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사전적의미로 성평등을 실현하는 여성 운동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은 아니 절대 다수는 남성중심의 사회로써 발전해왔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하며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 문명에서는 여성의 권익을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예시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 11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지척,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쓰여있습니다.
남녀를 떠나서 국민이기때문에 보장받아야할 기본적인 권리 즉 페미니즘의 본질은 인간중심의 사상인 휴머니즘에 기초하여 발전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동의 할수 있을만큼 상당히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상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특정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앞서 말한 페미니즘이라는 사상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집단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평등을 실현하는 건전한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경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 진정성을 알수 있기때문입니다. 독립영웅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한국남자를 살해하기 위해 총기를 만들수 있다는 내용과남아 성추행 사건등 파렴치한 행위들이 너무많아서 일일이 열거 할수 없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행위가 여성우월주위 커뮤니티 사이트의 일부가 아닌 다수가 동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글에 추천수가 올라오는 것과 게시판 관리자가 방관한다는 것은 일부를 발췌하여 전체를 매도하는것이 아닌 그 집단의 성향이라고 보여집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페미니스트는 인간의 가치를둔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페미니즘이 아닌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여성우월주위에 기반한 남성혐오 단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사상과 개인의 사상과 규범을 재단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양심 비도덕적인 행위로 사회의 도덕과 규범 그리고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것을 상식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이라 말할수는 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우월주의 단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것으로만 판단한다면 핵심을 놓칠수 있습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인 자들은
이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있습니다."
여성우월주의 단체의 전략은 과연 무엇이고 어떤목표를 지향하는지 생각해봤을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전략으로 오히려 큰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여성의 참정권과 사회 진출은 많은 여성 인권 운동가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사회적인 배경 또한 작용하였습니다. 노예의 해방과 산업혁명으로 농부가 아닌 노동자가 생겨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산업은 남성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가사에서 벗어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게 되면서 재력이 생기게 되었고 금권국가에서의 재력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습니다.
"권력과 자유가 있는 개인이 과연 사회적 약자일수가 있을까요?"
여성우월주의 관련 이슈는 여성이 재산을 형성하는 순간 모든 국가에서
반드시 한번 거쳐가게되는 이슈가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페미니즘의 이슈를 모두 거쳐 갔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대부분 문제가 해결되었고
특히 인권 선진국은 더는 남여의 대결구도로 논하지 않습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은 투표와 같은 여성의 기본권을,
2세대 페미니즘은 남여의 차별을, 3세대 페미니즘은 게이나 레즈비언까지 포함한 성의 경계마저
모호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평등을 말합니다. 특히 3세대 페미니즘으로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인권의 운동으로써자연스럽게 여성만을 위한 단체의 힘은 약화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지금 이 과도기의 시점에 와 있습니다.
남아 선호사상으로 여아 낙태가 문제가 되기도 했고 여성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헌법 34조 3항에서는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1987년의 헌법에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객관적인 지표로는(성 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여성에 대한 페널티를 가하는 차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많은수의 페미니즘의 여성단체들 또한 2세대 페미니즘의 목표를 달성하였기에 3세대 페미니즘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모든 성에 대하여 행동해야 할
체질 개선의 시기가 온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여성단체의 여성 지지자의 이탈을 의미하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얼마 남지않은 다음 개헌 시기 헌법 개정안은
국가가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평등을 실현할 의무를 갖게 됩니다. (헌법개정안 아.평등권강화- 제11조 제1항 및 제2항 평등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실현할수 있도록 국가에 성별 또는 장애로 인한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지움으로써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이 헌법적으로 정당화 될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
여기에서 말하는 실질적 평등이 남성만의 의무를 차별로 받아들일 것인가 혹은 여성에게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할것인가 라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즉 헌법이 어떻게 개정되는가에 따라 향후 몇십년간의 여성단체의 이권이 걸려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과거 여성 차별이 심하고 치안이 불안했던 그 어느때보다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이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장 안전한 국가인 이곳에서
"여자라서 살해당했다"와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것입니다.
