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까? 구태여 인트로에 지면을 낭비하지 않겠다. 독자 여러분은 곧바로 인터뷰를 읽어 나가시라. 다만, 한마디 덧붙이자면, 기사를 읽은 후,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유명한 이 사람의 소개가 오히려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인터뷰 시각 및 장소: 2004년 11월 10일 오후 6시경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
“난 네티즌 고소에 반대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에도 대학생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진 적 있으세요?
―대학생 언론사하곤 해본적 없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 공중파 방송이나 중앙일간지와 인터뷰할 때 비해서?
―일단은 인터뷰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전에 문희준씨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는데요. 솔직히 말해, 그 기사들을 바탕으로 본 문희준씨는 다소 건방지면서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언론들과 인터뷰하고 나면 그 기사들 다 모니터하세요?
―예. 항상 모니터 하구요. 일단 신문지상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저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신 두 가지 말고도 굉장히 안좋은 게 많잖아요. 악의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말고도, 그 분들이 만든 이야기를 보고 또 거기 군중심리가 작용되고 똑같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신 상태고. 저는 그거에 대해 굉장히 억울해 하는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언론매체나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저의 이미지는 제가 아니라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사실은 어느 정도 안티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그걸 이용한 기사들이 굉장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를 하고 나서 기사들을 모니터 해봤을 때, 이건 누구봐도 이 사람은 “아, 이 사람은 그런 쪽에 있던 사람이다”는게 은연 중에 나온다고. 예를 들어서 따옴표로 돼서 제가 한 말 같은 것도…
―네. 스피드광이 나오니까 또 불끈(!) 그 때 마음이 또 드는데(웃음). 그 때가 베스트 앨범 발매를 해서 처음에 인터뷰를 쭉 했어요. 2~3시간 인터뷰했고, 음악에 대한 생각과 여태까지의 억울함같은 것에 대해 얘기를 했고, 끝난 다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 정말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느낌이 좋다”고.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는 있는 그대로, 느낌받으신 그대로 기사를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고, 음악적인 부분에 이야기를 많이 다뤄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인터뷰는 참 잘 끝났어요. 그렇게 끝나고 나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인터뷰 끝난 다음에요. 원래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해소법 중에 가장 제가 좋아하는 게 자동차를 몰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앞에 2시간 인터뷰 한 거는 전혀 나오지 않고, “나는 스피드광!” 이렇게 나오더라구요. 뭐, 나는 딱지 떼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나는 별 생각을 안한다. 난 그만큼 스피드를 좋아한다. 앨범나오자마자 나온 기사였어요, 그게. 참 많이 속상했죠.
▲저도 그 기사에서 음악 얘기를 못봤습니다(웃음).
―네(웃음). 두 시간 반 얘기했어요(웃음).
▲그러니까, 얘기한대로 기사에 반영이 안 된거라고 보시는 거죠?
―네. 그렇죠.
▲배신감, 혹은 섭섭함이 들진 않던가요?
―음… 대외적으로는 섭섭함 정도구요.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굉장히 속상한… 사실 뭐, 그걸 어떻게 얘길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사가 그렇게 나온 다음에는 그 기자분한테 얘기해서 “참 속상합니다”라고 했는데. 이런 얘기가 기사에 나왔으면 참 좋겠지만. 하하하. 뭐 그 정도로 끝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사가 그렇게 나와버리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사실 기획사에서 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소속가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억울하다고 할 순 없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일처리가 거의 안 이뤄졌었구요.
▲아시겠지만, 문희준씨가 나온 기사들에 달리는 리플들은 수가 엄청나기로 유명합니다. 거의 다 독설이지만. “지난 3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 걸 봤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네티즌들의 패러디나 네거티브한 반응에 대한 생각이…
―그러니까 그게 전혀 없어지지 않는 한 마음이 편할 순 없잖아요. 제가 비판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다거나 범법행위를 했다거나,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면 어떤 지탄이나 욕설도 겸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다른 생각으로 활동에 임했을텐데. 저는 원래 사람을 재매있게 해주고, 웃음을 주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는편이에요. 예전 성격도 굉장히 밝은 편이었구요. 제 이름도 원래 ‘기쁨을 주는 사람’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었는데. 이게 웃기는 사람과 우스워 보이는 사람은 굉장히 다르더라구요. 근데 그 분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우스운 사람이었죠.
▲가장 대표적인 패러디물이 ‘오인용’에서 제작한 플래쉬일텐데. 그거 혹시 보셨나요?
