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사랑 얘기 좀 들어봐 막장이야

ㅇㅇ20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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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걔를 처음 본 건 2학기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급식실 앞이었어. 줄을 기다리는데 남자 줄에 처음 보는 애가 교복 단정히 입고 가만히 서 있는 거야. 나는 반듯하고 조용할 것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피부 하얗고 가로로 긴 눈을 가진 것도 내 취향이어서 힐끔 힐끔 보다가 그날 반해버렸어.

그리고 얼마 지나서 이걸 제일 친한 친구 A한테 이야기 했지. 나 학교에서 내 이상형 봤다고. 그러니까 A가 우리 학교에 그렇게 잘생긴 애가 있었냐면서 궁금해하더라. 잠깐 A 상황을 이야기 하자면 우리 학년에 학기 초부터 A한테 관심을 가지는 남자 연습생이 있었어. 처음에는 몰랐는데 안 좋은 소문(술, 여자)도 있고 좋아한다기 보다는 집적대는 느낌이 들었대. 연습생이면서 그닥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친구가 게임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 pc방 가자고 하는 것도 그렇고 연락하면서 머리 빈 게 드러나서 A는 걔를 별로 안 좋아했어. 연락오면 늦게 보거나 단답해서 빨리 상황 끝내는 식이었지. 나도 얘 이야기 듣고 걘 아니다, 거르라고 할 정도로 그 연습생을 안 좋아했어. 아이돌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멍청한 것도 별로였거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저렇게 데뷔한 거면 어떡하지 할 정도로.
(B라는 친구가 있는데 B 아는 사람이 그 연습생이랑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라서 안 좋은 이야기는 B가 잘 알고 있었어)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걔 이름도 목소리도 학번도 모르는데 좋았어 당황스러울 정도로.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해본 건 처음이거든. 어느 날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딱 맞딱뜨렸는데 하루 종일 걔 생각만 나는 거야. 얘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한테 용기같은 건 없었어. 그래서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했지 마주치게 되면 건네주려고.

나는 편지 내용을 친구 B한테 보여주면서 어떻냐고 물어보고 계속 고민하고 연습장에다가 쓰면서 고쳤어. B랑 남자 반 순회하면서 걔가 몇 반인지 알러 다니기도 했지. B도 A처럼 말만 들었을 뿐 걔 얼굴은 몰랐고 궁금해했지. 막상 마주치려고 하니까 또 안 보이더라 그래서 슬슬 애가 탔는데

며칠 전에 내가 걔를 급식실에서 또 보게 된 거야. 나는 B한테 쟤라고 알려줬지. B는 오.. 하더니 순둥하게 생겼다고 했어. 나는 그치 조용하게 생겼지? 하면서 기분 좋게 답했고.

다음 날 역시 기분이 좋은 채로 B에게 말했지. 오늘도 걔 봤다 목티 입었는데 잘 어울리더라.

그런데 그날 거의 자정이 다 돼서 갑자기 B한테 급하게 연락이 온 거야. 걔 오늘 입었던 목티 색이 뭐냐고. 그래서 말했더니 얘가 헐. 이라고 보내는 거야. 그리고 이어진 말이 '너 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연습생 기억나?'
설마.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전화를 걸었어.

B가 말하길 오늘 아는 사람이랑 길을 걷는데 어떤 사람이랑 인사하면서 와 연예인이다~ 했대. 그래서 아, 그 연습생인가 하면서 딱 걔를 봤는데 나랑 급식실에서 봤던 얼굴이랑 되게 비슷했다는 거야. B도 당황하면서 설마 했는데 또 입고 있던 옷이 목티였대.

믿을 수 없었어. B가 페북에서 사진 캡처해서 보내줬는데 반박할 여지없이 급식실 걔였어. 그래, A에게 집적대고 내가 질색팔색하던 그 연습생.

너무 충격이었어. 친구들 사이에서 입도 잘 안 여는 걔가 알 사람은 다 안다는 악명 높은 걔라니. 내가 아무리 아는 게 없었어도 그렇지 사람마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고 짐작되는 성격이 있잖아. B도 인정했어. 이미지가 전혀 매치가 안 돼. 그 순수한 얼굴에 상상조차 안 가,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는게.

참 일이 더럽게도 꼬였지. 나는 대체 누굴 좋아한 걸까.
친구랑 한숨만 쉬고 실소만 했는데 통화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있더라.

아무리 친해도 A한테 급식실 걔가 얘라는 걸 어떻게 말해 나는 절대 못 말해. 내가 편지지에 편지 쓰기 전에 이야기해준 B에게 너무 고마워. 내가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에 반했다는 말을 봤으면 얼마나 우스운 생각이 들고 삽시간에 소문이 쫙 퍼졌을까. 근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공허하다. 교무실에서 급식실에서 마주칠 것을 상상하면서 설렜던 게, 어떻게 편지를 써야 부담스럽지 않게 내 마음이 전해질까 일주일 넘게 고민했던 게 그토록 부질없는 짓이었다니.

아마 더 이상 첫눈에 반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