여성우월주의 단체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집단의 권력과 권력의 유지 즉, 생존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사회 공익 목적의 단체가 아닌 이권 단체의 행동을 보여왔습니다. 더이상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될 남녀의 차별문제에 집중할수는 없고 해결되기 힘든 위안부 문제는 기피하며 정작 관심이 필요한 이슈는 외면하였습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의 목적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분석한다면 절대로 여성의 권익이 아닙니다.
그들이 필요한것은 지속가능하면 강력한 힘을 실어줄 새로운 모델 "혐오"의 탄생입니다.
"이간계" -적을 서로 이간질하여 내부로 부터 분열하게 만드는 전술
대부분 남성은 여성단체에게 딱히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성혐오를 한다고 하여도 피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성혐오를 이용하여 여성 혐오를 생산할수 있다면 사회가 여성에 대해 공격적으로 변할수록 여성은 사회적 약자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남녀가 싸울수록 여성 우월주의 단체의 아군이 많아집니다. 결국 이들의 전략은 2세대 페미니즘의 남녀 구도를 오래동안 유지하기 위한 "이간계"입니다.
이제 그들의 모든 행위가 이해가 되실겁니다.
실질적인 행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 때문에 조작된 지표들을 이용할수 밖에 없고 또한 부족한 자료를 메꾸기 위해선 극히 일부분의 사건으로 전체를 매도할수 밖에 없습니다. 가해자가 여성이면서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그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남자가 피해자일경우 여자를 두둔하고 남자가 가해자일 경우 남자를 욕하기 바쁩니다.
"잘잘못을 따질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비논리적인 행보에도 그들이 존재할수 있는 이유는 남자는 적으로 간주하고 적은 무조건 나쁜것으로 보면되는 진영논리에 기반합니다.
진영논리에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1.비상식적인 행위를 하여도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것, 그리고 2. 이 행위들이 직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것 여성우월주의는 이 두가지를 충족하며 또는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유격전" -소수의 전력으로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급습후퇴를 반복하는 전술
그들의 커뮤니티는 익명으로 운영되며 내부의 적을 구분하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또한 시위현장에서 촬영을 금지한 이유가 바로 참여자 개인들이 특정되지 않고
단체 뒤에 숨기 위함입니다.
즉 그들도 이게 파렴치한 짓인것을 알고 있는것입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은 소수이며 진영논리 뒤에 숨어서만 힘을 가지기 때문에 개개인이 특정되는 행위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할수가 없습니다.
이런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시위가 필요했고 언론을 이용해 미화 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와 여성우월주의를 분리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것입니다. 필요할때 가면을 바꿔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공식적인 곳에서는 정상적인 페미니스트로 뒤에서는 여성우월주의 말입니다.
그렇게 여러 여성단체(중앙부처 산하 138개, 시,도,지방자치단체 601개 총 739개)와 연계하여 여성만을 위한 이상한 정책들이 가능해 지는것입니다.
그 결과 직접 행동하는 적극적 여성우월주의자와 여성우월주의는 욕하지만 여성 정책의 과실은 나누어 먹는 방관자
혹은 소극적 지지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족의 영웅을 더럽히고, 남성 피해자를 조롱하고,
부모에 대한 패륜을 옹호하는 이런 반인륜적인 집단에 대해 눈한번 감으면 각종혜택이 돌아오는 여성만을 위한 복지정책
이게 바로 사회통합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평등권입니까?
한국은 아직도 불의에 대한 분노보다 개인의 이득이 우선인거 같습니다. 게릴라 전술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게릴라 전술의 필수 조건은 민간인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여성만을 위한 우대정책 또는 복지정책으로 다수의 소극적 지지자를 만들어내고 여성우월주의는 소극적 지지자를 방패로 삼아
자신들의 피해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희생양이 된 억울한 여성분들이 여성우월주의자의 지지자가 되어주기 떄문입니다.