―패러디라는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해서 해야하는 거잖아요. 거짓으로 희화해서 만든 게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거기서 왜 제가 주인공일까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사람을 놀려먹고 싶은 의도가 다분했어요.
▲그거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화가 나죠(웃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이 사람들 혹시 나한테 원한이 있나?(웃음)
▲sm엔터테인먼트에서 네티즌들을 상대로 낸 소송이 아직도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요.
―아니요. 그건 선처로 끝났을 거에요. 흐지부지됐어요.
▲글쎄요. 문희준씨 패러디를 낸 특정…
―오인용이요?
▲네…
―오인용은 고소를 안했어요.
▲고소를 당해서 플래쉬를 못내고 있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모바일로 상업적으로 이용했었고, 제가 직접 그걸 눈으로 확인도 했었어요. 그러니까 오인용은 소송을 하지 않았고, 악의성을 갖고 글을 올리던 네티즌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확실한 건가요?
―예. 고소 자체도 회사가 한거구요. 저는 반대했었어요. 그 방법이 과연 옳은 해결방법인가 의문을 가졌었구요. 저는 그냥 열심히 음악을 하면 언젠가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고소하려 했으면 처음부터 했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문희준씨가 적극적으로 소송 건 줄 알더라구요.
―그것도… “제가 내지 않았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건이…(웃음)
▲음… 그런데 분명 ‘미디어 다음’에 이 기사가 떴더라구요. 오인용 홈페이지에도 가보니까, 소송 건이 아직 해결 안 돼서 플래쉬 못내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건 아마 저랑 관련된 게 아닐 거에요. 제가 나온 플래쉬는 볼 만큼 다 봤고, 상업적으로 이용할만큼 다 이용하고 끝난 거거든요. 지금 못내는 다른 플래쉬는 저희 회사의 다른 멤버가 거기 있기 때문에 못하게 된 거라고 들었어요.
▲예. 그럼 소송 얘기는 이 정도로 하구요. 다른 얘기로 넘어가죠. 문희준씨 처음 록 음악 한다고 했을 때, 소속사에서 반대하지 않았나요?
―이수만 선생님은 생각이 많이 깨어있으신 분이에요. 록을 좋아하셨구요. 예전에 록밴드도 하셨다고 들었구요. 처음에 록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안된다는 표현보다는 많이 놀라셨었어요. 갑자기 왜 얘기 록 음악을 한다고 할까. 춤도 제일 많이 만들었던 친군데, 갑자기 록을 한다고 하셨죠. 주위의 반응도 왜 그러느냐(웃음). 이런 반응이었고. 그런데 제가 록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드렸었는데, 흔쾌히 그냥 한 번 해보라고 얘기하셨어요.
▲4집낼 때까지 변하지 않았나요?
―예.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게 보기좋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랬군요. 아, “제 ‘안티’들 대부분이 초·중학생이에요”라고 말한 인터뷰를 봤는데.
―그건 제가 얘기한 게 아니라 기자분이 말씀하신 거거든요.
▲기사에는 분명히 문희준씨 답변으로 처리돼 있는데요.
―예. 돼있는데, 기자분이 그렇게 얘기하신 거에요. 제가 하지 않은 얘기가 기사에 나온 적이 굉장히 많아요. 질문 자체가 왜 이런 거 있잖아요. “당신 안티 자체가 초․중학생인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억울 하지 않으냐”
▲그럼, 기자가 자기 질문을 문희준씨의 답변으로 처리한 건가요?
―예, 그렇죠. 저는 단지 “정말 그런가요?”라고 대답했었고, “그렇다면 더더욱이 많이 속상하네요”라고 얘기했었어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제 답변을 억지로 유도하는 거죠.
▲여태까지 힘든 답변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웃음) 이제 음악 얘기 좀 해볼까요? 따지고 보면, 서태지씨나 신해철씨도 처음에 록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자신만 이렇게 비난받는다고 보십니까? 신해철씨가 문희준씨에게 했다는 말처럼, 옛날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인가요?
