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렜던 너에게

안녕2018.11.07
조회373
예전에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작은 모임을 한 적이 있었어 다 같이 여행을 가자는 목적을 가지고선 조금씩 돈을 모아서 친구 중 한 명이 전역한 주에 아직은 덥지만 지나가는 여름을 등진 초가을에 우리는 바다로 놀러 갔었어ㅎㅎ 재미있었어 남자 4명에 여자는 나까지 2명 차는 두대 빌려놓고 노래 들으면서 드라이브하니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그랬나 봐 너무 설레는 마음에 사랑에 빠지고 싶었나 봐

고등학생 때부터 엄청 친하던 우리들은 으레 그때의 학생들과 같게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그러다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남들과 같겠지만 특별한 학창 시절을 보냈어 그리고 성인이 된 후 남자애 몇몇은 군대를 가고 다른 애들은 대학교가 다르고 취업하고 하다 보니 서로에게 시간을 쓰진 못했지만 편안함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지 가끔 시간 맞춰 만나면 전혀 오랜만에 만난 거 같지 않은 편안함과 다정함이 난 우리가 지금까지 이 지긋지긋한(?) 우정을 이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했어

에구 계속 다른 이야기로 빠지네

다시 여행을 갔던 날의 상황으로 돌아가자면

남자애들 중엔 항상 쾌활하고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고 매번 웃긴 표정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그 애가 있었어
우리가 여행을 간 첫날에 그 애는 새벽 출근을 끝마치고 온 거라서 많이 피곤해 보이더라 하지만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던 너는 다 같이 마트에서 장 볼 때 그렇게 행복해하더라 나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네가 참 들떠 보여서 나도 따라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었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대충 짐을 정리한 우리는 서둘러 바다로 나갔어 이제 초가을이라 해가 지면 물이 찰 거 같아서 하지만 너는 너무 지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놀다 오라고 우리에게 말했지 아쉬웠지만 우린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부랴부랴 뛰어나왔지 그 날이었어 내가 너한테 빠진 날이

한창 애들과 바다에서 물장난을 치다가 목이 말랐던 나는 숙소로 돌아갔어 네가 자고 있는데 깰 까 봐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너는 소파에 앉아 소설을 읽고 있더라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 물어봤을 때 넌 평소같이 시끄럽고 높은 목소리가 아닌 피곤해서 잠긴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나에게 잠이 안 오네 뭐 좀 마실래? 라며 주방으로 걸어가더라 순간 니 목소리에 괜히 설레서 어버버 거리며 아무거나 라고 말하던 나에게 낮게 웃으며 이온음료를 건네던 네가 너무 자상하고 다정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더라

나는 다시 나가기가 싫어졌나 봐 너랑 있고 싶었어
그땐 네가 좋다기보단 그냥 그 설렘이 좋아서 네 옆에 앉았어
기욤 뮈소의 종이 여자를 읽고 있던 네가 어떤 책이냐 묻던 나에게 이따금 기분이 좋아져선 책을 설명해주는 네가 아직도 눈에 밟혀서 나에겐 이제 그 책이 가장 좋아하던 책이 되었어
그때 네가 한참 그 책을 설명하는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게 머리카락이 볼에 달라붙었다며 넘겨주고는 수건을 건네주더라 내가 미친 게 분명했을 거야 건네주던 손을 덥석 잡고는 나도 당황해서 멀뚱멀뚱 너를 바라보다 손이 커 보여서 잡았어!!!라고 바보 같은 소리를 해버렸지 ㅎㅎㅎㅎㅎㅠㅠㅠ 그때만 생각하면 웃기다 그런데 너는 내 손을 자기 손에 딱 갖다 대며 니 손은 진짜 작네라고 하는 네가 너무 설레서 나는 홍당무가 돼서는 방으로 빠르게 도망쳐버렸네

근데 그때가 너무 설레는 추억이라서 글을 쓰는데
너무 슬퍼졌다 그만 쓸래
네가 피곤해도 자지 않았던 걸 나는 왜 그냥 넘겼을까
너의 잠긴 목소리가 왜 슬픔이 아니라 졸렸다고 생각했을까
우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떠나간 네가 갑자기 너무 원망스러워서 원망스러워서 너 싫어 꿈에도 나오지 마 이제 나 보면서 웃지 마 그 좋은 목소리로 내 이름도 부르지 마 너무 보고 싶은데 너를 원망하는 만큼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 싫다 진짜