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원어 사전:
무화과 나무.sukh'(4808, 쉬케)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쉬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에나(무화과 나무, 무화과)의 역어로 사용되어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창 37장; 민 13:24). 무화과 나무(열매)는 약속의 땅의 특색으로 묘사되었다(신 8:8).
쉬케는 비유적(삿 9:10),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메시야 시대의 안락과 번영(왕상 4:25)을 나타낸다(미 4:4 슥 3:10).
이 단어는 또한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것(호 9:10), 갱생(욜 2:22), 시드는 것(사 34:4), 포획하기 손쉬운 것(나 3:12), 낭패된 소망(합 3;17)을 나타낸다.
다른 나무들과 수확물들의 멸종시킴 같이 무화과의 파괴는 심판을 묘사한다(호 2:12 사 34:4 렘 8:13 욜 1:2-욜 1:12). 호 9:10(참조: 렘 24장)에서 이 단어는 국가를 상징하며, 그 외의 경우에는 이 국가가 대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
# 12절
구절 강해 설교를 해서 발견한 귀한 구절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노숙을 하셨는가입니다 누구 성경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깊이 해 보았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배고프면 집에가서 밥먹고 잠을 자야지 할겁니다. 예수님의 본문의 장면은 점점 날이 저물어 가는 상황인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배고프고 저녁이 되면 누구나 생각하시겠죠 배고프면 집에 가서 밥 먹고 자야지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길가에서 음식을 찾으십니다. 집이 없으신가? 음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이 없으시겠구나 고생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뭐라 하고 있죠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8 19, 20
서기관같은 고위직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쉽게 생각하는거 같습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일정하게 돌아가 따뜻한 밥상이 차려진 식탁과 편안한 잠자리 서기관과 우리가 누리는 혜택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는 순회 전도를 하셨기에 제자들이나 주님을 영접한 자들의 집에서 주무시거나 아니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아기시절같이 집 주인의 자리를 내쫓을 수 없기에 마귀간이나 창고에서 불편하게 쉬시거나 이스라엘의 겨울은 추워도 영상 15도를 내려가지 않았기에 겟세마네 동산과 같이 풀이 우거지 나무에서 밤새 쉬거나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편안한 집안의 식탁보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굽는거 같이 길에서 식사하시기도 하십니다.
당시 밤새워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도 있었기에 예수님의 자신의 제자들을 길에서 밤새워 쉬시면서도 제자들을 지키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거처 없이 지내셨듯이 그 광야 시험은 이런 부분적인 노숙을 위한 연단과 훈련이었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우리 주님의 희생을 더 고귀하게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생만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겸손과 보살핌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길거리의 노숙자 서울역의 노숙자 공원의 노숙자들 다 주님께서 그들의 맘을 아시고 같이 겪어 오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과도 함께하라는 겸손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 15
이 구절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아픔을 아시고 힘 주시고자 이들과 같이 되셨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 교회들이 주님의 마음을 아나 모르나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노숙자를 위한 식사, 밥퍼목사등 이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어 주님의 동정하심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됨을 저는 왜 미련하게 몰랐을까요 외식함 정도로만 생각한 제 어리석은 마음을 회개합니다. 그들의 진정한 주님의 천사요 일꾼들입니다.
13절
이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칠 때가 아닌데 왜 예수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히지 못하게 할까요 다른 주석서는 잘 해석이 명쾌하게 나오지 않았으나 바이블렉스 원어 성경 해석을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여기는 생략을 하였으나 제가 참조해서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을 지날 때가 유월절 경 4월이고 무화과는 6, 8, 12월에 열매가 맺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같이 무화과의 때가 아니어 열매를 맺지 못함이 분명 합니다.
