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년전 27살부터 20개월 연애끝에 결혼한 29세 신혼 남성 입니다.형제로는 32살 기혼의 형, 아래로 27살인 미혼 남동생이 있습니다.손이 귀한 집안에서 3형제를 낳은 어머니는 옛날 며느리치고는 나름 성공한 유형의 며느리였을겁니다. 게다가 옛날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남아 선호사상은 지독하다 싶이 합니다. 형은 어렸을때 부터 그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장남으로서 갖은 혜택을 누리고 자랐고, 저나 동생은 형의 부속품? 혹은 비상시 예방용인 대체제? 같은 취급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성장기때 부터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줄곧 형의 차지였고 저나 동생은 찬밥 신세 였죠. 어릴때 기억으로 가장 어머니에게 서러웠던건 음식에 관한것이었습니다. 밥을 먹을때 고기반찬, 계란요리는 형의 밥그릇 앞에 항상 놓였고 저나 동생이 소시지라도 하나 먹을라 치면 어머니가 "형님 식사 안끝났는데 어딜 손대느냐" 하시며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찍히 공부머리는 없던 형은 늘상 전교의 하위권에 머물렀고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던 어머니는 다달이 수십만원에 달하는 고액과외와 학원으로 형의 교육비에만 한달에 1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쓰기도 했지만 결국 첫수능에서 평균 5~6등급 정도를 받고 어머니로 부터 "남자가 한번에 포기하면 못쓴다. 내가 어떻게든 지원 하겠다."며 서울로 상경해서 공부하길 권했죠. 처음에 형은 순순히 가는듯 했으나 그곳에서 공부는 커녕 재수학원을 빼먹기는 일수였고 매일 술집이며 피씨방에 들락거리다 결국 재수를 포기하려했지만 어머니가 뜯어 말려 겨우겨우 재수를 치고 3~4등급 정도를 받아 지방의 중위권대학(부산의 ㅂㄱ대)을 졸업했습니다. 형이 입대했을 때도 유별났어요. 휴가만 나왔다 하면 웬 잔치집이 되곤 했으니까요. 저의 경우 특출나진 않지만 그래도 수능을 잘봐서 서울의 유명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외국어관련해서 통번역일을 하고 형제중엔 가장 수입이 좋습니다. 동생은 유독 수학을 잘하는 애라서 제가 처음엔 Y대 의대나, K대 의대라도 지원해보라, 꼭 끝까지 지원하겠다 했지만, 녀석이 말수가 원체 적고 속내를 몰라서 있었더니 결국 S대 수학과에 합격해서 당일에서야 통보해주더라고요. 지금은 취업준비하며 수학과외를 하고있지요.사실 형을 제외하고 저와 동생은 대학가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형은 그 비싼 과외와 재수하면서 드는돈, 아르바이트 한번 안하고(어머니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극구 반대하심) 어머니가 아버지 유산을 처분한돈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한 반면, 저와 동생은 처음에 서울에 고시원에 들어갈돈은 커녕 등록금 한번 내주신적 없으셨어요. 형도 지방대에 겨우 합격해서 다니는데 동생들이 형 기운 죽인다고 더 좋은 대학가는걸 탐탁치 않게 여기셨거든요. 저는 수능치자말자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갖은 고생과 위험한일을 해서 어찌어찌 첫등록금을 맞추어 내고( 이마저도 팀장에게 사정을 말하여 가불받음)어머니께 말도없이 새벽에 도망치듯 서울에 상경해서 같은 고등학교 동창의 원룸에 얹혀 살면서 근근히 알바와 장학금,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졸업했고, 동생은 어머니의 무시에 지쳐서 수능을 치자 말자 상경해서 제가 고시원을 얻어서 재우고 첫등록금의 절반을 제가 보태줘서 겨우 입금기한을 지킬수 있었어요.저는 군인때 휴가나와서 집에 딱 1번 가봤어요. 형이 휴가 나왔을땐 잔칫집 분위기더니, 제가 휴가 갔을땐 반대로 초상집 분위기더라고요. 