자화의 전략으로는 '이름 붙이기' / '혐오하기' / '숭배하기' 등등.... 이런 것들이 있어요.
1. 이름 붙이기
'이름 붙이기'부터 살펴보자면, 타자는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없고, 오로지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버려요. 유색인종/장애인/성소수자/예체능 이런 단어들은 전부다 그런 식으로 묶인 단어들이예요.
백인은
타자가 아니므로, 백인은 다른 인종과 묶이지 않아요. 피부색이 아주 짙은 흑인이, 백인과 아시아인들을 묶어서'황백인종' 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타자에겐 묶어서 이름 붙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예요. 오로지 백인만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므로,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을 '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서 '유색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예요.
하지만 '유색인종'으로 묶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들은 서로 아주아주다르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져요. 타자화는 타자화된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뭉개버리고,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해버리는 거예요.
성소수자도 사실은 마찬가지의
단어인데, '스스로의 신체적 성별과 정신적 성정체성이 동일한 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성소수자'라는 단어로
묶어버리거든요. 하지만 성소수자안에는 게이, 트렌스젠더, 레즈비언, 에이섹슈얼등 아주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하고, 그 정도도
달라요. 그들은 서로 다 다른데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죠.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가령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매우 다르죠. 그렇지만 일정수준 이상의 기준을 정해놓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일컫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사고로 다리를 잃은 회사원이 해고 당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다리를
잃어도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데엔 아무런지장이 없는데, 다리를 잃었다->장애인이다->장애인은 회사 업무를 볼 수 없다
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회사에서 업무를 볼 수 없는 종류의 장애도 물론 있지만, 그 경우가 아닌데도 그 경우로
인식되는 거예요.
예체능 역시 마찬가지예요. 현재 교육제도상 배척되는 것들이죠. '예체능 계열인데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건.. 예술과 체육은... 거의 끝과 끝에 가깝게 달라요. 특히 예술중에서도 문학을 하는
친구들과 체육을 하는 친구들의 성격은... 스펙트럼의 극단에 위치해있지요. 이런 차이들을 저 단어에서 말소해버려요.
여기까지 말했으면 다들 알아채셨겠지만, '타자화'는 타자들 사이의 차이를 말소해버려요. 누군가 '야, 이성애자는 어떤 성격이야?'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죠. 하지만 '야, 게이들은 어떤 성격이야?'라고 묻는다면, 음... 게이는 말이야.... 라고 대답해버리는 거죠. 게이는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게이라는 집단의 일부'로만 인식되기 때문이예요. (물론,
타자로 살아온 사람들은 타자이기 때문에 많은 편견과 차별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일정 부분 비슷한 상처를 공유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그 상처가 확률적으로 어떤 성격을 형성하는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 사라지면 사라질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고려하지 않을게요.)
이것을 여자에 대입했을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문장, 악녀, 악처, 계모, 팜므파탈, 이런 단어들이 어떻게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지 알 수 있어요. 어쨌든 이것이 바로 이름 붙이기, 묶어서 생각해버리는 일이예요.
2. 혐오하기 너무 늘상 당하는 거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3. 숭배하기 이 숭배하기!란 지점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보통
고정관념에 의하면, 타자일 경우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어떻게 숭배의 대상이 되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숭배하기는 의외로 굉장히 효과적인 타자화의 전략이예요. 개념녀 프레임이 여기에 해당하는 걸텐데, '특정 집단 안에
속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프레임화' 해서 그들을 욕할 정당성을 찾는것이 2번 혐오하기라면,
숭배하기는 '특정 집단 안에 속하는 사람을 감히 인간이 다다를 수 없을만큼 숭고하게 만들어서 찬양하는' 것이예요.
문제는 그 집단에 속한 타자들 중, 숭고함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숭고함이란 말했듯이 ... 인간이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극도의 희생을 전제하는 영역이예요... 그래서 타자화된 집단의 대부분은 비난을 받게 되고, 간혹 스스로를 엄청나게 희생하서 숭고하기의 기준에 맞아떨어지는 사람만 비난을 면하게 되는 거죠. 2번 혐오하기보다 좀더 교묘하고 똑똑한 타자화의 방법이죠.
