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웃음소리, 노인의 절규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젊은이의 비명소리, 겨울 바람소리, 쇠를 긁는 소리, 흙을 파내는 소리,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괴이한 소리 등등... 그 각양각색의 소음이 하나로 섞여 민중의 귓가를 계속해서 때렸다.
웅웅거리는 그 소리들 속으로 ‘나를 도와주시게.’라는 기계음과도 같은 목소리와 ‘당신의 능력이 필요해.’라는 가래 끓는 목소리 등이 섞여 들렸다.
민중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괴상망측하고 소름끼치는 수만 수천가지 소리들은 마치, 고막 바로 앞에까지 스피커 수십 대 이상을 장치한 것처럼 쩌렁쩌렁 울리면서 민중의 머리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했다.
‘이제 그만!’
민중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 괴음만으로도 살갗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 어느 순간 찬바람이 휘익 불더니 어떤 괴형상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형체를 보고 민중이 자기도 모르게 어떤 말인가를 계속해서 외쳤다. 그에게 사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싸움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필름이 완전히 끊긴 만취 다음 날 새벽의 기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세상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만 했다. 어쨌거나 민중은 아비규환과도 같은 그 어둠의 공간 속에서 손을 뻗쳐 허우적거리다가 일순간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들이닥친 환한 빛이 민중의 눈동자를 따갑게 하면서 그를 괴롭히던 수만 가지 소리들도 거짓말처럼 말끔히 싹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맞을 또 그 악몽이었다.
민중은 벌써 며칠 째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후 생각해보면, 막상 그게 무슨 꿈이었는지 꿈속에서의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또 그곳이 어디였는지... 색이 완전히 바래 뿌옇게 알아볼 수 없는 사진처럼, 모든 기억이 흐릿하기만 할 뿐 생각나는 건 그저 빛이 완전히 차단된 컴컴한 공간 속에 서있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회사 휴게실이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깐 쉰다는 것이 깊은 잠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컨디션 정말 안 좋군. 정신과를 가든지, 점쟁이를 찾아가든지 뭐라도 해야겠네.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가?’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민중은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헤어와 옷매무새를 바로하고는 서둘러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한참 만에 나타난 민중에게 관심을 보이는 직원은 없었다. 다행이란 생각으로 슬그머니 본인의 자리로 간 민중은 본인의 책상 위에 난데없는 해고통지서가 놓여있는 걸 보았다. 주변을 한 번 살펴본 민중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걸 꺼내 읽어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의 여직원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뭐지?”
여직원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있어요?”
“혹시 내 자리에 누가 왔다 갔어?”
“글쎄요? 저도 외근 나갔다 오는 길이라...”
“그래?”
여직원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을 느낀 민중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어 명의 직원들이 민중을 바라보며 쑥덕이다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민중은 최부장이 앉아있는 쪽을 살피고는 다른 직원들에게 봉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시는 분?”
그러나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민중은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작년 영업부서에 있을 때, 추억거리로 이런 비슷한 장난을 많이 쳤어요. 몰래카메라 찍으면서... 하하하.”
하지만 민중 혼자만 웃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무표정했으며, 아예 민중에게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최부장의 매몰찬 말에 황당함을 느낀 민중은 나머지 손으로 최부장의 의자를 강제로 휘릭 돌렸다.
“저어 부장님! 아니, 뭔 이유라도 좀 알아야죠.”
“이유? 좀 전에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 실적이 좋지 않았다며?”
민중은 그에게 해고통지서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이 외엔 아무 서류도 첨부되어 있지 않은데요?”
“그냥 그렇게 알게나. 그게 신상에도 좋을 거 같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 엄동설한에 아무 사유도 써놓지 아니하고 ‘귀하를 해고조치 합니다.’란 단 몇 글자만으로 정직원을 일방적으로 해직시키는 회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게 가능한 것이냐고요?”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사무실 내에 있는 십 수 명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중에게 쏟아졌다. 민중이 뒤를 돌아 그들을 둘러보자, 어떤 노릇인지 그들 또한 평소와는 다른 눈빛들이었다. 그때 최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팔짱을 끼고는 본인의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네. 진짜 기억이 안 나나?”
“기억이라뇨? 대체 그게 뭔 기억 말입니까?”
“정말? 하나도?”
“무슨 말씀인지...”
“참나, 진짜가보네. 가끔씩 또라이 짓을 한다 싶더니만.”
