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디렉터 (가난한 약혼자편 2)

Yuri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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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약혼자 2

 

남자혼령의 다그침에도 여자혼령은 절벽이 있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꽤 많은 눈이 쌓여있었지만, 그녀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곳에 이르자 여자혼령은 바로 뒤에 있던 남자혼령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절벽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 자가 날 이렇게 험한 곳까지 데리고 온 건...”

여자혼령의 몸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광채가 살짝 반짝였다.

“처음부터 작정했던 거라고요.”

 

말을 마친 여자혼령이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려고 하자, 남자혼령이 여자혼령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붉은 빛이 수차례 번뜩였다. 그걸 느낀 남자혼령이 다급하게 말했다.

“냄새를 맡으려는 거지?”

여자혼령이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보내줘요.”

“승천(昇天)하면, 모든 걸 망각(忘却)하게 될 거야. 슬픔도, 괴로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야겠어요! ‘모든 걸 잊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요.”

 

여자혼령이 손을 뿌리치려하자, 남자혼령이 그녀의 손목을 보다 강하게 움켜잡고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었다.

남자혼령이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이미 죽은 몸이야. 괜한 미련을 남겨서 어찌할 건데?”

남자혼령의 물음에 여자혼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혼령은 그녀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뀌는 건 없어. 절대로 영능력(靈能力)을 쓰면 안 돼!”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남자혼령의 말에도 여자혼령은 아랑곳없이 몸을 높이 솟구쳤다. 그러자 남자혼령이 손을 뻗치며 외쳤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영원히 소멸된다고! 그렇게 들었잖아.”

“그런 건 개의치 않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 여자혼령이 절벽 높이까지 날아올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어느 특정의 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내 뭔가를 확인한 여자혼령이 미친 듯 ‘큭큭큭’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분명 웃음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눈동자엔 분노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찢어질 듯 날카로운 고음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불어온 회오리바람으로 주변에 있던 낙엽과 눈덩어리, 미세한 먼지와 돌가루들이 빙그르르 돌며 사납게 흩날렸다.

“그 인간만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

 

주문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여자혼령의 얼굴이 서서히 악귀(惡鬼)로 변해갔다. 그걸 본 남자혼령이 여자혼령 곁으로 황급히 날아와 그녀의 허리를 와락 껴안으며 그녀가 바라보던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절벽 위쪽에서 내던져진 모양인지, 커다란 나무와 바위틈 사이에 멋대로 뜯겨진 종잇장처럼 아무렇게나 처박혀서 처참하게 죽어있는 여자혼령의 원래육신(原來肉身)이 보였다.

시신의 바지와 속옷은 완전히 벗겨진 상태였다. 바로 근처의 눈밭은 그녀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으로 군데군데 검붉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두어 달 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던 그녀의 시신은 눈 속에서도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군데군데 팽창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혼령이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혼령도 여자혼령처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애써 여자혼령을 다독거리고 더욱 꼭 껴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 떠나자.”

하지만 여자혼령은 남자혼령을 살짝 밀치고는 자신의 육신이 있는 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결국 ‘살인자의 냄새’를 맡고 말았다.

“내 비록 환생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그 죗값은 반드시 치르게 할 거야. 어차피 이대로 다시 태어나도 ‘불완전한 환생’이 될 뿐.”

가련해보이던 여자혼령의 얼굴이 다시 무섭게 일그러졌다. 남자혼령이 여자혼령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여자혼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참을 수 없어!”

“경미야!”

남자혼령의 눈빛을 본 여자혼령이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기다 처박아놓고, 이것까지 뿌렸다고요!”

그녀의 주변으로 붉은 핏방울이 촤악 퍼지는가 싶더니, 황금색 빛이 반짝이며 휘몰아쳤다.

혼란에 빠진 여자혼령의 얼굴이 악귀에서 원래상태로, 또 악귀로 변하기를 수차례... 결심을 한 듯 여자혼령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난 어찌되어도 괜찮아. 그런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된 당신을 보고 어떻게 참아요?”

 

여자혼령은 남자혼령이 손을 쓸 틈도 없이 용오름을 일으키며 하늘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러자 그녀 주변에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생성되더니 크고 작은 스파크가 파르르 일었다. 그 속에서 여자혼령의 얼굴이 급속도로 악귀의 형상으로 변했다.

“안 돼!!!!”

 

놀란 남자혼령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불러들인 강력한 마력(魔力)의 기운에 걸려 멀리 나동그라졌다. 남자혼령보다 수일 먼저 구천의 기를 흡수한 여자혼령의 힘이 남자혼령의 그것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혼령은 멈추지 않고 다시 그녀가 있는 쪽으로 온 힘을 다해 날아갔다. 그리고 가까스로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여자혼령에서 뿜어져 나온 독기(毒氣)가 순식간에 남자혼령의 손목까지 뻗쳤다. 그걸 이기지 못한 남자혼령의 손에 시뻘건 불이 붙었다. 하지만 남자혼령은 고통을 견디며 그녀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경미야, 제발... 제발, 참아야해!”