대표적인 예로 바로 요즘 만연한 '개념녀' 프레임과 '모성' 프레임을 볼 수 있어요.
모성
프레임에선 어머니의 숭고함을 매우매우 찬양하지요. 하지만 그 찬양받는 어머니의 모성은....사실 사람이라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예요. '절대적이고 변함없고 자식과 남편이 아무리 나를 개차반으로 취급해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품어주는'
역할이거든요. 저런 어머니가 되려면 개인을 엄청나게 희생해야 해요. 하지만 이렇게 숭고의 프레임이 덧씌워지고, 저 어머니의 역할을
해내는 여성들이 찬양받는 순간, 저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여자들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죠.
현재
이십대의 젊고 예쁜 여성이 누리는 권력, 그들에게 쏟아지는 찬양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찬양받지만, 젊고 예쁜 여자에게 쏟아지는 찬양은 동시에 젊지 않고 사회적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해주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것!!! 이 타자화에는 부작용이 있어요. 즉 내가
누군가를 타자화시키려면, 동시에 나도 조금은 타자화되는 거예요. 한 집단을차별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감수해야할 것이 있는 것이죠.
즉 백인들이 '흑인들은 야생적이고 문명화되지 못한 무식한 인종'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울때, 백인들은 필연적으로 '흑인들과 비교해서
반드시 지적이고 문명화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어요. 그런데 사실 백인 중에서도 '야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떤 그런 거칠고 본능적인, 야생의 멋! 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백인은 억압당하게 되는
것이죠. 또 백인 중에서도 지적인 활동보다 육체적인 활동이 더욱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은 억압 당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흑인들만의 문화' '흑인들만의 스포츠'에 끼어드는 백인이 조롱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귀족제에 비교하자면, 귀족은 노예를 '멍청하게 잡일이나 하는 존재'로 부리고 싶었기 때문에, 본인들은 기를 쓰고 똑똑해져야만했고,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고 예법에 얽매이게 되는 거예요.
여성들에게서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빼앗고 가사노동과 아이 양육의 책임만을 떠맡게 하려면, 남자들은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지요.
신체적으로 연약하다는 이유로 여성 차별을 정당화 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남성들역시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차별받기 시작해요.
즉 한쪽을 타자화하는 것은 동시에 나도 조금은 억압하게 되는 거예요. (물론 차별 받는 쪽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주 미미해요.)
타자화에 대해서 설명하려다보니까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 미안해요...... 하지만 포기하지말고 계속 읽어줘요! 곧 갓치남..을 만나는 방법이 나와여!!!!!
'가부장제'는 바로 이 타자화 전략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는 제도에요. 가부장제와 계급제도, 그리고 현재의 국가제도는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그것까지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최대한 짧게 말할게요.
가부장제는
전적으로 서열에 의존하는 제도예요. 서열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이 최대한의 이익을 누리고, 아래로 갈수록 억압과 멸시를 당하는
아주 나쁜 제도지요. 가부장제는 즉 계급주의와도 밀접하게 맞닿아있죠. (가부장제에서 경제적 측면을 더하면 계급주의가 되어요!)
성별 말고도 연령이나 가문(?) 같은 것들에 의해 가부장제 안에서의 서열이 결정되지만, 여기에서는 성별에 집중해서 이야기할게요.
그랬을
때 가부장제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억압 당하게 되어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자들은 당연히 가장 큰 피해자가되고, 중간에 낀
사람은 낀 사람 나름대로 힘들지요. 그사람들을 착취해서 가장 위에 위치한 사람들이 부당한 편의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는 끊임없는 타자화로 유지되어요. 끊임없이, 끊임없이 상대를 타자화 하는 것이죠.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이고,
여자 외에도, 연령적으로 어릴 수록, 남자라면 '가부장제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남자일 수록 심하게 타자화되어요.
인터넷에 '침팬치와 보노보 원숭이'를 치면 여기에 대해서 잘 볼 수 있어요! 침팬치는 계급주의, 가부장제에 기초한 사회 질서를 가지고 있고 보노보원숭이는 탈가부장제(?)와 비슷한 사회 제도를 가지고 있어요!!
