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반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부류들이 꼭 한 명씩은 존재했다. 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했으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항상 들고 다녔다. 주말에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고, 점심을 제외하곤 항상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이 친구들은 숫기가 없어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도 교사들은 이들을 좋아한다. 교사들이 싫어하는 학생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문제를 일으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가만히 놔두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없진 않고 꼭 한두 명씩은 친하게 지낸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답답한 유형의 대표적인 인간이 ‘나’다.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내가 순식간에 시트콤 속 주인공이 된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중에 재미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빨래’다. 나를 빨래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탁기 속 물줄기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는 수동적인 것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그렇게 부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내 인생에 열심히란 건 없어”일 정도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취미 생활은 더 가관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보고, 책읽고, 게임하고, 그나마 괜찮은 취미 생활은 그림 그리는 것 정도. 그림 그리는 것도 연필 깎기 귀찮아서 그만둔 거 알면 부모님이 대노하실 거다. 이런 답조차 나오지 않는 게으른 인간이지만 그래도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요한 주축을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었다. 나름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했고, 과분하게 이 머리로 4년제 대학교에 입학도 했고, 장래도 대충이지만 계획해두었다. 한마디로 삶이라는 퀘스트속에 나름대로의 요령을 찾은 셈이다. 그 요령은 영업비밀이지만 이번만 특별히 알려주겠다. 첫째, 절대 나서지 말 것. 둘째, 시키는대로만 할 것. 난 이 두가지로 잘 버텨왔었다. 단 그 효력은 내가 21살이던 해 2017년 3월 29일까지만 유효했다.
2017년 1월 23일 추운 겨울 나는 짧아진 머리칼을 어색하게 더듬으며 논산훈련소 앞에서 서있었다. 아직까지 그때 풍경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푸르스름한 머리의 또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고, 입대 전 아버지와 함께 훈련소 앞에서 맛없는 갈비탕을 만이천원인가 주고 사 먹었던 것까지. 이제와서 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런 이색적인 경험들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날 군대에 훈련병으로 던져진 나는 꽤 잘해나갔다. 제식은 왼발부터 번호에 맞게 나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고, 목소리는 무조건 크게 내면 된다. 12살 때부터 FPS게임을 해서 그런지 사격도 재밌었고, 화생방 cs탄도 마실만 했다. 열악한 환경탓에 기침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논산에서의 시간, 종교행사가 끝난 후 바라봤던 별들, 코 끝에 스치는 찬바람이 항상 나를 기분좋게 했다. 문제는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였다. 3월 29일에 xx사단 xxxx대대에 배치를 받게 된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같았고, 내 자신이 아직까지 스스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3월 29일 중대에 총 3명의 동기가 있었는데, 운전병, 전차조종수, 그리고 전차포수인 나까지 전부 같이 전입을 온 알동기였다. 입대하기 전에 모든 군대가 동기생활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1월군번인 우리들은 선임들과 생활했다. 전입한 첫날 중대장은 간단하게 인사를 시킨 후 대대분리수거장 폐지원매각에 우리들을 보냈다. 2주동안 아무것도 안시킨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3명의 신병들이 폐지원매각 작업을 얼마나 잘할까? 나를 포함한 3명의 신병들이 전부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그때 바로 윗선임이 우리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들 뭐해? 너희만 더러워?” 생각한번 해보자. 전입온 첫날 장갑하나 없이 분리수거장 작업을 갔는데, 이름도 모르는 선임이라는 사람이 신병에게 화를 냈다. 그때 심경은 말그대로 행성하나가 내 정수리를 향해 디스코를 추며 착륙할 준비를 하는 느낌, 그냥 _됬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우리는 맨손으로 쓰레기를 주워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선임과 중대장과의 마찰에 대해 설명할 건데, 일단 선임과 있었던 마찰부터 얘기해보고자 한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을 만큼 이상한 선임이 한명 있었는데, 그 선임은 말그대로 부조리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첫날 분리수거장에서 우리에게 뭐라 했던 사람과 내가 말하는 선임은 동일인물이다. 분리수거가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 우리들을 모아놓고 왜 그때 가만히 서있었냐고 뭐라했던 사람도 바로 그 선임이다. 그 선임을 편의상 J라고 부르겠다. J는 동기들도 싫어할만큼 성격이 안좋았고, 후임들은 당연히 그를 싫어했다. J는 집합을 자주 시켰고, 감정기복이 병적으로 심했는데, 한번은 자기 동기가 마음의 편지에 신고를 했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반드시 찾겠다며 선임들과 담배피면서 얘기한게 아직도 생생하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후임들이 싫어하고, 자기도 후임들을 싫어하면서 후임들과 얘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나한테도 박카스를 사주면서 “그래도 나는 너희들보고 별로 뭐라 안하잖아”라며 능청스럽게 말한 적도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J는 영창 10일을 갔었는데, 사유는 폭언, 욕설 및 폭행으로 중대 전체한테 마음의 편지에 적혔다. 원래 선임들과 같은 생활관에서 생활했는데, J 때문에 생활관을 완전히 동기생활관으로 바뀌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 생활관에 3명이 전부였던 적도 있었다. J의 일화는 매우 많지만 그 중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세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모의탄을 나르는 일인데, 사실 내가 체력이 좋지 않아서 30kg가까이 되는 모의탄을 두 개씩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불구하고 2층건물에서 맨 밑에 수송부까지 절반정도 나르고 있었는데, Y중사가 “여기까지 혼자 들고 온거야? 이제부터 내가 들테니깐 이리줘.”라고 했다. 원래라면 괜찮다고 끝까지 했겠지만 여름이라 땀도 뻘뻘 흘리고 팔에 감각도 없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 후 다른 물건을 들고 갔다. 그때 J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내가 너보고 그거 들라고 했어?” “들고 오다가 Y중사님이 들어주셔서 전 다른거 들고 왔습니다.” “이제 말대꾸도 하네?” “죄송합니다.” 그때 J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불침번때 온도체크를 하고 있는데 저녁에 나를 세워놓고 또 뭐라했었다.
