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 너무 불쌍해요

ㅇㅇ2018.09.17
조회393
어른분께 불쌍하다고 하는게 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쓸 단어가 안떠올라서 양해해주세요ㅜㅠ 아직 대학도 안간 학생이라 단어가 짧네요 죄송합니다














그리 긴 글은 아니고, 어제 외할아버지 미사드리고 곧있으면 추석이라 갑자기 생각나서 조금 끄적이고 갑니다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친가, 외가 조부모님들 현재는 다 돌아가신 상태에요
친가쪽 조부모님들이 연세가 많으셨어요 (두분다 80대)
외가쪽 조부모님들은 상대적으로 적으셨구요(6~70대 사이셨어요)
아빠와 결혼하기전에 엄마랑 약속아닌 약속? 을 했다고 엄마한테
들었어요. 아빠가 친가쪽 조부모님들이 연세가 많으시니까 외가보다는 비교적 더 빨리 돌아가실거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친가쪽을 가자고, 돌아가신 후에는 외가를 가자고 하셨대요.



하지만 꼭 연세가 많으시다고 먼저 돌아가시는건 아니더라구요
친할아버지는 제가 초2때, 그 다음에는 외할아버지가 초4, 외할머니가 초5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반년도 채 안지났던 때에요) 친할머니가 가장 마지막으로 중2때였나 돌아가셨죠.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저희 남매 앞에서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시지 않던 엄마가 조수석에 앉아 펑펑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친가를 많이 갔거든요. 제 기억속에도 친가에 가면 최소 1박2일, 2박3일을 지낸기억도 많고 아빠는 저와 제 동생을 데리고 잠깐잠깐 놀아주시기도 했지만 대부분 안방에서 티비를 보시고 주무셨죠. 엄마는 큰엄마와 함께 항상 좁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어요(다행히도 갈등은 없었어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 큰엄마가 착하신분이시거든요)


외가는 주로 친가에서 아침을 먹고 차로 30분거리의 고모댁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왔어요 (친가는 충청도, 외가는 인천이었어요) 인천에 도착하면 오후 대여섯시 쯤이였고 밥을먹고 늦은 밤 내려왔던 기억이 나네요. 고모댁을 안들리면 늦은 점심쯤 도착... 물론 자고온 기억도 있지만 친가에 비하면 세발의 피죠. 외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보시면 참 좋아하셨는데.., 반려동물이랑 산책도 나가시고 하셨어요. 항상 다리가 불편하셔서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어요. 그게 합병증으로 변해서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줄은... 솔직히 좀 멘붕이었어요. 되게 정정하셨거든요. 아무래도 외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게 컸다고 생각해요...


제사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렇게 잘 사는 모습 못보여드린게 너무 미안하다고. 맞아요. 지금은 여러가지 방면으로 많이 나아졌죠. 외삼촌과의 관계도 많이 나아졌어요. (첫째 외삼촌이랑 둘째 외삼촌이 거의 모든 지원을 받으셨거든요. 첫째 외삼촌은 지금 제약회사 다니시고, 둘째 외삼촌은
중국에 계세요. 이모랑 엄마는 셋째, 막내셔서 비교적 공부를 많이 못하셨어요 대학은 나오셨지만...특히 엄마가 막내셔서 그런진 몰라도 어려서 외삼촌이 많이 혼내셨대요)


조부모님들 다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외가가 없어졌으니 서울의 외삼촌 집으로 모이게 되었어요. 아직도 남성분들은(특히 외삼촌은) 요리, 설거지, 심지어 반찬더달라, 밥 더달라 물달라 등등 손가락 까딱 안하시지만 분위기 자체는 옛날에 비해 많이 나아졌어요.




말이 너무 길었네요. 그냥 조부모님들 생각나고 엄마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서 한탄하는? 글이에요. 다들 월요일 잘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