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신천지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던 때는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던 여름이다. 아무리 물어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는 성경책을 앞에 놓고 울며 기도하던 시간만 이어지던 그때. 갈증은 이미 도를 넘어서 더는 어디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 없겠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나는 참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다.
‘하나님, 이 귀한 말씀 허락해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성경의 말씀들이 환히 보이는 기적을 매일 체험하며 나는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 그중에서 디모데 후서를 읽던 어느 날이었다. 시간상으로 볼 때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 후서는 자신이 순교할 것을 직감하며 쓴 서신서라 더욱 비장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매번 새롭게 다짐하게 해주는 서신서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 데마가 혹시 다른 서신서에서도 나올까? 정말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그를 ‘나의 동역자’라고 칭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사도들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바울이 직접 이름까지 거론했다면 데마가 얼마나 열심히 그들을 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바울이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데마는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네로 황제의 광기 어린 분노가 바울에게로 향하고 바울이 순교 당할 것을 알게 되자, 데마는 바울을 등졌다. 세상을 사랑해서 마지막 순간 바울을 버리고 떠난 데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의 기록은 그 후로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2,000년 전 예수님 스스로가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행4:11, 벧전 2:7, 막12:10) 하신 것처럼 초림 예수님 때 세운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선지 사도들부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까지, 그리고 계시록에서도 여자가 낳은 아이와 그의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로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만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이기는 자에게 복을 준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싸워 이겨야 할 것들이 많다.
첫사랑. 신천지에 와서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내 감정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전부 이루고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또 하나님께서 6,000년 전부터 계획해 오신 그 뜻을 알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효를 다한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 보혈로써 약속한 새 언약은 계시록 때에 이루어진다. 그때 마태복음 24장처럼 추수하는 일이 있으며 계시록 7, 14장에서 추수하여 인치는 일이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144,000이 완성되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는 그 나라에 하나님과 영계의 천국이 온다는 계시록 21장의 말씀을 깨닫게 된 이상, 잠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씨로 난 자녀를 한 명이라도 더 시온산으로 인도해야 한다.
처음 깨달았던 사랑 잊어서야 하겠는가.
저 세상에서 눈뜬장님으로 목마른 짐승으로 떠돌던 과거의 나를 생명수의 말씀으로 씻겨주시고 예복까지 입혀주신 사랑. 온전히 성경 말씀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알 수 있다. 말씀만 붙들고 가다 보면 종착역은 신천지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진 이 땅의 천국이다. 내 육신과 정신이 약해질 때마다 나는 데마를 떠올린다. 믿음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배도한 일을 거울과 경계 삼으며 더욱더 굳건한 믿음 위에서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고 말이다.
너도 가려느냐
[에세이] 너도 가려느냐
처음 신천지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던 때는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던 여름이다. 아무리 물어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는 성경책을 앞에 놓고 울며 기도하던 시간만 이어지던 그때. 갈증은 이미 도를 넘어서 더는 어디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 없겠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나는 참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다.
‘하나님, 이 귀한 말씀 허락해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성경의 말씀들이 환히 보이는 기적을 매일 체험하며 나는 성경책을 끼고 살았다. 그중에서 디모데 후서를 읽던 어느 날이었다. 시간상으로 볼 때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 후서는 자신이 순교할 것을 직감하며 쓴 서신서라 더욱 비장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매번 새롭게 다짐하게 해주는 서신서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 데마가 혹시 다른 서신서에서도 나올까? 정말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그를 ‘나의 동역자’라고 칭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사도들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바울이 직접 이름까지 거론했다면 데마가 얼마나 열심히 그들을 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바울이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데마는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네로 황제의 광기 어린 분노가 바울에게로 향하고 바울이 순교 당할 것을 알게 되자, 데마는 바울을 등졌다. 세상을 사랑해서 마지막 순간 바울을 버리고 떠난 데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의 기록은 그 후로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2,000년 전 예수님 스스로가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행4:11, 벧전 2:7, 막12:10) 하신 것처럼 초림 예수님 때 세운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선지 사도들부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까지, 그리고 계시록에서도 여자가 낳은 아이와 그의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증거하는 말로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만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이기는 자에게 복을 준다는 약속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싸워 이겨야 할 것들이 많다.
첫사랑.
신천지에 와서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내 감정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전부 이루고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또 하나님께서 6,000년 전부터 계획해 오신 그 뜻을 알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효를 다한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 보혈로써 약속한 새 언약은 계시록 때에 이루어진다. 그때 마태복음 24장처럼 추수하는 일이 있으며 계시록 7, 14장에서 추수하여 인치는 일이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144,000이 완성되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는 그 나라에 하나님과 영계의 천국이 온다는 계시록 21장의 말씀을 깨닫게 된 이상, 잠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씨로 난 자녀를 한 명이라도 더 시온산으로 인도해야 한다.
처음 깨달았던 사랑 잊어서야 하겠는가.
저 세상에서 눈뜬장님으로 목마른 짐승으로 떠돌던 과거의 나를 생명수의 말씀으로 씻겨주시고 예복까지 입혀주신 사랑. 온전히 성경 말씀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알 수 있다. 말씀만 붙들고 가다 보면 종착역은 신천지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진 이 땅의 천국이다. 내 육신과 정신이 약해질 때마다 나는 데마를 떠올린다. 믿음의 동역자였던 데마가 배도한 일을 거울과 경계 삼으며 더욱더 굳건한 믿음 위에서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고 말이다.
[출처] [신천지 에세이] 너도 가려느냐 (진짜바로알자 신천지) |작성자 gre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