“또라이 짓?”
얼버무리던 민중은 이번엔 구석에 앉아있던 임상수과장을 보더니 그쪽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이거 다 장난 맞죠?”
평소 민중과 식사도 자주 하고, 술도 자주 마시던 수다쟁이 임과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주 낯선 사람을 쳐다보는 것처럼 민중을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본인의 업무를 계속하다 입을 열었다.
“자기 아주 큰 실수를 했어. 그것도 연거푸.”
“제가요?”
“잘 생각해봐.”
“아, 미치겠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던 민중은 기가 찼지만, 사무실 내 아무도 사실을 이야기해 줄 거 같지가 않았다.
복도로 나온 민중은 이후 몇 명의 회사 동료들과 마주쳤지만, 기분 탓인지 모두 민중을 허깨비 취급하며 그냥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마침, 방재실에 근무하는 일용직 알바 하나가 순찰을 돌다가 민중에게 인사를 했다.
“급한 일은 다 끝나셨어요?”
“뭔 일요?”
“두 시간쯤 전에 아주 큰일이 났다면서 막 뛰어가셨잖아요.”
민중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제가요?”
“에이, 너무 바쁘신 거 같아서, 점검기사가 엘리베이터 점검을 하다 말고 잠시 켜드리기까지 했잖아요.”
민중은 환장하는 마음으로 다짜고짜 그에게 화를 냈다.
“댁까지도 저한테 장난치는 건가요?”
“장난이라뇨?”
“오늘따라 사람들이 왜들 나한테 그러는지, 도무지 이유도 모르겠고!”
붉으락푸르락하는 민중의 얼굴을 본 방재실 알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따라와 보십시오.”
“어딜 말입니까?”
“확인시켜 드릴게요.”
알바를 따라 방재실에 들어간 민중은 알바가 CCTV 본체를 작동하는 동안까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알바는 서투른 솜씨로 버튼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알바의 조작이 좀 오래 걸리자 민중은 짜증이 밀려왔다. 만약 장난이라면, 저 녀석부터 혼꾸멍을 내줘야지 하며 벼르는 동안, 알바가 녹화 부분을 겨우 틀었다.
“아직 작동법을 다 익히지 못해서요. 어쨌거나 틀었으니 함 보십쇼.”
알바가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CCTV 화면이 커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려있고, 엘리베이터 박스 천장 윗부분으로 보이는 기계실 부분이 화면에 잡혔다. 그 위에 정비기사 어떤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달려오더니 정비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
‘뭐지?’
달려온 사람은 민중이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본인의 모습이었다.
“잘 보세요. 진짜 기억이 안 나세요?”
잠시 후 화면 속으로 옆에 있는 알바의 모습이 보였다. 알바가 엘리베이터 정비기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자 정비기사가 유선리모컨으로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더니 민중을 타게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알바는 거기까지 보여주더니 CCTV를 껐다.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 소장님께 혼나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민중은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휴, 미쳐버리겠네.”
“며칠 전부터 이사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대요. 그래서 특별지시를 내리셨나 봐요. 회사 내의 정보를 함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몰래 유출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사님이라니?”
“네, 작은 사장님인 ‘이민우’ 이사님이요. 특히, 회사 내 CCTV는 경찰이 영장을 가지고 오는 한이 있어도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나 봐요. 하지만 제가 보여드린 건, 평소 대리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중은 계속해서 떠들고 있는 알바를 쳐다보며 멍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알바가 계속 떠들었다.
“그 이사님께서 개인명의 회사 하나를 새로 차리신 이후부터 방재실에 수시로 내려오십니다. CCTV로 녹화된 부분도 자주 체크하시고.”
알바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몽유병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조작? 장난질? 하지만 화면 속 그는 분명 본인의 모습이 맞았고, 부장과 과장, 알바 모두 진지하기만 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기만 한 민중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일어났다.
죽은 자를 위한 디렉터 (포스터1)
들어가기 전에
가난한 약혼자5편은 포스터편 연재 후에 다시 올라갑니다.
포스터편에서 주인공이 나온 후에 서로 연결이 됩니다.
참고로 저의 단편 '포스터를 그리면서'의 장편 버전이
죽은 자를 위한 디렉터 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포스터 1
여자의 웃음소리, 노인의 절규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젊은이의 비명소리, 겨울 바람소리, 쇠를 긁는 소리, 흙을 파내는 소리,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괴이한 소리 등등... 그 각양각색의 소음이 하나로 섞여 민중의 귓가를 계속해서 때렸다.
