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의 마지막 날, 한동안 따뜻했던 날씨에 익숙해진 탓인지 갑작스레 차가워진 바람이 낯설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올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그녀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한자리에 모인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어색한 기운에 당장 코앞에 닥친 인터뷰걱정으로 머리가 꽉 찼다. 어색한 분위기부터 없애야겠다 싶어 한명, 한명 소개를 해 주려는 찰나 '어머 언니!'하며 호들갑을 떠는 그녀들. 예전부터 서로 안면은 있는 사이란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표정들이 여전히 어색한걸 보니 썩 친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친한 듯, 어색한 듯 분위기가 묘하다.
모두 모인 시간은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간. 배를 비워두고 왔을 그녀들을 위한 음식이 적막을 갈랐다. 처음엔 수저 들기를 주저주저하던 그녀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다며 음식을 비워가기 시작한다.
원래 여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진다는데, 그녀들도 그런 걸까? 비워져가는 음식만큼 어색한 분위기도 차차 사라져 갔다. 아니,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다 못해 슬슬 수다스러워졌다. 기회는 이때다.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터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링 위의 모습과 달리 한없이 여성스러웠던 전연실, 주짓수 파란 띠, 그러나 운동에 대한 열정만큼은 검은 띠를 줘도 모자를 것 같았던 이희진, 거침없는 링 위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신중하고 차분했던 임수정. 그녀들은 소위 '운동 좀 한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이 '좀 한다' 소리를 듣는 선수의 길을 걸어온 기간은 평균 3년. 길지도 그렇다고 결코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녀들이 거친 바람을 뚫고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공통의 키워드는 '나의 길'이었다.
"몸이 약해 20살 때부터 합기도를 해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관절기에는 익숙했죠. 그런데 주짓수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두 선수가 밀착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같고 어쨌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우연히 체육관에 들렀다가 그렇게 주짓수를 처음 접했어요. 그날 비가 엄청 왔거든요? 친구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고 한참을 구경했어요. 그러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겠다고 관장님께 말씀드렸죠. 운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내 길이란 느낌이 들더라구요" 또박또박한 말투로 처음 주짓수를 접했던 상황을 전해준 이희진.
다음으로 전연실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운동이 본업은 아니에요. 법무사 사무실에 다니고 있거든요. 퇴근하고 체육관에 도착해서 운동을 마치면 밤 11시가 다돼요. 집이 남양주라 집에 가면 12시가 훌쩍 넘죠. 더군다나 집이 변두리다 보니 깜깜하긴 왜 그렇게 또 깜깜한지.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다니까요. 가끔은 이렇게 힘든데 운동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잠깐일 뿐,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요. 어떻게 찾은 내 길인데요"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지만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위로라도 할 심산으로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니 '말도 안된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전연실. 운동은 시간 날 때 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쪼개 하는 거라며 금방이라도 꿀밤을 줄 태세다. 곧바로 '동의 한다'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녀의 모습 정말 무서웠다.(?)
언니들의 진지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막내 임수정은 솔직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솔직히 힘들어요. 무섭긴 또 얼마나 무서운데요. 세상에 맞는 게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다이어트나 해볼 심산으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직업이 됐으니 제가 생각해도 가끔은 신기해요.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나는 건 내가 찾은 내 길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체육관 관장일도 겸하고 있는데요, 선수랑은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어깨가 무겁답니다"
스스럼없이 내 길이라 말할 만큼 소중하기에 좋지 않은 상황마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환경이 힘들지 않았다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희진 선수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눈짓을 보낸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경기가 좀 더 많았다면 종합격투기 선수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희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전연실, 대회가 꾸준히 열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회가 불규칙적으로 있다보니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단다. 경기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도 여성 선수들을 받아주는 링은 마음만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들이 마주하고 있는 여성 격투스포츠가 닥친 현실이다.
단기적인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여성 격투스포츠계에 어떻게 하면 힘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줬으면 한다는 임수정의 말이 서글프게 들리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차갑디 차가운 현실 때문이다. 그녀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꾸준한 관심의 힘으로 여성 격투스포츠가 하루 빨리 자리 잡는 것, 그것뿐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환경을 탓하지는 않는다. 환경을 탓하기 전에 링에 서는 주인공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이희진이 입을 열었다. "일본 스맥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을 보면 어떻게 이길까 보다 어떻게 즐길까를 먼저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중요해요" 전연실도 거든다. "야부시타 메구미선수는 격투스포츠라면 어떤 대회를 불문하고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요.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렇게는 못 하겠죠. 모두들 그런 모습은 본받아야 해요"
승리만큼이나 링에 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자기pr에 대한 얘기도 이어진다. 특히나 여성 격투가들에게 자기pr은 꼭 필요하다는데, 자기pr이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타개책은 아닐지 몰라도 선수들 스스로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서 팬들의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다.
일본선수들을 보면 화장을 하고 경기에 나간다는데, 어차피 땀으로 다 지워질 테지만 그것 역시 자기 관리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스포츠선수에게 있어 경기력을 앞설 만큼 중요한 것은 물론 없다. 그러나 관중들의 눈이 높아진 21세기를 살아가는 스포츠선수라면 필수요소인 경기력에 자기관리라는 옷을 입어야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녀들은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운동에 대한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녀들. 걷기 힘든 길, 아스팔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돌부리만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닥쳐있는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래도 즐겁다. 피가 끓어서, 심장이 시켜서 가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너는 내 운명이니까. 누가 뭐래도 이 길은 내 길이니까.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여성 격투스포츠도 따뜻한 사랑과 관심 속에 존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그녀들을 여기까지 이끈 힘이자 힘들어도 꿋꿋이 걷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다.