아 설명이 너무 길어진다. 미안해요. 현대 철학으로 넘어와서 윤리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타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거예요.
보통 타자가 아닌 사람들은 타자에게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 타자들의 고통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거예요. (심지어 타자들 조차 스스로가 타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타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타자의 고통에 이입하는 사람이 있어요. (타자일 경우엔, 스스로가 타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능력을 바로 '감수성'!!!!!! 이라고 불러요. 이 감수성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감수성이 참 풍부해!'의 감수성과는 조금 다른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타자의 고통을 통찰하는 능력, 사회구조적으로 타자화되어서 차별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람들에 대해 '아 이것은 차별이야! 여자들이 차별받고 있어!'라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해요.
자 여기까지가 설명이었어여!! 너무 길어서 미안해여!!!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에 물들지 않은 남자를 찾는 방법은 바로 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을 찾는 것과도 일치해요.
남자는
여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히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통찰력 있고 깊이있는 생각'을 가진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를 찾으면,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편견없고 널린 시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페미니스트 남친을 만나는 방법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써보겠어요. 말투를 바꾸고 게시글을 올려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제 글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저의 평소 말투로 적을게요. 집단의 요구에 따라 정체성을 바꾸어야하는 것 또한 가부장제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가부장제와 타자화에 대해서 조금 설명하고 싶어요.
물론 저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제 막 세계의 부조리에 눈을 뜨신(?) 분들도 계실테니까 그분들을 위해서요!
각 철학자들마다 용어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또 정의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책 한권을 다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좁은 인터넷 게시판에선 완벽한 설명을 다 하지 못한 다는 점 양해해주세요.
먼저 '타자'란, 쉽게 말해서 집단의 내부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뜻해요. 차별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더 쉽게 설명하자면, 지배계층 혹은 기득권에 반대되는 피지배계층, 소수자, 약자등으로 설명한다면 많은 경우 맞아떨어져요. 그렇지만 완벽한 동의어는 아니라서 애매하게 다른 부분이 있어요. 이 세계의 약자라 하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유색인종이란 단어도 차별적이죠)이 있겠지요. 그리고 이들은 동시에 타자이지요.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대게의 경우 타자는 약자가 맞지만, 가끔씩 꼭 약자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단 한명의 부유한 아이가 다니고 있다면, 그 부유한 아이는 사회적으론 강자지만 그 학교 안에선 타자가 되어요. 한국에 백인이 이민와서 살고 있다면, 그 백인 역시 강자지만 타자인 것이지요. 즉 타자는 단순히 약자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집단의 외부에 위치하는 존재'를 뜻해요.
여기서 '타자화'라는 단어를 살펴볼텐데, 말그대로 타자화는 한 존재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뜻해요.
타자화의 전략으로는 '이름 붙이기' / '혐오하기' / '숭배하기' 등등.... 이런 것들이 있어요.
1. 이름 붙이기
'이름 붙이기'부터 살펴보자면, 타자는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없고, 오로지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버려요. 유색인종/장애인/성소수자/예체능
이런 단어들은 전부다 그런 식으로 묶인 단어들이예요.
백인은 타자가 아니므로, 백인은 다른 인종과 묶이지 않아요. 피부색이 아주 짙은 흑인이, 백인과 아시아인들을 묶어서'황백인종' 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타자에겐 묶어서 이름 붙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예요. 오로지 백인만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므로,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을 '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서 '유색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예요. 하지만 '유색인종'으로 묶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들은 서로 아주아주다르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져요. 타자화는 타자화된 대상들 사이의 차이를 뭉개버리고,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해버리는 거예요.
성소수자도 사실은 마찬가지의 단어인데, '스스로의 신체적 성별과 정신적 성정체성이 동일한 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성소수자'라는 단어로 묶어버리거든요. 하지만 성소수자안에는 게이, 트렌스젠더, 레즈비언, 에이섹슈얼등 아주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하고, 그 정도도 달라요. 그들은 서로 다 다른데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는 것이죠.