 

남자혼령은 자신의 팔이 활활 타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여자혼령에게 간청을 했다. 악귀가 되어가면서도 남자혼령의 헌신적인 사랑을 잊지 못했던 여자혼령은 그런 남자혼령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아림을 느꼈다.

 

어느 순간, 여자혼령은 포기를 한 듯 힘을 쭉 빼고 말했다.

“알, 았... 어요.”

 

여자혼령은 능력을 부르는 걸 그만두었다. 그와 동시에 펄펄 끊는 기름통에 통째로 빠진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그녀의 온몸을 타고 올랐다. 그것은 마(魔)의 행동을 멈춘 대가였다. 하지만 여자혼령은 그 극한의 아픔을 삼키며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남자혼령을 위한 배려였다. 남자혼령은 괴로워하는 여자혼령의 얼굴을 보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혼절 직전 상태까지 갔던 여자혼령의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눈, 귀 등에서 붉은 연기가 새어나오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하늘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구름도 서서히 걷혔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여자혼령의 얼굴이 다시 원색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여자혼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뚝뚝 떨어졌다. 남자혼령이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고통을 보고 있던 남자혼령도 여자혼령만큼이나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고마워.”

“왜 잡았어요? 왜왜! 나 때문에 오빠까지도...”

“내가 선택한 길이야.”

“정말 미워!”

 

남자혼령은 시커멓게 타버린 한쪽 팔로 여자혼령을 가만히 안아줬다.

“네 마음, 잘 알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디선가 한 송이 눈이 떨어져 그들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바닥에 떨어졌다. 두 혼령이 동시에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들이 그들을 향해 살랑살랑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박눈이 되어 그들 사이로 쉼 없이 쏟아졌다.

“우리, 결혼식도 하지 못하고...”

“지금, 분위기가 좋네.”

“슬프면서도 기뻐요. 기분이 이상해. 표현할 수가 없어.”

“우리 둘 모두 저 하늘로 올라가면 이 기억을 죄다 잊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 마음은 여기 영원히 남을 거라 믿어.”

 

두 혼령들이 말없이 그 눈송이들을 만끽하고 있을 때, 그들이 서 있는 발아래에도 그것들이 그대로 쌓여갔다.

“기억 나?”

“맞다.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날이에요.”

“행진할까? 결혼하는 것처럼?”

“처럼이라뇨? 우리는 이미 약혼을 했잖아. 당장해요. 우리의 결혼식. 저 나무들과 눈송이들이 하객이고, 증인이 되어 줄 거예요.”

남자혼령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러자.”

 

남자혼령이 눈을 밟는 시늉을 했다. 여자혼령도 남자혼령을 따라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소복이 쌓인 눈은 백지와도 같이 그 어떠한 자국도 남기지 않았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저 눈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구나.”

“이미 행복해요. 오빠를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쭉! 비록 지금이 마지막 순간일 지라도... 내 마음 속에 오빠가 준 행복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걸음을 멈춘 여자혼령이 남자혼령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남자혼령이 문득 여자혼령의 시신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 시신의 위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것으로 시신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자 아무 일없는 자연 속 평온한 언덕으로 보였다.

“내 사랑, 흙에 묻혀야 했는데...”

“이 눈이 더 좋아요. 당신을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여자혼령이 남자혼령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멈추면 좋겠어요. 얼마 후면, 상철이란 사람을 영원히 잊을 수밖에 없으니...”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남자혼령이 여자혼령을 끌어안았다.

여자혼령이 남자혼령의 품에서 그렇게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실은 여자혼령 모르게 남자혼령의 눈동자도 악귀(惡鬼)의 것으로 변했다가 정상으로 되었다가를 쉴 새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혼령은 그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을 계속해서 진정시켰다.

속도 모르는 여자혼령이 투정을 부렸다.

“당신의 심장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들리지가 않아요.”

“우린... 살아있지 않으니까... 죽었... 으니까.”

“그렇구나. 우린... 돌아갈 수... 없구나.”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없던 남자혼령이 뭔가 생각이 난 듯 여자혼령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어떤... 건데요?”

남자혼령이 구천을 가리켰다.

“저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가 있어.”

“뭔데요?”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줄 자가 있어.”

“정말요?”

 

여자혼령이 남자혼령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려 했다. 하지만 남자혼령은 자신의 변한 눈동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와 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자.”

“...!”

“난 영원히 사라져도 괜찮아. 하지만 사랑하는 경미를... 세상에 둘도 없이 가장 예쁘고 착한 나의 천사 경미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그 짐승 같은 인간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그래서 말인데... 그 자를 찾아가볼래?”

“제가요? 그럼 오빠는?”

“난 그에게 갈 수 없어. 경미 혼자 만날 수 있겠어?”

“오빠는 왜요?”

“부탁이야.”

 

 

- 계속

 

 

 

 

 

Yuri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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