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있는데 조언 해주고 뒤에 내용 좀 만들어주ㅏ,,,,,

ㅇㅇ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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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빠는 트럭에서 국화빵 장사를 하셨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하셨었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국화빵 장사를 하셨던 건 아니구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던 때, 빵 장사를 시작하셨어요. 국화빵 장사를 하시기 전에, 저희 가족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형편도 아니었고, 엄마는 저랑 동생들이 하고싶어 하는 걸 거의 해 주시면서도 버릇 나빠질까 매 드는 것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저랑 동생들은 특별히 모난 곳 없이 잘 자라서 다른 사람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살고 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아빠께는 18년지기 친구 한 분이 있었는데 종종 술도 같이 드시고 친구분네 가족이랑 같이 놀러도 갈 정도로 친하게 지내셨어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빠한테 급하게 어머니가 아프셔서 돈 조금만 빌려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그 친구인지 알겠더라구요. 얼핏 들은 건데 한 4000 정도 넣으셨던 거 같고, 넣으시면서 " 천천히 줘도 된다 "라고 하셨어요. 물론 돈의 액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것보다 적진 않을 거에요. 그 정도면 지금도 큰 돈인데 그 때 저희 형편에는 좀 많이 무리하셨던 돈이었죠. 이것 때문에 엄마랑 아빠랑 자주 다투셨었어요. 물론 금방 화해했구요. 그렇게 다시 아무일 없단 듯 살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1학년이었던 거 같은데 그 때 아빠가 공개수업 참석하러 오시다 사고가 나셨어요. 작은 접촉사고 정도가 아닌 꽤 큰 사고였어요. 아빠만 기다리며 수업에 집중도 못하고 한 교시, 한 교시 지날 때 마다 기대에 가득했던 제 눈에 실망으로 가득 찰 때에 즈음, 선생님께서 저를 교무실로 부르셨고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그 때에서야 아빠의 사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저는 급하게 짐을 싸 아빠가 계신 병원으로 갔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흐르는 눈물 꾹 참고 엄마 옆에 있어주는 거 밖에요. 그렇게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아빠 건강하게 다시 나오시는 모습만 머릿속에 그렸던 거 같아요. 그 뒤로 몇 분이 지난지. 아니 몇 시간이나 흐른 것 같았어요.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다행히 아빠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회복만 기다리면 되지만 무릎을 예전처럼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엄마랑 저는 무릎이 마음 한 켠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제서야 눈물을 닦을 수 있었고 안심할 수도 있었어요. 그때 본 아빠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야위었었어요. 그렇게 병원 병실에서 몇 주. 아빠 회복만을 기다리고 집에 올 날만을 기다렸어요. 수술하고 처음 며칠 빼고는 아빠 보러 병원에 갈 틈도 없이, 엄마 대신 제가 동생들을 돌보느라 바쁘게 지냈던 거 같아요. 그렇게 기다리던 아빠 오시는 날.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것처럼 아빠는 눈에 띌 정도로 심하게 한쪽 다리를 절뚝 거리며 들어 오셨고, 어린 마음에 '내 완벽하던 아버지'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우리 완벽한 아빠'에 금이 간 것 같아 너무 속상해서 몇 날 며칠을 눈물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었죠. 아빠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는 게 버거우셨던 건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는 아빠를 향한 따가운 시선들이 버거우셨던 건지. 일을 그만 두셨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찾으신 일이 트럭 빵 장사였었나봐요. 일을 그만둔 후로 한 달도 안 되서 빠르게 트럭을 사셨고 또 얼마 안 되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서 국화빵을 굽는 아빠를 볼 수 있게 됐어요. 그 때는 마냥 학교 근처에 아빠가 있다는 게 좋아 학교 마치면 곧장 아빠한테 가서 국화빵 몇 개 집어먹고 아빠 일 끝날 때까지 옆에 붙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