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가령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과,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매우 다르죠. 그렇지만 일정수준 이상의 기준을 정해놓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일컫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사고로 다리를 잃은 회사원이 해고 당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다리를 잃어도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데엔 아무런지장이 없는데, 다리를 잃었다->장애인이다->장애인은 회사 업무를 볼 수 없다 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회사에서 업무를 볼 수 없는 종류의 장애도 물론 있지만, 그 경우가 아닌데도 그 경우로 인식되는 거예요.
예체능 역시 마찬가지예요. 현재 교육제도상 배척되는 것들이죠. '예체능 계열인데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건.. 예술과 체육은... 거의 끝과 끝에 가깝게 달라요. 특히 예술중에서도 문학을 하는 친구들과 체육을 하는 친구들의 성격은... 스펙트럼의 극단에 위치해있지요. 이런 차이들을 저 단어에서 말소해버려요.
여기까지 말했으면 다들 알아채셨겠지만, '타자화'는 타자들 사이의 차이를 말소해버려요.
누군가 '야, 이성애자는 어떤 성격이야?'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죠.
하지만 '야, 게이들은 어떤 성격이야?'라고 묻는다면, 음... 게이는 말이야.... 라고 대답해버리는 거죠. 게이는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게이라는 집단의 일부'로만 인식되기 때문이예요.
(물론, 타자로 살아온 사람들은 타자이기 때문에 많은 편견과 차별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일정 부분 비슷한 상처를 공유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그 상처가 확률적으로 어떤 성격을 형성하는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 사라지면 사라질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고려하지 않을게요.)
이것을 여자에 대입했을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문장, 악녀, 악처, 계모, 팜므파탈, 이런 단어들이 어떻게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지 알 수 있어요. 어쨌든 이것이 바로 이름 붙이기, 묶어서 생각해버리는 일이예요.
2. 혐오하기
너무 늘상 당하는 거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3. 숭배하기
이 숭배하기!란 지점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보통 고정관념에 의하면, 타자일 경우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어떻게 숭배의 대상이 되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숭배하기는 의외로 굉장히 효과적인 타자화의 전략이예요. 개념녀 프레임이 여기에 해당하는 걸텐데, '특정 집단 안에 속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프레임화' 해서 그들을 욕할 정당성을 찾는것이 2번 혐오하기라면,
숭배하기는 '특정 집단 안에 속하는 사람을 감히 인간이 다다를 수 없을만큼 숭고하게 만들어서 찬양하는' 것이예요.
문제는 그 집단에 속한 타자들 중, 숭고함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숭고함이란 말했듯이 ... 인간이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극도의 희생을 전제하는 영역이예요...
그래서 타자화된 집단의 대부분은 비난을 받게 되고, 간혹 스스로를 엄청나게 희생하서 숭고하기의 기준에 맞아떨어지는 사람만 비난을 면하게 되는 거죠.
2번 혐오하기보다 좀더 교묘하고 똑똑한 타자화의 방법이죠.
대표적인 예로 바로 요즘 만연한 '개념녀' 프레임과 '모성' 프레임을 볼 수 있어요.
모성 프레임에선 어머니의 숭고함을 매우매우 찬양하지요. 하지만 그 찬양받는 어머니의 모성은....사실 사람이라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예요. '절대적이고 변함없고 자식과 남편이 아무리 나를 개차반으로 취급해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품어주는' 역할이거든요. 저런 어머니가 되려면 개인을 엄청나게 희생해야 해요. 하지만 이렇게 숭고의 프레임이 덧씌워지고, 저 어머니의 역할을 해내는 여성들이 찬양받는 순간, 저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여자들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죠.
현재 이십대의 젊고 예쁜 여성이 누리는 권력, 그들에게 쏟아지는 찬양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에 찬양받지만, 젊고 예쁜 여자에게 쏟아지는 찬양은 동시에 젊지 않고 사회적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여자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해주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것!!!