사회라는 공동체가 불의에 맞서지 않는 침묵이 가져올 결과는 불보듯 뻔합니다.
병든 닭은 병든 알을 낳습니다. 사회가 병들면 그 결과물은 참담할수 밖에 없습니다.
소극적인 여성우월주의 지지자분들 정신차리셔야합니다.
이건 조삼모사입니다.
혐오사회는 여성의 얻을 이익보다 공동체 사회에 해악을 주는 점이 더 크고 그게 자신을 비껴갈것이라는 순진한 상상은 하지마세요.
아무리 헬조선이라지만 국가 체제를 만만하게 보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인은 지지자가 적을떄는 극히 일부분의 단체를 위해 움직일수 있지만 세력이 커지면 전체 사회 구성원을 아우르는 정책을 할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여성우월주의 단체는 손절 당합니다. 써먹고 버릴수 밖에 없는 카드인거죠."
꿈깨셔야 합니다.
타인을 비방하고 멸시하고 혐오하는 그런 인권운동은 세상에 존재 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여성 단체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결국 여성우월주의는 지나갈 것입니다.
다만 이 이슈로 인해 사회의 큰 상처가 남을까 우려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이글을 이해하신다면 여성우월주의자들에게 겁 먹을필요가 없다는걸 알게 되셨을 겁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것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아닙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에게 두려워 하지마세요.
우리가 진짜 두려워 해야할것은 방관하고 침묵한 죄로 망가진 처참한 미래입니다.
폭력은 항상 더 약한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 혐오를 가장한 폭력을 행하는 여성우월주의는 더이상 약자가 아닙니다. 비겁자입니다. 그리고 비겁자에겐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페미니즘과 한국 레디컬 페미니스트.
시작하기전에
쓸데없이 긴글입니다. 가독성도 떨어집니다.
그래도 한번 읽어보시고 다시 한번 생각 곰곰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사전적의미로 성평등을 실현하는 여성 운동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은 아니 절대 다수는 남성중심의 사회로써 발전해왔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하며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 문명에서는
여성의 권익을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예시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 11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지척,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쓰여있습니다.
남녀를 떠나서 국민이기때문에 보장받아야할 기본적인 권리
즉 페미니즘의 본질은 인간중심의 사상인 휴머니즘에 기초하여 발전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동의 할수 있을만큼 상당히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상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특정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앞서 말한 페미니즘이라는 사상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집단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평등을 실현하는 건전한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경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 진정성을 알수 있기때문입니다.
독립영웅을 조롱하는 합성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한국남자를 살해하기 위해 총기를 만들수 있다는 내용과남아 성추행 사건등 파렴치한 행위들이 너무많아서 일일이 열거 할수 없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행위가 여성우월주위 커뮤니티 사이트의 일부가 아닌 다수가 동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글에 추천수가 올라오는 것과 게시판 관리자가 방관한다는 것은
일부를 발췌하여 전체를 매도하는것이 아닌 그 집단의 성향이라고 보여집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페미니스트는 인간의 가치를둔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페미니즘이 아닌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여성우월주위에 기반한 남성혐오 단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사상과 개인의 사상과 규범을 재단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양심 비도덕적인 행위로 사회의 도덕과 규범 그리고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것을
상식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이라 말할수는 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우월주의 단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것으로만 판단한다면 핵심을 놓칠수 있습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전쟁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인 자들은
이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있습니다."
여성우월주의 단체의 전략은 과연 무엇이고 어떤목표를 지향하는지 생각해봤을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전략으로 오히려 큰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여성의 참정권과 사회 진출은 많은 여성 인권 운동가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사회적인 배경 또한 작용하였습니다.
노예의 해방과 산업혁명으로 농부가 아닌 노동자가 생겨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산업은 남성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가사에서 벗어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게 되면서 재력이 생기게 되었고
금권국가에서의 재력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습니다.