두 번째는 J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었는데, 그때 1시간동안 아무이유없이 나를 노려봤었다. 진짜 토할만큼 역겨웠지만 못본 척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동기랑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눈은 여전히 나를 노려본 채로. “야 ooo은 말이 너무 없는 것 같애. 싸지방도 잘 안하고” J의 동기는 대충 “그러게”라며 넘어갔다. 하지만 J는 갑자기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야ooo 넌 선임이 니 얘기하고 있는데 대답도 안해?” 내가 대답할 타이밍이 어디였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난 죄송하다고 말하며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세 번째는 운전병 동기와 관련된 얘기다. 운전병인 내 동기가 점심에 밥을 먹으려고 J와 함께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중대 이등병이 취사지원이라서 식판을 갖다줬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저 이등병 조카 바보같이 생겼지?” 운전병 동기는 말없이 그냥 웃었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야 대답안해?”라고 한 것이다. 성격이 있었던 운전병 동기는 순간 욱해서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같습니다.”라고 했는데, 다시 화가난 J는 “이제 말대꾸하네? 너도 똑같아. ooo처럼 군생활하게 해줘? 똑같이 대해줄게. 넌 끝났다고. D.I.E”라고 했다. 그 ooo은 바로 나다. 이에 화가난 운전병 동기는 수첩에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적었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이번엔 화가 나서 소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소대장님. 그 J일병이 지속적으로 저희들을 괴롭혀왔고, 이번에 이런말까지 했는데, 그건 누가봐도 저를 정해놓고 여태까지 갈굼행위를 해온거라고 생각됩니다.” 소대장은 “이게 처음이 아니라면 심각한 것 같아. 이건 무조건 중대장님께 내가 직접 보고를 할게. 너무 마음쓰지마.”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J일병은 이번 사건으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대장과의 마찰을 말하고자 한다. 솔직히 그 선임보다 싫었던 사람이 바로 중대장이다.
이등병일 때, 나는 말을 많이 안했다. 아니 사실 살면서 말을 잘 안했다. 그건 아픈 과거때문도 아니고, 병때문도 아닌 성격자체가 소심하고, 집안자체부터 전형적인 과묵한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등병 약장을 달고 얼마나 화려한 언변을 구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대에 온지 한 3일이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를 세워놓고 말했다. “oo. 우리 잠시 차나 한잔할까?” 중대장이 행정반으로 나를 데리고 간 다음 상담을 진행했다. 이유는 잘 웃지 않고, 말을 잘 안한다는 것이다. 난 그저 “아직 적응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짧게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때부터 모든게 꼬이기 시작할진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자대에 온지 2주가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초소근무를 투입하게 되었다. 부사수는 외워야할게 많다. “통신보안 대탄초소 근무자 0중대 000입니다. 현시간부로 근무교대하였고, 탄통, 탄알집, 비상등이상없습니다. 내부 발판병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외부 발판형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귀소감명도 00 당소감명도 여하이상.”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J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첫날부터 저걸 외우게 했다. 그거 외에도 초병의 권한, 무기사용시기, 일반수칙등을 물어봤고, 대답못하면 그때부터 하루종일 갈굼당하는거다. 이런 혹독한 트레이닝이 있어서 그런지 막상 근무를 서는게 긴장되서 잠을 자지 못했다. 한시간정도 잠들었을 때, 긴장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잠에서 일어났는데, 말년병장 선임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고, “그냥 긴장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근무는 성공적으로 섰지만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oo. 나랑 차한잔 할까?” 중대장이 다시 상담실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언제나처럼 상담실에 차는 없었고, 걱정가득하고 부담스러운 중대장의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군인, 중대장이라는 자부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과도한 의지, 우월감으로 가득 찬 오만한 자신감이 둘러싸여 중요한 초점을 보지 못했다. “네가 잠에서 자주 깨고,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불렀어. 적응하는게 쉽지 않니?” 아직 난 이등병이었고, 전입온지 2주가 겨우 지나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이 5번정도 상담을 했었다. “제가 아직 적응을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를 했지만 중대장은 애초에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제 불침번이 너가 갑자기 잠에서 깼다고 하는데, 많이 힘들면 여단에 상담이라도 가는게 어떨지 물어볼건데 어때?” 다시 말하지만 전입온지 2주가 겨우 넘었다. 그런 나에게 여단 상담원까지 얘기가 진행된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되돌아왔다. 이건 흔히 말하는 최종병기 18호, 관심병사 아닌가. 누가 관심병사가 되고 싶을까? 나는 “아직 상담까지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적응하다가 안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저 중대장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얘기를 대대장에게 과장해서 내가 상담을 거부한 걸로 보고가 되었고, 내 맞선임보고 “oo가 요즘 걱정되는데, 니가 몰래 따라다니면서 나한테 보고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말하는 등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첩보영화를 찍고 있었다.
