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꽤 부유하게 살았었어.
언니 두 명과 부모님과 함께.
나는 막둥이라 항상 사랑을 많이 받았고 행복했었지.
내가 7살이 될 무렵, 우리 아빠가 많이 아팠었어.
그 때 나에게 모두가 별 일 아니라고 했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아빠가 처음 암이 발병했던 거 같아.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건강검진을 한다며 갔었을 때, 기다려보니 엄마만 돌아왔을 때, 그 때 눈치 챘어야 하는 거 였는 데. 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노는 행복한 유치원생이였어.
아직도 기억 나. 매일 난 엄마가 들어오길 새벽까지 안 자고 버텨가며 엄마를 찾았고, 이른 아침만 되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우는 나를 두고 가버렸던 거. 아마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 내가 9살 때쯤 아빠가 다시 돌아왔어 우리집으로. 우리 아빠는 그 때도 아프긴 했던 거 같아. 그런데도 내가 놀러가자고 그러면 귀찮아하는 내색없이 좋다고 하셨지. 우리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였을텐데 대단하지? 일 년간은 아빠랑 많은 추억을 쌓았던 거 같아. 난 너무 나빴어.
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잘 해주는 데도 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했었거든 ㅋㅋ. 그 일년간 엄마랑 아빠가 되게 많이 싸우셔서 나 진짜 힘들었어. 아빠는 나에게 힘든 내색 하나 안 했지만 정말. 내 앞에서 되게 많이 싸우셨어. 우릴 많이 아끼셔서 그런 가 되게 엄격하기도 하셨고. 지금생각해보면 최고의 아빠야. 날 너무나도 사랑해주셨거든.
날 제일 예뻐해주셨어. 아빠는 항상 그랬었어.
자기 딸이라 너무 고맙다고, 예쁘다고.
나에게 좋은 말이라곤 죄다 해주셨어.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어.
아빠가 또 사라졌어 10살무렵, 난 어디갔냐 물어봤어. 아빠가 사흘 째 안 왔으니까. 엄마는 아빠가 출장갔셨대. 그러려니 했지. 사흘 전만해도 팔팔하셨으니까. 나랑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여러 축제도 많이 다녔으니까. 나는 아빠 보고싶다고 하루에 한 번씩은 말 했던 거 같아. 어느 날, 엄마가 말씀 하셨어.
아빠가 다시 아프다고. 나는 왜 안 말해줬냐고 물어봤었지. 그냥 가벼운 병이라 말 하지 않았대. 믿었어. 나 진짜 멍청했지?ㅋㅋㅋ 모든 말을 다 믿었어.
왜 그랬을까. 병문안도 잘 안 갔어. 아빠가 먼 대학 병원에 갔거든. 난 태평하게 놀면서 지냈어. 어느 날 병원에 갔을 땐 아빠가 아파보이긴 했지만 여느때와 같이 날 사랑스럽게 쳐다봐주셨어. 오랜만이라고. 반갑다고. 안 본 새에 더 예뻐졌다고. 역시 내 딸이라고. 난 좋았어. 오랜만에 아빠를 봐서. 학교도 빠지고 아빠가 좋아서 거기 삼일정도 머물렀던 거 같아. 난 다시 집에 갔어. 또 아무렇지 않게 지냈지. 한 달 뒤, 한 번 더 병원에 갔어. 그 때의 아빠 모습은 너무 달라졌어. 수척한 얼굴, 머리카락 하나 없는 머리. 노란 눈과 노란 피부색. 아빠는 너무나도 달라졌었지만 그래도 난 이 모습도 충분히 멋져보였어.
