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게 된다면

HJ2018.07.25
조회3,246
너 같은 사람이랑 하고 싶다
그때 네가 그랬잖아 
우리가 아직 고등학생일때, 너랑 나 꽤 괜찮은 친구였을 때.
나는 아직도 생각나
기숙사에 들어가기 싫어서
운동을 핑계로 너랑 몇 번이고 운동장을 돌던 그 여름이. 
별의 별 얘기를 다 하다 나온 결혼에 대한 말들. 
그 여름에,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데
굳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면서 말하던 너. 
그 당시의 나는 너처럼 부드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너무 부러웠어
그래서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이런 스타일이구나, 하고 생각만 했어. 
학년이 바뀌고 나서도 우리 반에 들러서 내 점심을 챙기는 네가그저 세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고. 
굳이 9반이나 떨어진 우리반까지 와서 학습지를 빌려가는 건네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만 여겼어
더위를 많이 타는 네가 언제나 내 손만은 놓지 않는 모습에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의 스킨십에 질색을 하는 네가
유독 나만은 오랫동안 껴안는 것에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상상이나 했겠니. 
같은 여자인데, 같은 성인데.
더럽다고 욕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같은 마음이었다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현재의 사랑을 털어놓으며 흘리듯이 말한 나에 대한 마음이 지금까지 잠 못이루게 한다는 걸 너는 아냐고. 
결혼을 생각하면서 만난다던 그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준 후 돌아오는 길.차 안에서 네가 흘리듯이 했던 말. 

나는 결혼을 한게 된다면 너랑 하고 싶었어. 너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너랑. 

고백이 맞을까? 술김에 털어놓은 말들을 착각한 건 아닐까?
같이 비를 맞으며 기숙사까지 뛰어가던 기억. 
음악회에서 바이올린을 켠 후 네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마주쳤던 눈. 
바람 때문에 휘날리던 커튼 사이로 조용히 조용히 머리칼을 넘겨주던 너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억지로 두 손을 끌고 오던 해안도로
그곳에서 봤던 눈부신 7월의 석양. 
대학 입학 후 자주 보지 못했을 때에도
만나는 날이면 항상 자취방 앞까지 바래다주던 너.
내 생각에 사왔다던 작은 선인장. 

분명 여러 번 남자친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단 한 번도 소개해주지 않았잖아
이번에는 달랐나 보다
그치, 진짜로 결혼을 생각하니까나한테도, 친구들한테도 자랑하듯이 소개한거겠지 좋은 사람이라고. 진짜 착하다고..
우리 가끔 말했잖아
동성애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너는 여중이었을 때 선배 이야기를 했고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영상에 대해 말했지
주체는 없었지만 너도 분명 알았을 거야
어쩌면, 같은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나는 무서웠어. 
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던 부모님
그들의 시선에 맞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
연애의 끝을 결혼으로 여겨오던 나의 가치관. 
나는 지금도 후회해. 
그 때, 내가 너의 연락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금은 달랐을까. 
왜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까. 
왜 나는 우리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지혜야! 
한 번도 말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너를 속였지만
나도 너를 좋아했어
너를 사랑했어
나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너랑 하고 싶었어
우리 라는 틀 안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
나도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 중 단 한가지도 하지 못할 걸 알지만
그래도 널 사랑한 이후로
한 번도나를 부끄러워한 적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도 없었다는 걸
언젠가는 알아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