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에서야 당신을 놓는다.

ㅇㅇ2018.07.09
조회8,631



 우리의 끝은 예견되어 있었다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끝을 향해 가는 사랑이 더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내게는 길기만 했던 2년남짓의 연애가 결국 끝이 났다. 끝은 내가 냈다. 하지만 결국 더 힘든 건 나다.

 

 나를 보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 나와의 약속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 내게 해주던 예쁜 말들이 점차 줄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 당신과 내 손이 마주치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 이미 당신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당신을 만날 때는 언제나 떨렸다. 자주 못봐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당신이 좋아서 그랬다. 언제나 예쁜 옷, 예쁜 신발, 느낌이 좋은 향수,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쫒았다. 당신이 예쁘게 봐주길 원해서. 늘 같은 스타일만 고집하면 당신이 질려 나가떨어질 것만 같아서. 종종 그게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어떨 땐 청순하게 어떨 땐 조금 섹시하게 어떨 땐 조금 귀엽게... 당신에게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길 원했다, 나는. 그게 당신에게 부담이었을까?

 

 멀리서 오는 당신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주일에 한 번 차를 끌고 나를 만나러 오는 당신은 언제나 지쳐보였다. 그래서 당신이 먹고 싶은 것,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했다. 그게 지나친 배려였을까.

 

 나와 있을 때는 나에게만 신경써주길 원했다. 나를 바라봐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나는 그에 공감해주고. 모두와 섞여 있지만 우리 둘만의 시간을 원했다.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시간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게 당신에게는 귀찮은 일이었을까.

 

 일이 힘들고 지쳐 집에 들어와 핸드폰 볼 여유도 없어 뒤집어 놓는다던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스트레스를 잠으로 푼다고 했던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만나지 못할 때 내게 신경을 못쓰니 만날 때라도 잘하려고 한다던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일이 제일 먼저인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루종일 내 안부 한 번 묻지 않던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집에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당신은 자느라 바빴고 내가 일이 힘들어 혼자 화장실에 울고 있을 때도 당신은 자느라 바빴고 회사 건물에 작은 불이나 모두가 대피했을 때도 당신은 야구경기를 보느라 바빴다.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언제나 당신은 바빴다.

 

 그건 너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무신경한 거라고 모두 헤어지라고 해도 차마 당신을 손을 놓지 못하고 끌고 갔던 건 만났을 때 내게 해주던 자상한 말투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던 당신의 애정 때문이었다. 그래, 바빠서 그렇겠지. 만나면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인데...

 

 만나면 이렇게 잘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왜 마주 앉았을 때 핸드폰만 보고 있을까. 왜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을까. 어찌 이렇게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울어도 봤다.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해서 그렇게 하자고도 했다. 하지만 반복됐다. 반복되고 반복되고. 알고 있음에도 붙잡고 있는 내가 한심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견디지 못해 끝을 낸 건 나다.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이 없었을 때, 당신에게 “나의 어디가 좋아서 사겨?” 했던 질문에 “자원봉사?” 라고 답이 돌아왔을 때, 당신의 곁에 누워 곰인형처럼 꼭 안고 바라볼 때 내게 돌아오던 그 싸늘한 눈빛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다시는 연애로 인해 내 가치를 떨어트리고 싶지 않았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나도 당신도 빛이 나야하는데 우리는 점차 가라앉기만 했다. 미치도록 외롭고 슬펐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것보다 외로웠다.

 

 헤어지자는 말에 이유조차 묻지 않고 돌아섰던 당신이 원망스러웠다. 늘 대화하자 한 건 나였다. 우리 이야기 좀 해. 대화 좀 해. 대화를 하고 싸우고 화를 내고 그건 관계 개선에 여지가 있을 때나 하는 거다. 우린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아니, 당신이.

 

 다 끝난 마당에 착한 여자 코스프레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쉬는 날을 반납하고 쪽잠을 자면서도 당신을 만났다. 자주 만날 수 없으니까 시간 날 때마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걸 들키기 싫어서 당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시간이 난다고 하면 당신을 만나러 갔고 아니라고 하면 대기타다 하루를 버리기도 했다. 싫지 않았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연애기간 내내 내가 잘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배려라는 명목아래 우유부단하게 구는 내가 싫었을 거다. 당신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보는 내가 싫었을 거다. 애정표현이 서툰 내가 짜증났을 거다. 그래서 고치려고 노력했다. 당신이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걸 인정해준 것도 당신이었다.

 

 헤어지고 다음날 구구절절 메시지에 지금까지 당신이 내게 줬던 상처들을 고스란히 보냈다. 당신은 그게 질린다고 했다. 그 메시지에 나에 대한 미련이 뚝 떨어졌다고 했다. 다행이어야 하는데 그 말이 비수가 됐다. 내가 지금까지 참고 인내해왔던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이었고 일말의 미안함조차 들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피가 났다. 상처가 쉽게 아물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이겨내야겠다. 당신을 위해 샀던 예쁜 옷과 반짝이는 구두, 형형색색 화장품들을 이제 나를 위해 써야겠다. 다시금 혼자의 시간에 익숙해져야겠지.

 

 익숙함이란 무섭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자 내게는 공허함, 허전함, 슬픔, 그리움, 미련.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쏟아져온다. 하지만 다 받아들이고 살려고 한다. 바쁘게 살고 나를 위해 살면 당신에 대한 감정들이 무뎌질 거라 믿는다.

 

 그러니 오늘, 딱 이 글을 쓸 때까지만 당신을 생각할게. 내일부터는 당신에 대한 일들을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거다. 그러다보면 생각하는 것도 줄어들겠지. 의식적으로라도 당신을 멀리 하려고 노력할 거다. 그러다보면 나는 빛나고 있을 거고 또 다른 사랑을 하는 내가 있겠지.

 

 안녕, 사랑했던 내 당신아. 오늘에서야 나는 당신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