그러나 앞 구절과 관련 다른 구절을 보면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인 것을 봅니다. 4월이면 거의 잎사귀가 보이지 않을 때라고 합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이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있었고 또한 무화과 나무는 잎이 나오면 동시에 열매를 적게 나마 맺기를 시작하는데 하나의 열매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본문은 아직 무화과가가 열매를 맺히지 못했다는 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인데 잎이 열매를 맺은 거처럼 무성히 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서 수많은 하나님과 관련된 역사적 잎새들이 무성하였으며 이미 그 열매를 풍성히 맺었어야 하는데 아브라함부터 2천년 이상 현재를 기준으로 4천년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믿지 않는 열매 없는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적의 상태에서 일찍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실망을 안겨주며 이후에도 적절하고도 신실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을 예지 하셨던 것입니다. 잎이 나올 때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후에도 실한 열매를 제대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니라 열매를 못맺는 것으로 끝나는 해석이 아니라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닌 때에 잎들이 다른 나무보다 무성하다는 것과 이미 잎이 있을 때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이후에도 실한 열매를 맺기 힘들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이 나무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무력한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할 만큼 최적의 은혜를 받았으나 이스라엘은 믿음의 열매가 없고 이후에도 잘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적의 자리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실망케 하느니 차라리 저주하고 태워 다른 나무를 심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해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삶에 적용을 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자기 자리만 차지하고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같이 장자의 민족이요 선택된 선민이요 열방에 뻗어 나갈 최적의 지형이요 젖과 꿀이 흐르고 헤르몬 얼음 산에서 흐르는 아름답고 깨끗한 갈릴리 바다 호수와 무진장 넘치는 사해의 소금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그러나 한민족도 전도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믿지 않는 잎새만 무성한 열매없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열매 없는 방해꾼이 되어 저주 받아 사라지는 것이 나을 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저주가 응하여 2천 년간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고 이슬람도 날마다 테러와 전쟁의 저주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없는 게 나아서 더 발전하거나 강성해질 필요가 없는 무력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메시아닉으로 인해 희망의 빛이 보이기에 가능성을 주는 것입니다. 그 잎새 속에 보이는 작은 열매들이 보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리만 차지하는 무익하고 훼방하는 자가 아닌 항상 유익과 도움과 희망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 2
우리는 열매를 맺을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자 구원의 날을 주시고자 도우시고자 계속 손을 내미십니다. 그 때를 성령충만함을 받아 실천하고 그 도움을 받아야만 그 때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말씀과 기도 실천 속에서 주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길게는 평생을 통해 믿음이라는 방주에 오르게 불신자들에게 손짓하시고 짧게는 각자 살아가는 어려움을 해결케 하시고자 키를 주십니다. 길게는 불신자를 향해 구원방주를 짧게 보아서는 성도의 삶을 돕고자 도움의 키를 주십니다.
이때를 놓친다면 불신자는 영벌이요 성도는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여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때를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성령이 충만하여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피조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알지 못하여도 우리를 단련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정금과 같이 나올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도 아오나 주지 중에 강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끄시는 은혜도 있음을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님은 거처도 없으신 공생애가 3년입니다. 그 낮은 자의 아픔을 돌보고자 그리하시는 겸손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낮은 자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는 맘을 주시고 그런 낮은 자를 돌보시는 목자 되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너무나 안락하고 편안 세상의 문명을 주시어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여유 속에 더욱 주님을 전해야만 하는 사명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또 욕심 속에 갈길 잃어 방황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사명을 잊지 않고 도울 자를 돕게 하옵시고 도움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잘 분별하여 외면하지 아니하게 하여주소서 한반도에 평안의 때를 주옵시며 번영하면 할수록 성도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세계적 선교국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내실에도 충실한 진실한 한반도 교회의 부흥을 이끌어 가게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취하고 미혹된 어리석은 교회들 있다면 깨워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
마가복음 11 : 12 ~ 14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
주품이 큐티 ^ ^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원어 사전:
무화과 나무.sukh'(4808, 쉬케)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쉬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에나(무화과 나무, 무화과)의 역어로 사용되어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창 37장; 민 13:24). 무화과 나무(열매)는 약속의 땅의 특색으로 묘사되었다(신 8:8).
쉬케는 비유적(삿 9:10),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메시야 시대의 안락과 번영(왕상 4:25)을 나타낸다(미 4:4 슥 3:10).
이 단어는 또한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것(호 9:10), 갱생(욜 2:22), 시드는 것(사 34:4), 포획하기 손쉬운 것(나 3:12), 낭패된 소망(합 3;17)을 나타낸다.
다른 나무들과 수확물들의 멸종시킴 같이 무화과의 파괴는 심판을 묘사한다(호 2:12 사 34:4 렘 8:13 욜 1:2-욜 1:12). 호 9:10(참조: 렘 24장)에서 이 단어는 국가를 상징하며, 그 외의 경우에는 이 국가가 대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
# 12절
구절 강해 설교를 해서 발견한 귀한 구절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노숙을 하셨는가입니다 누구 성경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깊이 해 보았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배고프면 집에가서 밥먹고 잠을 자야지 할겁니다. 예수님의 본문의 장면은 점점 날이 저물어 가는 상황인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배고프고 저녁이 되면 누구나 생각하시겠죠 배고프면 집에 가서 밥 먹고 자야지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길가에서 음식을 찾으십니다. 집이 없으신가? 음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이 없으시겠구나 고생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뭐라 하고 있죠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8 19, 20
서기관같은 고위직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쉽게 생각하는거 같습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일정하게 돌아가 따뜻한 밥상이 차려진 식탁과 편안한 잠자리 서기관과 우리가 누리는 혜택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는 순회 전도를 하셨기에 제자들이나 주님을 영접한 자들의 집에서 주무시거나 아니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아기시절같이 집 주인의 자리를 내쫓을 수 없기에 마귀간이나 창고에서 불편하게 쉬시거나 이스라엘의 겨울은 추워도 영상 15도를 내려가지 않았기에 겟세마네 동산과 같이 풀이 우거지 나무에서 밤새 쉬거나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편안한 집안의 식탁보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굽는거 같이 길에서 식사하시기도 하십니다.