"권력과 자유가 있는 개인이 과연 사회적 약자일수가 있을까요?"
여성우월주의 관련 이슈는 여성이 재산을 형성하는 순간 모든 국가에서
반드시 한번 거쳐가게되는 이슈가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페미니즘의 이슈를 모두 거쳐 갔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대부분 문제가 해결되었고
특히 인권 선진국은 더는 남여의 대결구도로 논하지 않습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은 투표와 같은 여성의 기본권을,
2세대 페미니즘은 남여의 차별을,
3세대 페미니즘은 게이나 레즈비언까지 포함한 성의 경계마저
모호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평등을 말합니다.
특히 3세대 페미니즘으로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인권의 운동으로써자연스럽게 여성만을 위한 단체의 힘은 약화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지금 이 과도기의 시점에 와 있습니다.
남아 선호사상으로 여아 낙태가 문제가 되기도 했고 여성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헌법 34조 3항에서는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1987년의 헌법에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객관적인 지표로는(성 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여성에 대한 페널티를 가하는 차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많은수의 페미니즘의 여성단체들 또한 2세대 페미니즘의 목표를 달성하였기에
3세대 페미니즘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모든 성에 대하여 행동해야 할
체질 개선의 시기가 온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여성단체의 여성 지지자의 이탈을 의미하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얼마 남지않은 다음 개헌 시기 헌법 개정안은
국가가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평등을 실현할 의무를 갖게 됩니다.
(헌법개정안 아.평등권강화- 제11조 제1항 및 제2항
평등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실현할수 있도록 국가에 성별 또는 장애로 인한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지움으로써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이 헌법적으로 정당화 될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
여기에서 말하는 실질적 평등이 남성만의 의무를 차별로 받아들일 것인가
혹은 여성에게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할것인가 라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즉 헌법이 어떻게 개정되는가에 따라 향후 몇십년간의 여성단체의 이권이 걸려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과거 여성 차별이 심하고 치안이 불안했던 그 어느때보다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이 인류역사를 통틀어 가장 안전한 국가인 이곳에서
"여자라서 살해당했다"와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것입니다.
여성우월주의 단체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집단의 권력과 권력의 유지 즉, 생존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사회 공익 목적의 단체가 아닌 이권 단체의 행동을 보여왔습니다.
더이상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될 남녀의 차별문제에 집중할수는 없고
해결되기 힘든 위안부 문제는 기피하며 정작 관심이 필요한 이슈는 외면하였습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의 목적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분석한다면 절대로 여성의 권익이 아닙니다.
그들이 필요한것은 지속가능하면 강력한 힘을 실어줄 새로운 모델 "혐오"의 탄생입니다.
"이간계"
-적을 서로 이간질하여 내부로 부터 분열하게 만드는 전술
대부분 남성은 여성단체에게 딱히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성혐오를 한다고 하여도 피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성혐오를 이용하여 여성 혐오를 생산할수 있다면
사회가 여성에 대해 공격적으로 변할수록
여성은 사회적 약자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남녀가 싸울수록 여성 우월주의 단체의 아군이 많아집니다.
결국 이들의 전략은 2세대 페미니즘의 남녀 구도를 오래동안 유지하기 위한 "이간계"입니다.
이제 그들의 모든 행위가 이해가 되실겁니다.
실질적인 행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 때문에 조작된 지표들을 이용할수 밖에 없고
또한 부족한 자료를 메꾸기 위해선 극히 일부분의 사건으로 전체를 매도할수 밖에 없습니다.
가해자가 여성이면서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그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남자가 피해자일경우 여자를 두둔하고 남자가 가해자일 경우 남자를 욕하기 바쁩니다.
"잘잘못을 따질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비논리적인 행보에도 그들이 존재할수 있는 이유는
남자는 적으로 간주하고 적은 무조건 나쁜것으로 보면되는 진영논리에 기반합니다.