웅웅거리는 그 소리들 속으로 ‘나를 도와주시게.’라는 기계음과도 같은 목소리와 ‘당신의 능력이 필요해.’라는 가래 끓는 목소리 등이 섞여 들렸다.
민중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괴상망측하고 소름끼치는 수만 수천가지 소리들은 마치, 고막 바로 앞에까지 스피커 수십 대 이상을 장치한 것처럼 쩌렁쩌렁 울리면서 민중의 머리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했다.
‘이제 그만!’
민중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 괴음만으로도 살갗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 어느 순간 찬바람이 휘익 불더니 어떤 괴형상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형체를 보고 민중이 자기도 모르게 어떤 말인가를 계속해서 외쳤다. 그에게 사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싸움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필름이 완전히 끊긴 만취 다음 날 새벽의 기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세상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만 했다. 어쨌거나 민중은 아비규환과도 같은 그 어둠의 공간 속에서 손을 뻗쳐 허우적거리다가 일순간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들이닥친 환한 빛이 민중의 눈동자를 따갑게 하면서 그를 괴롭히던 수만 가지 소리들도 거짓말처럼 말끔히 싹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맞을 또 그 악몽이었다.
민중은 벌써 며칠 째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후 생각해보면, 막상 그게 무슨 꿈이었는지 꿈속에서의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또 그곳이 어디였는지... 색이 완전히 바래 뿌옇게 알아볼 수 없는 사진처럼, 모든 기억이 흐릿하기만 할 뿐 생각나는 건 그저 빛이 완전히 차단된 컴컴한 공간 속에 서있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회사 휴게실이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깐 쉰다는 것이 깊은 잠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컨디션 정말 안 좋군. 정신과를 가든지, 점쟁이를 찾아가든지 뭐라도 해야겠네.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가?’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민중은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헤어와 옷매무새를 바로하고는 서둘러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한참 만에 나타난 민중에게 관심을 보이는 직원은 없었다. 다행이란 생각으로 슬그머니 본인의 자리로 간 민중은 본인의 책상 위에 난데없는 해고통지서가 놓여있는 걸 보았다. 주변을 한 번 살펴본 민중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걸 꺼내 읽어보았다. 그리고 바로 옆의 여직원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뭐지?”
여직원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있어요?”
“혹시 내 자리에 누가 왔다 갔어?”
“글쎄요? 저도 외근 나갔다 오는 길이라...”
“그래?”
여직원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을 느낀 민중이 뒤를 돌아보았다. 두어 명의 직원들이 민중을 바라보며 쑥덕이다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민중은 최부장이 앉아있는 쪽을 살피고는 다른 직원들에게 봉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시는 분?”
그러나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민중은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작년 영업부서에 있을 때, 추억거리로 이런 비슷한 장난을 많이 쳤어요. 몰래카메라 찍으면서... 하하하.”
하지만 민중 혼자만 웃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무표정했으며, 아예 민중에게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민중은 해고통지서를 들고 다짜고짜 최부장에게 달려가 따졌다.
“실적 때문에 그런 겁니까? 원단 샘플북이 잘못 나온 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최부장은 귀찮은 표정으로 의자를 반대로 돌렸다.
“일주일 내 정산 받을 수 있게 조치해주겠네.”
“문제가 있었다면, 시말서라도 작성해 올리겠습니다. 업체도 다시 돌아다니고요.”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군.”
최부장의 매몰찬 말에 황당함을 느낀 민중은 나머지 손으로 최부장의 의자를 강제로 휘릭 돌렸다.
“저어 부장님! 아니, 뭔 이유라도 좀 알아야죠.”
“이유? 좀 전에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 실적이 좋지 않았다며?”
민중은 그에게 해고통지서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이 외엔 아무 서류도 첨부되어 있지 않은데요?”
“그냥 그렇게 알게나. 그게 신상에도 좋을 거 같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 엄동설한에 아무 사유도 써놓지 아니하고 ‘귀하를 해고조치 합니다.’란 단 몇 글자만으로 정직원을 일방적으로 해직시키는 회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게 가능한 것이냐고요?”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사무실 내에 있는 십 수 명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중에게 쏟아졌다. 민중이 뒤를 돌아 그들을 둘러보자, 어떤 노릇인지 그들 또한 평소와는 다른 눈빛들이었다. 그때 최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팔짱을 끼고는 본인의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네. 진짜 기억이 안 나나?”