중대장에 대한 일화도 여러개 있지만 그 중에서 다섯가지만 말해보겠다.
첫째는 대탄 징계 사건이다. 5월 1일부로 나는 일병이 되었고, 내 소대 선임은 상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진급을 한 그날에 같이 초소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이 선임을 편의상 P라고 하겠다. 선임P는 J와 같은 부류이다. 허세도 가득하고, 부조리도 심한데 무엇보다 동기들조차도 P보고 성격파탄자라고 할정도니 그리 좋은 선임은 아니었다. P와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이 P가 또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차는 어떻고, 여자랑 어떻게 해야하고, 원래 내가 해병대 지원했는데 눈 수술 때문에 다시 재입대를 한거고 아니었으면 벌써 병장이었는데, 내 여자친구가 상무대 면회를 왔는데 모든 간부가 예쁘다고 난리가 났었다는 등 이런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자기 군생활할 때 선임한테 무서운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무서운 얘기에 누구보다 자신있었던 나는 P와 갑자기 무서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정도였으니 꽤 음침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장난을 치는 부분에서 내가 P뒤에 누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수백개의 욕설이 날아왔다. “야 신발 이건 말도 안되는거야. 니 짬은 생각할 수도 없는거라고. 너 미친놈인 줄 알았어. 지금 바로 총들고 행보관한테 뛰어가서 너 미친놈이라고 소리지를 뻔했다고.” 못믿겠지만 토시하나 안틀리고 심지어 약간 순화해서 저렇게 말했다. 당황한 나는 사과를 수차례했지만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한 2주가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oo아. 혹시 우리한테 안보이는 무언가가 너한테만 보이니? 귀신같은거.”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지금생각해도 열받는다. 장난은 똑같이 했는데 나만 이런꼴을 당했으니 말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J랑 근무를 섰는데 네가 뭘 봤다고 해서. 그리고 다른 선임들도 니가 허공에다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진짜 뭐가 보이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저렇게 진지하게 나불되는게 진심으로 역겨웠다. 이 얘기는 우리 부모님한테도 안했을 정도로 민망하고 화가 난다. 나름 대학생으로 과외도 하러 가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일못한다는 소리 안듣고 살았는데 군대가서 신들린 사람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아니, 진짜 뭐가 보이면 군대에 어떻게 왔겠습니까? 선임이랑 서로 똑같이 장난을 쳤는데 무슨 귀신을 보는게.... 하... 밖에서 대학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정상적으로 하고 다녔는데. 귀신이 보였으면 애초에 군대 안왔습니다.” 이 말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적지 않은 금이 갔다는 것과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반감이 짙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면 좋겠다.
“어쨌든 대대장님한테 보고를 했는데, 대탄에서 그렇게 잡담을 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하셔. 그래서 징계를 받게 될거야.”
그래서 난 징계4일, P는 징계3일을 받게 되었다. 똑같이 떠들었지만 다른 징계를 받게 된 것은 P가 특급전사라서 그런 것 같다.(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다.)
두 번째는 밥을 먹을 때 일어난 일이다. 군대는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으며 논산훈련소에선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대에 오면 전우조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며 존재하긴 하지만 암묵적으로 대다수가 그냥 독자적으로 돌아다닌다. 한번은 체력단련을 끝내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동기 두명이 속이 안좋다면서 구토를 하더니 미안하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는 괜찮다며 선임들과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어서 선임들은 먼저 먹고 나만 남아서 마저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상담을 하자고 했다.
“oo. 왜 혼자 밥을 먹니? 동기들이랑 안친하니?”
여기서 동기들이 속이 안좋아서 먼저 일어났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그 두명이 어디가 아픈지 지속적으로 물어보며 귀찮게 할 것이다. 그 동기들은 체력단련이 힘들어서 구토를 한 것인데, 이 사실이 중대장한테 알려지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을 살짝 바꿨다.
