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펌)

끼니2018.08.01
조회85
먼저 구약성서에서는 죽음의 보편성과 아울러 죽음과 연관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다. 죽음은 각 사람에게 닥칠 어떤 것으로 모든 사람이 보게 될 죽음이요(시편 39,49), 또한 맛보게 될 죽음이며, 죽음은 인류의 공통된 숙명인 동시에 “온 세상이 가야할 길이며”(1열왕 2,2; 사무 14,14; 집회 8,7),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하니 땅에 쏟아져 다시 모을 수 없는 물과 같으며(2사무 14,14),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져 있으며(창세 3,19.22) 인간은 사라질 존재요, 입김이며(시편 38,6.12; 49,13.21; 82,7; 89,43), 인생은 한갓 그림자요, 하나의 숨결, 허무일 따름(시편 39,5; 89,48; 90: 욥 14,1~12; 지혜 2,2)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야훼의 선물인 생명의 변경으로서 인간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그 관계 속에 포함되기에 죽음은 하느님의 지배하에 있으며(신명32,39), 따라서 죽음 또한 하느님의 지령으로 생각하고 순순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서에서는 죽음을 전혀 이상한 것으로 느끼지 않고 있다(요수 23,14; 1열왕 2,2).

둘째, 죽음을 죄의 벌과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 죽음은 아담의 죄 이래 인간에게 주어진 벌로서 이해하는데 이것이 구약성서에서 거의 주도적인 죽음의 관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즉, 하느님은 죽음을 만드시지 않았으며(지혜 1,13), 불사불멸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원조의 죄로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이 세상에서 죄악을 범한 인간은 죽음이라는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우리의 본성과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악일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죄인들의 경우에 있어 죽음은 자연적인 운명으로서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귀한 선물, 곧 생명의 박탈이라는 처벌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구약성서는 죄를 짓는 악인에게 죽음의 정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욥기 18,5 ~21; 시편 37,20.28.36;73,27; 에제 18,20). 이러한 죽음의 특징은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할 때, 즉 제 때가 되기 전에 죽는 죽음으로 묘사한다. 즉 때가 차지 않은 죽음은 언제나 생명의 원수로 나타나고 있다(2사무 12,16).)

셋째, 죽음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말하고 있다. 하느님에 의해서 지시된 이상적인 죽음은 노년기의 죽음으로 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죽음에 대하여 아주 담담하게 ‘모든 세상의 덧없음’ ‘자기 선조들 옆에 누워 휴식함’ ‘곡식이 영글어 타작마당에 이름’과 같은(욥기 5,26) 표현으로 성숙한 상태로서의 무덤에로의 진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런 죽음은 곧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서 사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죽음으로, 성취된 인생의 마무리로서 누구나 인간이 죽어야 할(darf) 죽음이지, 인간이 죽어야만 될(muß) 죽음이 아니며, 대표적인 인물은 아브라함으로서(창세 25,8) 이러한 사람에게는 야훼께서 복스러운 장수를 주시며 그들에게 죽음은 그저 우울하기만 한 결말이 아니라 평화로운 성취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수'와 '고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이들의 죽는 모습이다(창세35,92; 판관 8,32; 욥기 42,17; 1역대 24,15).

한편 신약성서에서의 죽음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 죽음과 연결하지 않고서는 죽음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까지는 아직도 죽음은 구약성서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여 죄의 결과로서의 죽음 이해가 지배적이었다. 즉 인류의 시조인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왔다(로마 5,12,17; 고린15,21).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 죽게 되었고(로마 15,22), 따라서 죽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기에(로마 5,14) 죄는 죽음의 독침(1고린 15,56)이며, 죽음은 죄의 열매며, 그 결과요, 또 그 대가이다(로마 6,16.21.23). 그리고 하느님 피조물인 우리의 몸은 죄에 의해 죽을 몸(로마 7,24)이 된다. 그래서 죽음은 생물학적인 삶의 종말이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악 속에서의 삶과 하느님의 은총의 상실, 거룩한 성령의 결핍을 뜻한다. 반대로 생명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일치하는 가운데 삶과 성령의 자극을 받으며 생활하는 새로운 현존 양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없이 인류는 죽음의 그늘에 잠겨 있게 되고(마태 4,16; 루가 1,79), 죽음은 항상 인류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하느님께서 죄스런 세상에 내려치시는 환난중의 하나로 남아 있게 되었다(묵시 6,8; 8,9; 18,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류는 최후의 암흑에서 해방되고 희망도 의미도 없는 이기적인 죄인의 존재로부터, 구속되어 하느님 안에서의 삶의 완결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죽음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여 죽음의 의미를 바꾸셨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신앙적 의미는 사도 바오로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잘 나타난다. 즉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으로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헌납하는 것을 죽음으로 보았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에 기본적인 사상으로 작용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죽음이 물론 하나의 위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허무를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존재로 이끌어가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