“기억이라뇨? 대체 그게 뭔 기억 말입니까?”
“정말? 하나도?”
“무슨 말씀인지...”
“참나, 진짜가보네. 가끔씩 또라이 짓을 한다 싶더니만.”
“또라이 짓?”
얼버무리던 민중은 이번엔 구석에 앉아있던 임상수과장을 보더니 그쪽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이거 다 장난 맞죠?”
평소 민중과 식사도 자주 하고, 술도 자주 마시던 수다쟁이 임과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주 낯선 사람을 쳐다보는 것처럼 민중을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본인의 업무를 계속하다 입을 열었다.
“자기 아주 큰 실수를 했어. 그것도 연거푸.”
“제가요?”
“잘 생각해봐.”
“아, 미치겠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던 민중은 기가 찼지만, 사무실 내 아무도 사실을 이야기해 줄 거 같지가 않았다.
복도로 나온 민중은 이후 몇 명의 회사 동료들과 마주쳤지만, 기분 탓인지 모두 민중을 허깨비 취급하며 그냥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마침, 방재실에 근무하는 일용직 알바 하나가 순찰을 돌다가 민중에게 인사를 했다.
“급한 일은 다 끝나셨어요?”
“뭔 일요?”
“두 시간쯤 전에 아주 큰일이 났다면서 막 뛰어가셨잖아요.”
민중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제가요?”
“에이, 너무 바쁘신 거 같아서, 점검기사가 엘리베이터 점검을 하다 말고 잠시 켜드리기까지 했잖아요.”
민중은 환장하는 마음으로 다짜고짜 그에게 화를 냈다.
“댁까지도 저한테 장난치는 건가요?”
“장난이라뇨?”
“오늘따라 사람들이 왜들 나한테 그러는지, 도무지 이유도 모르겠고!”
붉으락푸르락하는 민중의 얼굴을 본 방재실 알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따라와 보십시오.”
“어딜 말입니까?”
“확인시켜 드릴게요.”
알바를 따라 방재실에 들어간 민중은 알바가 CCTV 본체를 작동하는 동안까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알바는 서투른 솜씨로 버튼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알바의 조작이 좀 오래 걸리자 민중은 짜증이 밀려왔다. 만약 장난이라면, 저 녀석부터 혼꾸멍을 내줘야지 하며 벼르는 동안, 알바가 녹화 부분을 겨우 틀었다.
“아직 작동법을 다 익히지 못해서요. 어쨌거나 틀었으니 함 보십쇼.”
알바가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CCTV 화면이 커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려있고, 엘리베이터 박스 천장 윗부분으로 보이는 기계실 부분이 화면에 잡혔다. 그 위에 정비기사 어떤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달려오더니 정비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
‘뭐지?’
달려온 사람은 민중이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본인의 모습이었다.
“잘 보세요. 진짜 기억이 안 나세요?”
잠시 후 화면 속으로 옆에 있는 알바의 모습이 보였다. 알바가 엘리베이터 정비기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자 정비기사가 유선리모컨으로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더니 민중을 타게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알바는 거기까지 보여주더니 CCTV를 껐다.
“더 보여드리고 싶은데, 소장님께 혼나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민중은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휴, 미쳐버리겠네.”
“며칠 전부터 이사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대요. 그래서 특별지시를 내리셨나 봐요. 회사 내의 정보를 함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몰래 유출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사님이라니?”
“네, 작은 사장님인 ‘이민우’ 이사님이요. 특히, 회사 내 CCTV는 경찰이 영장을 가지고 오는 한이 있어도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나 봐요. 하지만 제가 보여드린 건, 평소 대리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중은 계속해서 떠들고 있는 알바를 쳐다보며 멍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알바가 계속 떠들었다.
“그 이사님께서 개인명의 회사 하나를 새로 차리신 이후부터 방재실에 수시로 내려오십니다. CCTV로 녹화된 부분도 자주 체크하시고.”
알바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몽유병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조작? 장난질? 하지만 화면 속 그는 분명 본인의 모습이 맞았고, 부장과 과장, 알바 모두 진지하기만 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기만 한 민중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일어났다.
‘설마, 내가 귀신에 씌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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