“원래 밥을 천천히 먹어서 동기들보고 먼저 일어나서 일과준비하라고 했습니다.”
“oo아.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좋고,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는 것은 알지?”
“예”
“만약 다음번에도 혼자서 먹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고의적 명령불복종의 의미로 징계를 줄 수밖에 없어.”
세상 만사가 귀찮아졌고, 더 대화를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군대가 싫어졌던게.
“그럼 다음부턴 같이 먹겠습니다.”
세 번째는 유격훈련 때 있었던 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체력이 많이 안좋다. 그런 내게 유격훈련은 지옥이나 다름 없었는데, 첫 번째 유격 체조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두 번째 날은 간부 한명이 실수로 뜨거운 물만 갖고 와서 탈수증상으로 쓰러졌다. 군의관이 말했는데 탈수랑 탈진이 동시에 와서 순간적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3일은 모두 열외를 했다. 유격 마지막날 저녁에 중대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생각인데 이건 단순히 체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내 육사 동기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병원을 가봤는데, 희귀병이라서 몇 달간 쉬고 지금은 완치가 되었거든. 너도 그런 경우 같애. 내일중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봐.”
그래서 나는 피를 뽑고, 심전도 체크하고, ct, x-ray 등 여러 검사를 거쳐 아무 이상이 없으며 그냥 체력이 선천적으로 안좋고, 혈압이 유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왔다.
네 번째는 중대장이 부조리를 감싸줬다는 것이다.
P선임이 oo후임에게 화장실에서 바지랑 속옷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때? 지리지?”
oo후임은 이걸 성추행으로 마음의 편지를 작성했고, 중대장은 다음날 중대 게시판에 이렇게 답변했다,
“P선임의 악의적인 의도를 볼 수 없었고,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됨. 마음의 편지를 쓴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실명을 중대장에게 밝혀주길 바람”(이 내용은 실제로 게시판에 있던 것을 수첩에 메모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본이 분실되었다. 그래서 기억력에 의존한 내용이니 정확하진 않다는 점 유의하길 바란다.)
그 뿐만아니라 어떤 선임이 (누군지는 익명이라서 정확하게 모르지만)중대장에게 ‘후임들에게 욕설을 하지 못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선임으로서의 고충도 있다’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을 읽은 중대장이 전 중대원을 집합시켜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신발, 이새끼 저새끼’ 정도의 욕설은 허용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부터 선임들의 부조리는 심해졌다. 아까말했지만 J가 영창10일을 전역 40일전에 갔다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마지막 다섯 번째는 중대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선임J가 식당에서 운전병 동기에게 한 말과 그 후 내가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으나 J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J 때문에 완전한 동기생활관이 만들어지고 선임들이 후임생활관에 접근금지가 되었다는 말도 기억하는가.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J의 일을 보고했고, 그 다음날 중대장이 나에게 그것과 관련된 일에 대해 따로 나를 불렀다.
“oo. 그 건과 관련해서 헌병대 자료를 찾아봤는데 제 3자가 네욕을 했다고 해서 그건 징계사유가 되지 않아. 그리고 J도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해.”
“그럼 운전병 동기에게 상황을 들어서 조치를 해줄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래. 그러면 내가 oo(운전병동기)를 불러서 말해볼게.”
이 다음에 생활관이 나눠진 것이다. 나중에 운전병 동기에게 물어봤더니 도저히 J와 생활하기 싫다고 생활관을 나눠달라고 건의를 했던 것이다. 한동안은 동기들끼리 있어서 편하고 재밌었지만 J는 그것에 불만을 가졌고, 나를 심하게 갈구었다. 그리고 J는 지속적으로 생활관에 와서 관물대 검사를 했으며, 우리 생활관 휴대폰을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 등 정말 개망나니처럼 활보했다. 난 동기들끼리 마음의 편지를 쓰자고 했고, 대대마음의 편지랑 군단 마음의편지에 그 내용을 고스란히 작성했다. 그러자 중대장이 당직사령을 서고 있을 때 나에게 잠시 얘기좀 하자고 했다.
“oo아. J가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다시말하지만 헌병대 자료를 보면 징계를 줄 수 없어.”