―그 얘기도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제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다 알고 계시고, 예쁜 후배로 보이셨나봐요. 제가 그 때 (신해철씨를)사석에서 처음
[문희준 인터뷰] Y대학교에서 문희준을 인터뷰~~~
기획인터뷰―문희준을 만나다
“내 이미지는 내가 아니다”
이 사람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까? 구태여 인트로에 지면을 낭비하지 않겠다. 독자 여러분은 곧바로 인터뷰를 읽어 나가시라. 다만, 한마디 덧붙이자면, 기사를 읽은 후, 우리 사회에선 너무도 유명한 이 사람의 소개가 오히려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인터뷰 시각 및 장소: 2004년 11월 10일 오후 6시경 여의도 국민일보사 빌딩)
“난 네티즌 고소에 반대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에도 대학생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진 적 있으세요?
―대학생 언론사하곤 해본적 없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 공중파 방송이나 중앙일간지와 인터뷰할 때 비해서?
―일단은 인터뷰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전에 문희준씨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는데요. 솔직히 말해, 그 기사들을 바탕으로 본 문희준씨는 다소 건방지면서도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언론들과 인터뷰하고 나면 그 기사들 다 모니터하세요?
―예. 항상 모니터 하구요. 일단 신문지상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저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신 두 가지 말고도 굉장히 안좋은 게 많잖아요. 악의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말고도, 그 분들이 만든 이야기를 보고 또 거기 군중심리가 작용되고 똑같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신 상태고. 저는 그거에 대해 굉장히 억울해 하는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언론매체나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저의 이미지는 제가 아니라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사실은 어느 정도 안티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그걸 이용한 기사들이 굉장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를 하고 나서 기사들을 모니터 해봤을 때, 이건 누구봐도 이 사람은 “아, 이 사람은 그런 쪽에 있던 사람이다”는게 은연 중에 나온다고. 예를 들어서 따옴표로 돼서 제가 한 말 같은 것도…
▲“록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 고독한 '로커의 피' 60년대 '언더 록밴드 기타리스트' 아버지처럼… “난 스피드광!” 같은…
―네. 스피드광이 나오니까 또 불끈(!) 그 때 마음이 또 드는데(웃음). 그 때가 베스트 앨범 발매를 해서 처음에 인터뷰를 쭉 했어요. 2~3시간 인터뷰했고, 음악에 대한 생각과 여태까지의 억울함같은 것에 대해 얘기를 했고, 끝난 다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 정말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느낌이 좋다”고.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는 있는 그대로, 느낌받으신 그대로 기사를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고, 음악적인 부분에 이야기를 많이 다뤄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인터뷰는 참 잘 끝났어요.
그렇게 끝나고 나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인터뷰 끝난 다음에요. 원래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해소법 중에 가장 제가 좋아하는 게 자동차를 몰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앞에 2시간 인터뷰 한 거는 전혀 나오지 않고, “나는 스피드광!” 이렇게 나오더라구요. 뭐, 나는 딱지 떼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나는 별 생각을 안한다. 난 그만큼 스피드를 좋아한다. 앨범나오자마자 나온 기사였어요, 그게. 참 많이 속상했죠.
▲저도 그 기사에서 음악 얘기를 못봤습니다(웃음).
―네(웃음). 두 시간 반 얘기했어요(웃음).
▲그러니까, 얘기한대로 기사에 반영이 안 된거라고 보시는 거죠?
―네. 그렇죠.
▲배신감, 혹은 섭섭함이 들진 않던가요?
―음… 대외적으로는 섭섭함 정도구요.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굉장히 속상한… 사실 뭐, 그걸 어떻게 얘길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사가 그렇게 나온 다음에는 그 기자분한테 얘기해서 “참 속상합니다”라고 했는데. 이런 얘기가 기사에 나왔으면 참 좋겠지만. 하하하. 뭐 그 정도로 끝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사가 그렇게 나와버리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사실 기획사에서 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소속가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억울하다고 할 순 없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일처리가 거의 안 이뤄졌었구요.
▲아시겠지만, 문희준씨가 나온 기사들에 달리는 리플들은 수가 엄청나기로 유명합니다. 거의 다 독설이지만. “지난 3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 걸 봤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네티즌들의 패러디나 네거티브한 반응에 대한 생각이…
―그러니까 그게 전혀 없어지지 않는 한 마음이 편할 순 없잖아요. 제가 비판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다거나 범법행위를 했다거나,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면 어떤 지탄이나 욕설도 겸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다른 생각으로 활동에 임했을텐데.
저는 원래 사람을 재매있게 해주고, 웃음을 주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는편이에요. 예전 성격도 굉장히 밝은 편이었구요. 제 이름도 원래 ‘기쁨을 주는 사람’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었는데. 이게 웃기는 사람과 우스워 보이는 사람은 굉장히 다르더라구요. 근데 그 분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우스운 사람이었죠.