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어. 아빠 오랜만 이라고 앞으로 더 자주 온다면서. 밤이 되면 일층에 내려가 아빠랑 한 바퀴 돌고 그랬어. 내가 아빠 휠체어를 끌어즈면서. 행복했어 그것만으로도. 아빠랑 일층 로비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편의점에 가기도 했고. 아빠는 아픈대도 불구하고 내가 가자는 곳은 다 가줬어. 그렇게 오개월 정도 그 대학병원에 생활하던 아빠는 내가 보고싶다며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성모병원에 갔어. 아 물론 내가 그 졍원에 오개월간 잌ㅅ던 건 아니야. 다시 집 가서 혼자 생활했지. 병원이 아닌 우리집은 항상 나 혼자였어. 언니들은 모두 고등학생에 수능 준비를 하기 바빴거든. 아빠 덕분에 요리도 꽤 하게 된거니 마찬가지지 아빠한테 너무 고마워. 아 말이 샜네, 아빠가 가까운 병원으로 오고나서부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갔나. 아 잘 기억이 안 난다. 초반엔 자주 가다가 점점 발 길이 잦아졌어. 가기 싫었거든. 왜 그랬을까
혼자 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냥 갈 생각이 별로 없었어.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오늘 꼭 병원에 와보래. 이건 너무 자세히 기억 나. 난 가기 싫다고 운동 가야 한다며 짜증 부렸었어. 정말 왜 그랬을까. 그래도 평소와 다르길래 갔지. 갔어. 엄마가 잠깐 나와보래. 작은언니랑 나랑. 엄마가 말 했어.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알겠다 했지. 엄마는 무거운 얼굴로 무거운 얘기를 꺼냈어. 아빠가 곧 죽는 대, 시간은 일주일 정도 있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이제 막 12살이 된 1월에 말이야. 이제 겨우 좀 생각하게 된 아이한테 그런 말을 던져버리면. 그 작았던 나는 어땠을까. 세상이 무서워졌어. 어두워졌고. 빛 한 점 없었어. 아빠가 없으면 내 행복은 어디서 찾지, 어떻게 살지 하고 말이야. 병원 가기 싫다고 때 쓰던 사람은 어디가고. 뒤 늦게 후회하면 다 되는 건가? 싶었어. 내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는 데, 엄마가 아빠 병실에 들어가보래. 나는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병실에 들어갔어.
아빠 눈엔 눈물이 맺혔어. 날 보자 누워있던 아빠는 어느새 말라버린 손으로 날 어루만져줬어. 참 웃긴게 그 순간이 가장 슬펐거든. 근데 아빠가 했던 말이 기억이 안 나. 너무 충격적이여서 그랬었을까. 한 참을 아빠품에 안겨서 울었어. 그리곤 잠시 밖에 나와 친구한테 전활 걸었어. 무작정 전화해서 울었어. 나 이제 어떡하냐고. 뭘 어떡해? 라고 묻는 친구에게 다 털어놨어. 어느 새 친구도 같이 울어주더라. 어려도 다 마음은 똑같은 가봐. 그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건 같이 울어주기 밖에 없는 데. 그 날 자기 전에 정말 많이 울었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모두 다 합쳐서. 정말 많이 울었어. 큰언니는 날 다독여주면서 언니도 이제 막 성인이 됬는 데 나 모자라지 않게 키워준다면서 잘 살아보자며 날 다독여줬어. 얼마나 울었는 지 일어났는 데 눈이 안 떠지더라니까 ㅋㅋ. 매일매일 병원에 갔어. 아빤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치매가 왔어.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었는지도 모르고 화장실 가자 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려왔어. 49밖에 안 된 꽃 다운 나이에 그런다는 게. 난 정말 아빠 곁에 꼭 붙어 있었어. 아빠의 그 미세한 온기가 너무 좋았거든. 아빠랑 큰언니는 작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며 석고를 했어. 지금도 있어. 지금 내 옆에! 그리고 아빠가 가기전에 다 같이 사진도 찍기로 했지. 간호사언니가 찍어준댔어. 근데 하늘은 아빠를 빨리 데려가고 싶었나 봐. 아빠가 돌아가신다 라는 말을 듣고 4일만에 돌아가셨어. 아빠가 돌아가시려 하는 모습을 지켜봤어 아빠 고마웠다고. 나 지켜봐 달라고. 사랑한다고. 최고의 아빠였다고. 미련 남기지 말고 편하게 가라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겠다고. 수고 많이 했다고. 다음 생엔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나 같은 못난 딸 낳지 말고 살라고. 그렇게 아빠는 갔어. 아빠가 가시니까 엄마가 나에게 폰을 하나 건내주더라 보라고. 보니까 아빠 폰에 우리 사진 밖에 없더라. 울었어. 하염없이 울었어. 근데 웃긴 게 아빠 장례식 땐 눈물도 안 나더라. 안 울거라 마음을 정말 굳게 먹었어도 눈물 나올 줄 알았는 데. 우리 아빠는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였나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줬어. 새도 없이 계속 왔어. 이런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고. 하지만 지금 내 생활은 그리 풍족하지 않아. 난 꾸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없고. 많은 걸 도전해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데 그 도전을 시작할 돈도 없고. 난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 정말 싫더라. 여러가지 일로 팔도 새도 없이 긋고 정말 살기 싫어서 목도 그었었는 데 다 부질없더라. 너네 인생은 어때? 불행하다 느꼈는 데 생각보다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아? 엄마 아빠께 지금이라도 잘 해줬으면 좋겠어. 내 작은 바램이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어. 열심히 살아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나처럼 돈 때문에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
내 얘기 좀 들어줘 제발
안녕 난 이제 막 중1이 된 여자야.
지루할진 몰라도 한 번만 읽어줘.