밥을 차려주긴 커녕 지 형 뒷통수친 배신자놈 취급하길래 그 자리에서 발돌려서 서울의 대학동기집에서 휴가를 보냇고, 저 적역하고 동생은 아얘 집에 가보지도 않고 제가 사는 원룸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공사장 노가다를 하다 복귀하곤 했습니다. 5박 6일 휴가 나오면 2일은 친구를 만나 놀고 3일은 노가다를 하는식으로 말이죠.형은 물론이고 어머니도 연은 끊고 살았습니다. 대학생활을 이어가며 생활비 벌기도 빠듯해 남들 다하는 연애도 못해보고(물론 185의 키와 보통 이상의 외모 덕분에 중간중간 대시는 많았어요.) 취직하고 나서야 첫연애를 했고 그 사람과 지금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도 사실 빨리하게 된 이유가 생각치 못한 임신때문이고 지금은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 아내가 옆에서 매일 행복한 괴롭힘(?)을 가하고 있습니다.문제는 지난 일주일 사이에 터졌습니다. 모자의 연을 끊고 산지라 결혼도 성당(저나 아내나 천주교 신자인데 성당 교리교사로 일하다 눈맞은 사이 입니다. 게다가 아내는 어릴때부터 고아로 천주교 아동 보호시설에서 자라 양가부모가 안계십니다.)에서 검소하게 올렸습니다. 부모님 대신 저희는 평소 존경하던 신부님, 수녀님, 대부님을 모시고 혼인성사를 치루었지요.지난주에 갑자기 연끊고 지내던 형이 제 페이스북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들을 보고 결혼한 사실을 알고 어머니가 대노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엔 어차피 없는 아들아니냐며 그냥 없는셈치고 여태 해왔던것처럼 살자고 했더니, 부모없이 올리는 혼인이 어딧냐며 그런 결혼 인정 못한다며 아내에 대해 집안이며 학벌이며 묻길래 몰라도 된다며 단호하게 짤랏더니 아내의 페이스북을 뒤져 고아인것 부터 만삭이 다됬다는 사실까지 다 알게 되서는 새벽부터 전화해서 난리가 났습니다.그래도 어머니는 며느리 얼굴은 대면해봐야 하지 않겟냐며 부산으로 내려오라 하길래 만삭의 산모가 함부로 어딜 가냐고 나도 지금 일이 많아 휴가는 어렵다( 핑계가 아니라 진짜입니다. 통역일의 특성상 남들 휴가철이 저에겐 성수기거든요)했더니 서울로 직접 찾아오겠다는 겁니다. 와도 안만날거고 , 만날 시간도 없다고 했더니 그날 저녁에 시외버스를 타고 어머니혼자 터미널에 도착했다고 대리러 가라는 형의 말을 듣고, 좋게 돌려보내려고 아내에겐 말도 안하고 만낫습니다.만나자 말자 대뜸 하는말이 몇년만에 만난 어머니 밥한끼 안사주는 새끼라며 하길래 밉지만 멀리오느라 밥도 못먹었을것같아 밥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먹던중 어머니가 운을 띄었습니다. 뱃속의 애는 아들이냐 부터 묻길래 피가 거꾸로 솓는것을 참고 본래 그런사람이니 생각하고 애써 참고 모른다 했습니다. 그러더니 몇년새의 형에 대해 말하더군요. 너 없을때 형도 장가를 간건 아냐. 하길래 고향친구에게 들었다 했더니, 아니 글쌔 며칠전에 니 형수가 도망을 갔다는 겁니다. 어림진작하건데 시집살이를 보통으로 시킨게 아닌듯 합니다. 귀한 장남 능력도 없는데 기안죽이려고 애써 큰돈들여 장가 보내고 여자 집에는 무리한 혼수며 예단이며 부터 틀어진 결혼을 억지로 시킨 이야기도 들었고. 아들에 집착하는 시어머니 등살 못이겼을거라고 말이죠.근데 여기서 더 충격은 금쪽같이 아끼는 첫째아들이 씨없는 수박이라는겁니다. 무정자증으로 불임이었던건 2년전부터 아들아들 노래를 불렀는데 애가 안들어서서 시험관이라도 하려고 정자 채취를 하려는데 그때 알게된거죠. 그래서 이게다 여자가 잘못들어와서 귀한 내아들 저리된거다 해서 며느리가 학을 띄고 도망을 친거겟죠.그래서 제가 근데 그거하고 저 찾아 오신건 무슨 상황이냐고 반문하니 저더러 뱃속의 애가 만약 아들이면 형내 애로 입양시키고 호적을 그리 올리라는겁니다. 하 참.... 처음엔 기도 않차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자리에서 일어나서 표예약 해서 그대로 돌아가시라고 던져주고 집으로와서 아내에게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아내에게 이말을 했다간 받을 충격이 어떨지...
장남 제일주의 어머니 지긋지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