“그러면 병영고충처리센터에 전화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조금 강하게 나갔다. 도저히 J의 갈굼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oo아. 사실... 내가 부족하지 않게 자랐어. 음.... 그래... 솔직하게 내가 자존심만 아니었어도 군인 그만두고 아버지 사업만 물려받아도 밥먹고 사는데 지장없어. 그냥 내 자존심 때문에 계속하는거야. 너가 만약에 그런일로 내가 전역을 한다면 기꺼이 명예롭게 전역을 할거야.”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갑자기 자랑을 하는건지 무슨 의도를 갖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우다
학창시절 반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부류들이 꼭 한 명씩은 존재했다. 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했으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항상 들고 다녔다. 주말에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고, 점심을 제외하곤 항상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이 친구들은 숫기가 없어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도 교사들은 이들을 좋아한다. 교사들이 싫어하는 학생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문제를 일으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가만히 놔두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없진 않고 꼭 한두 명씩은 친하게 지낸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답답한 유형의 대표적인 인간이 ‘나’다.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내가 순식간에 시트콤 속 주인공이 된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중에 재미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빨래’다. 나를 빨래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탁기 속 물줄기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는 수동적인 것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그렇게 부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내 인생에 열심히란 건 없어”일 정도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취미 생활은 더 가관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보고, 책읽고, 게임하고, 그나마 괜찮은 취미 생활은 그림 그리는 것 정도. 그림 그리는 것도 연필 깎기 귀찮아서 그만둔 거 알면 부모님이 대노하실 거다. 이런 답조차 나오지 않는 게으른 인간이지만 그래도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요한 주축을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었다. 나름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했고, 과분하게 이 머리로 4년제 대학교에 입학도 했고, 장래도 대충이지만 계획해두었다. 한마디로 삶이라는 퀘스트속에 나름대로의 요령을 찾은 셈이다. 그 요령은 영업비밀이지만 이번만 특별히 알려주겠다. 첫째, 절대 나서지 말 것. 둘째, 시키는대로만 할 것. 난 이 두가지로 잘 버텨왔었다. 단 그 효력은 내가 21살이던 해 2017년 3월 29일까지만 유효했다.
2017년 1월 23일 추운 겨울 나는 짧아진 머리칼을 어색하게 더듬으며 논산훈련소 앞에서 서있었다. 아직까지 그때 풍경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푸르스름한 머리의 또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고, 입대 전 아버지와 함께 훈련소 앞에서 맛없는 갈비탕을 만이천원인가 주고 사 먹었던 것까지. 이제와서 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런 이색적인 경험들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날 군대에 훈련병으로 던져진 나는 꽤 잘해나갔다. 제식은 왼발부터 번호에 맞게 나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고, 목소리는 무조건 크게 내면 된다. 12살 때부터 FPS게임을 해서 그런지 사격도 재밌었고, 화생방 cs탄도 마실만 했다. 열악한 환경탓에 기침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논산에서의 시간, 종교행사가 끝난 후 바라봤던 별들, 코 끝에 스치는 찬바람이 항상 나를 기분좋게 했다. 문제는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였다. 3월 29일에 xx사단 xxxx대대에 배치를 받게 된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같았고, 내 자신이 아직까지 스스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3월 29일 중대에 총 3명의 동기가 있었는데, 운전병, 전차조종수, 그리고 전차포수인 나까지 전부 같이 전입을 온 알동기였다. 입대하기 전에 모든 군대가 동기생활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1월군번인 우리들은 선임들과 생활했다. 전입한 첫날 중대장은 간단하게 인사를 시킨 후 대대분리수거장 폐지원매각에 우리들을 보냈다. 2주동안 아무것도 안시킨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3명의 신병들이 폐지원매각 작업을 얼마나 잘할까? 나를 포함한 3명의 신병들이 전부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그때 바로 윗선임이 우리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들 뭐해? 너희만 더러워?” 생각한번 해보자. 전입온 첫날 장갑하나 없이 분리수거장 작업을 갔는데, 이름도 모르는 선임이라는 사람이 신병에게 화를 냈다. 그때 심경은 말그대로 행성하나가 내 정수리를 향해 디스코를 추며 착륙할 준비를 하는 느낌, 그냥 _됬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우리는 맨손으로 쓰레기를 주워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선임과 중대장과의 마찰에 대해 설명할 건데, 일단 선임과 있었던 마찰부터 얘기해보고자 한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을 만큼 이상한 선임이 한명 있었는데, 그 선임은 말그대로 부조리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첫날 분리수거장에서 우리에게 뭐라 했던 사람과 내가 말하는 선임은 동일인물이다. 분리수거가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 우리들을 모아놓고 왜 그때 가만히 서있었냐고 뭐라했던 사람도 바로 그 선임이다. 그 선임을 편의상 J라고 부르겠다. J는 동기들도 싫어할만큼 성격이 안좋았고, 후임들은 당연히 그를 싫어했다. J는 집합을 자주 시켰고, 감정기복이 병적으로 심했는데, 한번은 자기 동기가 마음의 편지에 신고를 했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반드시 찾겠다며 선임들과 담배피면서 얘기한게 아직도 생생하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후임들이 싫어하고, 자기도 후임들을 싫어하면서 후임들과 얘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나한테도 박카스를 사주면서 “그래도 나는 너희들보고 별로 뭐라 안하잖아”라며 능청스럽게 말한 적도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J는 영창 10일을 갔었는데, 사유는 폭언, 욕설 및 폭행으로 중대 전체한테 마음의 편지에 적혔다. 원래 선임들과 같은 생활관에서 생활했는데, J 때문에 생활관을 완전히 동기생활관으로 바뀌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 생활관에 3명이 전부였던 적도 있었다. J의 일화는 매우 많지만 그 중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세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모의탄을 나르는 일인데, 사실 내가 체력이 좋지 않아서 30kg가까이 되는 모의탄을 두 개씩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불구하고 2층건물에서 맨 밑에 수송부까지 절반정도 나르고 있었는데, Y중사가 “여기까지 혼자 들고 온거야? 이제부터 내가 들테니깐 이리줘.”라고 했다. 원래라면 괜찮다고 끝까지 했겠지만 여름이라 땀도 뻘뻘 흘리고 팔에 감각도 없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 후 다른 물건을 들고 갔다. 그때 J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내가 너보고 그거 들라고 했어?” “들고 오다가 Y중사님이 들어주셔서 전 다른거 들고 왔습니다.” “이제 말대꾸도 하네?” “죄송합니다.” 그때 J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불침번때 온도체크를 하고 있는데 저녁에 나를 세워놓고 또 뭐라했었다.