진영논리에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1.비상식적인 행위를 하여도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것, 그리고
2. 이 행위들이 직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것
여성우월주의는 이 두가지를 충족하며 또는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유격전"
-소수의 전력으로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급습후퇴를 반복하는 전술
그들의 커뮤니티는 익명으로 운영되며 내부의 적을 구분하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또한 시위현장에서 촬영을 금지한 이유가 바로 참여자 개인들이 특정되지 않고
단체 뒤에 숨기 위함입니다.
즉 그들도 이게 파렴치한 짓인것을 알고 있는것입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은 소수이며 진영논리 뒤에 숨어서만 힘을 가지기 때문에
개개인이 특정되는 행위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할수가 없습니다.
이런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시위가 필요했고 언론을 이용해 미화 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와 여성우월주의를 분리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것입니다.
필요할때 가면을 바꿔 쓰기 위해서 말입니다.
공식적인 곳에서는 정상적인 페미니스트로 뒤에서는 여성우월주의 말입니다.
그렇게 여러 여성단체(중앙부처 산하 138개, 시,도,지방자치단체 601개 총 739개)와 연계하여
여성만을 위한 이상한 정책들이 가능해 지는것입니다.
그 결과 직접 행동하는 적극적 여성우월주의자와
여성우월주의는 욕하지만 여성 정책의 과실은 나누어 먹는 방관자
혹은 소극적 지지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족의 영웅을 더럽히고, 남성 피해자를 조롱하고,
부모에 대한 패륜을 옹호하는 이런 반인륜적인 집단에 대해
눈한번 감으면 각종혜택이 돌아오는 여성만을 위한 복지정책
이게 바로 사회통합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평등권입니까?
한국은 아직도 불의에 대한 분노보다 개인의 이득이 우선인거 같습니다.
게릴라 전술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게릴라 전술의 필수 조건은 민간인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여성만을 위한 우대정책 또는 복지정책으로 다수의 소극적 지지자를 만들어내고
여성우월주의는 소극적 지지자를 방패로 삼아
자신들의 피해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희생양이 된 억울한 여성분들이 여성우월주의자의 지지자가 되어주기 떄문입니다.
사회라는 공동체가 불의에 맞서지 않는 침묵이 가져올 결과는 불보듯 뻔합니다.
병든 닭은 병든 알을 낳습니다.
사회가 병들면 그 결과물은 참담할수 밖에 없습니다.
소극적인 여성우월주의 지지자분들 정신차리셔야합니다.
이건 조삼모사입니다.
혐오사회는 여성의 얻을 이익보다 공동체 사회에 해악을 주는 점이 더 크고
그게 자신을 비껴갈것이라는 순진한 상상은 하지마세요.
아무리 헬조선이라지만 국가 체제를 만만하게 보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인은 지지자가 적을떄는 극히 일부분의 단체를 위해 움직일수 있지만
세력이 커지면 전체 사회 구성원을 아우르는 정책을 할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여성우월주의 단체는 손절 당합니다. 써먹고 버릴수 밖에 없는 카드인거죠."
꿈깨셔야 합니다.
타인을 비방하고 멸시하고 혐오하는 그런 인권운동은 세상에 존재 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여성 단체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결국 여성우월주의는 지나갈 것입니다.
다만 이 이슈로 인해 사회의 큰 상처가 남을까 우려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이글을 이해하신다면 여성우월주의자들에게 겁 먹을필요가 없다는걸 알게 되셨을 겁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것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아닙니다.
여성우월주의자들에게 두려워 하지마세요.
우리가 진짜 두려워 해야할것은 방관하고 침묵한 죄로 망가진 처참한 미래입니다.
폭력은 항상 더 약한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
혐오를 가장한 폭력을 행하는 여성우월주의는 더이상 약자가 아닙니다.
비겁자입니다. 그리고 비겁자에겐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TLxxwLec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