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아나요. 초등학교 2학년이 자살이란 게 뭔지 고민하는 기분을. 초등학교 3학년이 자살을 시도하는 기분을. 초등학교 5학년이 조각칼을 들고 자신의 손목에 댄 기분을. 초등학교 6학년이 도로를 보며 자신의 몸이 차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뒹구는 모습을 상상하는 기분을. 중학교 1학년이 커터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고 팔찌 여러개로 가리고 다닌 기분을. 중학교 2학년이 단체 자살을 인터넷에 검색하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기분을. 중학교 3학년이 매일 새벽마다 울며 보내는 기분을. 고등학교 1학년이 어느 날과 같이 창문 앞에 서있다 잠깐 휘청였던 그때, 그 순간에 느낀 훼방감과 희열을. 키우는 강아지에게 홀로 울며 힘든 걸 털어놨던 기분을. 매일 비판만 받아서, 칭찬받길 기도하며 사는 기분을. 당신들은 아나요? 당신이 잠깐동안 느끼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사라지는 우울감과 달리, 나는 24시간동안 우울감에게 목이 죄어오고 있어요. 나는, 24시간 내내 내가 죽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살아요.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어서.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손목을 그어봤는데, 너무 아파서. 괜히 자살에 실패했다가 손목의 흉터를 보고 남들이 불쌍하게 생각할까봐. 그 동정이 싫어서. 아무런 정서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 집에서, 나의 힘듦을 보고 위로와 격려가 아닌 비판을 받을까봐. 모두가 다 힘들대요. 나만 힘든 게 아니래. 그러면 뭐해, 남들이 힘들어서 내가 힘든게 사라지나요. 매일 신호등을 건너며 우연히 죽는 순간을 기대하는 나에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다른 사람을 내가 죽일까봐 무서워하는 나에게, 아무도 나의 정서적 상태를 알아주지 않는 상태인데, 다른 사람의 힘듦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혹해요. 난 이제 겨우 17살인데, 17살 나이에 몇 년 동안 겪어온 우울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말해봐도 순간적인 감정일 거래요. 우울감은 금방 지나간대요. 금방 지나간다는 그 우울감은 나를 몇년동안 저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어요. 처음엔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십가지의 우울증 테스트를 해봤어요. 간단한 것부터, 심화된 것까지. 결과는 항상 아주 나쁨이더군요. 이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요. 부모님 직업이 좋은 직업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커왔어요. 성적도 나쁘지 않아요. 항상 상위권 유지하고 있으니까. 주변에 친구는 많아요. 공부도 잘하고 나만 좋아해주는 남자친구도 있어요. 이런 이상적인 환경이 나를 더 죄어와요. 프레임만 좋아서 뭐해요. 속사정은 전쟁터인데. 내 친구들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가, 괴리감이 느껴져요. 다들 엄마아빠랑 같이 있을 때 편하고 행복하대요. 엄마아빠를 존경한대요. 집이 제일 좋대요. 성적을 잘 받으면 칭찬받는대요. 그래서 내가 힘든 걸 못 말하겠어요. 남자친구는, 어디서나 사랑받고 자라온 게 느껴질만큼 밝은 사람이라서, 내가 고민을 말했다가 어둠으로 물들일까봐 못 털어놓아요. 나는 언제까지 우울할까요. 언제쯤 한순간이라도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 나는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나는. 2
당신들은 아나요
당신들은 아나요.
초등학교 2학년이 자살이란 게 뭔지 고민하는 기분을.
초등학교 3학년이 자살을 시도하는 기분을.
초등학교 5학년이 조각칼을 들고 자신의 손목에 댄 기분을.
초등학교 6학년이 도로를 보며 자신의 몸이 차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뒹구는 모습을 상상하는 기분을.
중학교 1학년이 커터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고 팔찌 여러개로 가리고 다닌 기분을.
중학교 2학년이 단체 자살을 인터넷에 검색하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기분을.
중학교 3학년이 매일 새벽마다 울며 보내는 기분을.
고등학교 1학년이 어느 날과 같이 창문 앞에 서있다 잠깐 휘청였던 그때, 그 순간에 느낀 훼방감과 희열을.
키우는 강아지에게 홀로 울며 힘든 걸 털어놨던 기분을.
매일 비판만 받아서, 칭찬받길 기도하며 사는 기분을.
당신들은 아나요?
당신이 잠깐동안 느끼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사라지는 우울감과 달리, 나는 24시간동안 우울감에게 목이 죄어오고 있어요.
나는, 24시간 내내 내가 죽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살아요.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어서.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손목을 그어봤는데, 너무 아파서.
괜히 자살에 실패했다가 손목의 흉터를 보고 남들이 불쌍하게 생각할까봐.
그 동정이 싫어서.
아무런 정서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 집에서, 나의 힘듦을 보고 위로와 격려가 아닌 비판을 받을까봐.
모두가 다 힘들대요.
나만 힘든 게 아니래.
그러면 뭐해, 남들이 힘들어서 내가 힘든게 사라지나요.
매일 신호등을 건너며 우연히 죽는 순간을 기대하는 나에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다른 사람을 내가 죽일까봐 무서워하는 나에게,
아무도 나의 정서적 상태를 알아주지 않는 상태인데,
다른 사람의 힘듦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혹해요.
난 이제 겨우 17살인데, 17살 나이에 몇 년 동안 겪어온 우울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말해봐도 순간적인 감정일 거래요. 우울감은 금방 지나간대요. 금방 지나간다는 그 우울감은 나를 몇년동안 저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어요.
처음엔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십가지의 우울증 테스트를 해봤어요.
간단한 것부터, 심화된 것까지.
결과는 항상 아주 나쁨이더군요.
이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요.
부모님 직업이 좋은 직업은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커왔어요.
성적도 나쁘지 않아요. 항상 상위권 유지하고 있으니까.
주변에 친구는 많아요.
공부도 잘하고 나만 좋아해주는 남자친구도 있어요.
이런 이상적인 환경이 나를 더 죄어와요.
프레임만 좋아서 뭐해요. 속사정은 전쟁터인데.
내 친구들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가, 괴리감이 느껴져요.
다들 엄마아빠랑 같이 있을 때 편하고 행복하대요.
엄마아빠를 존경한대요.
집이 제일 좋대요.
성적을 잘 받으면 칭찬받는대요.
그래서 내가 힘든 걸 못 말하겠어요.
남자친구는, 어디서나 사랑받고 자라온 게 느껴질만큼 밝은 사람이라서, 내가 고민을 말했다가 어둠으로 물들일까봐 못 털어놓아요.
나는 언제까지 우울할까요. 언제쯤 한순간이라도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 나는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