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힘들었던 지난 시절

ㅇㅇ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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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은 엄청 유복한건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가정 불화 없이 잘 키워주셨고
성적도 전교권으로 나쁘지 않게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때 어느 날
부모님 두 분이서 굉장히 심각하게 이야기하시길래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았습니다
긴가민가했는데 곰곰이 되새겨보니 정말인 것 같더군요
재정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신 건 아니고 저희 자매가 못 들은 거로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이미 다 들어버려서
어린 마음에 많은 상처가 되었고 그 뒤로 집안 경제 걱정이 마음에 너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전에 안 건데 아버지께서 다른 분께 사기를 당했다고
전 진짜 처음 듣는 내용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네요)

그때부터 더 이상 부모님께 용돈 달란 말도 하지 않고 애매한 재능으로 먹고 살기 위해 커뮤니티에서 그림으로 용돈 벌어보고 정말 어떻게해서든 제 손으로 해결하려 했고 어릴때부터 바라보던 예고 미대입시 전부 포기해야 했습니다 정말 절실했는데 차마 미술을 하고 싶다고 입이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딱 한번 꺼내봤는데 미술학원은 힘들 것 같다는 말

부모님은 모르실 겁니다 굳이 용돈 달라 하지 않은 이유를
용돈 준다는 말도 다 거절하고 부모님 쓰시라고 했습니다

사립대도 보내주지 못하고 국립대만 될 것 같다
그래도 국립대를 빚을 내더라도 보내주겠다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전 그게 더 싫었습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 0원으로 전교권 졸업한
언니에게 열등감이 생긴 이후로 돈에 정말 민감해졌습니다

난 장학금도 따오지 못하는 정말 못난 딸이구나 싶어서
수학도 잘 못하는 애가 공대를 간다고 돈 잘 버는 과를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어찌 어릴때의 미련을 버리고 펜대를 꺾겠어요
그때부터 극심한 혼란과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에 성적은 원하는 대로 나와주질 않고 집안 걱정에 조바심이 나고 국립대는 붙을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불면증으로 하루하루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이 저를 더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해도 결점이 생기기 마련인데
왜 난 이런 것도 못하지? 저 사람은, 언니는 잘하는데
부모님께 학비 안내문을 가져다드릴때 왜인지 모르게
속이 너무 상하고 나 자신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너가 더 잘해야 된다 너가 그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부모님 속만 썩이는 거다 너네 언니 봐라 너 같은건 도움이 안된다’
자아분열이 의심될 정도였으니
심지어 문과였던 저는 뉴스에서 선생님들의 말에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언니가 원망스러운게 절대 아닙니다

문과는 취업도 안된다고 하네
미술도 너무 하고 싶은데 지금 늦은 것만 같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수학도 못하는 X이 뭔 공대인지
차피 거기 가서도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많을 텐데
부모님 속만 또 썩이겠지 하아...

그때부터 삶에 대한 원망이 가득해졌습니다
공부를 새벽 내내 붙잡고
자면 악몽이 시작됩니다 지인들이 난도질에 강간에 참수당하고 폭사당하는 끔찍한 내용 뿐이었습니다
악몽을 꾸기 싫어 밤을 새고 너무 피곤해 잠을 청할때
ASMR을 듣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어찌 잠들어 깨어났을 때 창문을 보면 12층 고층에서 뛰어내리고 싶고 길거리에서 차가 오면 그냥 치여 죽었으면 좋겠고

차라리 내가 죽으면 사망보험금이라도 나올텐데
차라리 그게 있다면 더 풍족해질텐데
빈첸이라는 래퍼가 그러더군요? 내가 불행해도 가족들은 웃게 해줘야지 라는 말이 제 마음과 소름돋게 똑같았습니다
너무 모자란 딸이 가족에게 피해만 주는 것 같아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과 우울만이 남았습니다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
뭘 해도 안되는 난 이렇게 해도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가?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지?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티를 차마 낼 수 없어 웃음으로 일관했고
일주일에 3kg 이상이 빠지고 탈모가 생기고
잘 먹던 저녁을 매일 거르고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하는 것마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아
그 사람의 시간을 뺏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안그래도 결점뿐인 나인데 다 떠나갈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우울감이 저를 무가치로 몰아넣었고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매고 죽고 싶고 칼로 팔을 긋고 싶고
갈때 아프지 않게 죽고 싶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럴 용기조차 안 나더군요
아니 그럴 힘조차 안났다고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남들이 제발 내 맘을 알아줬으면 누가 들어줬으면

그마저도 너가 열심히 안했기 때문에 라는 답으로 돌아온다면 정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했을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찌어찌 잘 살고 있습니다만
경제적 압박과 심한 감정의 기복으로 인한 우울은 진득하게 저를 괴롭히네요
주체하지 못할 정도인 날에는 죽음이 제 옆에 있는 것 같습니다

병원 치료를 권유받았는데
병이라면 치료를 받아야지요
그래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