나는 예전에 꽤 부유하게 살았었어.
언니 두 명과 부모님과 함께.
나는 막둥이라 항상 사랑을 많이 받았고 행복했었지.
내가 7살이 될 무렵, 우리 아빠가 많이 아팠었어.
그 때 나에게 모두가 별 일 아니라고 했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아빠가 처음 암이 발병했던 거 같아.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건강검진을 한다며 갔었을 때, 기다려보니 엄마만 돌아왔을 때, 그 때 눈치 챘어야 하는 거 였는 데. 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노는 행복한 유치원생이였어.
아직도 기억 나. 매일 난 엄마가 들어오길 새벽까지 안 자고 버텨가며 엄마를 찾았고, 이른 아침만 되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우는 나를 두고 가버렸던 거. 아마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 내가 9살 때쯤 아빠가 다시 돌아왔어 우리집으로. 우리 아빠는 그 때도 아프긴 했던 거 같아. 그런데도 내가 놀러가자고 그러면 귀찮아하는 내색없이 좋다고 하셨지. 우리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였을텐데 대단하지? 일 년간은 아빠랑 많은 추억을 쌓았던 거 같아. 난 너무 나빴어.
아빠가 나한테 그렇게 잘 해주는 데도 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했었거든 ㅋㅋ. 그 일년간 엄마랑 아빠가 되게 많이 싸우셔서 나 진짜 힘들었어. 아빠는 나에게 힘든 내색 하나 안 했지만 정말. 내 앞에서 되게 많이 싸우셨어. 우릴 많이 아끼셔서 그런 가 되게 엄격하기도 하셨고. 지금생각해보면 최고의 아빠야. 날 너무나도 사랑해주셨거든.
날 제일 예뻐해주셨어. 아빠는 항상 그랬었어.
자기 딸이라 너무 고맙다고, 예쁘다고.
나에게 좋은 말이라곤 죄다 해주셨어.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어.
아빠가 또 사라졌어 10살무렵, 난 어디갔냐 물어봤어. 아빠가 사흘 째 안 왔으니까. 엄마는 아빠가 출장갔셨대. 그러려니 했지. 사흘 전만해도 팔팔하셨으니까. 나랑 자전거도 많이 타고, 여러 축제도 많이 다녔으니까. 나는 아빠 보고싶다고 하루에 한 번씩은 말 했던 거 같아. 어느 날, 엄마가 말씀 하셨어.
아빠가 다시 아프다고. 나는 왜 안 말해줬냐고 물어봤었지. 그냥 가벼운 병이라 말 하지 않았대. 믿었어. 나 진짜 멍청했지?ㅋㅋㅋ 모든 말을 다 믿었어.
왜 그랬을까. 병문안도 잘 안 갔어. 아빠가 먼 대학 병원에 갔거든. 난 태평하게 놀면서 지냈어. 어느 날 병원에 갔을 땐 아빠가 아파보이긴 했지만 여느때와 같이 날 사랑스럽게 쳐다봐주셨어. 오랜만이라고. 반갑다고. 안 본 새에 더 예뻐졌다고. 역시 내 딸이라고. 난 좋았어. 오랜만에 아빠를 봐서. 학교도 빠지고 아빠가 좋아서 거기 삼일정도 머물렀던 거 같아. 난 다시 집에 갔어. 또 아무렇지 않게 지냈지. 한 달 뒤, 한 번 더 병원에 갔어. 그 때의 아빠 모습은 너무 달라졌어. 수척한 얼굴, 머리카락 하나 없는 머리. 노란 눈과 노란 피부색. 아빠는 너무나도 달라졌었지만 그래도 난 이 모습도 충분히 멋져보였어.