두 번째는 J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었는데, 그때 1시간동안 아무이유없이 나를 노려봤었다. 진짜 토할만큼 역겨웠지만 못본 척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동기랑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눈은 여전히 나를 노려본 채로. “야 ooo은 말이 너무 없는 것 같애. 싸지방도 잘 안하고” J의 동기는 대충 “그러게”라며 넘어갔다. 하지만 J는 갑자기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야ooo 넌 선임이 니 얘기하고 있는데 대답도 안해?” 내가 대답할 타이밍이 어디였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난 죄송하다고 말하며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세 번째는 운전병 동기와 관련된 얘기다. 운전병인 내 동기가 점심에 밥을 먹으려고 J와 함께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중대 이등병이 취사지원이라서 식판을 갖다줬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저 이등병 조카 바보같이 생겼지?” 운전병 동기는 말없이 그냥 웃었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야 대답안해?”라고 한 것이다. 성격이 있었던 운전병 동기는 순간 욱해서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같습니다.”라고 했는데, 다시 화가난 J는 “이제 말대꾸하네? 너도 똑같아. ooo처럼 군생활하게 해줘? 똑같이 대해줄게. 넌 끝났다고. D.I.E”라고 했다. 그 ooo은 바로 나다. 이에 화가난 운전병 동기는 수첩에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적었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이번엔 화가 나서 소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소대장님. 그 J일병이 지속적으로 저희들을 괴롭혀왔고, 이번에 이런말까지 했는데, 그건 누가봐도 저를 정해놓고 여태까지 갈굼행위를 해온거라고 생각됩니다.” 소대장은 “이게 처음이 아니라면 심각한 것 같아. 이건 무조건 중대장님께 내가 직접 보고를 할게. 너무 마음쓰지마.”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J일병은 이번 사건으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대장과의 마찰을 말하고자 한다. 솔직히 그 선임보다 싫었던 사람이 바로 중대장이다.
이등병일 때, 나는 말을 많이 안했다. 아니 사실 살면서 말을 잘 안했다. 그건 아픈 과거때문도 아니고, 병때문도 아닌 성격자체가 소심하고, 집안자체부터 전형적인 과묵한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등병 약장을 달고 얼마나 화려한 언변을 구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대에 온지 한 3일이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를 세워놓고 말했다. “oo. 우리 잠시 차나 한잔할까?” 중대장이 행정반으로 나를 데리고 간 다음 상담을 진행했다. 이유는 잘 웃지 않고, 말을 잘 안한다는 것이다. 난 그저 “아직 적응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짧게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때부터 모든게 꼬이기 시작할진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자대에 온지 2주가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초소근무를 투입하게 되었다. 부사수는 외워야할게 많다. “통신보안 대탄초소 근무자 0중대 000입니다. 현시간부로 근무교대하였고, 탄통, 탄알집, 비상등이상없습니다. 내부 발판병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외부 발판형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귀소감명도 00 당소감명도 여하이상.”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J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첫날부터 저걸 외우게 했다. 그거 외에도 초병의 권한, 무기사용시기, 일반수칙등을 물어봤고, 대답못하면 그때부터 하루종일 갈굼당하는거다. 이런 혹독한 트레이닝이 있어서 그런지 막상 근무를 서는게 긴장되서 잠을 자지 못했다. 한시간정도 잠들었을 때, 긴장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잠에서 일어났는데, 말년병장 선임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고, “그냥 긴장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근무는 성공적으로 섰지만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oo. 나랑 차한잔 할까?” 중대장이 다시 상담실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언제나처럼 상담실에 차는 없었고, 걱정가득하고 부담스러운 중대장의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군인, 중대장이라는 자부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과도한 의지, 우월감으로 가득 찬 오만한 자신감이 둘러싸여 중요한 초점을 보지 못했다. “네가 잠에서 자주 깨고,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불렀어. 적응하는게 쉽지 않니?” 아직 난 이등병이었고, 전입온지 2주가 겨우 지나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이 5번정도 상담을 했었다. “제가 아직 적응을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를 했지만 중대장은 애초에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제 불침번이 너가 갑자기 잠에서 깼다고 하는데, 많이 힘들면 여단에 상담이라도 가는게 어떨지 물어볼건데 어때?” 다시 말하지만 전입온지 2주가 겨우 넘었다. 그런 나에게 여단 상담원까지 얘기가 진행된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되돌아왔다. 이건 흔히 말하는 최종병기 18호, 관심병사 아닌가. 누가 관심병사가 되고 싶을까? 나는 “아직 상담까지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적응하다가 안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저 중대장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얘기를 대대장에게 과장해서 내가 상담을 거부한 걸로 보고가 되었고, 내 맞선임보고 “oo가 요즘 걱정되는데, 니가 몰래 따라다니면서 나한테 보고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말하는 등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첩보영화를 찍고 있었다.