▲가장 대표적인 패러디물이 ‘오인용’에서 제작한 플래쉬일텐데. 그거 혹시 보셨나요?
―패러디라는게요.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해서 해야하는 거잖아요. 거짓으로 희화해서 만든 게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거기서 왜 제가 주인공일까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사람을 놀려먹고 싶은 의도가 다분했어요.
▲그거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화가 나죠(웃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이 사람들 혹시 나한테 원한이 있나?(웃음)
▲sm엔터테인먼트에서 네티즌들을 상대로 낸 소송이 아직도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요.
―아니요. 그건 선처로 끝났을 거에요. 흐지부지됐어요.
▲글쎄요. 문희준씨 패러디를 낸 특정…
―오인용이요?
▲네…
―오인용은 고소를 안했어요.
▲고소를 당해서 플래쉬를 못내고 있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모바일로 상업적으로 이용했었고, 제가 직접 그걸 눈으로 확인도 했었어요. 그러니까 오인용은 소송을 하지 않았고, 악의성을 갖고 글을 올리던 네티즌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확실한 건가요?
―예. 고소 자체도 회사가 한거구요. 저는 반대했었어요. 그 방법이 과연 옳은 해결방법인가 의문을 가졌었구요. 저는 그냥 열심히 음악을 하면 언젠가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고소하려 했으면 처음부터 했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문희준씨가 적극적으로 소송 건 줄 알더라구요.
―그것도… “제가 내지 않았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건이…(웃음)
▲음… 그런데 분명 ‘미디어 다음’에 이 기사가 떴더라구요. 오인용 홈페이지에도 가보니까, 소송 건이 아직 해결 안 돼서 플래쉬 못내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건 아마 저랑 관련된 게 아닐 거에요. 제가 나온 플래쉬는 볼 만큼 다 봤고, 상업적으로 이용할만큼 다 이용하고 끝난 거거든요. 지금 못내는 다른 플래쉬는 저희 회사의 다른 멤버가 거기 있기 때문에 못하게 된 거라고 들었어요.
▲예. 그럼 소송 얘기는 이 정도로 하구요. 다른 얘기로 넘어가죠. 문희준씨 처음 록 음악 한다고 했을 때, 소속사에서 반대하지 않았나요?
―이수만 선생님은 생각이 많이 깨어있으신 분이에요. 록을 좋아하셨구요. 예전에 록밴드도 하셨다고 들었구요. 처음에 록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안된다는 표현보다는 많이 놀라셨었어요. 갑자기 왜 얘기 록 음악을 한다고 할까. 춤도 제일 많이 만들었던 친군데, 갑자기 록을 한다고 하셨죠. 주위의 반응도 왜 그러느냐(웃음). 이런 반응이었고. 그런데 제가 록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드렸었는데, 흔쾌히 그냥 한 번 해보라고 얘기하셨어요.
▲4집낼 때까지 변하지 않았나요?
―예.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게 보기좋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랬군요. 아, “제 ‘안티’들 대부분이 초·중학생이에요”라고 말한 인터뷰를 봤는데.
―그건 제가 얘기한 게 아니라 기자분이 말씀하신 거거든요.
▲기사에는 분명히 문희준씨 답변으로 처리돼 있는데요.
―예. 돼있는데, 기자분이 그렇게 얘기하신 거에요. 제가 하지 않은 얘기가 기사에 나온 적이 굉장히 많아요. 질문 자체가 왜 이런 거 있잖아요. “당신 안티 자체가 초․중학생인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무 억울 하지 않으냐”
▲그럼, 기자가 자기 질문을 문희준씨의 답변으로 처리한 건가요?
―예, 그렇죠. 저는 단지 “정말 그런가요?”라고 대답했었고, “그렇다면 더더욱이 많이 속상하네요”라고 얘기했었어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제 답변을 억지로 유도하는 거죠.
▲여태까지 힘든 답변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웃음) 이제 음악 얘기 좀 해볼까요? 따지고 보면, 서태지씨나 신해철씨도 처음에 록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자신만 이렇게 비난받는다고 보십니까? 신해철씨가 문희준씨에게 했다는 말처럼, 옛날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인가요?
―그 얘기도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제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다 알고 계시고, 예쁜 후배로 보이셨나봐요. 제가 그 때 (신해철씨를)사석에서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