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어. 아빠 오랜만 이라고 앞으로 더 자주 온다면서. 밤이 되면 일층에 내려가 아빠랑 한 바퀴 돌고 그랬어. 내가 아빠 휠체어를 끌어즈면서. 행복했어 그것만으로도. 아빠랑 일층 로비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편의점에 가기도 했고. 아빠는 아픈대도 불구하고 내가 가자는 곳은 다 가줬어. 그렇게 오개월 정도 그 대학병원에 생활하던 아빠는 내가 보고싶다며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성모병원에 갔어. 아 물론 내가 그 졍원에 오개월간 잌ㅅ던 건 아니야. 다시 집 가서 혼자 생활했지. 병원이 아닌 우리집은 항상 나 혼자였어. 언니들은 모두 고등학생에 수능 준비를 하기 바빴거든. 아빠 덕분에 요리도 꽤 하게 된거니 마찬가지지 아빠한테 너무 고마워. 아 말이 샜네, 아빠가 가까운 병원으로 오고나서부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갔나. 아 잘 기억이 안 난다. 초반엔 자주 가다가 점점 발 길이 잦아졌어. 가기 싫었거든. 왜 그랬을까
혼자 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냥 갈 생각이 별로 없었어.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오늘 꼭 병원에 와보래. 이건 너무 자세히 기억 나. 난 가기 싫다고 운동 가야 한다며 짜증 부렸었어. 정말 왜 그랬을까. 그래도 평소와 다르길래 갔지. 갔어. 엄마가 잠깐 나와보래. 작은언니랑 나랑. 엄마가 말 했어.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알겠다 했지. 엄마는 무거운 얼굴로 무거운 얘기를 꺼냈어. 아빠가 곧 죽는 대, 시간은 일주일 정도 있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이제 막 12살이 된 1월에 말이야. 이제 겨우 좀 생각하게 된 아이한테 그런 말을 던져버리면. 그 작았던 나는 어땠을까. 세상이 무서워졌어. 어두워졌고. 빛 한 점 없었어. 아빠가 없으면 내 행복은 어디서 찾지, 어떻게 살지 하고 말이야. 병원 가기 싫다고 때 쓰던 사람은 어디가고. 뒤 늦게 후회하면 다 되는 건가? 싶었어. 내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는 데, 엄마가 아빠 병실에 들어가보래. 나는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병실에 들어갔어.
아빠 눈엔 눈물이 맺혔어. 날 보자 누워있던 아빠는 어느새 말라버린 손으로 날 어루만져줬어. 참 웃긴게 그 순간이 가장 슬펐거든. 근데 아빠가 했던 말이 기억이 안 나. 너무 충격적이여서 그랬었을까. 한 참을 아빠품에 안겨서 울었어. 그리곤 잠시 밖에 나와 친구한테 전활 걸었어. 무작정 전화해서 울었어. 나 이제 어떡하냐고. 뭘 어떡해? 라고 묻는 친구에게 다 털어놨어. 어느 새 친구도 같이 울어주더라. 어려도 다 마음은 똑같은 가봐. 그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건 같이 울어주기 밖에 없는 데. 그 날 자기 전에 정말 많이 울었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모두 다 합쳐서. 정말 많이 울었어. 큰언니는 날 다독여주면서 언니도 이제 막 성인이 됬는 데 나 모자라지 않게 키워준다면서 잘 살아보자며 날 다독여줬어. 얼마나 울었는 지 일어났는 데 눈이 안 떠지더라니까 ㅋㅋ. 매일매일 병원에 갔어. 아빤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치매가 왔어. 방금 화장실을 다녀왔었는지도 모르고 화장실 가자 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려왔어. 49밖에 안 된 꽃 다운 나이에 그런다는 게. 난 정말 아빠 곁에 꼭 붙어 있었어. 아빠의 그 미세한 온기가 너무 좋았거든. 아빠랑 큰언니는 작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며 석고를 했어. 지금도 있어. 지금 내 옆에! 그리고 아빠가 가기전에 다 같이 사진도 찍기로 했지. 간호사언니가 찍어준댔어. 근데 하늘은 아빠를 빨리 데려가고 싶었나 봐. 아빠가 돌아가신다 라는 말을 듣고 4일만에 돌아가셨어. 아빠가 돌아가시려 하는 모습을 지켜봤어 아빠 고마웠다고. 나 지켜봐 달라고. 사랑한다고. 최고의 아빠였다고. 미련 남기지 말고 편하게 가라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겠다고. 수고 많이 했다고. 다음 생엔 더 행복하게 오래오래 나 같은 못난 딸 낳지 말고 살라고. 그렇게 아빠는 갔어. 아빠가 가시니까 엄마가 나에게 폰을 하나 건내주더라 보라고. 보니까 아빠 폰에 우리 사진 밖에 없더라. 울었어. 하염없이 울었어. 근데 웃긴 게 아빠 장례식 땐 눈물도 안 나더라. 안 울거라 마음을 정말 굳게 먹었어도 눈물 나올 줄 알았는 데. 우리 아빠는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였나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줬어. 새도 없이 계속 왔어. 이런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고. 하지만 지금 내 생활은 그리 풍족하지 않아. 난 꾸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없고. 많은 걸 도전해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데 그 도전을 시작할 돈도 없고. 난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 정말 싫더라. 여러가지 일로 팔도 새도 없이 긋고 정말 살기 싫어서 목도 그었었는 데 다 부질없더라. 너네 인생은 어때? 불행하다 느꼈는 데 생각보다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아? 엄마 아빠께 지금이라도 잘 해줬으면 좋겠어. 내 작은 바램이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어. 열심히 살아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나처럼 돈 때문에 포기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