중대장에 대한 일화도 여러개 있지만 그 중에서 다섯가지만 말해보겠다.
첫째는 대탄 징계 사건이다. 5월 1일부로 나는 일병이 되었고, 내 소대 선임은 상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진급을 한 그날에 같이 초소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이 선임을 편의상 P라고 하겠다. 선임P는 J와 같은 부류이다. 허세도 가득하고, 부조리도 심한데 무엇보다 동기들조차도 P보고 성격파탄자라고 할정도니 그리 좋은 선임은 아니었다. P와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이 P가 또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차는 어떻고, 여자랑 어떻게 해야하고, 원래 내가 해병대 지원했는데 눈 수술 때문에 다시 재입대를 한거고 아니었으면 벌써 병장이었는데, 내 여자친구가 상무대 면회를 왔는데 모든 간부가 예쁘다고 난리가 났었다는 등 이런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자기 군생활할 때 선임한테 무서운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무서운 얘기에 누구보다 자신있었던 나는 P와 갑자기 무서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정도였으니 꽤 음침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장난을 치는 부분에서 내가 P뒤에 누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수백개의 욕설이 날아왔다. “야 신발 이건 말도 안되는거야. 니 짬은 생각할 수도 없는거라고. 너 미친놈인 줄 알았어. 지금 바로 총들고 행보관한테 뛰어가서 너 미친놈이라고 소리지를 뻔했다고.” 못믿겠지만 토시하나 안틀리고 심지어 약간 순화해서 저렇게 말했다. 당황한 나는 사과를 수차례했지만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한 2주가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oo아. 혹시 우리한테 안보이는 무언가가 너한테만 보이니? 귀신같은거.”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지금생각해도 열받는다. 장난은 똑같이 했는데 나만 이런꼴을 당했으니 말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J랑 근무를 섰는데 네가 뭘 봤다고 해서. 그리고 다른 선임들도 니가 허공에다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진짜 뭐가 보이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저렇게 진지하게 나불되는게 진심으로 역겨웠다. 이 얘기는 우리 부모님한테도 안했을 정도로 민망하고 화가 난다. 나름 대학생으로 과외도 하러 가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일못한다는 소리 안듣고 살았는데 군대가서 신들린 사람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아니, 진짜 뭐가 보이면 군대에 어떻게 왔겠습니까? 선임이랑 서로 똑같이 장난을 쳤는데 무슨 귀신을 보는게.... 하... 밖에서 대학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정상적으로 하고 다녔는데. 귀신이 보였으면 애초에 군대 안왔습니다.” 이 말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적지 않은 금이 갔다는 것과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반감이 짙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면 좋겠다.
“어쨌든 대대장님한테 보고를 했는데, 대탄에서 그렇게 잡담을 하는게 말이 안된다고 하셔. 그래서 징계를 받게 될거야.”
그래서 난 징계4일, P는 징계3일을 받게 되었다. 똑같이 떠들었지만 다른 징계를 받게 된 것은 P가 특급전사라서 그런 것 같다.(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다.)
두 번째는 밥을 먹을 때 일어난 일이다. 군대는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으며 논산훈련소에선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대에 오면 전우조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며 존재하긴 하지만 암묵적으로 대다수가 그냥 독자적으로 돌아다닌다. 한번은 체력단련을 끝내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동기 두명이 속이 안좋다면서 구토를 하더니 미안하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는 괜찮다며 선임들과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어서 선임들은 먼저 먹고 나만 남아서 마저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상담을 하자고 했다.
“oo. 왜 혼자 밥을 먹니? 동기들이랑 안친하니?”
여기서 동기들이 속이 안좋아서 먼저 일어났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그 두명이 어디가 아픈지 지속적으로 물어보며 귀찮게 할 것이다. 그 동기들은 체력단련이 힘들어서 구토를 한 것인데, 이 사실이 중대장한테 알려지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을 살짝 바꿨다.