당시 밤새워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도 있었기에 예수님의 자신의 제자들을 길에서 밤새워 쉬시면서도 제자들을 지키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거처 없이 지내셨듯이 그 광야 시험은 이런 부분적인 노숙을 위한 연단과 훈련이었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우리 주님의 희생을 더 고귀하게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생만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겸손과 보살핌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길거리의 노숙자 서울역의 노숙자 공원의 노숙자들 다 주님께서 그들의 맘을 아시고 같이 겪어 오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과도 함께하라는 겸손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 15
이 구절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그들의 아픔을 아시고 힘 주시고자 이들과 같이 되셨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 교회들이 주님의 마음을 아나 모르나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노숙자를 위한 식사, 밥퍼목사등 이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어 주님의 동정하심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됨을 저는 왜 미련하게 몰랐을까요 외식함 정도로만 생각한 제 어리석은 마음을 회개합니다. 그들의 진정한 주님의 천사요 일꾼들입니다.
13절
이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들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칠 때가 아닌데 왜 예수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히지 못하게 할까요 다른 주석서는 잘 해석이 명쾌하게 나오지 않았으나 바이블렉스 원어 성경 해석을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여기는 생략을 하였으나 제가 참조해서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을 지날 때가 유월절 경 4월이고 무화과는 6, 8, 12월에 열매가 맺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같이 무화과의 때가 아니어 열매를 맺지 못함이 분명 합니다.
그러나 앞 구절과 관련 다른 구절을 보면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인 것을 봅니다. 4월이면 거의 잎사귀가 보이지 않을 때라고 합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있다는 것은 이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있었고 또한 무화과 나무는 잎이 나오면 동시에 열매를 적게 나마 맺기를 시작하는데 하나의 열매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본문은 아직 무화과가가 열매를 맺히지 못했다는 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인데 잎이 열매를 맺은 거처럼 무성히 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서 수많은 하나님과 관련된 역사적 잎새들이 무성하였으며 이미 그 열매를 풍성히 맺었어야 하는데 아브라함부터 2천년 이상 현재를 기준으로 4천년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믿지 않는 열매 없는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적의 상태에서 일찍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실망을 안겨주며 이후에도 적절하고도 신실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을 예지 하셨던 것입니다. 잎이 나올 때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후에도 실한 열매를 제대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니라 열매를 못맺는 것으로 끝나는 해석이 아니라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아닌 때에 잎들이 다른 나무보다 무성하다는 것과 이미 잎이 있을 때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이후에도 실한 열매를 맺기 힘들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이 나무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무력한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할 만큼 최적의 은혜를 받았으나 이스라엘은 믿음의 열매가 없고 이후에도 잘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적의 자리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실망케 하느니 차라리 저주하고 태워 다른 나무를 심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해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삶에 적용을 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자기 자리만 차지하고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같이 장자의 민족이요 선택된 선민이요 열방에 뻗어 나갈 최적의 지형이요 젖과 꿀이 흐르고 헤르몬 얼음 산에서 흐르는 아름답고 깨끗한 갈릴리 바다 호수와 무진장 넘치는 사해의 소금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그러나 한민족도 전도하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믿지 않는 잎새만 무성한 열매없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열매 없는 방해꾼이 되어 저주 받아 사라지는 것이 나을 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저주가 응하여 2천 년간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고 이슬람도 날마다 테러와 전쟁의 저주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없는 게 나아서 더 발전하거나 강성해질 필요가 없는 무력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메시아닉으로 인해 희망의 빛이 보이기에 가능성을 주는 것입니다. 그 잎새 속에 보이는 작은 열매들이 보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리만 차지하는 무익하고 훼방하는 자가 아닌 항상 유익과 도움과 희망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 2
우리는 열매를 맺을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자 구원의 날을 주시고자 도우시고자 계속 손을 내미십니다. 그 때를 성령충만함을 받아 실천하고 그 도움을 받아야만 그 때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말씀과 기도 실천 속에서 주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길게는 평생을 통해 믿음이라는 방주에 오르게 불신자들에게 손짓하시고 짧게는 각자 살아가는 어려움을 해결케 하시고자 키를 주십니다. 길게는 불신자를 향해 구원방주를 짧게 보아서는 성도의 삶을 돕고자 도움의 키를 주십니다.
이때를 놓친다면 불신자는 영벌이요 성도는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여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때를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성령이 충만하여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피조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알지 못하여도 우리를 단련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정금과 같이 나올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도 아오나 주지 중에 강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끄시는 은혜도 있음을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님은 거처도 없으신 공생애가 3년입니다. 그 낮은 자의 아픔을 돌보고자 그리하시는 겸손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낮은 자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는 맘을 주시고 그런 낮은 자를 돌보시는 목자 되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이제는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너무나 안락하고 편안 세상의 문명을 주시어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여유 속에 더욱 주님을 전해야만 하는 사명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또 욕심 속에 갈길 잃어 방황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사명을 잊지 않고 도울 자를 돕게 하옵시고 도움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잘 분별하여 외면하지 아니하게 하여주소서 한반도에 평안의 때를 주옵시며 번영하면 할수록 성도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세계적 선교국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내실에도 충실한 진실한 한반도 교회의 부흥을 이끌어 가게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취하고 미혹된 어리석은 교회들 있다면 깨워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