여성 파이터~~그녀의수다
그녀들 말하다. '너는 내 운명'
2007년 1월의 마지막 날, 한동안 따뜻했던 날씨에 익숙해진 탓인지 갑작스레 차가워진 바람이 낯설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올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그녀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한자리에 모인 그녀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어색한 기운에 당장 코앞에 닥친 인터뷰걱정으로 머리가 꽉 찼다. 어색한 분위기부터 없애야겠다 싶어 한명, 한명 소개를 해 주려는 찰나 '어머 언니!'하며 호들갑을 떠는 그녀들. 예전부터 서로 안면은 있는 사이란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표정들이 여전히 어색한걸 보니 썩 친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친한 듯, 어색한 듯 분위기가 묘하다.
모두 모인 시간은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간. 배를 비워두고 왔을 그녀들을 위한 음식이 적막을 갈랐다. 처음엔 수저 들기를 주저주저하던 그녀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다며 음식을 비워가기 시작한다.
원래 여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진다는데, 그녀들도 그런 걸까? 비워져가는 음식만큼 어색한 분위기도 차차 사라져 갔다. 아니,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지다 못해 슬슬 수다스러워졌다. 기회는 이때다.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터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링 위의 모습과 달리 한없이 여성스러웠던 전연실, 주짓수 파란 띠, 그러나 운동에 대한 열정만큼은 검은 띠를 줘도 모자를 것 같았던 이희진, 거침없는 링 위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신중하고 차분했던 임수정. 그녀들은 소위 '운동 좀 한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이 '좀 한다' 소리를 듣는 선수의 길을 걸어온 기간은 평균 3년. 길지도 그렇다고 결코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녀들이 거친 바람을 뚫고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공통의 키워드는 '나의 길'이었다.
"몸이 약해 20살 때부터 합기도를 해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관절기에는 익숙했죠. 그런데 주짓수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두 선수가 밀착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같고 어쨌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우연히 체육관에 들렀다가 그렇게 주짓수를 처음 접했어요. 그날 비가 엄청 왔거든요? 친구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고 한참을 구경했어요. 그러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겠다고 관장님께 말씀드렸죠. 운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내 길이란 느낌이 들더라구요" 또박또박한 말투로 처음 주짓수를 접했던 상황을 전해준 이희진.
다음으로 전연실이 입을 열었다. "사실 운동이 본업은 아니에요. 법무사 사무실에 다니고 있거든요. 퇴근하고 체육관에 도착해서 운동을 마치면 밤 11시가 다돼요. 집이 남양주라 집에 가면 12시가 훌쩍 넘죠. 더군다나 집이 변두리다 보니 깜깜하긴 왜 그렇게 또 깜깜한지.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다니까요. 가끔은 이렇게 힘든데 운동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잠깐일 뿐,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요. 어떻게 찾은 내 길인데요"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지만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위로라도 할 심산으로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니 '말도 안된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전연실. 운동은 시간 날 때 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쪼개 하는 거라며 금방이라도 꿀밤을 줄 태세다. 곧바로 '동의 한다'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녀의 모습 정말 무서웠다.(?)
언니들의 진지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막내 임수정은 솔직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솔직히 힘들어요. 무섭긴 또 얼마나 무서운데요. 세상에 맞는 게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다이어트나 해볼 심산으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직업이 됐으니 제가 생각해도 가끔은 신기해요.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나는 건 내가 찾은 내 길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체육관 관장일도 겸하고 있는데요, 선수랑은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어깨가 무겁답니다"
스스럼없이 내 길이라 말할 만큼 소중하기에 좋지 않은 상황마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환경이 힘들지 않았다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희진 선수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눈짓을 보낸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경기가 좀 더 많았다면 종합격투기 선수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희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전연실, 대회가 꾸준히 열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회가 불규칙적으로 있다보니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단다. 경기에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도 여성 선수들을 받아주는 링은 마음만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녀들이 마주하고 있는 여성 격투스포츠가 닥친 현실이다.
단기적인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여성 격투스포츠계에 어떻게 하면 힘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줬으면 한다는 임수정의 말이 서글프게 들리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차갑디 차가운 현실 때문이다. 그녀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꾸준한 관심의 힘으로 여성 격투스포츠가 하루 빨리 자리 잡는 것, 그것뿐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환경을 탓하지는 않는다. 환경을 탓하기 전에 링에 서는 주인공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이희진이 입을 열었다. "일본 스맥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을 보면 어떻게 이길까 보다 어떻게 즐길까를 먼저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중요해요" 전연실도 거든다. "야부시타 메구미선수는 격투스포츠라면 어떤 대회를 불문하고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요.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렇게는 못 하겠죠. 모두들 그런 모습은 본받아야 해요"
승리만큼이나 링에 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자기pr에 대한 얘기도 이어진다. 특히나 여성 격투가들에게 자기pr은 꼭 필요하다는데, 자기pr이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타개책은 아닐지 몰라도 선수들 스스로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서 팬들의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그녀들의 생각이다.
일본선수들을 보면 화장을 하고 경기에 나간다는데, 어차피 땀으로 다 지워질 테지만 그것 역시 자기 관리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스포츠선수에게 있어 경기력을 앞설 만큼 중요한 것은 물론 없다. 그러나 관중들의 눈이 높아진 21세기를 살아가는 스포츠선수라면 필수요소인 경기력에 자기관리라는 옷을 입어야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녀들은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운동에 대한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녀들. 걷기 힘든 길, 아스팔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돌부리만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닥쳐있는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래도 즐겁다. 피가 끓어서, 심장이 시켜서 가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너는 내 운명이니까. 누가 뭐래도 이 길은 내 길이니까.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여성 격투스포츠도 따뜻한 사랑과 관심 속에 존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그녀들을 여기까지 이끈 힘이자 힘들어도 꿋꿋이 걷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