“원래 밥을 천천히 먹어서 동기들보고 먼저 일어나서 일과준비하라고 했습니다.”
“oo아.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좋고,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는 것은 알지?”
“예”
“만약 다음번에도 혼자서 먹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고의적 명령불복종의 의미로 징계를 줄 수밖에 없어.”
세상 만사가 귀찮아졌고, 더 대화를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군대가 싫어졌던게.
“그럼 다음부턴 같이 먹겠습니다.”
세 번째는 유격훈련 때 있었던 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체력이 많이 안좋다. 그런 내게 유격훈련은 지옥이나 다름 없었는데, 첫 번째 유격 체조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두 번째 날은 간부 한명이 실수로 뜨거운 물만 갖고 와서 탈수증상으로 쓰러졌다. 군의관이 말했는데 탈수랑 탈진이 동시에 와서 순간적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3일은 모두 열외를 했다. 유격 마지막날 저녁에 중대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생각인데 이건 단순히 체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내 육사 동기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병원을 가봤는데, 희귀병이라서 몇 달간 쉬고 지금은 완치가 되었거든. 너도 그런 경우 같애. 내일중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봐.”
그래서 나는 피를 뽑고, 심전도 체크하고, ct, x-ray 등 여러 검사를 거쳐 아무 이상이 없으며 그냥 체력이 선천적으로 안좋고, 혈압이 유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왔다.
네 번째는 중대장이 부조리를 감싸줬다는 것이다.
P선임이 oo후임에게 화장실에서 바지랑 속옷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때? 지리지?”
oo후임은 이걸 성추행으로 마음의 편지를 작성했고, 중대장은 다음날 중대 게시판에 이렇게 답변했다,
“P선임의 악의적인 의도를 볼 수 없었고,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됨. 마음의 편지를 쓴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실명을 중대장에게 밝혀주길 바람”(이 내용은 실제로 게시판에 있던 것을 수첩에 메모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본이 분실되었다. 그래서 기억력에 의존한 내용이니 정확하진 않다는 점 유의하길 바란다.)
그 뿐만아니라 어떤 선임이 (누군지는 익명이라서 정확하게 모르지만)중대장에게 ‘후임들에게 욕설을 하지 못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선임으로서의 고충도 있다’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을 읽은 중대장이 전 중대원을 집합시켜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신발, 이새끼 저새끼’ 정도의 욕설은 허용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부터 선임들의 부조리는 심해졌다. 아까말했지만 J가 영창10일을 전역 40일전에 갔다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마지막 다섯 번째는 중대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선임J가 식당에서 운전병 동기에게 한 말과 그 후 내가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으나 J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J 때문에 완전한 동기생활관이 만들어지고 선임들이 후임생활관에 접근금지가 되었다는 말도 기억하는가.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J의 일을 보고했고, 그 다음날 중대장이 나에게 그것과 관련된 일에 대해 따로 나를 불렀다.
“oo. 그 건과 관련해서 헌병대 자료를 찾아봤는데 제 3자가 네욕을 했다고 해서 그건 징계사유가 되지 않아. 그리고 J도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해.”
“그럼 운전병 동기에게 상황을 들어서 조치를 해줄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래. 그러면 내가 oo(운전병동기)를 불러서 말해볼게.”
이 다음에 생활관이 나눠진 것이다. 나중에 운전병 동기에게 물어봤더니 도저히 J와 생활하기 싫다고 생활관을 나눠달라고 건의를 했던 것이다. 한동안은 동기들끼리 있어서 편하고 재밌었지만 J는 그것에 불만을 가졌고, 나를 심하게 갈구었다. 그리고 J는 지속적으로 생활관에 와서 관물대 검사를 했으며, 우리 생활관 휴대폰을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 등 정말 개망나니처럼 활보했다. 난 동기들끼리 마음의 편지를 쓰자고 했고, 대대마음의 편지랑 군단 마음의편지에 그 내용을 고스란히 작성했다. 그러자 중대장이 당직사령을 서고 있을 때 나에게 잠시 얘기좀 하자고 했다.
“oo아. J가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다시말하지만 헌병대 자료를 보면 징계를 줄 수 없어.”
“그러면 병영고충처리센터에 전화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조금 강하게 나갔다. 도저히 J의 갈굼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oo아. 사실... 내가 부족하지 않게 자랐어. 음.... 그래... 솔직하게 내가 자존심만 아니었어도 군인 그만두고 아버지 사업만 물려받아도 밥먹고 사는데 지장없어. 그냥 내 자존심 때문에 계속하는거야. 너가 만약에 그런일로 내가 전역을 한다면 기꺼이 명예롭게 전역을 할거야.”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갑자기 자랑을 하는건지 무슨 의도를 갖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른 중대로 전출가고 싶습니다.” 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친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