이 타자화에는 부작용이 있어요. 즉 내가 누군가를 타자화시키려면, 동시에 나도 조금은 타자화되는 거예요. 한 집단을차별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감수해야할 것이 있는 것이죠. 즉 백인들이 '흑인들은 야생적이고 문명화되지 못한 무식한 인종'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울때, 백인들은 필연적으로 '흑인들과 비교해서 반드시 지적이고 문명화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어요. 그런데 사실 백인 중에서도 '야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어떤 그런 거칠고 본능적인, 야생의 멋! 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백인은 억압당하게 되는 것이죠. 또 백인 중에서도 지적인 활동보다 육체적인 활동이 더욱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은 억압 당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흑인들만의 문화' '흑인들만의 스포츠'에 끼어드는 백인이 조롱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귀족제에 비교하자면, 귀족은 노예를 '멍청하게 잡일이나 하는 존재'로 부리고 싶었기 때문에, 본인들은 기를 쓰고 똑똑해져야만했고,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고 예법에 얽매이게 되는 거예요.
여성들에게서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빼앗고 가사노동과 아이 양육의 책임만을 떠맡게 하려면, 남자들은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지요. 신체적으로 연약하다는 이유로 여성 차별을 정당화 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남성들역시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차별받기 시작해요.
즉 한쪽을 타자화하는 것은 동시에 나도 조금은 억압하게 되는 거예요. (물론 차별 받는 쪽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주 미미해요.)
타자화에 대해서 설명하려다보니까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네요............. 미안해요...... 하지만 포기하지말고 계속 읽어줘요! 곧 갓치남..을 만나는 방법이 나와여!!!!!
'가부장제'는 바로 이 타자화 전략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는 제도에요. 가부장제와 계급제도, 그리고 현재의 국가제도는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그것까지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최대한 짧게 말할게요.
가부장제는 전적으로 서열에 의존하는 제도예요. 서열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이 최대한의 이익을 누리고, 아래로 갈수록 억압과 멸시를 당하는 아주 나쁜 제도지요. 가부장제는 즉 계급주의와도 밀접하게 맞닿아있죠. (가부장제에서 경제적 측면을 더하면 계급주의가 되어요!) 성별 말고도 연령이나 가문(?) 같은 것들에 의해 가부장제 안에서의 서열이 결정되지만, 여기에서는 성별에 집중해서 이야기할게요.
그랬을 때 가부장제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억압 당하게 되어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자들은 당연히 가장 큰 피해자가되고, 중간에 낀 사람은 낀 사람 나름대로 힘들지요. 그사람들을 착취해서 가장 위에 위치한 사람들이 부당한 편의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는 끊임없는 타자화로 유지되어요. 끊임없이, 끊임없이 상대를 타자화 하는 것이죠.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이고, 여자 외에도, 연령적으로 어릴 수록, 남자라면 '가부장제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남자일 수록 심하게 타자화되어요.
인터넷에 '침팬치와 보노보 원숭이'를 치면 여기에 대해서 잘 볼 수 있어요!
침팬치는 계급주의, 가부장제에 기초한 사회 질서를 가지고 있고
보노보원숭이는 탈가부장제(?)와 비슷한 사회 제도를 가지고 있어요!!
아 설명이 너무 길어진다. 미안해요.
현대 철학으로 넘어와서 윤리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타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거예요.
보통 타자가 아닌 사람들은 타자에게 별 관심이 없고, 그래서 타자들의 고통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거예요. (심지어 타자들 조차 스스로가 타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타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타자의 고통에 이입하는 사람이 있어요. (타자일 경우엔, 스스로가 타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능력을 바로 '감수성'!!!!!! 이라고 불러요.
이 감수성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감수성이 참 풍부해!'의 감수성과는 조금 다른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타자의 고통을 통찰하는 능력, 사회구조적으로 타자화되어서 차별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람들에 대해 '아 이것은 차별이야! 여자들이 차별받고 있어!'라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해요.
자 여기까지가 설명이었어여!! 너무 길어서 미안해여!!!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에 물들지 않은 남자를 찾는 방법은
바로 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을 찾는 것과도 일치해요.
남자는 여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히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통찰력 있고 깊이있는 생각'을 가진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를 찾으면,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편견없고 널린 시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이제 감수성이 높은 남자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